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안 여객 터미널에서 거제 행 여객선에 오른다. 부산에서 거제에 이르는 길은 육로보다 해로가 가깝다. 부산에서는 거제의 고현, 옥포, 장승포로 이어지는 세 개의 항로가 있다. 소요시간은 차이가 적다. 사람들은 목적지에 따라 각기 다른 항로를 이용한다. 여객들 중 여행자는 드물다. 여객의 대부분은 거제도 대우조선과 삼성조선의 직원들이거나 그 가족들이다. 조선소 관련 승객들은 차림새에서 여행자와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여객선 안에서의 행동으로도 구분된다. 여행자들은 들떠 있으나 그들은 차분하다. 여행자들이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 그들은 지루함에 눈을 감거나 부족한 잠을 청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바다 풍경도 익숙해지면 일상이다. 풍경이 주는 감동의 많은 부분은 낯설음에 있다.
뉴아카디아 호는 옥포항이 종착지다. 228톤, 최대 속력 43노트(시속 80킬로). 워터 제트의 추진력으로 항해하는 노르웨이 산 여객선은 50분간의 항해에 300리터의 경유를 연소시킨다. 말라붙은 염분으로 여객선의 유리창은 온통 뿌옇다. 텔레비전에서는 '전국 노래 자랑'의 진행자 송해 선생이 또 다른 프로그램에 나와 흘러간 노래를 부른다. '목포의 눈물', '나는 울었네', '짝사랑', '울어라 기타줄아', 메들리로 이어지는 노인의 노래가 구성지다.
바다는 물결이 제법 세고 여객선은 쉴 새 없이 출렁인다. 파랑 속에서도 부산 거제 간 다리 공사는 쉬지 않는다. 교각들이 완성된 것을 보니 오래잖아 상판이 올려질 모양이다. 다리는 부산과 가덕도를 연결한 뒤 가덕도와 거제도 구간을 마저 연결하면 완공된다. 다리가 놓이면 이 항로의 배들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오래지 않아 이 나라 대부분의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 한다. 이 나라 모든 섬들이 육지와 다리가 놓여 질 것이다. 섬이 육지와 연결되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하지만 섬들이 육지로 편입되는 것은 섬사람들의 열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토목 자본의 멈추지 않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육지의 산 속 오지까지 남김없이 도로를 깔아 마침내 일거리가 없어진 토목 자본은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 공사에서 활로를 찾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인생도 한번 가면 다시 못 오고.....물새야 왜 우느냐. 울지를 마라." 노인의 메들리는 끝이 없고 인생사 슬픔도 끝이 없다. 어째서 우리네 삶은 온통 이별과 그리움으로만 출렁이느냐.
지심도
나는 늘 유행에 뒤처져 산다. 유행을 따라가기가 버거워 철 지난 유행가를 부른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팝송을 들을 때도 나는 트로트를 들으며 자랐다. 동백섬으로 유명 여행지가 된 지 오래인 지심도를 뒤늦게 찾은 것도 그러한 성정 때문이다. 지심도행 배는 장승포항이 아니라 장승포 동사무소 앞 도선장에서 뜬다. 해가 짧고 여행객이 적은 겨울철에는 편도 20분 거리를 하루 세 번만 왕복한다. 동백이 만개하고 여행객들이 떼지어 몰려오는 3월 중순부터는 배의 운항 횟수가 크게 증가한다. 2월의 어떤 날, 오후 4시 30분, 지심도행 막배 승객은 한 사람뿐이다. 큰 배를 자가용으로 전세 냈다고 기뻐할 일은 아니다. 뭍으로 나오는 승객이라도 있다면 덜 미안할 것이다. 여객선은 나는 듯이 지심도 포구에 도달 한다. 섬에서 나가는 승객은 없다.
장승포항에서 불과 5킬로, 짧은 거리지만 배가 끊기면 섬은 다른 세계에 속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나 벗어난 것이 아니다. 어찌할 것인가. 뱃길이 끊어진 시간 동안 섬은 여행자에게 또 다른 세계가 된다. 섬에 깃든 생명체들은 모두가 한 운명이 되는 것이다. 강한 바람과 거친 파도가 여행자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삶을 넘어서고 싶은 열망으로 섬에 왔으나 섬은 다시 삶이다. 세상 밖의 삶은 없다. 세상에 없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이 섬의 유일한 운송수단은 짐수레를 매단 오토바이들이다. 섬은 초입부터 언덕길이다. 주민들은 짐을 싣고 가파른 길을 오른다. 부두에는 어선 한 척 떠 있지 않다. 섬에 방파제가 없는 까닭이다. 폭풍으로부터 배를 숨길 곳이 없으니 섬이지만 섬의 주업은 어업이 아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부터 나무 터널이 시작 된다. 동백나무, 소나무, 팔손이, 후박나무 등의 상록수가 원시림의 숲으로 남아 있다. 섬의 소유권자는 국방부다. 섬의 땅 주인이 국방부였다는 것이 주민들에게는 불운이었지만 나무들에게는 행운이었다.
