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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월도(紫月島), 겨울 산이 가장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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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월도(紫月島), 겨울 산이 가장 깊다

강제윤의 '섬을 걷다' <6> 자월도

비가 오고 아들은 죽순처럼 자랐다
어머니는 길 떠나는 아들의
새벽밥을 지었다
아들은 가시덤불을 지나
잣밤나무 숲으로 사라졌다
바람이 불고
거대한 숲이 흔들렸다
아들의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어머니는 눈썹이 희어졌다
돌아온 아들은 서럽게 울었다
밤이 기울도록 어머니는 잠들지 못했다
아들은 다시 길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어머니는 새벽밥을 차리고
뒤돌아보는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천년을 서 계셨다

- 강제윤 詩 '천년'


어머니

사멸에 이르지 않는 한 존재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새벽에 잠이 깼다. 부엌 방 한 구석에 잠이 든 어머니, 고통스런 숨소리에 다시 잠들 수 없다. 지병으로 어머니는 몇 개의 계단을 오르는 일도 힘에 부친다. 질병의 종합선물 세트를 안고 사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병을 키운 것은 절반이 아들이다. 나머지 반은 아버지.

오래 전, 자식이 둘인 어머니는 연안부두의 식당 파출부 일 나가시며 한 달에 하루 쉬는 날, 새벽 같이 일어나 춘천 교도소의 공안수 큰아들 면회를 서둘러 마치고 영등포 구치소의 둘째 아들 면회까지 가야 했었다.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흘렀으나 어머니의 고통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신용불량자가 된 둘째 아들은 주민등록도 없이 공사판을 떠돌고, 큰 아들은 유랑자가 되어 떠돈다.

구름처럼 떠다니다 기별도 없이 들른 두 아들, 아들이 혹여 굶고 다니지는 않는지 어머니, 연신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따뜻한 밥을 새로 짓고, 된장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며 내내 웃던 어머니. 밤이 오고 잠 속으로 들어간 뒤에도 쉬지 못하신다. 낮에는 애써 참아냈으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잠결에 새어나오는 신음소리. 아들은 잠들지 못하고 속울음을 운다.

어머니 웃는 얼굴에 속아 아들은 어머니가 병자란 사실을 잊었었다. 아들은 제 안의 상처만 깊은 줄 안다. 날이 밝고 두 아들은 다시 길 떠날 것이다. 혼자 남겨진 어머니는 내내 더 깊이 앓으실 것이다.

인천

지금은 신도심이 인천의 중심이 되어 버렸지만 대체로 사람들의 인천에 대한 인상은 어둡다. 잿빛 하늘과 낡고 오래된 건물들, 인천의 구도심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인천의 색채는'우울'색이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항구도시지만 인천은 오랜 동안 경계지대가 주는 활력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그네는 시간 따위는 결코 흐르지 않을 듯 한 인천의 옛 시가지나 희뿌연 인천의 바다가 항시 그립다. 유년과 청년기 20여년을 인천 언저리에서 살았었다. 나그네는 낡아 빛바랜 인천에서 자주 위로 받는다. 나그네의 어머니가 사는 석남동은 인천에서도 변두리다. 경인 고속도로가 마을을 가르고, 여전히 낯설기만 한 인천의 신도심보다는 김포나 강화 쪽에 더 가깝다.

어머니 사시는 석남동 거북시장에서 12번 시내버스를 탄다. 24번도 있지만 연안부두까지 가는 최단거리 노선버스는 12번이다. 경기만 인근 서해의 섬으로 가려는 사람이라면 좋든 싫든 인천을 피해갈 도리란 없다. 백령도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근해의 자월도(紫月島)로 향한다. 먼 바다는 풍랑주의보로 배가 뜨지 못한다. 섬으로 가는 길은 늘 예측 불허의 인생행로와도 많이 닮았다.

서해

서해는 한국의 방위에서는 서해지만 중국의 방위에서는 동해다. 서해는 평균수심 44m, 최대수심 90m의 얕은 바다다. 동해의 평균 수심은 1684m, 태평양의 평균 수심은 4071m.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의 수심은 1만1034m에 달한다. 그 깊은 바다가 우물이라면 서해는 접시 물보다도 얕다.

서해 바다가 수심이 깊지 않은 것은 서해가 육지였기 때문이다. 서해 밑바닥의 땅은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시대의 암반이다. 그 당시 서해 지역은 호수가 있는 육지였을 것으로 짐작 된다. 지구가 생긴 이후 지구에는 4번의 빙하기가 찾아 왔다. 오늘날과 같은 서해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만5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기후가 따뜻해 진 때문이다. 빙하가 녹으면서 넒은 들판에 태평양의 바닷물이 들어와 서해가 됐다.
▲ 잿빛 서해를 가로질러 인천 영종도간 신 연륙교가 놓여지고 있다.ⓒ강제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 한 것은 수십만 전부터로 추정되지만 그들은 끝내 한반도에 정착하지 못했다. 현재의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5천 년 전 청동기 시대, 단군 왕검 때부터였을까. 충남대 고고미술 사학과 이융조 교수는 "우리 조상들은 2만5천년 전 좀돌날 몸돌이란 석기를 사용한 구석기인들이었을 것"(<과학동아> 2004년 4월호)이라고 주장한다. 후기 구석기 좀돌날 문화기(2만년~1만년전) 시대 사람들이 우리 조상의 원형일 수 있다는 것이다.

