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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중동정책, 부시의 나쁜 점만 따라하고 있다"

[해외시각] 아랍·중앙아시아 독재 지원은 미국이 스스로 파는 수렁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재스민은 튀니지의 국화國花)으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축출된 이후에도 이전 정부 인사들의 사임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민주화의 물결은 주변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아랍 국가들은 민심을 달래려 고심하고 있다. 쿠웨이트, 시리아, 수단 등지에서는 정부가 시민들에게 1인당 몇천 달러의 '보너스'를 나눠주거나 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들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타임스>가 25일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튀니지 인접국인 예멘과 알제리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으며, 26일(현지시간) 이틀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이집트에서는 수천 명이 30년간 정권을 유지해 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현재까지 경찰과 시위대 등 6명이 숨졌다.

이집트의 시위 물결은 수도 카이로뿐 아니라 수에즈, 이시유트 등지에서도 이어졌다. 경찰은 최루탄, 물대포, 곤봉으로 진압에 나섰고 시위대는 화염병과 투석전으로 응수하는 등 시위 양상도 격렬했다. 이런 가운데 이집트 출신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27일 오후 귀국하기로 하는 등 정세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엘바라데이는 2009년 11월 IAEA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정치개혁운동 조직 '변화를 위한 국민연대'를 창설, 헌법 개정과 자유선거 보장을 요구하는 운동을 주도해온 인물로 이집트 야권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튀니지 혁명 이후 이집트도 같은 방식의 혁명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집트 당국은 강경한 자세다. 26일 이집트 내무부는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시위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전국적으로 시위 참가자 860명을 검거했다. 또 이집트 정부는 튀니지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낸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물론 휴대전화와 일부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부의 탄압에도 이집트 야당과 청년단체 '4월 6일 운동' 등 시위 주도 세력은 정권 퇴진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AFP> 통신은 시위에 참여한 한 단체가 "우리는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며 "거리로 나가 생명과 자유를 외칠 것이며 시민들을 독려해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시위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집트 등 이 지역 국가들의 반정부 시위는 물론 이 나라들의 정부가 비민주적이고 인권을 탄압하고 있으며, 경제정책의 실패로 많은 사람들이 빈곤 상태에 놓여 있고, 관리들이 부패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이런 부패한 독재정권들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미국은 아무리 부패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정부라도 '테러와의 전쟁'에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동맹국으로 받아들였고, 유럽 국가들도 테러 대책과 이민 문제 해결 등을 위해 현지 민중들의 사정 따위는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소리높여 외치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국익만을 앞세우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22년간 망명 생활을 해온 튀니지의 이슬람정당 지도자 라치드 간누치는 튀니지 혁명과 관련해 24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벤 알리는 국민들을 학살했는데 유럽은 그를 칭찬했다"며 "서방 국가들의 침묵과 지원은 의심할 여지 없이 벤 알리의 독재를 강화시켰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지난 2008~09년 튀니지와 항공협정을 맺는 등 '자원 외교'를 추진했는데, 벤 알리 정권 각료들이 회담 상대가 됐음은 물론이다. 2009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은 벤 알리 전 대통령과 한-튀니지 수교 40주년을 맞아 축하 메시지를 교환하며 '양국 관계가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꾸준히 발전해 왔음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후안 콜 미국 미시건대 교수는 지난 25일 진보적 웹사이트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칼럼 '미국의 외교정책과 부패 게임'에서 이같은 서방 국가들의 행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콜 교수는 이 대학에서 중동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과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잘 알려진 중동 전문가다.

콜 교수는 이 칼럼에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비밀 전문(電文) 등을 근거로 미국이 스스로의 국익을 위해 아랍 국가들에서 저질러지는 부패와 인권 탄압에는 눈을 감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이 지지한 정부의 붕괴를 불러와 오히려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
원문 보기)

▲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26일(현지시간) 경찰이 곤봉을 사용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현재 시위대와 경찰 등 6명이 사망했다. 이집트 당국은 이틀간 860명을 연행하고 SNS와 일부 웹사이트, 휴대전화 서비스를 차단하는 등 초강경 대응 입장을 밝혔다. 한편 미국은 이집트 정부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뉴시스

미국의 외교정책과 '부패 게임'

튀니지 혁명은 우리에게 명백한 교훈을 준다. 그것은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과 테러에 대한 편집증적 공포로 인해 미국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해외에서 미국의 국익에 손해를 끼칠 것이라는 점이다. 위키리크스는 중동 전역의 미 대사관과 국무부에서 작성한 외교 전문들을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미국 정책결정권자들은 이 지역의 '동맹국'들에서 부패와 혈족주의(nepotism, 혈연에 기반한 연고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 전문들이 밝히는 바는, 미국은 중동 젊은이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대신 '안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미국의 가장 큰 외교적 골칫거리인 이란 문제가 미국이 팔레비 왕조를 지원한 것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다는 것을 잊고 있다. 팔레비 왕조는 (미국의 지지 하에) 이란의 정치적 좌파 및 중도주의 세력들을 억압했고 이것이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불러왔다.

