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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못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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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못 바꾼다?"

[최진봉의 뷰파인더] 인맥으로 교수 뽑는 한국 대학들

지난주 또 한 명의 시간강사가 처우 개선을 요청하는 유서를 이명박 대통령 앞으로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광주 지역 모 사립대학교에서 지난 2000년부터 10여 년 동안 시간강사로 일해온 서모 씨는 유서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높은 청렴성을 유지해야 할 대학이 교수 채용을 미끼로 금품을 요구하고 논문 대필을 지시하는 등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고발했다.

서 씨는 자신이 경험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경기도의 한 사립대학은 1억 원을, 전남의 한 사립대학은 6000만 원을 교수 채용 대가로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 채용 대가로 적게는 1억5000만 원부터 많게는 3억 원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고 밝혔다.

'박사' 교수 선발 최우선 기준은 '학사' 받은 학교?

한국 대학의 교수 채용과 관련된 비리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은 한국 대학들이 교수 채용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잘못된 시스템 안에는 한국 사회 전체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학적'이라는 괴물이 있다.

얼마 전 한 후배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이 말은 한국 사회 곳곳에 학적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지 잘 표현해준 말이라는 생각이다. 아직까지 대학은 교수 채용 지원자들이 어떤 대학에서 학사 과정을 마쳤는지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즉, 이른바 '일류 대학'에서 학사 과정을 마친 지원자들을 선호한다는 것. 어느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느냐보다, 어떤 논문을 썼느냐보다, 학사 과정을 어떤 학교에서 마쳤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할 때는 지원자가 어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지와 어떤 분야의 논문을 썼는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한다. 지원자가 학사 과정을 어느 대학에서 마쳤는지는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수로서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데 필요한 전문 지식은 대학원 과정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것이고,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은 전문성은 박사 과정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대학의 학사 과정은 전공 분야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다양한 분야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주는 과정으로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교육하는 대학원 과정과는 엄격히 구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들이 교수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들이 어떤 학교에서 학사 과정을 마쳤는지를 암묵적으로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내 편이냐 아니냐', 인맥이 가르는 교수 채용

이와 함께 한국 대학의 교수 채용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다름아닌 인맥이다. 지원자들의 경력과 연구 실적과 관계없이 지원자와 담당 학과 교수들과의 관계가 중요 변수가 된다. 기존의 학과 교수들은 자신의 편에 서 줄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지시를 잘 따를 수 있는 사람을 교수로 채용하려고 하고, 자신과 사이가 안좋은 교수와 가까운 사람으로 인식된 지원자는 어떻게 해서든 탈락시키려 한다.

결국, 인맥에 의해 교수 채용의 결과가 영향을 받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교육 경력과 연구실적이 뛰어난 지원자라도 교수 임용 후 자신의 인맥이 될 수 없고 자신과 관계가 좋지 않은 교수와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면 그 지원자를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락을 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한 교수 채용은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면접으로 교수 뽑다니

한국 대학의 교수 채용 과정에서 또 한 가지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서류 심사에 비해 면접 심사가 너무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모든 면접 대상 후보를 같은 날 불러 한 사람당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 정도의 면접을 치르게 한다. 과연 이 짧은 시간 동안 각 지원자들의 연구 분야와 교육 능력, 그리고 교수로서의 자질등을 제대로 점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미국의 대학은 서류 심사를 통과한 교수 후보들을 각각 다른 날짜에 따로따로 초청해 짧게는 1박 2일에서 길게는 2박 3일동안 면접 심사를 치른다. 면접 후보자가 공항에 도착해서 지원한 학교의 교수를 만나는 순간부터 면접 심사를 마친 교수 후보자를 학과 교수가 공항에 데려다 주는 순간까지 면접 심사는 계속된다. 면접 심사에 초청된 교수 후보자들은 2박 3일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제 수업을 진행하고, 교수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세미나를 진행하며, 지원한 학교에 재직하는 교수들과 일대일로 30분씩 면접 심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교수들이 면접을 통해 채점한 결과를 교수 채용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면접 기간 동안 매 식사 시간에도 각각 다른 교수들과 식사를 하면서 후보자의 인성과 교수로써의 자질을 평가받게 된다.

미국 대학들은 이처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후보자들의 교육 능력과 연구 능력, 그리고 교수로서의 자질을 철저히 검증하는 교수 채용 시스템을 운영한다. 이에 비해 한국 대학의 면접 시스템은 그야말로 번개불에 콩 볶아 먹는 격이다. 30분 또는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물리적으로 힘들다. 따라서 교수 채용 시스템을 좀더 합리적으로 개선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유능한 인재들이 교수로 임용되어 한국 대학들이 세계 유수의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들이 교수 채용 과정에서의 비리와 부정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 더 이상 왜곡되고 부정한 교수 채용 비리로 인한 억울한 죽음을 불러오지 않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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