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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루 쥐려다 칼끝 쥔 형국…대통령 직접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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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루 쥐려다 칼끝 쥔 형국…대통령 직접 나서야"

[정세현의 정세토크]<18> 개성 사태, 단기처방 안 돼…판세 크게 보라

개성공단 출입 문제가 북한의 헷갈리는 조치 때문에 대내외적 관심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월요일(16일) 쯤 되면 개성공단 관련 정책에 대한 주문이 상당히 여러 갈래로 제기될 것 같습니다.

북한이 월요일에 통행을 갑자기 풀지도 모르지만, 어떻든 북쪽이 남쪽을, 쉽게 얘기해서 가지고 노는 것이냐는 반발과 비판도 나올 수 있고...보수 성향이 뚜렷한 정당에서 이미 말했지만, 개성공단을 폐쇄하라는 얘기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대응을 하려면 이 사태를 어떻게 읽어야 하고, 북한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에 대해서 뿌리를 캐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상대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자기만의 병 같으면 왜 병이 났는지 찾아서 치료하면 되지만, 이건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니까 상대가 어떤 배경으로,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지 정확히 분석해야 대책도 제대로 강구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개성 출입을 가지고 오락가락하는 건 지극히 전술적인 차원인데, 전략적인 차원으로 판세를 크게 보면 지금 이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겁니다. 개성공단 문제 하나 가지고 대북 강경책을 주문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키죠."

개성공단 출입 문제는 따로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녜요. 북한이 9일 '키 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훈련 문제를 걸어서 갑자기 통행을 차단했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우선 그 시점을 보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조율하기 위해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서울에 왔던 때였습니다. 7일 들어와서 10일 떠났으니까. 또 4월 4-8일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띄우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시점으로부터 한 달 전에 나온 문제입니다.

그런데다가 3월 초-4월 초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형성되는 시점이죠.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여러 보고서에서 2월 말까지 대북정책을 리뷰한다고 했는데, 2월 중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일본, 한국, 중국을 순방했고 이어서 3월 초 보즈워스가 중국, 일본, 한국을 순회했단 말이에요. 심지어 러시아 6자회담 대표까지 서울로 불러내서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3­―4월이란 시점은 오바마 대북정책의 틀이 갖춰지는 때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이 시기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북한은 국제사회의 요구에 맞게, 조용하게, 미국을 비롯한 관련 국가들의 자비와 선의를 기다리는 식으로 접근할 것이냐. 아니면 어차피 거래의 방식으로 자기들이 필요한 걸 달성해야만 하는, 끌어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 약간 위험하긴 하지만 강수를 두는 게 좋으냐. 여기서 북한은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잖아요.

▲ 개성공단 출입 차단 이후 비상근무중인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도라산출장소 ⓒ연합뉴스

왜 그렇게 몸값을 높이려고 하는가? 작년부터 얘기했지만, 김일성 탄생 100주년, 김정일 탄생 70주년이 되는 2012년을 그 사람들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설정하고, 금년부터 '천리마 대고조 방식', 사실 그게 50-60년대 방식인데, 그런 방식으로 경제 역량을 증진·강화시키기 위해서 동원 체제에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현실은 아주 안 좋아요. 경제란 건 주변국과의 비교 속에서 우위에 있느냐 열위에 있느냐로 그 만족도가 결정되는 거 아녜요? 그런데 주변국들이 다 잘 살게 된 마당에...1950년대만 해도 남쪽이 자기네보다 훨씬 못 살았고, 자기들은 천리마 운동으로 체제안정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중국하고 비교해 봐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주변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도 외부로부터의 공급이 충분하게 이뤄져야 됩니다. 안 그러면 군사적으로도 열세가 되죠.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공급을 확실히 보장받는 방법 즉,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수 있는 길로 통하는 방법이 결국 북미관계 개선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오바마 정부와 첫 판짜기에서부터 기선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자기네 구상을 실현하는데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하려고...그래서 지금 좀 초조해져 있어요. 2012년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빨리 결판을 내야 됩니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 출범 직후에 핵과 미사일 문제를 묶어서 "조선반도의 평화문제를 단꺼번에(한꺼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는 의사표현을 했어요. '단꺼번에' 문제를 푼다는 건 북한이 미국에 적극 협조하고 대신 반대급부를 크게 받아내겠다는 의사표시였어요.