국무부 전문들에 의하면 튀니지의 벤 알리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이 저지른 부패로 인해 튀니지 경제가 마비될 지경이었다는 것을 이미 미국 외교관들은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지난 2009년 7월 작성된 국무부의 전문은 벤 알리의 딸과 사위가 로버트 고덱 튀니지 주재 미국 대사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많은 수의 종업원을 두고 외국에서 비행기로 공수한 재료들로 만든 12코스의 호화로운 만찬을 즐기거나 하루에 4마리의 닭을 먹는다는 애완 호랑이 '파샤'를 키우는 등 사치를 일삼고 있었다. 많은 튀니지 국민들은 경제 악화로 고통받고 있을 때였다.

벤 알리의 일가는 또 부동산 및 주식 투기에도 손을 댔다. 그들은 당시 벤 알리 대통령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미리 알고 부동산과 기업들을 사들였는데 나중에 이들은 가격이 폭등했다. 2006년 튀니지 주재 미국 대사관은 본국에 '경제 엘리트들 중 50%는 대통령의 친인척이며, 혈족주의의 심각성은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페르시아만의 어떤 국가들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런 부패와 전제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미 대사관은 2009년 7월 외교전문에서 "튀니지에서 사업을 하기는 절망적이지만, 그렇다고 튀니지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에서 이들은 "우리(미국)는 이 지역에 많은 것을 걸고 있다"며 "알카에다 이슬람 마그레브 지부(AQIM, 마그레브는 북아프리카 지역의 통칭) 등 극단주의 단체를 저지하는 것과, 튀니지 군이 중립을 지키며 잘 훈련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국익과 연관된 문제"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만약 미국이 지난 25년간 튀니지에 군대와 경찰을 강화하라며 수천만 달러를 주지 않았다면 AQIM으로 불리는 베일에 싸인 과격파 집단이 이 나라 안에 발판을 마련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실일까? 말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은 미국이 선택한 '나쁜 외교정책'에 대해 언제나 통하는 변명거리가 됐다.

이런 면에서 튀니지의 상황은 이슬람 국가들과의 대외정책에서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다. 미국은 벤 알리 정권을 거리를 유지했어야 했고 이 정권을 지지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런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미국이 이 지역의 독재정부들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도미노 이론은 틀렸다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은 냉전 시대에 미국이 범한 가장 어리석은 실수들의 재판(再版)이다. 소위 '도미노 이론'이라는 것을 다시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실수에 포함된다. 도미노 이론이란 미국이 베트남에서 공산주의를 막아내지 못하면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등도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줄줄이 공산화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틀렸고 20년 후에는 소련이 붕괴됐다. 지금 상황도 다르지 않다.

비록 오바마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미국의 대외정책에는 이런 관성이 남아 있다. 지정학적인 요소에 의한 공포와 환상에서 나온 것인데, 이 공포가 현대판 도미노 이론을 만들어냈다. 즉 이슬람 세력들을 대상으로 조그만 패배라도 당하게 된다면 곧 세계 전체가 이슬람 국가가 될 것처럼 여기는 비이성적 공포가 아직도 미국의 외교적 발언과 전략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체가 명확하지도 않은 AQIM에 대한 공포 때문에 미 본국이 벤 알리 정권을 지지하기로 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AQIM은 이름은 무시무시하지만 '살라피즘'(이슬람 개혁)을 촉구하는 작은 알제리 단체에 불과하다. 미국이 군사 지원을 중단하면 갑자기 오사마 빈 라덴이 튀니스의 이슬람 군주(칼리프)가 될 것이란 어리석은 '도미도 이론' 때문에 미국은 부패와 인권 탄압에는 눈을 감고 말았다,

'테러와의 전쟁' 아래 가라앉는 민주주의

알제리를 예로 들어 보자. 미군은 9.11 테러 이전까지는 알제리에 군사 지원을 하지 않았으나 최근 수백만 달러까지 지원 액수가 늘어났고, 지금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도 실질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지원 내용에는 대테러 작전 훈련도 포함돼 있는데 이는 평화로운 시민들의 시위를 억압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기도 했다.

