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테러와의 전쟁'은 '선제공격 독트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이전의 전쟁과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은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를 소탕하겠다는 명분으로 이들을 비호하거나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국가나 세력들을 대상으로 곧바로 전쟁을 벌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미.영 동맹이 진정한 의도를 숨긴 채 '거짓 명분'에 의해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유엔의 결의를 거치지도 않은 그야말로 '힘에 의한 일방적 전쟁'이었다.
▲ 9.11 테러 1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는 세계무역센터 재건이 한창이다. 하지만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과 전세계에 준 피해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AP=연합 |
"9.11에 대한 미국의 대응, 자신과 세계에 비싼 대가 초래"
이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에서 누가 테러의 주체인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과 세계가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왔는지,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논쟁이 되고 있다.
이라크 침공의 최대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WMD)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미국과 영국 정부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됐고, 테러 용의자 색출을 위해서는 고문을 허용해야 한다는 등 인권의 기준이 허물어졌다.
9.11 테러로 시작된 미국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01년 10월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됐으며, '일상적인 테러의 위협'이 존재하게 된 지금 '테러와의 전쟁'이 과연 승리 가능한 전쟁이냐는 본질적인 의문에 답을 못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지난 10년간 이라크·아프간전과 대테러 작전에 따른 비용으로 미국은 국내총생산(GDP)가 넘는 부채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희생된 미군 및 다른 연합군들의 사망자수만 7500명에 달하고, 부상자들을 포함한 인적,물적 피해는 집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국제경제학계의 존경받는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는 "생각하지도 않고 행동부터 한 미국의 어리석음 때문에 미국과 세계가 엄청나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이런 지적은 1일(현지시각)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게재된 '9.11의 대가(The Price of 9.11)'이라는 글에 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담겨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내용이다.<편집자>
퇴역군인 매일 18명 자살, 가정 해체 등 사회적 비용은 계산도 못해
9.11 테러는 알카에다가 미국에 타격을 가하려고 저지른 공격이고, 실제로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오사마 빈 라덴도 이 공격이 여러 측면에서 이렇게 큰 타격을 초래하게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 공격에 대한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의 대응은 미국의 기본적 원칙을 훼손하고, 경제를 파탄내고, 안보를 약화시켰다.
9.11 공격 직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라크에 대한 침공은 알카에다와 전혀 관계가 없다. 이런 전쟁들로 미국은 엄청난 전쟁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3년전 린다 빌름즈와 함께 미국이 벌이는 전쟁 비용을 계산해보니, 보수적으로 잡아도 3~4조 달러에 달한다. 이후 비용은 더욱 증가했다.
전쟁에서 복귀한 군인 중 거의 절반은 상이용사로서 일정수준의 연금을 받아야 하고, 지금까지 60만명 이상이 퇴역군인으로서 국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비용만 앞으로 6000억~9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자살(최근 몇년 동안 매일 18명이 자살할 정도로 늘고 있다)하고 가정이 해체되는 등 사회적 비용은 계산도 할 수 없다.
'부시의 전쟁'은 역사상 최초의 완전 빚더미 전쟁
부시가 미국, 그리고 세계를 거짓 명분으로 자행된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이런 무모한 행위의 비용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축소한 죄를 용서해줄 수 있다고 해도, 그가 전쟁비용을 조달한 방식만큼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부시가 벌인 전쟁은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히 빚으로 치러진 전쟁이었다. 2001년 감세정책으로 이미 재정적자를 급증시킨 부시는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인 와중에도 부자들에 대한 추가 감세까지 결정했다.
요즘 미국은 실업과 재정적자 문제가 큰 현안이 되고 있다. 미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두 현안 모두 부시가 벌인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부시가 취임할 때만 해도 GDP의 2%에 달하는 재정흑자였던 미국이 오늘날 GDP와 맞먹는 부채더미에 오른 가장 큰 원인은 국방비 지출 증가와 부시의 감세 정책이다.
두 전쟁에 정부의 직접적인 지출만 2조 달러 정도인데, 미국의 한 가구당 1만7000달러의 부담을 준 것이고, 앞으로 50% 이상 부담이 더 커질 것이다.
게다가 두 전쟁은 미국의 경제를 취약하게 만들어 부채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커지게 만들었다. 중동 지역의 불안을 초래해 미국인은 석유수입에 더 많은 돈을 쓰게됐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면 미국인들은 다른 곳에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소비 부족을 주택가격 거품을 일으켜 메우려 했다. 주택가격 거품에 기반을 둔 과도한 부채 문제가 해소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두 전쟁은 미국(그리고 세계)의 안보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취약하게 만들었다. 빈 라덴도 이런 정도로 될지 몰랐을 것이다.
수백만명의 인명피해, 난민 양산한 전쟁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전쟁에서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은 엄청났다. 관련 조사들에 따르면 이라크에서는 10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전쟁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죽었다. 지난 10년간 두 전쟁에서 폭력사태로 죽은 주민만 최소 13만7000명에 달한다.
이라크에서만 180만명의 난민과 이라크 내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170만명의 주민들이 발생했다.
미국의 국방비는 냉전이 끝난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전세계 다른 나라들의 국방비를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다. 늘어난 국방비 중 일부는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비용에 들어갔다. 하지만 상당부분은 존재하지 않는 적에, 사용하지도 않는 무기 구입에 낭비됐다.
알카에다는 이제 더 이상 9.11 테러 때처럼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런 단계에 오기까지 치른 대가는 엄청나고, 대부분이 피할 수 잇었던 것이다. 9.11의 유산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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