2만5천 년 전은 마지막 빙하기가 최고점에 달한 시기였다. 그때까지도 서해는 육지였다. 1만5천 년 전에야 서해 지역이 바다가 됐으니 우리 조상들은 중국으로부터 걸어서 서해 땅을 건너 왔을 것이다. 태고 적 선인(仙人)들이 바다를 건너다녔다는 신화는 그저 근거 없이 꾸며낸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육지의 큰 호수보다 얕은 바다, 서해.

그러나 서해의 수심이 얕다 해서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모든 바다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까닭이다. 아무리 얕아도 바다는 바다다. 서해니, 동해니, 동지나해니, 지중해니, 태평양이니 하는 이름들은 그저 인간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임의로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하나로 연결된 한 몸의 바다. 수심 몇 미터에 불과한 얕은 바다도 수심 1만 미터의 바다와 한 몸이다. 작은 가시에 손가락 하나를 찔려도 온몸이 바르르 떨리고 아프다. 얕은 바다라 해서 얕잡아 볼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수만 미터 깊은 바다 속의 작용이 수심 몇 십 미터에 불과한 서해까지 밀려온다. 도시 하나쯤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쓰나미(지진 해일)나 폭풍 때문에 발생하는 폭풍 해일은 멀고 깊은 바다로부터 시작된다. 해일은 일본이나 동남아, 인도양 섬나라들만의 일이 아니다. 1088년 이 땅의 해일 발생이 처음 기록 된 것을 시작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해일만 44회에 이른다. 바람은 잠잠한데 배가 일렁인다. 수만 리 먼 바다 깊은 곳으로부터 전해온 파장 때문이리라. 한 순간도 마음 놓을 수 수 없는 바다.

붉은 달의 섬

자월도는 인천항에서 32km 해상에 위치한다. 주변의 대이작도와 소이작도, 승봉도 등 4개의 유인도와 9개의 무인도를 아우르는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의 중심 섬이다. 면적이 7.06㎢이니 8.48㎢의 여의도 보다 조금 작다. 해안선 둘레는 20,4km. 인구는 400여명. 이곳 또한 어느 농어촌처럼 노인 가구가 대부분이다. 고려가 망하면서 공민왕의 후손들이 숨어 들어와 살았다고 전해진다. 자월도의 관문인 달바위 선착장에 열녀 조형물이 서 있다. 조형물은 열녀 바위의 전설에서 비롯됐다.

옛날 한 어부가 이 섬에서 어로를 하고 살았다. 어느 해 겨울, 어로를 나간 어부는 사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어부의 아내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남편을 찾아 헤매다 달바위 포구까지 왔다. 그곳에서 놀랍고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엄청나게 큰 지네가 사람을 물어 죽인 뒤 촉수를 꽂고 즙을 빨아먹고 있지 않은가. 아내가 순간적으로 기절 했다가 깨어나 보니 남편이었다. 그녀는 기막힌 슬픔에 몸을 가눌 길이 없었다. 통곡을 하던 어부의 아내는 마침내 달 바위에서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
▲ 자월도 달바위 선착장, 어부 아내의 조형물ⓒ강제윤

일설에는 어부를 죽인 것이 큰 뱀이라고도 전해진다. 오늘의 우리는 진실을 알 길이 없다. 섬에는 유독 지네나 독사가 많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섬에서 지네나 뱀에 물려 희생되는 사람도 적지 않았었다. 지금이야 해독제가 있지만 당시 작은 섬에 의술을 알고 해독제를 처방해 줄 의원이 있을 리 만무 했다. 그러니 어이없는 죽음도 흔했을 것이다. 어부의 전설은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었을 것이다. 뱀이나 지네 독에 감염돼 죽었을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어로를 나갔다 조난 당한 어부의 시신이 떠밀려 왔을 것이다. 어부의 시신에 수도 없이 많은 지네들이 달라붙어 그 즙을 빨아대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지네의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내는 끔찍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어부의 죽음도 안타깝고 아내의 죽음 또한 애절하다.
▲ 굴을 캐는 할머니들, 섬 사람들은 달과 바다의 자손이다ⓒ강제윤

옛 시절에는 남편이나 연인의 뒤를 따라 여자가 죽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안타까움과 애절함이 반생명적인 관습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열녀를 칭송하는 것은 순장을 미화하는 것과 같다. 열녀를 권하는 사회는 사악하다. 열녀의 신화는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로 보던 봉건 사회의 악습이다. 열녀의 조형물이 비극적인 어부 부부의 삶과 죽음을 애통해 하는 기념물이 아니라 어부를 따라 죽은 아내의 정절을 칭송하고 열녀를 미화 시키는 형태로 조형화 된 것은 분명 지각없는 짓이다. 탁상행정이 관광 상품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일 것이다. 씁쓸하다.

