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외연 페리가 군산항을 출항한다. 이 항로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 뉴어청도 페리는 정기 점검에 들어가고 예비선인 외연 페리가 대신 다닌다. 두 시간 반의 운항시간이 다시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뱃길은 멀고 날은 흐리다. 저 망망한 바다 위로 또 얼마나 많은 생애의 시간들이 흘러갔는가. 여객선은 낡았고 선원들은 늙었다. 외딴 섬으로 가는 여객들은 고단함에 지쳤다. 선실의 지하는 방이고 지상은 의자다. 바닥을 찾아든 여객들은 벌써 잠이 들었다. 먼 길 가는 뱃길에 잠 보다 빠른 지름길은 없다. 한 시간의 항해 끝에 중간 기항지 연도에 들른 배가 십이동파도 근해를 지난다. 12개의 섬들이 파도치는 모습 같다 해서 십이동파도.
지난 2004년에는 저 십이동파도 근해 수심 20m 바다 속에서 천 년 전 고려 시대의 난파선이 발견되기도 했다. 선체에서는 수천 점의 고려청자와 유물들이 발견 됐다. 해남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개경으로 싣고 가던 배가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연 페리의 선장은 30년 전까지만 해도 십이동파도에 서너 채의 집들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섬에 살던 주민들 일부가 납북됐었다고 한다. 그 후 섬사람들은 강제 이주 당했고 섬은 무인도가 됐다. 국토 곳곳 분단의 상흔이 남지 않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첨단 장비로 가는 낡은 배
외연 페리호 최인엽 선장은 30년 넘게 배 위에서 살았다. 한국통신 배를 타고 낙도에 통신 시설을 설치하러 다니다 정년퇴직 한 뒤 여객선으로 옮겨왔다. 건조 30년이 넘은 낡은 여객선은 장비들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장비에 쓰이는 기술은 육상의 자동차들에 비하면 첨단의 고급 기술이다. GPS와 레이더, 에코 싸운딩. 선박의 항해술은 비행기와 함께 군사 기술의 혜택을 가장 먼저 받는 민간 분야다. 저런 장비들이 없었던 과거에는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망망대해를 항해했다. 더 먼 옛날에는 별자리와 해와 달과 바람의 안내를 받았을 것이다.
운전대 앞에는 아직도 마그네틱 컴퍼스(자기 나침반) 한 대가 놓여 있다. GPS가 도입된 뒤에는 실제로 쓰지 않지만 나침반은 운전실에 반드시 갖추어야만 하는 법정 비품이다. 나침반은 고정되어 있다. 뱃머리를 나침반의 원하는 각도에만 맞추고 간다면 여객선은 안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어청도는 군산에서 북서쪽, 280도. 뱃머리가 280도를 이탈하지 않으면 여객선은 마침내 목적지 어청도에 무사히 도달할 것이다.
GPS가 나침반을 대신해 항해 길을 잡아 줄 때 레이더는 항로의 온갖 장애물을 찾아내 안전운항을 돕는다. 레이더는 전파를 물체에 발사시켜 물체에서 반사되는 전파를 돌려받아 물체와의 거리나 방향, 고도 등을 알아내는 무선 감시 장치다. 이 여객선도 선상의 안테나를 통해 전파를 발사한다. 전파는 해수면의 모든 물체들, 선박과 암초와 파도에 까지 도달했다가 되돌아와 그들의 위치를 레이더 화면을 통해 알려준다.
레이더 화면에 점으로 보이는 것은 다른 선박들이다. 섬이나 암초는 면으로 나타난다. 파도는 일렁이는 물결 모양으로 표시된다. 넓게 퍼진 검은 색은 장애물 없이 평탄한 바다다. 에코 사운딩은 물의 깊이를 재는 수심 탐지기다. 바다 속으로 전파를 발사하면 전파는 해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와 바다 속의 깊이를 가늠해 준다.
