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미국 테러 이후 우리 정부가 내놓은 대테러대책중의 하나인 테러방지법안의 국회상정을 반대하는 토론회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의 주최로 20일 오후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 이계수 울산대 법학부교수(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발제와 박래군 사랑방연구소 연구원, 정대연 민중연대정책실장, 한상희 건국대 법대교수(참여연대)의 토론이 있었다. 이날 토론회의 내용과 국가정보원이 입법예고한 테러방지법 제정안을 소개한다.
이계수(발제)=국가정보원이 내놓은 테러방지법은 전문 33개조와 부칙 5개조의 비교적 적은 분량이지만 국민에 대한 효과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법은 테러라는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비상 입법이라고 하겠는데 헌법의 절차에 따른 비상사태 선언도 없고 그에 대한 통제 방법도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군과 경찰의 경계를 허물게 될 테러방지법은 국정원과 같은 국가 권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 입법은 또한 우리의 일상을 항상 비상사태로 인식하게 만들거나 만드는 효과를 낳을 수 있으며 ‘계엄 없는 계엄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테러방지법이 없어도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 기존의 법 시스템 하에서 일상적인 불심검문, 전화 및 기타 통신매체에 대한 감청, 광범위한 정보 수집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외국의 정보기관과의 정보교류를 통해 테러방지를 위한 사전 예방시스템이 촘촘하게 구축돼있고 경찰에 대테러 특수부대가 조직돼있다.
그럼에도 국정원이 이 법안을 내놓은 것은 기획수사권을 통해서 국정원의 입지 강화를 노린 것이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지금은 세계적인 공안정국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자유주의적 법치국가가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정원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한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위험사회에서 우리들의 안전을 지키자면 국가권력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보다 안전한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법안 분석>
제2조의 테러에 관한 정의=불확정 법 개념이 마구 사용되고 있다. 정치적 항의를 목적으로 하는 미문화원점거 등이 테러의 개념에 포함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제6조 대테러센터의 구성=군인이 포함되는 것이 확실하다. 이는 민간인에 대한 군의 수사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13조의 외국인의 동향관리=외국인에 대한 사찰활동을 합법화하고 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법치국가적 보장에서 제외하는 것은 문제이다. 외국인의 출국은 출입국관리법 등 적법한 법의 절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제18조 군 병력의 동원=평시에 테러사태의 방지를 위해 군 병력을 출동하는 일은 헌법 해석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전에 국회에 통보만 하도록 돼있는 것도 매우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계엄이 선포되지 않는 한 군이 경찰력을 행사하는 것은 위헌이다.
제24조 불고지죄=현실적으로 범죄의 실행을 저지할 수 있는지를 묻지 않고 불고지를 처벌한다는 점에서 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우려된다.
제27조 형의 면제=형의 면제라는 대가로 증언하는 자가 진실을 얘기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용의선상에 오른 테러 예비 음모자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대단한 압력을 받을 것이고 그 결과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을 자백 혹은 신고할 위험이 있다.
제28조 정보자료의 증거능력=사법부의 판단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제30조 참고인의 구인 유치=원칙적으로 참고인은 수사에 대한 협조자에 불과하므로 출석과 진술을 강요할 수 없다. 이 법안처럼 포괄적이고 모호한 요건 하에 참고인을 구인할 수 없다.
<토론>
박래군=이 법안은 우선 불고지죄, 허위사실 신고, 형의 면제, 참고인의 구인 유치, 구속기간의 연장 등을 규정한 조항에서 제2의 국가보안법을 연상시키며 자의적으로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국정원에 설치할 대테러센터는 국정원 경찰 뿐만 아니라 군도 참여하게 되며 수사 및 기획 조정권한을 가지며 관계기관 합동 기구 운영, 금융기관에 대한 거래정지 지시, 외국인의 출국명령 요청 등의 권한을 갖고 있다.
이처럼 대테러센터 장의 권한은 광범위하고 자의적이며 대테러센터에 소속된 군이 평상시에도 민간인을 수사할 여지도 있다.
정대연=이 법안은 세계적으로 자본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고 한국에서 그동안 위축됐던 공안세력이 준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9.11테러를 계기로 세계화를 반대하는 NGO를 따돌리고 WTO 체제를 출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경제적 약자는 더욱 힘을 잃고 있다. 테러방지법안은 국내에서 신자유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그 결과 인권은 더욱 후퇴할 것이다.