역설적인 것은 알제리 군사정권이야말로 이슬람 운동을 급진화시키는 장본인이란 것이다. 1992년 총선에서 알제리의 이슬람 정당 이슬람구국전선(FIS)이 압승하자 충격을 받은 군부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선거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알제리에서는 내전이 일어났고 15만 명이 죽었다.

만약 이때 FIS가 민주적으로 의회에 진입했다면 이후 이 정당의 지도부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 채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부가 선거 결과를 뒤엎자 공격적으로 변한 이 정당 지지자들 중 일부는 급진화돼 '무장 이슬람 그룹'이라 불리는 단체를 결성했는데 이 단체는 나중에 알카에다의 동맹군이 됐다. 이 단체 회원인 아메드 레삼은 미국 LA 공항에 폭탄테러를 시도하려다 출입국 과정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이웃나라 튀니지에서 벤 알리를 지지했던 것처럼, 미국과 프랑스는 1999년 당선된 압델 아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들은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방파제'이며 알제리계 프랑스 이민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부테플리카 정권 하의 알제리는 안정을 되찾는 듯 했지만 부테플리카는 2008년 3선 개헌을 시도하는 등 헌법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려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튀니지만큼은 아니지만 알제리 역시 부패와 혈족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다고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외교전문은 전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2월 데이비드 피어스 주 알제리 미국 대사는 알제리 국영 석유기업의 이사진들 중 8명이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고 보고했다. 피어스 대사는 "이 스캔들은 2008년부터 계속된 것으로 정부 각료들과 공기업들이 연루돼 있는 일련의 사건들의 최신판"이라며 "중요한 것은 많은 장관들은 부테플리카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있다"고 전문에서 말했다.

이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3년여 전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미 대사관에서 작성한 전문에서도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형제인) 사이드와 압달라는 특히 탐욕스럽다"며 공직 사회에 비리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당시 청년층의 실업률은 매우 높았으며 이들은 유럽에서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희망에 조잡한 뗏목에 몸을 싣고 지중해를 가로지른다는 위험천만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국무부 전문을 아무리 읽어도 알제리 정부에 대한 지지를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는 없다.

미국이 부패한 정권을 '테러와의 전쟁'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지지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악화되고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지난 선거에서처럼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의 선거를 실시함으로써 중도주의적인 세력들의 정치 참여를 좌절시킨다면, 이미 식량 부족으로 폭동이 난 전력이 있는 알제리에서 튀니지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튀니지보다 훨씬 큰 나라이며 풍부한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알제리의 상황이 불안정해진다면 이는 (미국에) 전략적인 충격을 가할 것이며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전개될 것이다. 알제리 국민들의 분노는 부패한 부테플리카 일당에만 머물지 않고 그를 외교적으로 지지해 온 다른 나라들도 겨냥할 것이다.

▲ 지난 22일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뉴시스

중앙 아시아의 '벤 알리'들

문제는 북아프리카만이 아니다. 중앙아시아와 아랍 세계에서도 미국은 독재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천연 가스와 금 매장량이 풍부한 우즈베키스탄을 예로 들면, 미국은 2006년부터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부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벡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부시 행정부의 동맹군을 자임했다. 크레이그 머레이 전 우즈벡 주재 영국 대사에 따르면, 카리모프 대통령은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고문을 가해 알카에다 조직원이라는 자백을 받아낸 다음 이를 '테러와의 전쟁'의 성과라며 미국과 희희낙락했다. 그러나 카리모프의 인권 탄압은 너무 심각한 수준이어서 부시 행정부마저 이를 비난했고, 결국 카리모프는 2005년 타슈켄트 지방의 미 공군기지를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우즈벡 사이에는 관계 개선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전장으로의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우즈벡의 지정학적 가치가 다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즈벡에 수 억 달러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새로운 부패의 씨앗이 될 게 뻔하다.

