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최종길 교수도 죽였는데, 너 하나 쯤이야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유신시절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중정)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던 전창일(78) 통일연대 상임고문이 24일 열린 인혁당 재건위 재심 사건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고문 상황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했다. 그는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뒤 20년 간 복역했다.
전 씨는 74년 5월 1일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그는 당시 굴지의 건설업체였던 극동건설의 간부로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초청으로 출장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전날 술을 마셔 정신이 없던 상태"로 끌려갔다는 그는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알고보니 먼저 끌려간 이들이 모진 고문을 받다가 그의 이름을 댔던 것이다. 당시 한 조사관은 "선생은 좋은 직장에 있으면서 사람 잘못 만나 이런 고생을 하냐"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비교적 '신사적'이었다. 조사관들이 보여준 다른 이들의 진술서에는 '거짓 진술'이 가득했다. 이에 전 씨는 자신의 진술서를 '사실대로' 써서 냈다. 그러나 모진 고문은 그 다음부터 찾아왔다.
"너 하나 쯤은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다음 날부터 조사관들의 '인상'이 바뀌었다고 한다. 전 씨는 "막말로 깡패같은 기질을 가진 조사관들이 나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말투도 거칠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조사관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최종길 교수를 죽였다. 너 하나 쯤은 죽일 수 있다.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곧 '몽둥이 찜질'이 시작됐다. 전 씨는 "야전침대 봉으로 '개 패듯' 두들겨 맞고 나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차츰 그가 처음에 쓴 진술서는 원래 내용이 다 없어지고 거짓 내용만 채워져갔다.
물고문과 전기고문의 내용을 묻는 말에 전 씨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회상하기 싫은 듯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설명해달라는 피해자 측 김형태 변호사의 요구에 나직한 목소리로 고문 모습을 설명했다.
"완전히 나체로 벗겨 양손과 양발을 타올로 묶은 뒤 긴 작대기에 끼워 두 개의 테이블 사이에 걸어 놓는다. 머리가 젖혀져 땅 바닥 쪽으로 축 처지게 되는데, 그러면 주전자로 코와 입에 물을 붓는다. 어푸어푸 거리며 숨을 못 쉬다 물을 마시게 되고 그러다가 정신을 잃는다." 그 순간 방청석에서 다른 고문 피해자가 갑자기 외쳤다. "그게 '통닭구이'여."
"거짓 진술? 고문 안 당해보면 모른다."
전기고문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 씨는 "보일러실 안에 조그만 방이 있는데 의자에 앉혀 놓고 손을 의자에 묶은 뒤 양쪽 엄지 손가락에 전기줄을 감아 전압 테스터 같은 것을 돌리면 '왁' 소리를 내고 자지러진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왜 거짓 진술을 했느냐"고도 물었다. 전 씨는 "고문을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말 끝을 흐렸다.
검사들도 '날조'와 '고문'에 한 몫 했다. 전 씨는 "검사 앞에서 조사 받을 때 맨발이나 고무신을 신고 있었는데, 검사가 취조 과정에서 벌떡 일어나 발을 밟아 비비면서 폭행을 하기도 했다"며 "또한 검사가 원하는대로 말하지 않아 검사가 '취조 못 하겠다'는 말 한 마디 하고 자리를 뜨면, 조사관이 지하 전기고문실로 끌고 내려가 겁을 줬다"고 증언했다.
이날 방청석에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 당한 8명의 희생자 유가족들과 당시 사건에 연루됐다 목숨을 건진 고문 피해자들이 전 씨의 증언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전 씨가 고문 상황을 설명할 때마다 나직하고 긴 한 숨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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