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재보선 패배로 인한 민주당의 내홍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의 당정쇄신론이 보다 발전된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보다는 계파간의 파워게임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과연 민주당이 당정쇄신을 할 수 있을까’하는 냉소적인 반응마저 보이고 있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는 일단 10.25 재보선 참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면적인 당정쇄신이 불가피하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당정쇄신의 시기 및 방법, 대선후보 조기가시화 문제 등을 둘러싸고 ‘조속한 전면쇄신론’과 ‘연말 당정쇄신론’이 맞서고 있다.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속한 당정의 전면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조속한 전면 쇄신론’은 민주당내 소장 의원들의 모임인 ‘열린정치포럼’과 ‘바른정치모임’이 주도하고 있으며 김근태 최고위원이 리더격으로 나서고 있다.
‘조속한 쇄신론’의 핵심적 주장은 '인적 청산'으로 사실상 동교동 구파와 권노갑고문을 겨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조속한 쇄신론’은 지난 6월 이후 동교동을 비판하던 목소리와 맥을 같이 한다.
***조속한 쇄신론과 연말 개편론의 대립 심각**
민주당 내 최대의 의원모임인 ‘중도개혁포럼’도 인적 쇄신을 포함한 대대적인 당정쇄신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연말 당정개편’론은 정기국회 이후 당정을 개편하고 대선 후보 조기 가시화로 여권의 구심점을 확보하여 현 정국을 돌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연말까지 당내에서 당정개편과 후보선출 시기 등에 대해 논의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내에서는 ‘연말 당정개편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개혁파들은 쉽사리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동교동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선두에 서 왔고, 재보선 이전부터 “앞으로 어떤 계기가 온다면 분명히 다시 하겠다”고 밝혔던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을 비롯한 한화갑, 정대철 최고위원은 이미 반동교동 연대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 김중권, 정동영 최고위원도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열린정치포럼’ ‘바른정치모임’ ‘새벽21’(초선의원 모임) 등으로 나뉘어졌던 당내 개혁파들은 점차 조직적인 연대를 형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당 주류의 후보 조기 가시화 주장에 대해 인적 쇄신을 피하고 특정후보를 지원하려는 정략적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잠재적 경선후보들 가운데서 이인제, 노무현 최고위원은 대선후보 조기가시화에 찬성하는 반면 나머지 후보군들은 조기가시화 문제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당정쇄신 문제는 대선후보 선출이라는 미묘한 당내 역학관계와 맞물리게 되고 대선 후보 선출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파워게임의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소장 개혁파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연말 당정개편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30일 국정쇄신 특별기구의 설치라는 방안을 내놓고 내홍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내의 내홍은 좀처럼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만큼 민주당의 내홍에는 뿌리깊은 갈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당내의 양상에 대한 정치학자 등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민심수용을 위한 당정쇄신’이라는 구호를 내걸고는 있지만 파워게임에 치중하여 진정으로 정치발전에 부합하려는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스정치 탈피, 개방정치로 거듭나야**
고려대 임혁백 교수(정치학)는 최근 민주당의 당정쇄신과 관련해 “민심을 얻을 수 있는 개방된 정당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정쇄신과 후보 조기가시화 문제가 대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문제가 왜 상충하는 지 알 수 없다. (권력다툼의 요소를 배제한다면) 두 문제는 동시에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당정쇄신이라고 하면 인적 쇄신 뿐만아니라 의사결정과정 등 당의 전반적인 조직과 체제를 바꾸는 것이 아닌가. 민주당 스스로가 한 단계 더 발전된 정당으로 자기 정체성을 갖추는 것이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더 중요하고 정치발전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어차피 민주당은 '포스트 DJ'라는 논의 속에 휘말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기회에 민주당은 자신이 대변하는 집단이나 계층을 분명히 하는 정책비전, 민주적으로 후보를 선출할 수 있는 경선방식의 도입, 정치자금의 투명한 확보와 배분 방법, 민주적인 당내 의사결정 등 총체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특히 DJ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스스로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기회에 한국정당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탈피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당정쇄신이란 말은 공허해질 수 있다. 자신들만의 집안싸움이 된다면 이반된 민심을 다시 얻지도 못할 뿐더러 정치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 교수는 특히 “DJ의 몫은 민주당에 분명히 있지만, DJ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민주당의 자생적인 모습”이 당정쇄신의 중요한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상지대 정대화 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정 교수는 “민주당의 당정쇄신이 한국정치의 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우선 1인 보스정치를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인적 쇄신을 통해 당내 의사결정과정을 민주화한 뒤에 내년 지방선거부터 낙하산식 공천이 아닌 지구당 당원들이 참여해 후보를 뽑는 방식을 선택해 한단계 높은 민주정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당 민주화만이 레임덕 막아**
그러나 정 교수는 “지금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 과연 민주당이 이번에 당정쇄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면서 “민주당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다면 민주당을 환골탈퇴시키는 데는 김대중 대통령의 역할이 가장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남대 심지연 교수(정치학)는 최근 중앙일보에 기고한 시론을 통해 더욱 직설적인 화법으로 민주당의 개편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심 교수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져 권력에 기생하고 있는 현실을 반성하고 이에서 탈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과의 고리를 가능한 한 일찍 끊고 독자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주장했다.
“호가호위하는 자세가 아니라 정당발전과 정치발전이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신의 위상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것”이 심 교수의 결론이다.
정치분석가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민주당이 이번 당정쇄신을 통해 당내 의사결정구조의 개방 및 민주화를 통한 보스정치의 탈피, 당원들의 보다 많은 참여를 통한 대중정당으로의 변화, 보다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갖는 정책적 비전 등 보다 민주화된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DJ의 레임덕을 막고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가장 유력한 방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앞날은 대선후보 선출이나 당정개편 등의 문제를 특정 계파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닌 정당의 발전이란 차원에서 민주적으로 풀어나가느냐 여부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당의 당정쇄신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한국정치의 발전 또한 그만큼 늦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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