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연에는 정교한 자성(磁性)이 있어서 우리가 부지중에 이를 따르기만 하면 우리를 올바르게 인도해 준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소로우 '산보')
내가 서해안의 섬에서 불현듯 제주도로 갈 생각을 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점에서 내가 제주에 가야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자연의 정교한 자성'에 이끌린 것일까. 어찌 아니겠는가. 만물에는 서로를 이끄는 힘이 있지 않은가. 나는 다만 더 큰 인력이 작용하는 쪽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사람은 지구라는 둥근 행성 안에서, 혹은 우주라는 원안에서 원운동만을 할 수 있을 뿐, 원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람 또한 조롱안의 다람쥐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벗어날 수 없음은 슬픈 일이나 우주의 원이 나를 품어 추락하지 않게 해주는 것은 다행이다.
일요일 오후, 인천 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기다린다. 이 공항을 이륙하는 항공기들이 하늘을 떠가는 것처럼 공항 또한 땅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듯이 보인다. 중력의 법칙에 반하는 이 부력은 어디서 오는가. 골프 가방을 카트에 싣고 오가는 승객들이 자주 눈에 띈다. 외국으로 골프 관광을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소문을 들은 지 오래다. 나는 골프가 얼마나 사치스런 귀족 운동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주변에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목격 하고 놀랄 뿐이다. 골프를 그토록 비난하던 사람들까지 언제 부턴가 골프를 즐기러 외국으로 간다. 사람들은 미워하면서 닮는다. 그 또한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몸을 돌보는 일은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사람의 생명은 단지 몸에만 달려있지 않다. 상처 하나 없이 건강한 사람이 어느 순간 극심한 충격을 이기지 못해 어이없이 죽기도 한다. 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돌연사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은 자주 사람의 생명이 그저 몸에만 달려 있는 줄 착각한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천금의 돈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한권의 책도 사지 않는다.
인골(人骨)콘크리트
제주 공항의 골조를 이루는 것은 철골이 아니다. 공항청사는 '인골(人骨)콘크리트' 건물이다. 활주로는 무덤 없는 뼈들의 무덤 위로 길게 깔려 있다. 국제공항이 들어서 있는 땅은 1948년 제주 4.3항쟁 때 동족의 군대와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죄 없는 형제들의 뼈가 수습되지 못한 채 묻힌 곳이다. 당시에 학살당한 제주사람만 3만이 넘는다고 추정된다.
제주에 올 때 마다 나는 도저히 납득 되지 않는 이 민족의 현대사에 갑갑증이 도진다. 식민지 치하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와는 변변한 무장투쟁 한 번 못해본 민족이 해방 후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같은 민족끼리는 어찌 그리도 참혹하게 총칼을 맞대고 싸웠는가. 일본제국주의 헌병과 경찰에게는 감히 겨누지도 못하던 총칼로 수백만의 형제와 이웃들은 어찌 그리도 무참히 죽일 수 있었는가. 미국이나 소련이라는 외세와 국제정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가까운 낙도
제주특별자치도에는 제주 본섬을 제외하고 모두 8개의 유인도가 있다. 가파도, 마라도, 우도, 비양도, 상추자,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가 아직 사람이 사는 섬들이다. 추자군도의 섬들은 해남 반도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마지막 빙하기 때 물속에 잠기면서 남은 땅이다. 우도나 비양도, 마라도와 가파도 등의 섬들은 화산섬이다. 흙빛이 다르다. 제주시 한림항에서 비양도행 도항선을 탄다. 한림에서 5km, 협재에서는 1.5km 불과한 거리지만 여객선은 하루 두 차례 뿐이다. 섬과 육지. 작은 섬과 큰 섬 사이의 소통은 물리적 거리에 달려 있지 않다. 내왕하는 사람의 숫자에 달려 있다. 비양도는 섬 속의 섬, 가까운 낙도다. 이 섬도 여름 피서철에는 수시로 배가 왕래 할 것이다.
섬과 바다는 종일 흐리다. 바다는 하늘의 거울이다. 제주에서도 청보석의 물빛으로 소문난 비양도 앞 바다가 온통 탁류다. 비양도는 해안선둘레 3.5km의 타원형 섬이다. 주민은 100여명 남짓. 섬에는 일주 도로가 나 있다. 길은 두 갈래 길, 나는 오른 편으로 돌며 섬을 품에 안아볼 작정이다.
