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비상사태 선포로 권력을 유지해온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결국 권력의 원천이었던 군참모총장직을 사임했다. 무샤라프는 29일 민간인 신분의 대통령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지난 1999년 쿠데타로 집권해 대통령이 된 무샤라프는 군참모총장을 겸임한 채 지난달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으나, 지난 15일 기존 임기가 끝날 때까지 집권 2기를 시작하는 취임선서를 하지 못했다. 대통령 자격에 대해 야당 쪽에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무샤라프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 자기에게 적대적인 초드리 대법원장 등을 축출하고 친위 법관들로 재구성된 대법원이 지난 22일 모든 소송을 기각한 뒤에야 군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무샤라프 퇴진, 국제사회 압력에 따른 것"
하지만 무샤라프가 군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난 것을 자의에 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테러와의 전쟁' 파트너로 무샤라프 정권을 지탱해준 미국이 마침내 파키스탄의 권력 교체 수순을 밞아가는 일환으로 봐야 한다.
중동의 <알자지라>는 "무샤라프가 군참모총장 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알카에다와 탈레반과 싸우는 한 그를 지지한 국제사회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의 <BBC>도 "미국 정부는 무샤라프가 이끄는 군대가 탈레반 소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무샤라프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 일각에서는 무샤라프에 의해 군참모총장 후계자로 지목된 페르베즈 키야니 장군을 '킹메이커'로 활용해, 부토 전 총리 등 친미인사를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시킨다는 시나리오가 흘러나왔다(☞관련 기사:"美, 무샤라프 사후 대책 논의중").
실제로 이날 무샤라프는 키야니 장군에게 군 참모총장직을 넘겼다. 키아니는 군부를 정치에서 분리해 국방과 치안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무샤라프가 군참모총장 직에서 물러난 것은 파키스탄의 정치역학 상 사실상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알자지라>도 무샤라프가 군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 "군부와 핵에 대한 통제권을 후계자에게 넘긴 것"이라면서 "무샤라프의 향후 정치적 생명은 키야니 장군이 지속적인 후원 여부와 야권 세력의 강도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이미 야권은 무샤라프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현재 야권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인 부토 전 총리와 샤리프 전 총리는 모두 지난 99년 무샤라프에 의해 축출돼 망명 생활을 하다가 최근 잇따라 귀국했다.
이들은 내년 1월 8일로 예정된 총선을 통해 실세 총리로 복귀하려는 경쟁을 하고 있으면서도, 비상사태가 철회되지 않은 한 총선 자체를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차기 정부에서는 결코 무샤라프와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무샤라프는 이슬람 반군 진압과 치안유지를 위해 비상사태를 철회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지만, 대통령 자리조차 유지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알자지라>는 "무샤라프는 그가 장악하지 못한 의회의 복수를 당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의 앞날을 예감한듯 무샤라프는 8년 간의 군참모총장직과 함께 46년의 군 생활을 마감하는 이임식에서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서 착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그는 "한 가족과 반세기를 살았다면, 특히 군대처럼 통일되고 충성스러운 조직을 떠난다면 여러가지 감정이 밀려오지 않을 수 없다"면서 "하지만 이것이 인생이고, 모든 것은 끝이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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