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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미디어 그룹과 민영 미디어렙의 만남,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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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거대 미디어 그룹과 민영 미디어렙의 만남, 결과는?

[최진봉의 뷰파인더] 대기업, 거대신문, 방송사의 방송광고 독점 막아야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는 1980년 이후 방송광고 시장을 독점해 오던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방송 광고판매 독점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그동안 한국방송광고공사가 독점해오던 방송광고 시장을 경쟁체제로 바꾸기 위한 민영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회사) 도입 법안의 입법 시한이 올해 12월 말로 한 달여를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과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각 방송사들은 민영 미디어렙을 어떤 형태로 허가, 운영할지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일단 하나의 공영 미디어렙에 다수의 민영 미디어렙을 허용하는 안을 내놓은 상태다. 한나라당의 한선교 의원은 각 방송사가 직접 운영하는 자체 미디어렙을 갖는 법안을, 그리고 자유선진당의 김창수 의원은 하나의 공영 미디어렙에 하나의 민영 미디어렙을 허용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한편, 국내 지상파 방송광고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문화방송(MBC)은 방송국이 직접 자체 미디어렙 운영을 통해 광고시간을 판매하는 민영 미디어렙 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각 정당과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방송국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가장 합리적으로 민영 미디어렙을 운영하는 방안은 어떤 것일까?

'광고 활성화'와 '공공성'의 두마리 토끼

민영 미디어렙 허가와 운영 방침을 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방송광고 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방송 광고산업 활성화와 시청률 지상주의의 적절한 견제를 통한 방송의 공공성 확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 일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방송 광고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은 시청률 지상주의를 불러와 방송 프로그램의 선정화와 뉴스 프로그램의 연성화 등 방송 프로그램의 질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광고주들은 더 많은 시청자가 시청하는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보내려 할 것이고 이러한 광고주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방송국들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더 많이 끌 수 있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들을 제작, 방송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시청자 확보와 방송 광고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방송국들 간의 치열한 경쟁은 결국 방송 프로그램의 질 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의 방송 프로그램 양산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시청률이 낮은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보다는 시청률 확보가 손쉬운 연예, 오락 위주의 프로그램들이 우리 안방극장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뉴스 프로그램의 경우 심층보도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고발 등 사회 감시 기능이 강한 아이템 보다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토픽성 아이템 위주로 제작되어 뉴스의 연성화가 이루어질 개연성이 높다.

거대 미디어 그룹이 광고시장 독과점하는 미국

미국에서는 120여 년 전인 지난 1888년 '임마누엘 캣즈(Emanuel Katz)'가 처음으로 신문의 광고지면 판매 대행을 위해 설립한 '캣즈 특별 광고회사'를 통해 민영 미디어렙 영업이 처음 선보였다. 이후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 사이에 방송 광고시장을 대상으로 한 민영 미디어렙들이 생겨나면서 방송광고 판매 영업을 시작됐다.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민영 미디어렙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주의 영향력과 치열한 시청률을 경쟁으로 인한 프로그램의 지나친 상업화 때문에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방송광고 판매는 방송국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미디어렙들과 방송국의 광고시간을 위탁 판매하는 민영 미디어렙들이 공존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자체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렙을 통해 방송광고 시간을 판매하는 직접 영업형태로 운영되고 있지만 반드시 자사가 운영하고 있는 미디어렙을 통해서만 광고시간을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방송사의 자체 미디어렙이 커버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일반 민영 미디어렙을 통해 광고시간을 위탁 판매하고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는 형태로 광고시간을 판매하고 있다. 즉, 미국의 방송광고 판매는 방송국 자체 미디어렙을 주축으로 여러 민영 미디어렙들이 무한 경쟁을 통해 방송광고를 판매하고 있는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미국의 방송광고시장은 많은 매체를 소유하고 있는 거대 미디어그룹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미디어렙에 의해 대부분 장악되어 있다. 결국, 미국의 거대 미디어 그룹들은 방송시장의 독과점뿐만 아니라 방송 광고시장까지 독과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처럼 거대 미디어 그룹들이 방송시장과 방송광고 시장을 독과점 함으로써 지역방송국과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방송국 등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매체들이 광고판매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방송국 운영이 위협을 받고 있다.

대기업, 거대신문, 방송사의 지분 참여 제한해야

이러한 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새로이 민영 미디어렙을 시행하는 우리나라는 시청자들이 다양한 여론을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소수의 시청자들의 방송 시청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방송광고 시장 경쟁체제 도입 시 광고 판매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취약 매체(예컨대, 지역방송과 종교방송)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반드시 포함 시켜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민영 미디어렙에 참여하려는 대기업과 대형 일간신문, 그리고 방송사들의 지분참여를 제한하는 방식을 통해 대기업과 대형 일간신문, 그리고 방송사들의 방송시장 독과점을 방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민영 미디어렙은 완전경쟁 보다는 제한 경쟁 체제로 운영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민영 미디어렙 설립 허가의 조건으로 광고 취약매체에 대한 일정량의 광고를 의무화 하는 등 제한적인 경쟁 체제를 통해 방송광고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방송광고의 공정한 거래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방송광고 시장의 무한 경쟁체제 도입이 시청률 지상주의를 불러와 방송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민영 미디어렙은 경쟁을 통한 이익 창출을 허용하되 공익적 책임도 함께 의무화 하는 제한적인 경쟁체제로 운영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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