북한이 개성 출입을 가지고 오락가락하는 건 지극히 전술적인 차원인데, 전략적인 차원으로 판세를 크게 보면 지금 이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겁니다. 키 리졸브가 끝나도 미사일을 쏘겠다고 통보한 4월 4-8일 이전까지는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북미 양자접촉이 본격화되지 않는다거나, 6자회담이 열릴 기미가 안 보이거나, 한국과 일본의 대북 태도가 조금이라도 유연하게 바뀌지 않는다면, 이 사람들은 계속 강수를 두면서 나올 거예요.

그런 마당에 개성공단 출입 문제 하나만 가지고 대북 강경책을 주문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키죠. 일단 이렇게 말하고...

"미국으로서도 미사일을 쏘지 말라고 하면서도, 막상 쏘게 되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한 양자협상을 곧바로 시작하거나, 그것과 더불어 6자회담을 빨리 개최하는 식으로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이 뭘 위해서 저러는지 또 다른 측면을 봅시다. 미국은 이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표현을 요즘 쓰고 있는데, 그런 마당에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는 건 '핵폭탄+미사일'이 되면 미국에 굉장한 위협이 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라는 국가이익에도 정면으로 도전이 된다는 걸 아니까...결국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이라는 강력한 요구의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의 3대 대외문제는 중동,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특별대표 세 사람을 둔거죠. 그런데 따지고 보면 중동 문제는 소강상태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쉽게 해결될 수는 없어요. 이스라엘 때문인데 완전히 해결되겠어요? 아프간-파키스탄도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탈레반이라는 근본주의 세력과의 협상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즉,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북핵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미사일을 쏘지 말라고 하면서도, 막상 쏘게 되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한 양자협상을 곧바로 시작하거나, 그것과 더불어 6자회담을 빨리 개최하는 식으로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개성공단, 미사일, 서해 문제 같은 위협을 쏟아내는 건 대남 차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측이 계속 이렇게 무시하고 기다리는 전략으로 나오면 안 돼요. 강성대국의 문을 열려면 남북관계도 풀려야 되죠. 그런데 좋게 말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역으로 세게 돌려 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바꾸려는 압박전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는 대내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4월 초 국방위원장으로 다시 추대될 텐데...98년에도 국방위원장 추대를 축하하는 의미로 광명성 1호를 쏴 올렸고, 선군정치의 위력이니 김정일의 영도력이니 의미를 부여 했죠.

그것처럼 이번에도 위성을 쐈다고 하변서 강성대국을 실현하기 위한 과학기술적 기초가 놓였다는 식으로 얘기할 겁니다. 어쩌면 후계구도까지 연결을 시킬지 몰라요. 그런 국내 정치 차원에서 북한은 계속 여러 가지로 강수를 둘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쪽에서 개성공단 하나 가지고 강경조치 취하고 풀어라 말라 해서 북한이 겁먹고 '좋다. 쌀·비료를 준다면 풀겠다.' 이렇게 나오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키 리졸브가 끝나면 개성공단 문제가 조금 완화될지 모르지만, 미사일 발사가 끝날 때까지는 이와 비슷한 긴장 분위기를 유지시키려고 할 겁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낼 때까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어떻게 다시 살리느냐 마느냐 하는 얘기 자체도 어떻게 보면 의미 없어요. 우리 정부하고 일본이 자꾸 그런 말들을 하는데, 나중에 뒷감당하기만 어려워집니다."

