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은 수십만의 직접적 인명 피해를 낳았을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격렬한 반미주의와 보복 테러공격, 미국의 막대한 국가부채라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를 비롯한 일부 분석가들은 이 때문에 9.11 테러는 '성공한' 공격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칼럼 보기)
세계적인 석학 노암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미국 정부는 9.11 직후부터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빈 라덴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해 안달이 난게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촘스키는 '미국을 멸망시키기 위한 빈 라덴의 무기는 파산'이라는 주장보다 더 섬뜩한 경고의 목소리도 전했다. 그는 10년에 걸친 전쟁의 결과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의 정세가 심상치 않아졌다면서 "런던이나 뉴욕에서 핵폭탄이 폭발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촘스키는 9.11 10주년을 맞아 펴낸 저서 <9-11>(2001)의 증보판에 새로 덧붙인 칼럼에서 "전쟁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나?"라는 물음을 던지며 테러와의 전쟁을 통렬히 비판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9.11을 '미국 본토에 가해진 공격'이라며 격분했지만, 언어학자인 촘스키 교수는 9.11에 대한 정명(正名)은 '반인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이며 그에 대한 대응은 '전쟁'이 아닌 '수사'였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촘스키 교수의 칼럼 주요내용을 발췌·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 2001년 9월 11일 납치된 항공기의 자폭테러 공격을 받은 미 국방부(펜타곤) 건물에 소방차가 물을 뿌리고 있다. 세계 최강 미군의 지휘부와 미국 경제력의 상징 세계무역센터(WTC)에 대한 공격은 10년 동안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로이터=뉴시스 |
● '9.11 10주년, 세계의 시각' 시리즈 <1> 스티글리츠 "대테러전쟁, 일상화된 테러 위협과 빚만 남겼다" <2> 로버트 피스크 "알카에다가 미국을 반대하는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 |
전쟁만이 9.11에 대한 유일한 대응이었나?
9.11 테러가 10주년을 맞는다. 9.11은 끔찍하고 잔혹한 일이었으며 '세계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방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9.11의 충격은 의심할 여지없이 컸다. 아프가니스탄은 간신히 숨만 붙이고 있고, 이라크는 황폐화됐으며, 파키스탄은 대재난으로 발전할지도 모를 재앙의 가장자리에 있다.
지난 5월 1일, 9.11의 주모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서 사살됐다. 이에 대한 즉각적이고 명료한 반응들이 파키스탄을 둘러싸고 터져나왔다.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가 빈 라덴을 숨겨왔다며 분노했다. 이보다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미국이 정치적 암살작전을 위해 자신들의 영토를 침공했다는 파키스탄인들의 분노도 대단했다. 이미 파키스탄에서 거세게 타오르던 반미의 불길에 이 사건은 기름을 부었다.
파키스탄 전문가인 영국 역사학자 아나톨 리븐은 지난 2월 미국 격월간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아프간 전쟁으로 인해 "파키스탄이 불안정화‧급진화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과 전세계)에 지정학적 재앙이 될 것"이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파키스탄에서 일어날 일에 비하면] 작아 보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븐에 따르면 파키스탄 사회 전반에서는 아프간 탈레반에 대한 동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다. 이는 파키스탄인들이 탈레반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탈레반이 외세의 자국 지배에 맞서는 정통성을 가진 저항군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소련의 지배에 맞서 싸운 아프간 무자헤딘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파키스탄 군부 지도자들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전쟁'에 자신들의 희생을 요구한 미 정부의 압력에 매우 화를 냈다. 이들이 분노하는 더 큰 이유는 파키스탄 내에서 미국이 테러 공격, 즉 무인정찰기 전쟁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 인해 더더욱 잦은 빈도로)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미국이 심지어 영국의 식민지배 시절에도 가만히 놔두었던 파키스탄의 부족 지대[파키스탄 북부] 내에서 '미국의 전쟁'을 수행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군부는 안정적인 조직이며 국가를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리븐은 미국의 행위로 인해 "[군부 내의]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그 경우 "파키스탄이란 국가는 급속히 붕괴할 것이며 이는 재앙을 수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의 거대하고 급속히 성장한 핵무장력 때문에, 또 파키스탄 내에 잠복해 있는 지하드 운동 때문에 잠재적인 재앙의 수준은 극도로 높을 것이다.