감옥인 동시에 탈주선이기도 한 여객선
여객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예비선으로만 투입되는 외연페리는 4명의 선원들이 운항한다. 선장 1인과 기관장 1인, 항해사 2인. 바다 위에서 선장은 여객의 목숨을 관장하는 절대자다. 그래서 선장에게는 사법 경찰권까지 있다. 여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가 생기면 누구라도 포박하여 구금할 수 있다. 비상시에는 그토록 무서운 권력자가 되는 선장이지만 오늘처럼 평화로운 일상에서는 그저 인자한 뱃사공이다.
외연 페리는 날렵한 고등어처럼 유선형이다. 대부분의 선박들이 유선형을 선호하는 것은 그것이 물의 저항을 최소화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여객선에는 1100 마력의 엔진 두 개가 장착되어 있다. 2200마력. 2200마리의 말들이 끄는 배. 엔진 두 대가 가동을 시작하면 선풍기 날개 모양의 프로펠러(스쿠류)가 돌면서 바닷물을 뒤로 차낸다. 그 날개의 힘으로 여객선은 거침없이 전진한다.
뱃전에서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나그네에게 세 시간의 항해는 길고 지루하다. 지루함은 시간 탓이 아니다. 정해진 항로를 벗어날 수 없는 절망감 때문이다. 일탈을 꿈꾸며 떠나왔으나 일탈이 봉쇄당한 뱃길. 배에 오른 이상 여객들은 선실 밖으로 한 치도 나갈 수 없다. 문을 열면 망망대해. 여객선은 바다의 감옥이다. 감옥을 벗어난 탈옥수에게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 선실 벽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뱃고동이 운다. 어청도에 도착했다. 여객선은 어청도 부두에 승객들을 풀어 놓는다. 나그네를 가두던 여객선이 나그네를 해방시켰다. 여객선은 감옥인 동시에 감옥을 벗어나게 해주는 탈주선이기도 한 것이다.
어청도에 들다
한때 2000여명에 달하던 섬 주민들이 이제는 190여명만 남았다. 군부대가 있어 군인과 군속들이 다수 살지만 이들은 뜨내기다. 어청도는 군산시에 속해 있으나 군산의 섬들보다는 충남 보령의 외연도, 호도, 녹도 등과 가깝다. 하지만 섬은 이들 이웃 섬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다. 행정구역이 충남에서 전북으로 바뀌면서 뱃길이 끊긴 탓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사람살이의 정을 강제로 끊어버린 것은 권력의 야만이다. 과거 독재 정권의 실력자였던 김종필이 선거구 조정을 명분으로 전북 금산을 충남으로 가져간 대가로 어청도를 전북에 넘겼다.
어청도는 중국과도 멀지않다. 산둥반도와의 거리가 300㎞. 서울에서 광주, 부산에서 제주 정도의 거리다. 그래서 어청도를 비롯해 대청도나 외연도, 가거도 등 중국과 지근거리의 서남해안 섬들에서는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들이 떠돌기도 한다. 물론 과장이다. 제주의 닭 우는 소리가 부산서 들리겠는가. 그러한 말은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가깝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과거에는 중국과 황해 바다 섬들 간에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원활한 해상 교류가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바람을 동력 삼은 돛단배(風船)로도 바다 길 300킬로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지금은 우리가 너무 좁은 땅에만 갇혀 살다보니 두 세 시간의 뱃길도 아득히 멀게 느껴질 뿐이다. 폴로네시아 군도의 망가레바 섬에서 마르카즈 제도는 무려 1600킬로나 떨어져 있지만 옛날 망가레바 섬 사람들은 작은 카누를 타고 그 길을 수시로 왕래하며 교류하기도 했었다.