그럼 미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오바마 정부는 북한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보즈워스 대표의 경력으로 보나, 그 동안 오바마 진영에서 나온 여러 멘트나, 클린턴 장관이 동북아 순방 때 했던 얘길 보면 부시 시대와 같은 압박정책은 절대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이미 구체적으로 얘기했어요. 북한이 핵을 폐기할 준비가 돼 있다면, 국교정상화, 평화협정, 관련국들과 함께 경제지원을 할 용의가 있다고요. 사실 그건 9.19 공동성명의 구도입니다. 또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 조미 공동코뮈니케의 구도, 페리 프로세스의 구도, 94년 제네바 기본합의의 구도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미사일을 쏘면 처음엔 미국이 발끈하겠죠. 유엔 제재를 하느니 마느니 잠시 얘기를 꺼내겠죠. 그런데 그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겁니다.

또 98년, 2006년 미사일 발사 상황하고는 달라요. 그 때는 불쑥 쏴버렸는데, 이번에는 IMO(국제해사기구),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같은 데다가 미리 통보해서 국제사회가 다 알고 있습니다. '불시에 도발을 했기 때문에 제재를 가해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물론 미국과의 협조 때문에 발사 자제를 요청하지만, 인공위성이라면 막을 길이 없지 않느냐는 얘기를 해요. 미국 내에서도 인공위성일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이 나왔죠.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어떻게 다시 살리느냐 마느냐 하는 얘기 자체도 어떻게 보면 의미 없어요. 우리 정부하고 일본이 자꾸 그런 말들을 하는데, 나중에 뒷감당하기만 어려워집니다.

미사일 문제에 관한한 북미 양자협상으로 바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어요. 6자회담 의제로 넣느냐 마느냐는 관련국들과 협의해야겠지만, 일단은 양자협상으로 미사일 수출·개발 중단 관련 타협을 시작할 겁니다.

98년 대포동 1호 발사 후 미국은 경제적 지원을 할 테니 미사일 발사 시험이나 수출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었고, 북한도 미사일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은 발사를 유예하겠다고 약속했었지요. 2000년 10월 조명록이 워싱턴 가서 합의한 조미 공동코뮈니케의 주요 대목이 바로 그겁니다. 이번에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보상 문제가 있으니까 미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6자회담의 의제로 만드는 방법을 쓸 수 있습니다. 클린턴 장관도 자기네 구상과 관련된 책임을 유관국들과 공유하겠다고 했는데, 그 공유라는 게...허허...압박을 공유하자는 게 아니라 부담을 공유하자는 얘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미국은 아마 그렇게 가지 않겠나...

미국은 왜 그러나? 명분은 세계평화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지만, 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실 무기시장의 '마켓 셰어링'를 둘러 싼 경합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중동이라는 엄청난 무기시장에서 북한이 싼 값에 자꾸 물건을 팔아대니까...미국으로서는 비싸게도 팔 수 있는 걸...말하자면 북한산 짝퉁이 돌아다니는 셈이죠.

그것 역시 미국 국가이익의 손실을 의미하는 거기 때문에...미국의 이익에 도전하는 조무래기 무기수출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협박 가지고는 안 되니까 보상 방식으로 자기들의 마켓 셰어링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계산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6.15와 10.4에 대해 좀 더 분명히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건 북쪽에 끌려가는 게 아닙니다. 그야말로 어른스럽게 '내가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게 다 뜻이 있었는데, 못 알아들으니까 직접 다시 확인해준다.' 이런 식으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판세가 이렇게 돌아간다고 볼 때, 우리가 개성공단 문제 때문에 발끈해서 강수를 둔다거나 대북 비난을 하고 나설 것인가, 아니면 판을 크게 읽고 대책을 강구할 것인가.

이것과 관련해서 따져야 할 게, 북한의 대남 요구가 뭐냐는 건데요, 14일 토요일 나온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의 보도라는 게 의미심장했습니다. 격은 좀 낮았지만 의중의 일단을 비췄어요. '이명박 정부가 남북대화에 관심 있다면 민족 앞에 사죄부터 해야 한다.'