지심도는 면적 0.356㎢(10만여 평), 길이 1.5 킬로 너비 500미터, 해안선 둘레 3.7㎞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더 오랜 옛날에도 살다 떠나고 들어와 살기를 거듭했을 터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사람살이 역사는 길지 않다. 사람들이 다시 이 섬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현종 때인 17세기 후반부터다. 하지만 지금 섬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후손이 아니다. 선주민들은 일제시대 제국의 군대에 의해 쫓겨났고 8.15 해방 때까지 섬에는 일본군이 주둔했다. 해방 이후에야 다시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국방과학 연구소 뒤편에는 일제의 포진지와 탄약고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민박집, 학꽁치를 뜨다
민박집 주인내외와 저녁 밥상을 함께 한다. 나그네가 운이 좋았다. 주인이 떠온 학꽁치 회가 푸짐하다. 주인이 떴다는 말은 회를 떴다는 것이 아니다. 뜰채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왔다는 뜻이다. '반대'라고도 하는 뜰채 낚시는 대나무에 매단 큰 그물로 뜰채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 재래식 어로다. 홍합 부스러기 따위의 밑밥을 넣은 대나무 뜰채를 바다에 던져 놓으면 물고기들이 몰려든다. 어부는 그것을 들어 올려 거두기만 하면 된다. 그야말로 물에서 물고기를 떠오는 것이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섬에는 열다섯 채의 집이 있다. 두 집은 빈집이고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은 열세 집이다. 다들 민박으로 생계를 꾸린다. 하지만 모든 집에 사람이 상주하는 것은 아니다. 여섯 집 정도만 붙박이로 살고 나머지는 장승포에서 드나들며 민박을 친다. 섬이 부업거리 일터인 셈이다. 해방 이후부터 살아온 원주민은 세 가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근자에 들어온 외지인들이다. 외지인들은 장승포 등지에 사는 주인에게 세를 주고 집을 빌려 민박을 한다. 이 민박집 주인 역시 10여 년 전 우연히 여행 왔다가 빈집을 사 고치고 또 새로 지어 눌러 살게 됐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경로로 섬에 정착했다. 낚시나 여행을 왔다가 섬에 매혹돼 눌러 살게 된 것이다. 섬에는 일본에서 여행 왔다가 주저앉은 일본인 부부도 있다.
지심도는 모든 땅이 국방부 소유라 집주인들도 땅에 대한 권리가 없고 오로지 건물에 대한 권리만 있다. 민박집 주인은 그 때문에 걱정이 많다. 지심도가 유명세를 타자 거제시는 국방부로부터 섬을 통째로 불하 받기 위해 협의 중이며 섬을 넘겨받은 후에는 대대적인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섬의 소유권이 시로 넘어가면 주민들은 강제 이주 당하게 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주민들이 몇 번씩이나 산불 난 것을 껐어요. 2000년엔가 그때도 산불이 났었지요. 그 때도 주민들이 합심해서 불을 안 껐으면 원시림이 다 타 없어져버렸을 겁니다. 그때는 저 위 국방과학연구소에 석유가 몇 만 톤이나 있었거든요. 한꺼번에 기름을 쟁여 놓잖아요. 불길이 거기로 번졌다면 섬 전부가 타 없어져 버렸을 거예요. 그걸 우리 주민들이 껐는데. 그래서 저 원시림이 남아 있는 건데....."
민박집 주인은 주민들 스스로 섬과 섬의 원시림을 지켜낸 탓에 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안타까워한다. 그가 처음 들어와 살던 10 여 년 전만 해도 섬에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었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섬은 순식간에 유명 관광지가 됐다. 동백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이 작은 섬에 하루 1000여명의 관광객이 몰려오기도 한다. 주인은 섬을 알리기 위해 방송 출연까지 했던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는 섬이 개발되기보다는 지금 그대로 보존되기를 희망한다.
겨울에 피어야 동백이다
아침부터 바람이 거세다. 첫배로 치과에 가겠다던 민박집 안주인이 못 나가고 집에 있다. 배가 뜨지 않은 것이다. 안주인의 발을 묶은 것은 바람이 아니다. "(들어가는) 손님이 한 사람도 없으니 정 급한 일이 아니면 열두시 반배를 이용하면 안 되겠느냐"고 도선장에서 양해 전화를 걸어 왔다. 기름값도 올랐는데 자기 혼자 때문에 큰 배를 띄우는 것이 미안해서 안주인은 낮 배를 타기로 했다.