서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오르니
이 섬은 이 나라 역사에서 유일하게 화산 활동으로 솟아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땅이다. 비양도 부둣가에 비양도 역사에 대한 두 개의 비석이 서 있다. 기록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먼저 한 비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에 "고려 목종 5년(서기 1002년) 6월에 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 나왔는데 산꼭대기에 네 개의 구멍이 뚫리어 붉은 물이 솟다가 닷새 만에 그쳤으며 그 물이 엉키어 기왓돌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한 비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 '제주목 고적'에 "고려 목종 10년(1007년), 서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오르니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를 보내 살피게 했다. 사람들이 말하길 '산이 처음 솟아오를 때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고 땅이 천둥처럼 진동하였는데 일주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개었다. 산 높이가 100여장이고 둘레는 40여리나 되었다. 풀과 나무가 없었고, 연기가 그 위를 덮었는데 마치 석류황 같이 보였다. 사람들이 두려워 감히 가까이 가려 하지 않자 공지가 몸소 산 아래까지 가 그 형상을 그려서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느 해가 됐든 11세기 초 고려 목종 재위 기간에 비양도가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것만은 역사적 사실이다. 화산 활동의 원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바다에서 산이 솟아나고 지옥의 유황처럼 끓는 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용의 승천이나 봉황의 출현 따위의 전설은 더 이상 전설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바다 속에서 땅도 솟아오르는데 어찌 용왕이 조화를 부려 비구름을 몰고 오고 풍랑을 일으킨다는 것 따위 소소한 일을 믿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태학박사 전공지는 "주민들이 두려워 감히 가까이 가려 하지 않자 몸소 산 아래까지 나아가 그 형상을 그려서 바쳤다."고 했지만 나는 그 또한 두려워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 한림이나 협재에서 건너다보고 돌아가 왕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산 높이가 100장이면 300미터다. 둘레가 40리면 12km다. 이는 비양도의 둘레가 12킬로에 비양봉의 높이가 300미터라는 이야기다. 화산 활동 뒤 섬이 다시 가라앉았다면 모를까 실제 비양도의 둘레는 3.5km, 비양봉은 114m에 불과하다.
둘레를 4배, 산 높이를 3배나 부풀려서 추정한 것은 태학박사 또한 제주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기이한 자연 현상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어찌 할 바를 몰랐다는 사실의 반증에 다름이 아닐까. 박사든 백성이든 처음 보는 놀라운 사건 앞에서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비양도(飛揚島), 어디선가 날아온 섬이란 뜻을 가진 섬의 이름은 어느 날 문득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섬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일 것이다. 날아온 것이나 솟아 오른 것이나 갑자기 생겨났다는 점에서는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저 놀라울 뿐.
제주서 아들을 낳으면 '이건 내 자식이 아니고 고기밥이야!'
비양도에는 19세기 말(고종 13년)에 와서야 비로소 사람이 처음 입주해 살기 시작했다고 공식 기록이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많은 섬들처럼 그보다 훨씬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을 것이다. 이미 고려시대 말에 해상 방어를 위해 망수(望守)를 배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미 그 무렵부터 사람들이 터전을 일구고 있었을 것이다.
해변을 따라 화산 활동으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져 생긴 돌들, 현무암 해변이 이어진다. 염습지인 펄랑 못을 지나 10여분쯤 가니 애기업개 돌(負兒石)이 물가에 서 있다. 아이를 업고 서 있는 듯 한 바위의 형상에서 바위에 지성을 드리면 아이를 낳게 해준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육지에서는 보통 아들 낳게 해준다는 바위나 불상들이 많다. 뭍의 사람들은 아들을 못 낳아서 안달복달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섬의 돌은 아들이 아니라 그저 아이를 낳게 해준다는 바위일까. 과거 제주와 육지 사람들의 자식에 대한 열망의 차이가 다른 까닭이 아닐까. 옛날 제주 사람들은 아들을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최부(崔府, 1370~1452)가 쓴 '표해록'에는 제주에서 육지로 가다가 표류 되었을 때 제주도 사람과 나눈 대화가 나온다.
"제주 사람은 앞서 가다 죽지 않으면 반드시 뒤에 가다 죽습니다. 그러므로 제주도에는 남자 무덤은 매우 드물고 여염에는 여자가 남자의 세 곱은 됩니다. 다들 딸을 낳으면 반드시 '아, 내게 효도할 애로군!' 하고, 아들을 낳으면 '이건 내 자식이 아니고 고기밥이야!' 합니다. 우리 죽음이야 하루살이 같은 것이오니 비록 평화로운 날일지라도 어찌 제집에서 죽기를 바랄 수 있으리까." 최부. '표해록'(보리)
제주도 사람들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어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완도의 덕우도에 갔을 때 섬의 묘지를 보며 풀지 못했던 의문의 한 가닥이 풀리는 듯하다. 그때 나는 수백 년을 사람들이 살다간 섬에 어찌 이렇게 묘가 적은 것일까, 궁금했었다. 섬사람들은 대부분 바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바다에서 죽어 고기밥이 됐으니 섬 땅에 묘가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남자들뿐이었겠는가. 많은 여인들 또한 어로와 잠수 중에 죽음을 당하고 시신은 찾을 길 없이 고기밥이 되고 말았을 터다.
