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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 10년, 미국은 '저질국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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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 10년, 미국은 '저질국가'가 됐다"

[9.11 10주년, 세계의 시각]<6> 타리크 알리 "미국의 적, 그때 그때 달라"

'테러와의 전쟁' 10년은 막대한 인명피해를 낳았고 세계경제의 중심지 미국에 어마어마한 부채를 남겼다. 그러나 이같은 실질적인 피해 못지않게 세계의 정치문화에도 심각한 해악을 끼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동 출신 지식인으로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과 역사소설 <석류나무 그늘 아래>, <술탄 살라딘> 등을 통해 한국에도 잘 알려진 타리크 알리는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기고를 통해 전쟁 이후 10년 동안 미국과 서방의 정치문화가 '저질'(debasement)로 변했다고 날을 세웠다.

알리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미국 시민들의 안보도 오히려 취약해졌다고 분석했다. 이는 테러범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테러범을 잡겠다는 명목 하에 국가권력이 시민들에게 가하는 억압 때문이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에 정보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브래들리 매닝처럼 미국의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공의 적'으로 지목됐다. 특히 알리는 지난 5월 2일 알카에다 지도자 빈 라덴 사살 직후 터져나온 미국 시민들의 반응은 미국 정치문화 '저질화'의 정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또 알리는 "인도주의라는 미명하에 (세계에 대한) 미국의 섭정 정치가 행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권'이란 국가의 정상 상태와 비상 상태를 구분할 수 있는 권한인데, 현재는 어떤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건 판단은 미국이 한다는 것이다. 중동‧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은 물론 유럽 국가들마저 온전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실상 미국의 '부하'가 됐다고 그는 지적했다.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 빈 라덴 사살에 열광하는 미국인들 ⓒ영국 일간지 <가디언> 화면캠쳐
● '9.11 10주년, 세계의 시각' 시리즈

<1> 스티글리츠 "대테러전쟁, 일상화된 테러 위협과 빚만 남겼다
<2> 로버트 피스크 "알카에다가 미국을 반대하는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
<3> 촘스키 "파키스탄 핵무기가 위험해져"
<4> 라이오넬 바버 "테러와의 전쟁이 '중국의 시대' 열었다"
<5> 조지프 나이 "미국, 벌에 쏘였는데 장검 빼들어"

정의를 위한 미국의 '묻지마' 전쟁이 더 많은 적을 만들 것

한 세기 전 [독일 정치학자] 칼 슈미트는 "주권이란 '예외적 상황'이 뭔지를 정하는 권한이다"라고 말했다. 당시는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대가 세계 대부분을 지배했고, 미국은 고립주의를 표방할 때였다. 슈미트의 말에 대한 보수적 해석에 따르면, '예외'란 비상 사태, 즉 헌법 효력의 정지나 국내적인 억압, 전쟁 등을 수반하는 정치‧경제적 격변사태다.

9.11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은 수렁에 빠져있다. 2001년 일어난 일들은 세계를 개조하고 [미국에] 복종하지 않는 국가들을 처벌할 구실로 이용됐다. 하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미국‧유럽 국민들은 도덕의 결여라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은 전쟁으로 인해 불행해졌고, 체념했으며, 좋은/나쁜 전쟁에서의 지배적 제국주의 전략에 선동당했다.

[미군의 중동 지방 사령관이었던] 퍼트레이어스 장군(현 CIA국장)은 "우리가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 상황은 마치 이라크와 같다. 이라크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도 공포스러운 공격이 계속되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남은 인생, 또는 우리 아이들 세대의 인생 동안 계속될 그런 종류의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예외'를 규정하는 주권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전쟁이라는] 예외가 곧 정상 상태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인권과 보편성에 대한 주장은 미묘하고 기만적인 서구의 지배 도구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서 '미묘한'이란 말은 불필요하다. 지배당하는 나라들의 경험을 보면 이는 분명해진다. 10년 동안 전쟁이 계속된 아프간에서는 교착상태가 이어지면서 잔혹한 유혈 참극이 벌어지고 있고, 부패한 꼭두각시 정권은 제 주머니 채우기에 여념이 없으며, 미군과 나토(NATO)군은 저항세력에 고전하고 있다.

저항세력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부패한 형제를 살해했으며 나토의 핵심 정보 당국자를 자살폭탄 테러로 노리거나 [미군] 헬리콥터를 미사일로 떨어뜨렸다. 몇 년 전부터 미국과 탈레반 사이의 물밑 협상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탈레반을 새로운 정부로 끌어들이려 할 만큼 미국과 카르자이 정부가 절망에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자이거나 보수주의자이거나, 미국과 유럽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벽에 그려진 낙서도 보지 못할 만큼 눈이 가려져 있다. 이들은 테러리스트들의 폭력에 대해서는 위선적으로 거부하면서도 [그들 스스로의] 고문과 신병구속, 암살, 아무나 잡아다 재판도 없이 구속시킬 수 있는 자국 내에서의 '법치주의의 예외' 상황은 거리낌없이 변호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유럽과 미국의 선량한 시민들조차 이라크‧아프간‧리비아‧파키스탄 등등의 사망자와 부상자, 고아들에 대해서는 시선을 돌린다.