민박집 정원은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초본 식물들로 잘 가꾸어져 있다. 용설란은 주인이 10여 년 전 섬의 마끝 절벽에서 캐왔다. 주인이 들여다 심은 뒤 안의 종려나무들도 세월 따라 울창해졌으나 바람과 추위에 시달려 모색은 초췌하다. 그들이 살기에는 이 섬의 기온이 너무 매몰찬 것일까. 민박집 뒷길, 섬의 정상에는 잔디가 깔린 '활주로'가 있다. 활주로라 이름 붙어 있지만 경비행기도 착륙하기 어려운 짧은 거리다. '활주로'는 비행기 활주로가 아니라 헬기 착륙장이다. '활주로' 옆 숲길을 따라 섬의 동북쪽으로 간다. 춥다. 이런 추위에도 섬은, 섬의 나무와 풀들은 다들 맨몸으로 견딘다. 지금 이 겨울 섬의 숲길에서 방한 옷을 걸친 것은 나뿐이다. 두터운 방한복에 귀마개, 모자까지 쓰고도 사람인 나는 온몸을 파르르 떤다.
섬은 그 전체가 원시의 숲이다. 태풍이라도 불면 모든 숲이 바닷물을 뒤집어 쓸 만큼 작은 섬에서 끝내 살아남은 나무들은 대체로 뿌리가 깊어 바람에 강하거나 염분에도 잘 견디는 나무들이다. 그들 중 동백나무의 개체 수가 월등히 많다. 섬이 동백섬이라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2월의 섬은 동백의 시절이 아니다. 남해안 섬에서 오래 살았던 내가 그것을 모르고 온 것은 아니다. 지심도로 나를 부른 것은 동백꽃이 아니다. 동백 숲과 아주 오래된 동백나무들이다. 꽃을 볼 요량이었다면 동백이 무더기로 피어나는 12월이나 3월 말쯤에 왔을 것이다.
겨울 중 가장 추운 때인 이즈음은 동백도 거의 피지 않고 그저 꽃망울을 머금고 날이 풀리길 기다릴 따름이다. 동백은 대게 11월 말 경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겨울에 꽃이 핀다 해서 동백(冬柏)이다. 겨울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백은 세 계절에 거처 물경 반년 가까이 피는 꽃이다. 동백나무에는 동백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추백(秋柏)도, 춘백(春柏)도 살다 간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3,4월의 동백은 실상 동백(冬柏)이 아니라 춘백(春柏)인 것이다.
올겨울 가장 춥다는 칼바람 추위 속에서도 피어 있는 동백꽃이 간간히 눈에 띈다. 꽃은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아무리 동백이라 한들 얼어버릴 듯한 추위야 어쩌겠는가. 강추위가 오래 계속된다면 저 동백꽃들도 동사하고 말 것이다. 설령 견뎌낸다 해도 끝내 열매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이름값을 하고 죽는 것이 열매를 얻는 것보다 못하다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 겨울 대책 없이 타오르다 붉게 지는 목숨, 저 꽃으로 인해 동백은 비로소 동백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숲은 바람 속에서 깊어진다
동백의 숲으로 난 흙길을 걷는다. 이 섬보다 더 작은 섬에도 자동차 길이 나 있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지심도에는 자동차 길이 없다. 섬은 짐수레 매단 오토바이 한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만큼 좁은 오솔길들로 이어져 있다. 게다가 섬의 일부는 포장도로지만 활주로에서 샛끝별여 부근 망루로 난 길을 비롯해 섬의 여러 갈래 길들은 고스란히 흙길이다. 이런 비포장의 흙길은 어느 섬에서도 좀체 만나기 어려운 행운이다. 참으로 귀하고 귀한 길이다.
길의 본 뜻은 무엇일까. 한자 길 道(도)자는 辵(착)과 首(수)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다. 그래서 언젠가 신영복 선생은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니 길(道)이란 곧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바 있다. 나는 그 뜻을 길이란 통로인 동시에 사유의 길이고, 사유를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자연과 소통하고 나아가 세계와 소통하는 길이란 의미로 이해했다.
하지만 도시의 길들은 자동차와 온갖 장애물들의 위협으로 더 이상 생각에 몰두해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 길들은 오로지 통로로서의 기능만 할 뿐이다. 이런 오솔길, 흙길들, 사람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길들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하는 소중한 토양이 아니겠는가. 나는 많은 길들이 '사유의 확장' 기능을 되찾을 때 이 소란하고 얕은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더 깊고 고요해질 것을 믿는다.
왕대나무 숲 부근에 섬의 방향 표지석이 서 있다. 동서남북의 방위를 알려주는 표지석이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깊은 숲속에 들어와서야 섬의 방향이 제대로 가늠된다. 매일 매일 삶이 혼돈스럽다. 내 삶의 방향 표지석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실상 삶에는 방향 표지석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삶은 정해진 방향을 따라 가는 일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저 주어진 삶은 없다. 어디에서도 삶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삶일 뿐이다. 어둑한 숲의 터널을 빠져나가면 환한 빛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숲의 끝은 절벽이다. 넘어서고자 하지만 건너 뛸 수 없다. 삶 건너 삶은 없다. 세상에 없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해안 절벽에 가까워질수록 파도소리 거세지고 숲은 바람 속에서 깊어진다.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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