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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보도 안 할거냐?"…그래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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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보도 안 할거냐?"…그래도 안 했다

[기자의 눈] 하중근 씨 죽음에 침묵하는 언론

4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집회 도중 입은 부상으로 숨진 포항지역 건설노동자 하중근(44) 씨의 대한 부검 결과에 대해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그에 앞서 하 씨가 숨진 사실조차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이들 신문이 건설노조가 포스코 점거 농성을 벌일 때 연일 '불법 파업'을 하는 노조의 비판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회,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노조 측 진상조사단은 3일 기자회견을 갖고 전날 있었던 하 씨의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직접 부검에 참여한 의사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 내용을 보도한 신문은 <한겨례>, <서울신문>, <경향신문>에 그쳤다. 그나마 <경향신문>은 직접 취재한 내용이 아니라 '연합뉴스' 기사를 게재했다.

방송의 보도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MBC, SBS는 앵커멘트로만 단신(20~30초) 처리했고, KBS는 1분19초짜리 기자 리포트를 내보냈다. 하지만 KBS도 배경 화면을 하중근 씨가 부상을 당한 경찰의 갑작스런 1차 진압 상황이 아닌, 하 씨 부상 이후 흥분한 노조원들이 죽봉을 휘두르는 2차 진압 상황 장면으로 처리했다.

하중근 씨 사망에 일관되게 '침묵' 지켜 온 언론

하중근 씨는 지난달 16일 부상을 당해 사실상의 사망 상태인 '뇌사' 판정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포스코 점거 상황을 보도하는 중간에 하 씨가 '중상', '중태' 정도인 것으로만 보도했다. 또 뇌사 상태 17일만에 하 씨가 숨진 사실을 보도한 언론도 <한겨레>, <경향신문> 등에 불과했다. MBC는 하 씨의 사망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고, SBS는 단신 처리, KBS는 하 씨의 사인을 둘러싼 경찰과 노조 측의 공방 식으로 보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조 측 진상조사단은 3일 기자회견을 기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서울 프레스센터의 '외신기자클럽'으로 정했다고 한다. 진상조사단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기자회견 장소를 정하지 못했었다.
▲ 노조나 시민단체는 주로 '청와대 앞', '경찰청 앞' 등 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하지만, 3일 부검 결과 발표는 상당한 비용을 들여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발표됐다. "언론들이 하중근 씨 기사를 하도 안 써서였다"고 한다. ⓒ프레시안

진상조사단의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은 이날 "당초 포항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다, 포항에서 하면 기자들이 또 다시 외면할까봐 수십만 원을 들여 외신기자클럽으로 장소를 결정했다"며 "이래도 안 쓰면 이제는 언론들이 왜 하 씨의 죽음을 외면하는지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기자들을 상대로 '반 협박, 반 읍소'를 했다.

박 위원장은 "머리에 두 군데나 부상을 입고 양 팔에 멍이 들었으며, 갈비뼈가 두 대나 나간 걸 보면 경찰의 폭력에 의해 숨진 것이 분명한데도 언론들은 축소·왜곡 보도하고 있다"며 "이런 중대한 사건에 대해 언론들이 어찌 이리 철저하게 외면할 수 있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건설노동자들도 언론에 대한 실망을 넘어 좌절감과 배신감을 토로했다. 광양에서 올라온 한 노조원은 "우리는 80~90년대 학생들이 데모할 때도 묵묵히 현장에서 죽어라 일만 했다"며 "그런 우리들이 왜 40~50이 넘은 나이에 민주화 됐다는 세상에서 길 바닥에 나와 데모를 하는지에 대해 보도하는 언론은 왜 없느냐"고 말했다.

건설노조원들이 지난 1일부터 2박3일간 '상경 투쟁'을 하며 기자회견 및 집회를 벌인 곳에 포스코와 경찰청 외에 'KBS'가 포함돼 있다는 것도 이들의 언론에 대한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한 노조원은 지난 달 13일 포항시장이 참석한 포스코 측 대책회의에 KBS 포항지사 간부를 포함한 지역 언론사 간부들이 참석한 사실을 언급하며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노래에 '기자들을 기다리지 말라'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2006년 장마, 포항에서 비로소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이 포스코 파업 손실보다 보도가치 없다?"

물론 아직까지 하 씨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경찰 폭력인지는 명확히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어느 한 편의 주장만을 보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밝혀진 하 씨의 부상 부위와 형태, 당시 부상당한 집회 참가자들이 주로 머리와 얼굴 부분에 가격을 당했다는 정황 등을 보면 경찰의 폭력이 하 씨의 부상과 사망에 직간접 원인을 제공했다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농민대회에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이 지나지 않아 유사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하중근 씨의 사망은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침묵으로 일관할 사안이 아니다. 만약 경찰 폭력이 하 씨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밝혀진다면, 노무현 정권은 재임 중 시위 진압 과정에서 3명이나 숨지게 한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해 전용철, 홍덕표 씨 사망 당시에도 경찰은 "집에 가다 넘어져 다친 것"이라고 발뺌했었다. 하지만 뒤늦게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 기자가 찍은 사진에서 전 씨가 시위 현장에 쓰러져 있는 사진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급반전했고, 결국 '경찰 폭력'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 내려져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이 옷을 벗어야 했다.

또 두 농민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방패에 의한 가격 금지' 등 폭력 진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지난달 16일 집회에서 방패 등으로 폭력을 행사해 건설노조원들 15명이 부상당했고, 노조 측 진상조사단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포스코 점거 농성과 관련해 노조의 폭력과 불법 행위에 호통치던 일부 언론들이 바로 이러한 경찰 폭력에는 철저히 눈 감고 있는 것이다. "공권력의 엄정함을 보이라"며 오히려 주마가편(走馬加鞭) 식으로 경찰의 강경한 대응을 부추기던 언론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이지 '침묵'하고 있는 언론에게 묻고 싶다. 한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이 '포스코의 2000억 파업 손실'보다 보도 가치가 없는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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