[국제법상의] 교전권(jus belli)은 이제 미국이 승인하거나 그 자신에 의해 행해지는 전쟁에 대해서만 정당한 법적 장치다. 최근에는 [전쟁에] '인도주의적' 필요가 있다고 한다. [리비아에서] 한 쪽은 범죄를 저지르느라 바쁘고 자칭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쪽은 [그에 대한] 처벌만을 하고 있다. 패배할 국가[카다피 정권]는 주권을 부정당했고 그 대체 세력은 돈과 [서방의] 군사 기지로 질서를 유지할 것이다. 이런 21세기형 식민화 또는 지배 전략은 정치‧군사적 작전의 필수 요소인 글로벌 미디어의 조력을 받는다.

미국의 국내 안보상황을 보자. 2008년 11월[버락 오바마의 대선 승리] 이후 자유주의자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미국 정치문화가 급속히 '저질화'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이런 흐름을 바로잡는 대신 고의적으로 가속화시켰다. 조지 부시 행정부 때보다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추방당했다. 재판도 없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수감자들도 부시 때보다 풀려난 숫자가 더 적다. 오바마 자신이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했으면서도 말이다. '애국법'(Patriot Act)도 연장됐다. 리비아에서는 의회의 승인 없이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이에 대해서는 주권국가에 대한 폭격이 '적대행위'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는 취약한 근거만이 제시됐을 뿐이다.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기소도 강화됐다.

정치와 권력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했다. 아직도 '부시 정부는 법을 어겼지만 민주당은 원리원칙대로 하고 있다'고 믿는 자유주의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진영 논리에 빠져 장님이 된 것이다. 오바마의 화려한 말솜씨로도 이제 현 정부를 부시 행정부와 뚜렷이 구분짓지 못한다. 권력자들과 선동가들은 자신들의 금기와 편견을 미국 사회에 강요하고 있다. 권력은 반대자들을 무자비하게 침묵시켰다. 브래들리 매닝, 토머스 드레이크, 줄리안 어산지, 스티븐 김 등은 범죄자, 공공의 적으로 취급된다.

[미국 정치의] 저질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빈 라덴 사살 작전이다. 빈 라덴은 사로잡혀 재판을 받아야 했지만 아무도 그럴 의도는 없었다. 자유주의자들의 분위기도 뉴욕에서 들려온 함성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 미국! 오바마가 오사마를 잡았다! 빈 라덴은 더 이상 우리를 공격할 수 없다! (짝짝짝짝짝) 엿 먹어라, 빈 라덴!" 제국주의의 군소 협력자들이며 스스로는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자들인 유럽 지도자들의 반응 또한 좀더 외교적인 언어로 포장됐을 뿐 이와 동일했다. 위선은 정치문화의 새로운 흐름이 됐다.

'인도주의적 개입'의 최신 사례인 리비아를 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이름으로 이뤄진 미국과 나토의 리비아 개입은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한 운동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또한 아랍 반군들에게 서방의 지배를 강요하고 그들의 힘과 자율성을 훼손해 현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이제 명백해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6개월간 공습의 대가로 그들이 리비아 석유자원을 통제할 것이라면서 성공했다고 떠벌리고 다닌다.

시민사회는 전투기를 보내 시민들을 폭격하라는 무아마르 카다피의 잔혹함에 크게 동요했다. 하지만 카다피의 잔혹함은 미국이 이 아랍 국가의 수도를 폭격하도록 하는 구실이 됐다. 한편 오바마의 아랍 동맹국들은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데 열심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군대는 국민들이 학대받고 있고 대규모 체포 사태가 일어난 바레인에 들어갔다. 이는 <알자지라> 방송에 보도되지 않았다. 왜일까? 방송국이 후원자[카타르 왕실]의 정치적 노선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싫어하는 예멘의 독재자는 사우디에서 원격조종으로 매일매일 국민들을 죽이고 있다. 그런데도 예멘에 대해서는 비행금지구역이 설치됐을 뿐 무기금수 조치도 행해지지 않았다. 리비아는 미국과 그 사냥개들의 '선택적 사적 제재'의 사례일 뿐이다.

서방이 창설하려 하고 있는 비열한 섭정 정치는 미국 정부에 의해 결정된다. [카다피 정권에 대한] 절망 때문에 나토의 폭격을 지지했던 리비아인들도 (이라크에 있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같이) 그들의 선택을 후회할 것이다. 이는 ['아랍의 봄'의] 제3막을 열 것이다. [아랍] 민족주의자들의 분노는 사우디와, 사우디 왕가를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미국을 향할 것이다. 사우디를 잃는다면 미국은 걸프만을 잃게 된다. 카다피 정권의 바보짓으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았던 서방의 리비아 공습은 오히려 [반군에 대한] 지지를 떨어뜨릴 것이다. 바레인, 이집트, 튀니지, 사우디, 예멘도 [서방의 공습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고 미국‧유럽 내에서도 반대가 심할 것이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19세기의 독일 시인 테어도어 도이블러는 이렇게 말했다.

"적이란 우리 스스로의 질문이 구체화된 것
적들은 우리를 괴롭힐 것이고, 우리도 같은 방법으로 적을 괴롭힐 것이다"


오늘날, 문제는 '적'의 범주다. 적은 미국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결정되지만 너무 자주 바뀐다. 지난날 카다피와 사담 후세인은 서방의 친구였고 정기적으로 서방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후세인과 카다피의 적이 서방의 친구가 됐고 그들은 적이 됐다. 전지구적인 혼란이 계속된다. 유럽 지도자들은 빈 라덴이 사살되어 세계가 좀 더 안전한 곳이 된 것처럼 축하의 인사를 건넸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덧붙인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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