겨울 산에 들다

장골 해안을 따라 걷는다. 할머니들이 굴을 깨러 나왔다. 반찬거리도 하고 굴을 팔아 가계에도 보태기 위해서다. 할머니들은 자기 노동의 양만큼 굴을 수확해 간다. 바다가 죽지 않는 한 바다는 변함없이 사람들에게 먹이를 준다. 굴은 달이 차고 기우는데 따라 여물기도 하고 야위기도 한다. 섬사람들도 굴처럼 살이 올랐다 야위었다 할 것이다. 섬사람들은 달의 자손이다. 달이 바닷물을 밀었다 당겼다 하며 바다 것들을 키우면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고, 고동과 소라와 굴들을 얻어다 산다.

해발166m, 국사봉은 구릉처럼 낮지만 자월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면사무소 옆길을 따라 국사봉에 오른다. 길의 초입에서 막태골과 국사봉 양 갈래 길이 나온다. 마을이라야 두어 가구에 불과한 막태골, 거기도 노인들만 산다. 산자락의 계단식 밭은 묵정밭이 된지 오래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이 땅의 농경문화도 끝나가고 있다. 섬이라 해도 예전에는 섬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농사였다. 육지와의 소통이 쉽지 않은 까닭에 바다에서 나는 것들은 큰 소득이 되지 못했었다. 이제는 육지뿐만 아니라 섬에서도 땅은 더 이상 대접 받지 못하고 황무지가 되어 간다. 머지않아 이 땅에서는 '농경'자체가 문화유산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자월도 국사봉 산정에서 마주한 노을ⓒ강제윤

국사봉 산정에서 겨울 산을 본다. 산이 가장 깊어지는 때는 언제일까. 신록이 무성한 여름일까. 봄과 여름의 산이 나무와 풀들로 울창하여 골이 깊은 듯 하지만 실상 산이 가장 깊어지는 때는 겨울이다. 겨울 산이 가장 깊다. 맨몸의 산. 감추는 것은 깊은 것이 아니라 얄팍한 것이다. 겨울 산의 속살, 맨 살을 다 드러낸 나무와 숲과 계곡. 자신의 맨몸과 창자와 실핏줄 까지 다 드러낸 산보다 더 깊은 산이 어디 있으랴. 맨살의 겨울산정에 이르는 길은 한 가지뿐이다. 사람 또한 감춰진 제 속살을 다 드러내고 가는 것이다.
▲ 자신의 속살, 실핏줄까지 다 드러내는 겨울산ⓒ강제윤

겨울 산의 나무는 구도자다. 화려한 치장도 채색의 옷도 다 벗어재낀 본연의 모습. 겨울 산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숨길 수 있으랴. 산 스스로도 다 드러내 놓고 서 있는 것을. 이미 투명한 산의 속살에 담긴 사람이, 산짐승과 날 짐승이 또 어디에 몸 숨길 수 있으랴. 가시나무도 제 가시를 숨기지 못하고, 나뭇잎의 모습으로 몸 바꾸어 자신을 숨기던 바람도 기어코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을.

비열하고 애틋한

산 능선에서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흑염소 가족을 만난다. 아비 염소가 두 녀석의 아기 염소를 이끌고 간다. 어미는 줄에 매어져 있으니 아비와 새끼 염소들은 멀리 가지 않는다. 육친의 정을 이용한 방목. 염소는 풀과 나무의 생살을 뜯고, 사람은 염소를 팔아 목숨을 연명한다. 부모 자식 간, 암 수간의 정을 이용한 사냥 법은 바다의 어로에서도 흔한 일이다. 고래잡이에도 많이 이용되던 수법이 아닌가. 조선 순조 때 김해 바닷가에서 유배자 김려가 목격했던 원앙어 사냥법 또한 그러했다.
▲ 저녁 예배 보러 가는 노인들. 고단하고 눈물겹다ⓒ강제윤

"원앙어는 일명 해원앙이다. 생김새가 연어와 비슷한데 입이 작다. 이 원앙은 암수가 반드시 따라 다닌다. 수컷이 가면 암컷의 꼬리를 물고 가서 죽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낚시를 하면 반드시 한 쌍을 잡는다. 이곳 사람들은 말하기를 '원앙어를 잡아 눈깔을 빼내어 깨끗하게 말려서 남자는 암컷의 눈깔을 차고, 여자는 수컷의 눈깔을 차면 부부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라고 한다." 김려<우해이어보>

생이란, 생명이란 이토록 자주 비열하다. 그래도 생이여! 내 따뜻한 살이 네 주린 속 채워주는 밥이 되고 피가 되는 생명이여! 눈물겹지 않은가.
▲ 자월도ⓒ프레시안

(매주 목요일 연재)

블로그 http://bogilnar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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