한상희=법안에는 무서운 구조가 숨어있다. 법안의 내용이 대부분 확대해석이나 유추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대테러업무의 지휘체계는 대통령-국정원장-대테러센터장으로 돼있고 국민의 감시에서 가장 벗어나 있는 국정원장이 사실상 모든 사안을 판단, 지휘, 집행하게 돼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민의 정부는 억압의 정부가 된다. 테러위험은 정보의 공유, 공권력 행사의 투명성 획득 등을 통해 위험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지 국가 권력의 강화를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테러방지법안 중 토론회에서 문제 삼은 주요내용>
-[주]는 국정원이 붙인 것임
제2조(정의) 1.테러라 함은 정치적 종교적 이념적 민족적 사회적 목적을 가진 집단이 그 목적을 추구하거나 그 주의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행하는 다음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를 말한다. 다만 행위의 결과가 국가안보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상태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가. 국가요인 및 그 가족, 각계 주요인사, 외국요인, 주한외교사절의 폭행 상해 약취 체포 감금 살인
나. 국가중요시설, 대한민국의 재외공관, 주한 외국정부시설의 점거 방화 폭파 및 다중이용시설의 방화 폭파(이하 생략)
제5조(국가대테러대책회의) 1.2.(생략)
3.대책회의에서 위임한 사항을 협의하기 위하여 국가정보원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통일부장관 외교통상부장관 법무부장관 국방부장관 행정자치부장관 국무조정실장을 위원으로 하는 상임위원회를 둔다.
제6조(대테러센터) 국가 대테러활동과 관련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수행하기 위하여 관계기관의 공무원으로 구성되는 대테러센터를 국가정보원에 둔다.[주 1]
1. 2. (생략)
3. 테러사건의 수사[주 2]
4. 국가 대테러활동 기획 조정(이하 생략)
[주 1] 대테러센터는 국정원 군 경 등 9개 부처 합동으로 구성하고 간부도 합참처럼 각 기관요원들로 충원할 계획임
[주 2] 주요한 테러사건은 국정원에서 수사하였음
제13조(외국인 동향관리) 1.(생략)[주 3]
2.제1항의 규정에 의한 확인 결과 테러를 범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법무부장관에게 해당 외국인에 대한 출국권고 또는 출국명령을 요청할 수 있다.
[주 3]외국인 테러혐의자에 대해서는 영장없이 7일간 구금 가능(USA PATRIOT ACT 2001)
제18조(군 병력의 동원) 1.대책회의(상임위원회를 포함)는 경찰만으로는 국가중요시설 다중이용시설 등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어려운 경우 현장보호 및 경비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국방부장관에게 군 병력의 동원을 요청할 수 있다.[주 4]
2. 국방부장관은 제1항의 규정에 의거 군 병력을 동원할 경우, 사전 국회에 통보하여야 한다.
3.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동원된 군 병력은 현장보호 및 경비 임무의 범위 내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3조 내지 제7조에 의한 경찰관으로서의 권한과 임무를 갖는다.
[주 4]일본은 경찰이 맡아온 주일미군과 자위대시설 경비를 자위대가 담당하도록 입법하였음
제24조(불고지죄)1.테러를 범한 자 또는 범할 계획을 가진 자라는 정을 알면서 관계기관에 지체없이 고지하지 않은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주 5](이하 생략)
[주 5]독일은 테러단체조직 범죄의 예비 또는 실행에 관하여 정보를 지득하고도 그 실행을 저지할 수 있을 때에 관계당국에 고지하지 아니하면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함
제27조(형의 면제) 이 법의 범죄를 예비 음모한 자가 관계기관에 신고하여 테러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게 하였을 때에는 형을 면제한다.
제28조(정보자료의 증거능력) 외국의 정보 수사기관에서 작성 제공한 정보자료는 국내의 대테러 활동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제공기관 입수경위를 밝혀 그 내용을 인증할 때에는 증거능력이 있다.
제30조(참고인의 구인 유치) 1.검사(군검찰관을 포함한다) 또는 사법경찰관(군사법경찰관을 포함한다)으로부터 이 법에 정한 죄의 참고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은 자가 정당한 이유없이 2회 이상 출석요구에 불응한 때에는 관할법원 판사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인할 수 있다.[주 6]
[주 6]이번 미국 테러사건에서도 다수의 참고인 등이 Material Witness로 구인 유치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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