고래잡이배들로 성시를 이루던 섬
어청도에는 19세기말부터 이미 일본인들이 살았다. 이른바 어업 이민, 일본제국주의는 어청도, 거문도 등의 외딴 섬부터 조선을 먹어 들어왔다. 1907년, 어청도에만 40여 호 200여명의 일본인들이 정착해 살았다. 일제 때 어청도는 오사까에서 요동반도의 다롄까지 왕래하는 정기여객선과 오사까, 신의주간 우편선의 기항지이기도 했다. 1912년에 생긴 어청도 등대는 황해 바다 뱃길을 밝히는 불빛인 동시에 일제의 대륙 침략의 앞길을 비추는 전조등이었다. 1934년, 일제는 어청도항의 대규모 확장 공사를 했고 1937년 중일전쟁의 중간 병참 기지로 사용했다.
일제 때부터 어청도는 고래잡이의 메카였다. 동해의 고래가 봄이면 새끼를 낳기 위해 어청도 근해로 몰려 왔다. 어청도는 동해의 장생포와 함께 오랫동안 포경선의 전진 기지였다. 국제 고래위원회(IWC)의 결의로 상업 포경이 끝난 것은 1986년. 어청도 포구의 양지 식당 여주인은 "85년까지도 가마솥에 불을 때 고래 고기를 삶아 먹었다."고 기억 한다. 그때는 어선들의 인심도 좋았다. "물 한잔만 줘도 고기를 몇 상자씩 내려 주고 갔다."
포구는 고래잡이배들 외에도 트롤선(저인망 어선), 머구리배, 불법 저인망 어선인 '방배' 등으로 성황을 이루었다. 한집 건너 한집이 다방과 식당. 다방은 간판만 다방이었지 술도 팔고 몸도 파는 유곽이었다. 아가씨들이 많을 때는 100여명에 이른 적도 있었다. 작고 먼 외딴 섬이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었다. 큰 바람이라도 불면 그 많은 배들이 포구로 싹 들어왔다. 그때마다 포구는 먹고 마시고 노는 선원들로 흥청거렸다. 중국과 일본 배들까지 포구에 정박했다. 해군이 그들의 상륙을 감시했다. 고래잡이가 막을 내린 뒤에도 포구는 한참 더 호황을 누렸다. 5년 쯤 전부터 포구는 급격히 쇠락했다. 저인망 어선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고 새만금 공사로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100여년을 이어온 어청도의 호시절이 끝났다.
지금은 식당과 슈퍼 몇 개를 제외하고는 선창가의 상가들은 대부분 폐업 했다. 한때 10여개나 되던 다방도 모두 사라졌다. 이제는 간판만 남은 양품점 '핑크 하우스'에서는 다방 아가씨들만을 상대로 숙녀복과 란제리와 악세사리를 팔았다. 오늘 핑크하우스에는 화려한 옷들 대신 고기잡이 그물만 가득하다.
'뺑뺑이', 개량 안강망 어선
새벽에 조업 나갔던 뺑뺑이 한척이 포구에 정박했다. 개량 안강망 어선. 기존의 안강망 은 밀물과 썰물 방향으로 각기 하나씩의 그물을 고정해서 설치해 두고 물이 들고 날 때마다 서로 다른 그물을 봐야 했다. 개량 안강망은 썰물과 밀물의 흐름에 따라 회전하면서 물고기를 포획한다. 하나의 그물로 들고나는 물때의 어류들을 모두 포획 할 수 있게 됐다. 뺑뺑 도는 그물이라 해서 어부들은 개량 안강망을 뺑뺑이라 부른다.
요즈음은 새우 잡이 철이다. 선원들은 갑판 가득 쌓인 새우를 선별한 뒤 바닷물에 깨끗이 세척한다. 새우떼를 쫓아온 포식자들, 아귀와 광어, 우럭 등의 생선도 함께 잡혀왔다. 선원 한 사람은 아귀들 뱃속에 가득 찬 새우들을 게워내 깨끗이 씻는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아귀의 입속에서는 새우만이 아니라 꼴뚜기, 멸치, 정어리 등이 마구 쏟아진다. 아귀처럼 삼켰으나 대부분은 소화 시키지 못했다. 아귀의 위액에 절은 물고기들. 어떤 아귀는 제 동족까지 삼켰다. 위산에 녹아버린 아귀 새끼의 몰골이 처참하다. 제 새끼는 아니었을 런지.
