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10.4 선언 3주년 학술회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실천 방안'에서는 남북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집착과 그로 인한 대치 상황을 벗어나, 서해에서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실천 방안들이 논의됐다.
이날 두 세션으로 나눠 진행된 학술회의 1세션('서해 평화 정착과 북방한계선') 발표자로 나선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 정부의 강경 대응이 서해상 긴장을 더욱 높아지게 만들었다고 비판하면서 "천안함 문제의 핵심은 안보가 아닌 평화"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정부에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해 NLL 문제 해결의 여건을 마련하고, 이미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이하 서해특별지대) 구상을 수용하여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문했다.
▲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한반도평화포럼, 인천광역시 공동 주관으로 10.4 남북정상선언 3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4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프레시안(김나영) |
"서해특별지대…남북 어민·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그림"
이날 학술회의 주제이자 김 교수가 강조한 서해특별지대 구상은 10.4 선언 5항에 등장한 것으로, 이 선언의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북한 해주지역과 주변 해역을 아우르는 서해 바다를 교전과 무력 도발이 끊이지 않던 곳에서 남북 경제협력이 가능한 평화적 공동체로 가꿔 나가려는 밑그림이었다.
김근식 교수는 이에 대해 "최전방인 서해를 군사적으로만 보는 협소한 접근방식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보는 접근방식"이라고 평가하면서 "서해특별지대가 실현되면 서해상엔 해주 공단에서 남북 노동자가 같이 일하고 남북 어민들이 공동어장에서 함께 고기잡이를 하는 등 전혀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구상은 3년째 선언 속에만 머물고 있다. 1세션 회의 사회자로 나선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지적대로 "10.4 선언 직후 교체된 정권이 선언을 사실상 부정하면서, 서해특별지대에 대한 구체적 연구를 할 기회마저 없었기 때문"이다.
"NLL 문제, '인정과 협의의 원칙'으로"
서해특별지대가 현재 좌초된데에는 10.4 선언을 계승하지 않는 정권이 들어선 것도 문제였지만, NLL을 둘러싼 남북의 입장차가 워낙 다르다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NLL은 1953년 8월 당시 주한 유엔군사령관이던 클라크 사령관이 남측 선박의 북상을 막기 위해 임의 설정하고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지만, 사실상 남북 간 실질적 해상 경계선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1970년대부터 NLL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이 일대에서 '평시 해상사격구역'을 설정하고 포 사격을 하면서 자신들이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을 강변하고 있다.
▲ 김근식 경남대 교수 ⓒ프레시안(김나영) |
김 교수에 따르면 이 원칙은 "북한은 NLL이 실질적인 해상 경계선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인정하고, 남한은 합의 없이 임의적으로 그은 일방적 경계선이므로 추후 협의해야 함을 인정하는 접근법"이다.
그는 "이 원칙은 '(남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을) 정전협정에 규정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고 명시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덧붙였다.
"NLL 문제, 생태·환경·경제적 가치로 접근해야"
김 교수에 이어 발표에 나선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NLL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은 남북 모두가 NLL이라는 선 자체에만 집착하면서 NLL 인근 수역의 다른 가치들을 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남한은 사실상 NLL이라는 선을 해상경계선으로 굳히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북한은 NLL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전개하면서, NLL 인근 수역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은 결국 '선(線)에 대한 집착'으로만 귀결됐다는 것이다.
그는 서해특별지대 설치에 대한 후속논의가 진행되지 못한데 대해서도 "가장 큰 이유는 남한의 정권 교체였지만, 공동어로와 평화 수역 설정에 대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국방장관회담, 장성급 회담으로 넘겨지는 등 여전히 안보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도 한계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NLL 문제를 안보적 가치가 아닌 생태, 환경, 경제적 가치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충돌이 발생하는 곳에서) 쌍방의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어느 일방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안전판이 된다"며 그 예로 개성공단을 들었다.
그는 "앞으로 정책 추진 방향은 남북이 갈등을 압도할 수 있는 일종의 공동체를 창출해 가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NLL과 그 주변수역을 넘어 접경 연안 도시들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면, 남북은 공동의 이익을 충분히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개성공단 연계 방안도
이날 학술회의 2세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건설 모색'에서는 앞선 두 발표자의 논의에서 한 발 나아가 구체적인 서해특별지대 구상안이 제기됐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서해특별지대 추진 방향 및 과제를 △주변국들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서해를 국제평화협력특별지대화 하려는 패러다임의 전환, △남북 간 서해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노력, △종합적인 개발 협력 로드맵에 의한 체계적인 접근,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원칙의 설정, △쉬운 것부터 단계적으로 개발하려는 접근 방식, △개성공단과의 연계성 강화 등으로 요약해 제시했다.
강승호 인천발전연구원 동북아·물류연구실장은 서비스 무역과 교육 과학 기술 사업의 거점으로서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개발 현황과 인천과 관련된 남북 경제협력사업을 소개하면서 인천경제자유구역과 개성공단 연계 방안을 강조했다.
그는 "인천은 남북 간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개성공단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면서 "인천의 항만이나 공항 등의 인프라 활용과 연계해 개성공단 개발을 극대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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