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내에서 개최된 '글로벌 경제 회복하나'라는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에서도 환율전쟁이 초래할 위험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Only the Weak Survive'라는 칼럼을 통해, 환율전쟁이 지속될 경우 미국과 유럽, 일본이 더블딥에 빠지고 나머지 세계 경제도 동반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최근 국제 환율전쟁이 글로벌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 ⓒEPA=연합뉴스 |
루비니 교수는 환율전쟁의 근본 원인은 글로벌 불균형이 극심해진 상태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 불균형은 미국과 영국 등 과소비를 해온 '앵글로 색슨' 국가들과 중국, 일본, 그리고 독일 같은 '과저축' 국가들 사이의 대립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미국 등 과소비 국가는 막대한 부채와 경상수지 적자를 안고 있어서 소비를 줄이고 더 많이 저축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성장을 하려면 수출을 위해 통화가치를 떨어뜨려야 한다. 반면 중국 등 과저축 국가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면서도 여전히 통화가치 상승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이 저축을 줄이고 내수 소비를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을 지속하는 길로 가면 좋은데, 수출에 의존한 성장을 고집하고 있어 문제가 꼬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로존에서는 독일을 제외한 이른바 PI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은 막대한 대외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도높은 재정긴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 국가가 성장을 하려면 유로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야 하지만 공동통화 시스템에 매어 있는 형편이다.
루비니 교수는 "과소비 국가들은 내수를 줄이고 수출을 늘려야 하는데, 과저축 국가들은 수출 주도 성장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환율를 둘러싼 갈등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통화가치를 떨어뜨려야 할 처지는 유로존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그리고 영국 등을 망라한다. 스위스조차 프랑화 가치를 약화시키기 위해 정부가 개입을 하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상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개입을 하면서 대부분의 신흥시장 국가들도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으며, 자본 유입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문제는 모든 통화들이 동시에 가치가 떨어질 수 없고, 모든 경제가 동시에 순수출이 늘 수 없다는 점이다. 서로 통화가치를 낮추려는 경쟁은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 이익을 보면 다른 누군가는 손실을 본다.
중국은 사실상 달러에 위안화 가치를 고정시키는 한편, 외환보유고를 달러 이외의 자산으로 다각화하기 위해 일본 엔화와 한국의 원화도 매입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이런 행위로 일본과 한국의 통화가치가 상승해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자 일본 정부는 엔고 저지를 위해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로화에 대한 평가절상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유로 가치 하락이 필요한 PIIGS들에게 유로 가치가 상승한다면 이들 나라의 경기침체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EU도 환율 변동을 막기 위해 이미 구두 개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중국의 시장개입에 맞대응하기 위해 같은 규모의 달러를 매각하고 위안화를 사들이는 조치를 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율전쟁, 무역전쟁으로 이어지면 디플레이션 불가피
결국 환율전쟁의 다음 단계는 추가적인 양적완화(QE2)로 이어진다. 일본은행은 이미 계획을 발표했고, 영국은행도 조만간 뒤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미국 연준은 11월 정례회의에서 양적완화 계획을 밝힐 것이 틀림없다.
사실 통화가치를 하락시키기 위해 환율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과 통화팽창 정책을 쓰는 것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오히려 시장개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반면에 양적 완화 정책은 통화가치 하락을 위해서는 더 효과적인 수단이다.
미 연준은 이미 공격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쓸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본은행과 영국은행은 미국의 수법을 따르고 있으며, 그 결과 유로 가치에 대한 상승 압박은 커지고 있다. 하지만 ECB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내세우며 양적 완화에 인색하다. 그 결과 PIIGS 국가들은 경기회복 기회마저 잃을 우려가 있다.
루비니 교수는 "유럽의 인플레이션 우려는 실체가 없다"면서 "PIIGS 국가들을 괴롭히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위협"이라고 말한다.
환율전쟁이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무역전쟁이 촉발된다. 그렇게 되면 적자 국가들이 통화가치를 하락시키는 길은 디플레이션밖에 없다. 그 결과는 더블딥이며, 재정적자와 부채가 늘어나는 것이다.
적자국가들의 평가 절하, 그리고 흑자국가들의 평가절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적자국가들의 내수가 감소하고 흑자국가들의 저축감소와 내수 증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공급 능력은 과잉인 상태에서 글로벌 총수요가 부족에 빠지게 될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그렇게 되면 글로벌 디플레이션은 심화되고, 적자국가들의 민간과 공공 부채 디폴트가 잇따르면서 결국 채권국가들의 성장과 자산도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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