기술의 축복, 기술의 재앙
평상에 앉아 바다를 보던 어청도 어촌계장님은 이제 바다가 아주 망했다고 탄식한다.
"고기 집은 적은데 기계가 발달해서 정확하게 훑어버리니 고기가 씨가 마르지."
옛날 어선들은 눈으로 가늠해 가며 그물을 던졌지만 이제는 어군탐지기로 물고기들이 지나는 길목을 정확히 찾아내 그물질을 하니 치어까지 싹쓸이 되고 만다. 어로 기술의 발달이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바다의 파국을 앞당기는 독이된 것이다. 수 만년, 누대에 걸쳐서 나눠 써야할 자원을 단기간에 고갈 시켜버리는 과학기술. 인간이 이룬 과학기술의 발달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게 될 때 과학 기술은 더 이상 인류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어청도에도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그들은 어청도의 경제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어청도 어촌계장님은 "낚시꾼들이 낚시 배를 타고 와서 섬에 내리지도 않고 물고기만 낚아서 돌아간다."고 탄식 한다. "낚시꾼들은 쓰레기만 버리고 간다. 낚시꾼들이 버린 밑밥 때문에 백화현상이 심해 어장이 죽는다."
어청도 주민의 90% 이상이 어업에 목줄을 대고 있으나 바다는 갈수록 흉어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갯벌이 죽은 후과가 이 먼 섬까지 미치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고군산 섬들과는 달리 어청도 주민들은 방조제 앞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 한 푼 받지 못했다. 인공어초 사업도 섬들이 몰려 있는 고군산에 비해 투자가 덜 됐다. 한 섬만을 위해 예산을 더 많이 쓸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주민들은 "인공어초를 더 많이 투입해 주길" 바란다. 어선들은 어청도 근해에서는 어획량이 많지 않아 말도나 십이동파도 등의 먼 바다까지 가서 어로를 한다. 그 때문에 비싼 기름 값 빼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어촌계장님은 "과거에는 잡히는 물고기도 많았고 단가도 높았지만 지금은 잡히는 양은 대폭 줄었는데 가격마저 떨어졌다."고 한숨을 쉰다. 대량 양식과 중국산의 유입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촌계장님의 분석이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소비자들에게 자연산 물고기는 여전히 비싸기만 한 귀물이 아닌가. 산지에서는 값이 떨어졌지만 소비자들은 오히려 더 비싼 값에 먹어야 한다. 어청도 주민들의 손해는 실상 양식어류나 중국산 때문만이 아니다. 유통업자와 횟집 상인들이 중간에서 이익을 가로채는 것이 더 큰 이유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요"
어청도 포구,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반찬이 맛깔스럽다. 식당 안주인이 솜씨가 있다. 50대 후반은 됨직한 동네 남자 하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남자는 대뜸 무릎이라도 꿇을 태세로 안주인을 향해 팔을 뻗고 노래를 부른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내 사랑 그대여 날 좋아 한다고 말해요
그대 없이 나는 못 살아요.
메마른 내 가슴에 단비를 뿌리는
그대를 너무나 좋아해
날 사랑 한다고 말해요"
섬마을 식당의 세레나데.
안주인은 웃으며 맞장구친다.
"노래는 겁나게 좋구만. 김용임 노래가 어려운디. 시숙님, 노래 잘 하시네"
남자는 한 번 더 목청을 가다듬는다.
"이 세상 영원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주세요
날 사랑한다고 말해요"
안주인은 웃으며 손을 젓는다.
"시숙님도 참, 내가 그 노래에 어떻게 대답을 하것소."
옆에서 지켜보던 식당 바깥주인은 삐긋이 웃는다. 고독한 섬 살이를 이겨내는 세월의 가락들이다.
누리집: http://www.pogildo.pe.kr
이메일: bogilnara@hanmail.net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