사죄라는 표현에만 주목하면 안 되고요...북한은 그동안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존중해야 한다는 요구를 계속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에는 두 선언에 대해 언급도 안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꽤 많은 말을 했어요.

작년 7월 11일 국회연설에서는 두 선언의 이행 문제에 대해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고, 9월 22일 민주평통 연설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15 선언과 10.4 선언 등 그간의 모든합의의 정신을 존중"한다는 표현을 썼었요. 합의정신을 존중한다는 건 이전에 비해 진전된 겁니다.

그러더니 지난 삼일절 경축사에서는 두 선언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남북간 합의사항을 존중하고, 그걸 바탕으로 대화와 협력을 발전시키자고 했어요.

그 전까지는 합의정신이란 말만 하거나, 6.15나 10.4를 언급하면서도 다른 여러 합의들과 섞어서 이행 문제를 협의하자는 식으로 말해서 북이 이쪽의 진의를 의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합의사항을 존중하겠다고 말한 건 큰 진전이죠. 물론 그래놓고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그걸 뒤집는 것 같은 발언을 하니까 진정성 문제가 나오긴 했죠.

어쨌든 북이 사죄하라고 하면서 남쪽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요구를 하긴 했지만, 그 말 속에 숨은 뜻은, 북미관계 개선 행보가 시작될 쯤 해서는 남북관계도 거기에 맞게 풀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계산이 있는 게 아닌가...그래서 외세공조에만 매달리지 말고 민족공조로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조평통 서기국의 보도에 담겨 있습니다.

'사죄'라는 단어에 우리가 얽매이지 말아야 돼요. 물론 북쪽도 그런 요구를 하면 안 되지...자기네가 무슨 심판자나 되는 것처럼 고압적으로 나오면 될 일도 안 되는 거 아녜요?

사죄하라고 해서 할 수도 없는 거지만...대신 그 행간을 읽자 이겁니다. 왜 이 시점에 그런 말을 했나. 삼일절 경축사나 12일 원로 초청 오찬 같은 데서 나온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었는데, 결국 민족공조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의 연설 등 공식 문서상 6.15, 10.4에 대한 입장은 표현이나 문맥상으로만 보면 그동안 확실히 진전이 있었어요. 대통령 자신이나 참모들이 그 뒤에 그 말을 뒤집어 버려서 탈이지만... 나중에 공식 문건만 가지고 본다면 이명박 정부도 상당히 노력했다는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언급이 이렇게 진전되는 것에 대해서 정부나 대통령 주변 참모들은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요. 자꾸 딴 소리 하지 말란 말이야. 명언적으로 이렇게 얘기해 놓고 또 그걸 유턴시키는 발언이나 표현을 하면 안 됩니다.

▲ 이명박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원로회의' 첫 회의에 앞서 참석 위원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서 당면 문제와 관련해서 난 이랬으면 좋겠어요. 가까운 시일내에 적절한 계기를 활용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6.15와 10.4에 대해 좀 더 분명히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점잖게 말하는 거죠.

'내가 6.15 선언과 10.4 선언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작년 7월부터 잘 해보자는 식으로 얘기했고, 6.15와 10.4의 합의정신도 존중하고 합의사항도 존중한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다만, 경제사정이 좀 달라졌기 때문에 돈 드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행의 우선순위나 사업 규모를 재협상해야 하는 게 아니냐.