섬사람들은 바다 생물들에 대한 약탈자가 아니었다. 사람과 바다 생물들이 일방적으로 먹고 먹히기만 하는 수탈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어 주는 상생의 관계였다. 예전 섬들의 일반적인 장례 풍습은 매장도, 풍장도 아니고 수장이 아니었을까. 관도 없고 상여도 없이 물에서 나와 물로 돌아간 수생 생물들의 운명적 모천회귀.
그뿐이겠는가. 섬사람들은 자주 난파당하고 표류한 뒤에도 쉽게 고향으로 돌아 올 수 없었다. 최부의 '표해록'에 "우리 제주도는 아득히 바다 가운데 떨어져 있어 수로로 구백여리나 되고 또 파도가 어느 바다보다 흉포하기 때문에 공물 실은 배와 장삿배가 끊임없이 표류하고 침몰하는 것이 열에 대여섯은 됩니다."고 한 제주 사람의 탄식은 결코 제주섬 사람 만의 한탄이 아니었을 것이다. 섬은 어느 곳이나 삶과 죽음의 양식에 큰 차이가 없었다.
다행이 물고기 밥을 면하고 중국이나, 일본, 유구국 등의 해안에 표류 했더라도 살아 돌아오는 경우는 열에 한둘도 안됐다. 해적들에게 사로 잡혀 노예로 팔려가거나, 최부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때때로 공적에 눈이 먼 그 나라 관군들에게 왜구나 해적으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섬사람들의 운명은 섬을 떠나 바다로 나온 순간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섬사람들이 오늘 날 까지도 뼛속까지 숙명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운명의 거친 파도 때문이었다.
시간은 늘 나의 편이다
느릿느릿 걸으며 한 바퀴 돌아도 비양도는 한 시간 거리가 되지 못한다. 언덕 하나 없이 평탄 한 길, 섬에서도 이런 걷기의 천국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섬 전체에 자동차라고는 오로지 트럭 한 대, 그 또한 화물 운반용으로만 사용 될 뿐이다. 섬을 걷는 내내 차를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걷기에 몰두 할 수 있는 것은 비양도가 뭍에서 온 길손들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보말(고동)죽 한 그릇을 점심으로 먹고 비양봉 꼭대기의 등대까지 느리게 다녀온 뒤에도 뱃 시간이 남는다. 이번에는 왼쪽 길로 섬을 한 바퀴 더 걷는다. 그 사이 물이 빠졌다. 화산석의 해변은 온통 먹빛이다. 잠수들이 미역을 딴다. 걷기에만 집중하니 어느새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바닷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습지를 이룬 펄랑 못, 산책로를 돌아 나와 골목길에서 메모를 하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뭐라고 말을 걸어온다. 선뜻 알아들을 수 없다.
"뭐라고요 아주머니."
"수돗세 받으러 나왔시까."
이 섬도 수돗물을 먹는가. 용암이 굳어져 생긴 섬이라 샘이 귀할 것이다. 수첩을 들고 기웃거리는 내 모양새가 수도 검침원처럼 보였던가 보다.
"아주머니 여기도 수돗물을 먹는가요."
"여기 아주 살기 좋아요. 한림에서 이렇게 큰 빠이쁘로 물이 건너오고, 발전소가 있어 전기
걱정도 없고."
섬에 물이 없으니 제주 본섬에서 해저 관로로 물을 날라다 먹는다. 섬의 가장 큰 고통이던 물 걱정을 던 기쁨이 몸으로 전해져 온다.
얼마 안 되는 농토지만 비양도 사람들은 집집이 무, 배추와 마늘, 양파 따위의 반찬거리 채소를 길러 먹는다. 밭들이 대부분 울타리가 처져 있고, 그물로 하늘을 덮기도 했다. 방목하는 염소나 새들의 약탈을 피하기 위함일 것이다. 부드럽고 먹기 쉬운 편안한 먹거리부터 찾는 것은 모든 생물의 본성이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폭풍이 없다면 배가 밀려 연착할 일은 없다. 배 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도항선이 들어온다.
돌아보면 삶은 언제나 나를 배신했지만 시간은 늘 나의 편이었다. 시간이 나를 배신 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나에게 가해진 어떤 상처와 고통도 아물게 해주고 치유시켜준 것은 시간이었다. 우주의 유일한 주재자는 시간이다. 시간은 언제나 시간에게 몸 맡기는 자의 편이다. 시간은 늘 기다리는 자의 편이다. 한림으로 가는 물길이 가볍게 출렁인다.
필자 홈페이지 :http://pogildo.pe.kr
블로그 : http://blog.naver.com/bogilnara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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