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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에서 '종북'을 빼면 남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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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에서 '종북'을 빼면 남는 게 없다?

[시민정치시평] 종북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성찰이 필요하다

종종 '종북'이 인터넷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오르내리는 시절을 살고 있다. 도대체 종북의 기준은 뭘까. 국정원 민병주 전 심리전단 단장은 원세훈 2차 공판에서 가림막 증언을 하며 '댓글 달기가 종북 척결을 위한 거라 주장하는데 도대체 종북의 기준과 범위는 무엇이냐'고 묻는 검찰과 재판장의 신문에 마냥 침묵했다. 대신 국정원은 '이것이 종북의 실체다'라는 걸 보여주려고 작심한 듯이 이석기 의원 사건을 터뜨렸다.

애초 종북이란 진보정당 간 논쟁에서 탄생한 말이었다. 2001년 북한 조선노동당의 노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사회당은 '친북'과 구별되는 종북이란 표현을 쓰며 민주노동당의 통합 제안을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종북세력'과 함께 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2006년에는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동당 안에서 종북논쟁이 일어나 NL 주사파 계열에 반대하는 세력의 분당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종북은 진보 진영의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이내 보수 진영에게는 친북을 대신한 공격 무기로 간택됐다.

진보정당의 역사에서 다시 종북이 불거진 것은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 때였다. 당시 부정 경선의 진실 공방보다도 더 논란이 된 것은 이석기, 김재연 의원 등이 종북세력인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라는 사실이었다. 보수 진영은 이들을 종북 주사파 의원이라 부르며 사퇴를 촉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이석기 의원의 육성 녹취록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그가 내란 음모 혐의로 국회의 체포동의안을 받아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종북은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를 요동치게 만든 태풍의 눈이 됐다.

2013년 3월 북한의 일방적인 정전 무효화 선언으로 비롯된 "현 정세는 남북에 대한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외래 미 제국주의와 조선 민족의 한판 대결이라는 것이 본질"이라는 요지의 이석기 의원 발언은 2013년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1980년대 주사파 학생운동가의 주장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시대착오적이었다. 이렇게 진보 진영 내 수구의 실체를 민낯으로 접하게 된 진보 세력 역시 보수 진영 못지않은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 사건은 진보 진영에게 양날의 칼이다. 진보 진영 전체가 종북 세력으로 매도될 수 있는 위기인 동시에 진보 진영 내에 깊고 넓게 똬리를 틀고 있던 세력과 이념으로서의 종북을 직시하고 성찰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석기 의원 사건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응은 역시 격렬했다. 새누리당은 "종북 척결"을 주장하며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과 의원직 제적 징계안에 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일치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석기 의원 체포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국회의원들의 사상에 의혹을 제기하며 통합진보당을 넘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전체에 종북 혐의를 씌웠다. "반대는 대놓고 종북, 기권은 사실상 종북, 무효는 은근슬쩍 종북"이라 힐난하기도 했다.

이석기 의원 사건은 보수에도 양날의 칼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올드보이들의 귀환과 함께 신공안정국을 조성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이지만, 한편으론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정체성을 오직 상대를 종북으로 공격하는 것에서 찾으려는 보수 진영의 수구적 성향에 대한 대중적 반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 ⓒ연합뉴스

대한민국 보수는 세는 강하나 이념은 취약하다. 해방 이후 줄곧 반공의 깃발 아래 이념을 전파하고 세력을 유지해 온 이래 지금도 말 그대로 종북을 입에 달고 살면서 남 탓을 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치 북한이란 주적이 없다면 대한민국 보수는 존재하지도 않을 것처럼 진보 진영보다 더 '종북'적인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에서도 이들 '수구 보수'의 '종북'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교학사 교과서에는 '북한의 위협과 한국 정치의 변화'라는 항목이 있다. 그 안에는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5.16 쿠데타 당시 혁명 공약, 10월 유신 선언문, 광주 시민군 궐기문, 6.29 민주화 선언 등이 자료로 제시돼 있다. 이를 해석하자면, 독재정치는 북한의 위협을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응이었고 민주화 운동은 북한의 도발을 자극할 수 있는 위험한 사건들이었다. 교과서 본문 곳곳에서도 대한민국의 정치사가 주체적인 발전을 한 것이 아니라, '북한 때문에 ~했다'는 식이 서술이 반복되고 있다. 이거야말로 '종북' 사관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렇게 '북한=악'의 강한 반북 정서, 그래서 늘 북한을 의식하는 '종북'을 빼면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수구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도통 변할 줄 모르는 보수 진영의 눈에 이석기 의원 사건은 진보 진영 모두를 종북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 호재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진보 진영의 대응이 이전과 분명 다르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보수가 증오하는 세력과 이념으로서의 종북에 대해 진보 진영도 그들 못지않은 싸늘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진보 진영에도 보수 진영에도 종북은 분명 수구의 코드다. 진보답고 보수답기 위해서는 양자 모두 종북이라는 주판알을 튕기며 득실을 따지는 습속을 버려야 한다. 진보든 보수든 자신의 정체성의 고갱이를 안으로부터 구성하지 않고 담장 밖으로부터 끌어오던 관성을 탈피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또한 종북에서 말하는 '북', 즉 북한이라는 존재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형용모순적인 실천을 요구한다. 대한민국에 북한은 어떤 존재인가 ─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인가? 그저 일본처럼 위협적인 이웃 나라인가? ─ 라는 새삼스럽지만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진영 내, 진영 간 논쟁으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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