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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독재자들의 시대는 끝났다고? 천만에!"

서방 세계가 바라는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란?

튀니지 사태로 인해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가 진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시위가 심상치 않게 가열되자 23년간 독재정권을 유지해 온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했다. 이후 과도정부가 구성됐지만 튀니지 국민들은 예전 정권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입각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과도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선거를 실시한다는 뜻을 밝혔다. 과연 이 선거에서 민주적인 새 정부가 선출될까? 영국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 기자 로버트 피스크는 지난 17일 기고한 글에서 튀니지 혁명과 관련된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면, 그 정부가 민주적이면 민주적일수록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버트 피스크는 과거 중동 지방에서 있었던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의 전례를 들어 서구 사회의 이중성을 비판했다. 1992년 알제리 선거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승리했을 때, 2006년 팔레스타인 과도정부 선거에서 하마스가 압승했을 때, 2008년 '도하 합의'로 2009년 레바논 내각에 헤즈볼라 인사들이 포함됐을 때 서방 세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제재를 가하는 등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독재자들의 시대는 유지될 것"이라며 서방이 원하는 것은 아랍 세계의 민주화가 아닌 사태의 안정일 뿐이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국익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통렬히 질타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튀니지에 대한 잔인한 진실(The brutal truth about Tunisia)

아랍에서 독재자들의 시대가 끝났다고? 분명 사우디의 늙은 왕에서부터 요르단의 젊은 왕까지, 이집트의 매우 늙은 대통령에서부터 시리아의 젊은 대통령까지, 중동 지역의 독재자들이 떨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튀니지 사태는 단지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알제리에서는 식량 가격이 올라 폭동이 일어났고 요르단 암만에서는 물가 인상에 대한 시위가 있었다. 튀니지의 독재자 벤 알리 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로 피신했다. 1979년 이디 아민 전 우간다 대통령이 바로 그곳으로 도망쳤듯이 말이다.

휴양지로 유명한 튀니지에서 일어난 이런 일들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사우디로 도망친 벤 알리는 집권 당시 튀니지 사회를 '안정시켰다'는 이유로 서방 세계의 찬사를 받던 인물이다. 프랑스·독일·영국 정부는 이슬람주의자들을 억눌러 온 그를 유럽의 '친구'라고 늘 칭송했다.

우리는(서방 세계는) 그들이 그 역사를 잊었으면 하지만, 튀니지인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아랍 국가들은 전체 인구의 2/3(700만 명)이 벤 알리의 비밀경찰들에게 어떤 방식으로건 협조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까지도 우리가 사랑하던 벤 알리에 항거하는 시위에 참여했을 게 확실하다.

그러나 너무 흥분할 것은 없다. 1980~90년대에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튀니지의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시위를 조직했지만, '연합' 정부(과도정부)는 모하메드 간누치 총리에 의해 구성됐다. 간누치는 거의 20년 동안 벤 알리의 부하였고, 튀니지 국민들의 이익보다는 우리(서방)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생각할 것이다.

▲ 튀니지 혁명은 아랍권 민주화의 기폭제가 될까? 지난 14일 벤 알리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낸 튀니지 시위대의 모습 ⓒ뉴시스

상황은 옛날과 다를 게 없다. 우리는 튀니지의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 같았지만 '진짜 민주주의'를 바랐던 건 아니다. 1990년대 초 우리가 알제리에서 어떤 민주주의를 원했는지 생각해 보라. 알제리의 이슬람주의자들이 결선투표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자 우리는 군부가 지원하는 정부를 지지했다. 그 정권은 선거를 연기시켰고 이슬람주의자들을 괴멸시켰으며 내전을 촉발시켜 15만 명이 죽었다.

우리는 아랍권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법과 질서와 안정을 원한다. 부패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이집트에서조차도 우리는 그걸 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아랍권 국가들은 기능이 마비되어 있고, 부패해 있고, 무자비하고, 사회적·정치적 진보를 이룰 능력이 없다. 중동의 혼란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아랍권 국가의 지도자들은 그간 해왔던 일을 앞으로도 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입을 틀어막고, 서방을 찬양하고, 이란을 증오할 것이다.

튀니지 시위가 한창이던 때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그는 걸프 지역의 부패한 왕자들을 앞에 두고 이란 제재를 지지하고, 이란과 맞서 싸우고, 또 한 번의 전쟁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인도에서 지중해 사이에 있는 이슬람 세계는 지금 엉망진창이다. 이라크는 정부 같은 걸 만들었는데, 지금은 이란의 부하 국가가 됐다. 아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카불 시장밖에 안 된다. 파키스탄은 끊임없는 재앙에 시달리고 있고, 이집트는 또 하나의 거짓 선거를 앞두고 있다. 레바논 정부는 붕괴됐고, 남부 수단은 하나의 작은 촛불이 될지 모르겠지만 장담할 상황은 아니다.

서구에 있는 우리에게 이는 익숙한 문제다. 우리는 '민주주의'니 '공정한 선거'니 하는 것들을 입에 올리지만 사실 이는 우리가 바라는 사람이 당선됐을 때만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가 된 것으로 본다. 20년 전 알제리에서, 2008년 도하 협정으로 여야간 합의를 이룬 레바논에서, 2006년 하마스가 압승한 총선이 치러진 팔레스타인에서는 '우리가 바라는 사람'이 당선된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서방 국가들은 이 나라에 제재를 가했고 그들을 위협해 입을 다물게 했다.

아랍 국가들은 상황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벤 알리에게서 돈을 받고 그의 비위를 맞추기 바빴던 아랍 신문들은 그가 부패했고 권위주의적 지배를 행했으며 반인권적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레바논 출신의 작가 칼릴 지브란은 "과거 새로운 지도자를 환영했던 사람들이 떠나는 사람에게는 야유를 보내지만 그것은 또다른 지배자를 환영하기 위해서일 뿐, 불쌍하도다"라고 비꼬았다. 아마도 '또다른 지배자'는 간누치 총리쯤 될까?

물론 물가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식용유와 빵 등 주요 생필품 가격은 다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처음에 물가가 폭등한 이유는 뭔가? 알제리는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국이며, 사우디아라비아만큼이나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실업률은 최악이며 사회복지제도(social security)도 연금 제도도 없다. 정치인들이 국부를 스위스 은행으로 빼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독재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그들의 군대를 무장시켜주면서 이스라엘과 잘 지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새 독재자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줄 것이다. 한때 '자비로운 지도자'로 불리던 벤 알리는 도망갔지만 좀더 유연한 태도를 가진 새 독재자를 찾아내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또 앞으로도 경찰의 야만성은 여전할 것이며 '고문실'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어제 튀니지에서 그랬듯 '안정'이 되찾아질 때까지 시민들에 대한 총격도 계속될 것이다. 아랍 독재자들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그 시대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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