지난해 키르기스스탄에서 민중 봉기로 친미 성향의 쿠르만백 바키예프 전 대통령이 축출된 것에서 미국은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바키예프가 마나스 공군기지를 사용하게 해 주는 한은 그의 부패와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2차 튤립혁명'은 바키예프 정권이 미국의 믿음처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나쁜 정책은 더 나쁜 정책을 낳는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더 많은 병력과 물자를 보내기로 결정했고, 보급선이 불안정해지자 이로 인해 중앙아시아의 독재자들에게도 협박당하는 신세가 됐다. 만약 이 지역 민중들이 (미국이 지지하는) 독재자들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킨다면 미국의 국익에는 심대한 타격이 생길 것이다.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은 국무부 관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아프가니스탄의 부패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미국 외교관들은 공식적으로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만 뒤에서는 카르자이 정부의 취약함과 부패에 대해 본국에 보고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 위키리크스에 의해 밝혀졌다. 하지만 이들은 카르자이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미국의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고, 미국은 수십억 달러를 카르자이에게 바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덕에 활개치는 부패

때때로 미국이 지지하는 모든 부패한 정권들은 비슷한 행동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튀니지의 벤 알리와 그 일족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자들에게 '대출'을 해 주라고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대출금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은행은 부실해졌고 신용을 잃었으며 결국 전체 경제와 고용 상황이 위태로워졌다.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자 이 문제도 거론됐다. 벤 알리가 도망치자 중앙은행장은 사임했고 벤 알리의 일족이 소유한 몇몇 은행의 자산은 동결됐다.

이와 유사한 일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일어났다. 카르자이에 의해 설립된 '다 카불' 은행은 아프간 대선에서 그의 정치자금 금고 역할을 했다. 카르자이 역시 그의 가족들과 군부 인사들에게 '대출'을 해 주라고 은행을 압박했다. 대출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카르자이의 형제 마무드 카르자이와, 부통령이자 전 북부동맹군 사령관인 마샬 모함마드 파힘의 아들 하신 파힘도 포함돼 있다.

대출된 돈 중 일부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동산 구입에 사용됐다. 두바이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이들은 빚을 갚을 수 없게 됐고 이는 은행의 부실로 이어졌다. 은행은 파산 위기에 몰렸고 아프간의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불안정해졌다. 결국 정부가 은행을 인수해야 했는데 이는 미국 납세자들이 카르자이 행정부의 관리 미숙과 부패의 비용을 떠안아야 함을 의미한다.

또 벤 알리의 일족이 그랬듯, 카르자이 주변 인물들도 사기꾼들로 채워져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외교관들은 카르자이의 형제 왈리 아메드가 헤로인 밀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은 지난해 마약 밀수 방지를 담당할 각료로 자라 아메드 모크벨이 지명돼 의회의 승인을 얻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이는 마치 코미디 같은 상황이다. 전직 내무장관 출신이기도 한 이 사내는 부패 혐의로 실각했는데, 한 정부 고위당국자는 미국 대사관 관계자에게 "모크벨은 마약 밀수조직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이 조직에는 카르자이의 이복동생 아메드 왈리 카르자이와 아리프 칸 누르자이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마약 조직과 연계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마약 대책을 총괄하게 된 꼴이다.

또한 카르자이가 팍티야 주지사에 임명한 주마 칸 함다드의 비리 의혹도 위키리크스가 포함한 전문에 의해 제기됐다. 미 국무부는 함다드가 미국 자금이 투자된 '아프간 재건 프로젝트'에 관여해 건물 착공단계부터 완성단계까지 모든 계약을 독점해 이득을 챙겼다고 보고 있다. 함다드는 미국의 돈을 짜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함다드는 파슈툰 반군 일부와도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혹한 진실

위키리크스는 우리에게 가혹한 진실을 알렸다. 미국이 (테러리스트의 위협이라는) 음모이론에 사로잡혀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자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행동이라는 진실 말이다.

알제리 군사정권이나 우즈벡의 카리모프 정권 등 강경파들이야말로 경제적인 절망에 사로잡혀 있고 억압받고 있는 민중들을 급진화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독재자들은 지구상에 단 한 명의 알카에다 조직원이라도 남아 있는 한 미국이 자신들을 지지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 부패로 인해 나라 경제가 휘청이고 빈곤과 실업, 절망이 양산되며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데도 말이다.

미국은 지금 존 퀸시 애덤스 전 미국 대통령이 표현한 '용을 사냥하러 모험을 떠날' 상황이 아니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 미국은 더 이상 강력하지 않다. 이런 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의 대책없는 군사 개입주의에서 좀더 현실적인 외교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환영할 만한 변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행정부의 가장 나쁜 실책 하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측면에서는 더 강화시켰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막아 주겠다고 하면(사실 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뿐 아니라 모든 반대 세력들을 다 막고 있다) 그게 누가 됐든 거의 반사적으로 지원하는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독재정권을 지지하거나 전복시키는 것 외에도 그 중간 단계의 외교적 접근들이 존재한다. 이제 미국은 권위주의와 부패로 인해 제 무덤을 파고 있는 정권들에게 테러 방지를 위한 군사 지원을 끊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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