북쪽이 그런 내 말을 못 알아듣고, 자꾸 나보고 사죄하라느니 이러는데, 이건 적절치 않다. 나는 이미 6.15와 10.4를 여러 번 얘기했고, 합의정신과 합의사항을 존중한다고 얘기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식으로 넌지시, 점잖게 '좋게 말하는데 못 알아듣네' 하는 게 어떤가 싶습니다. 그건 북쪽에 끌려가는 게 아닙니다. 그야말로 어른스럽게 '내가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게 다 그런 뜻인데, 못 알아들으니까 직접 다시 확인해준다.' 이런 식으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쪽에서는 '6.15와 10.4 선언에 수표(서명)한 최고사령관의 뜻을 받들어 움직이는'이란 표현을 씁니다. 신성시되는 문건이란 말이죠. 김정일의 모든 결정은 신성한 걸로 여겨지는 북한을 상대로 한반도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데, 상대가 신성시하는 문건에 대해 자꾸 딴 소리를 하면 얘기가 안 됩니다.

어쨌든 북한의 정치문화의 현실를 인정하면서 여유 있고 넉넉하게 나가고...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물밑 대화로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특사도 못 가요. 가겠다고 하면 '6.15, 10.4에 대한 입장은 뭐냐'고 먼저 물어볼 겁니다.

요즘 자천 타천으로 여당 주변에서 특사설이 많이 나오는데, 6.15와 10.4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북한에서 받지도 않을 겁니다.

또, 6.15, 10.4를 존중한다고 하면서 민족의 장래를 위해 흉금을 털어 놓고 얘기하자고 해도 받을 둥 말 둥 하는데, 하물며 김정일 위원장을 앞에다 두고 '당신, 통일을 위해 무슨 고생을 했느냐'고 따지고 혼내겠다고 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상부에 보고도 못 할 겁니다. 특사 하겠다면서 그런 얘기 하면 결국 못 가게 돼요.

"지금 오바마랑 보조를 맞춰야지 왜 아소하고 보조를 맞춥니까?"

이제 결론을 냅시다. 어떤 언론에서 그러더라고요. 이제 와서는 북한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정부한테 잘못이 있다고...틀린 말은 아녜요.

남북관계가 제대로 잘 굴러 갔으면 지금쯤 모든 칼자루를 남쪽이 쥐고 북한을 잘 인도해 가면서 북핵 문제 해결이나 이런데 협조하게 했을 텐데...지금은 완전히 칼끝을 쥔 형국이 돼가지고, 북한이 움직이는데 따라 일희일비하게 됐어요.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면서 계속 기다리기만 하다가 지금에 와서는 노심초사하는 신세가 돼버렸어요.

그건 뭐 지나간 얘기고...어쨌든 크게 봐서 미국의 행보가 어떻게 나갈 건지 예상해 가면서 우리가 여유를 가지고 6.15와 10.4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된다 이겁니다. 한발만 더 나가서 확실히 얘기하고 물밑접촉을 시작하면 아마 저쪽이 나올 겁니다.

그렇게 해서 진짜로 특사를 보낼 수 있으면 보내는 거고...아니면 그 전에 6자회담이 풀리면서 남북대화도 열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장관급회담이나 총리회담으로 들어가든지...남북 양자간의 문제는 그것대로 좋게 풀어갈 준비를 할 필요가 있어요.

이번에 김현희 기자회견을 보면서...그게 우리 정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는데, 아니 이명박 정부는 겨우 아소 류(類)의 일본 우파들과 손잡고 뭘 하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는 해고, 다시 뜰지도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이건 아니죠. 지금은 오바마랑 보조를 맞춰야지 왜 아소하고 보조를 맞춥니까? 응? 지금 아소나 자민당 우파들은 재집권을 위해 못할 짓이 없어요.

그래서 김현희도 그렇게 쓰는 겁니다. 메구미 카드가 퇴색하니까 '제2의 메구미'인 다구치 카드로 북한을 때리고, 그걸 통해서 보수 강경 추세를 유지시키면서 선거에서 득을 보려고 하고...그게 다 일본 국내 정치인데, 우리 정부가 거기에 협조해서 남북관계를 망칠 필요가 뭐가 있는가...

외세공조를 하더라도 좀 현명하게 하자 이겁니다. 민족공조와 외세공조가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쪽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아니 대체 왜 아소 류하고...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現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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