이 둘 [핵무기와 지하드 운동] 모두는 레이건 행정부의 유산이다. 레이건 정부는 악명높은 파키스탄의 군사독재자였지만 워싱턴의 사랑을 받았던 지아 울-하크[1978년 쿠데타를 일으킨 파키스탄 장군으로 선거를 통해 수립된 부토 정권을 붕괴시키고 줄피카르 부토 총리를 처형했다]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돈을 받아 급진 이슬람주의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모르는 척 눈감아줬다.
[파키스탄에] 잠재돼 있는 대재앙은 이 두 가지 유산이 결합된 것이다. 즉 핵물질이 지하드주의자의 손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런던이나 뉴욕에서 '더러운 폭탄' [재래식 폭탄에 방사능 물질을 채운 기초적 수준의 핵무기] 등 핵무기가 폭발하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리븐은 이에 대해 "미국과 영국 국민들에게 더 위험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미국과 영국 군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평했다.
미국 정부는 소위 '아프팍'으로 명명된 아프간-파키스탄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작전으로 인해 파키스탄이 불안정화‧급진화될 수 있다는 점을 물론 알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위키리크스 문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앤 패터슨 파키스탄 주재 미국 대사가 보낸 외교전문이다. 패터슨 대사는 아프팍 지역에서의 미국의 행동을 지지하면서도 이런 행동이 "파키스탄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민간 정부와 군 지도부의 사이를 벌려놓을 수 있으며, 파키스탄에서 광범위한 통치력(거버넌스)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패터슨은 "(파키스탄 정부 내) 핵시설에 근무하는 누군가가 무기를 제조하기에 충분한 핵물질을 지속적으로 몰래 빼돌렸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서술했다. 그는 "[핵]무기들은 이동 중에 특히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험성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많은 분석가들은 빈 라덴이 미국에 대항한 전쟁에서 몇 가지 주요한 성공을 거뒀다고 관측한다. [캐나다 기업인이며 칼럼니스트인] 에릭 S. 마고리스는 지난 5월 미국 월간지 <아메리칸 컨저버티브> 기고에서 "(빈 라덴은) 이슬람 세계에서 미국을 몰아내고 패퇴시키기 위해서는 소규모지만 돈이 많이 드는 일련의 전쟁들로 미국을 끌어들여 최종적으로 파산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9.11 직후부터 빈 라덴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해 안달이 난게 분명하다.
1996년부터 빈 라덴을 추적했던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가 마이클 슈어는 2004년 발간된 <제국의 오만>에서 "빈 라덴은 자신이 왜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지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말했다"면서 "그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빈 라덴은 그의 목표를 대부분 성취했다.
슈어는 "미국의 군대와 정책은 이슬람 세계의 급진화를 완성했다"며 "이는 바로 빈 라덴이 1990년대 초부터 이루려고 노력했지만 불완전한 성공만을 거두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미국이야말로 빈 라덴의 유일하고 필수불가결한 동맹자였다고 결론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빈 라덴은 죽었지만 이런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 동안 계속된 공포는 우리를 다음 질문으로 이끈다. 9.11 테러에 대한 서방의 [전쟁이 아닌] 다른 대안은 없었나?
지하드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다수는 빈 라덴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9.11이] 만약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정명(正名)을 얻었다면, 그래서 범죄로서 취급됐다면, 용의자들을 체포하기 위한 국제 공조로 이어졌다면, 지하드 운동은 일찌감치 약화될 수 있었다. 당시에도 이런 얘기는 나왔지만 [미국이] 전쟁터로 서둘러 달려가는 바람에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빈 라덴은 과거의 테러행위로 인해 많은 아랍 국가에서도 비난받던 인물이라는 점을 짚어봐야 할 것이다.
빈 라덴은 죽기 전에도 이미 오랫동안 존재감이 없었으며 특히 사망 직전 몇 달간은 '아랍의 봄'에 가리워졌다. 아랍 세계에서의 빈 라덴의 존재감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중동 전문가 질 케펠의 글 제목에 의해 가장 적절하게 묘사됐다. '빈 라덴은 이미 죽어 있었다.' 이런 제목이 달린 글은 훨씬 빨리 나올 수도 있었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에 복수전을 감행해 지하드 운동에 동력을 공급해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지하드 운동 내부에서 빈 라덴이 존경받는 상징적 인물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가 알카에다를 위해 많은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분석가들이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이 조직[알카에다]은 대부분 [빈 라덴과는] 독립적인 작전을 펼쳤다.
9.11과 그에 대한 대응, 그리고 이들이 예고하는 미래의 전조를 살펴보면, 지난 10년에 대한 어떤 뚜렷하고 기초적인 사실들조차 암울한 전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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