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으로 상처받는 아이들, 쫓겨나는 교사들

[전태일통신 43] 사학에서 쫓겨난 '길거리 교사'

저는 지금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에서 '길거리 교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0여 년 간 동일여고 국어 교사로 살아왔지만, 지금은 동일여중과 동일여고 학생, 그리고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길거리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옛날 그리스에서는 길거리를 걸으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현인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현인들이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21세기라고 하는 오늘날 멀쩡한 학교 건물을 놔두고 비바람치는 길거리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가 길거리 교사가 된 이유는 학생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양심 있는 교사가 되기 위해 각종 비리를 일삼고 있는 재단을 상대로 싸우다 파면 당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은데, 길거리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울타리 안에 있는 학생들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2003년 여름, 저와 동료 교사들은 졸업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 교사로서 재단의 횡포에 짓이겨 침묵하며 살던 시절, 학생들에게 수많은 상처를 남겨준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졸업생들은 저희들을 껴안으며 마음으로 용서해주었습니다.
  
  2003년 5월, 교사, 학부모, 졸업생, 지역주민들이 힘을 모아 동일재단의 각종 전횡을 폭로했습니다. 도저히 그대로 침묵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침묵은 결국 공범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양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야 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의 특별감사 결과 동일학원의 부패와 각종 회계부정은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급식비리, 동창회비 횡령, 이사장의 각종 불법 수당, 이사장 남편인 교장의 개인 승용차비용 지불, 각종 공사 관련 비리, 협동조합 불법 운영 등 모두 61건의 회계부정이 드러났습니다. 비리백화점이 따로 없었습니다. 16억여 원에 달하는 보전, 환수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현재의 이사장은 동창회비 횡령으로 벌금 1000만 원에 약식 기소되기도 했습니다.
  
  금천구 시흥동은 서울에서도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입니다. 지금은 재개발되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과거에는 산비탈에 판자촌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동일 학교에 보내면서 자녀들만큼은 가난을 대물림시키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뼈를 깎는 노동을 감내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런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종 잡부금을 징수했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그야말로 파렴치한 짓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는 수금 사원의 역할을 강요했습니다. 제대로 '수금'하지 못하는 교사들은 직원회의 시간에 무능한 교사로 매도됐습니다. 교무실의 칠판에는 반별로 각종 잡부금 납부 현황이 붙어 있었고, 교사의 능력은 수금 능력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 가운데 학교급식 비리는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선 식당 건물 건축비부터 잘못되었습니다. 학생 식당 건물을 신축하려면 사립학교의 경우 당연히 법인에서 건축비를 부담해야 합니다. 그런데 동일에서는 실업고인 동일여자전산고등학교 회계에서 12억5000만 원을 불법 전용해 지었습니다. 학생들의 직접 교육비에 사용해야 할 등록금에서 빼내어 학생식당을 건축한 것입니다. 학생들의 교육의 질이 어떠하였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체가 이미 불법 전용인데,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이에 대한 보전조치를 하지 않고 재단에 면죄부를 주고 말았습니다.
  
  학교 회계에서 교육비를 빼내 식당 건물을 지어 놓고는 본격적으로 밥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은 교육활동으로서, 급식도 교육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실시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 학교에서는 가장 비교육적인 방법으로 급식을 실시했습니다.
  
  일단 모든 교사와 학생들은 강제로 급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몸이 아파서 식이요법을 해야 하는 학생도 급식을 강제로 먹어야 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급식비를 낼 수 없어 도시락을 싸와야 하는 학생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급식을 먹지 않는 학생과 교사들은 학교에 사유서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어느 임신한 여교사가 식이요법 때문에 급식을 먹지 못한다고 하자 사유서를 요구했고, 교사가 이를 거부하자 학기 중에 이 여교사를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강제 발령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교사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임신중독증에 걸려 죽을 고비를 겪기도 했습니다. 시간강사들에게는 학교장이 각서를 요구했는데, 내용인즉 급식을 먹을 때 반찬을 남기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반찬을 남기지 않는 일이야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학교가 그렇게 반찬을 남기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반찬비를 줄이려는 동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학생 식당에서는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이 두 번 먹거나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이 몰래 급식을 먹는 일을 막게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점심시간 15분 전에 교실에서 나와 식당으로 가야 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수업 중간에 식당으로 오게 했습니다. 특히나 실업고인 동일여자전산상고 학생들의 경우 가정형편이 극빈층인 학생들이 많았는데, 국가에서 급식비를 지원받아 무료급식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공짜로 밥을 먹으니, 대신 식당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강제로 식당일을 시켰습니다. 식당 청소와 배식을 시켰고, 이 학생들은 4교시와 5교시 수업의 절반 정도를 식당에서 일하며 보내야 했습니다. 물론 무료 강제 봉사였습니다.
  
  이렇게 강제로 식당 일을 해야 했던 극빈층의 여학생들이 심한 모욕감을 느꼈음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 무료 급식을 먹어야 하는 학생들이 무료 급식을 거부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교사들이 문제 제기를 하면 그야말로 '문제 교사'로 낙인 찍혀서 각종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강제 급식으로 수천 명의 학생들에 대해 직영 급식을 하고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학생들과 교사들이 총동원되었으니, 급식의 질이 좋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급식의 질은 형편없었습니다. 카레라이스에 국도 없이, 깍두기 몇 개, 단무지 몇 조각, 싸구려 요구르트 한 개가 전부인 형태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지 못한 게 후회가 됩니다. 사진을 보면 얼마 전 문제가 되었던 병원 급식은 그래도 나은 편일 터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급식비는 내놓고 급식을 먹지 않는 학생과 교사들이 속출했습니다. 맛없는 급식이니 아무리 조금씩 받아도 다 먹지 못하고 남길 수밖에 없는데, 남기는 학생들은 잔반을 다시 먹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어떤 여학생은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반찬을 남겼다고 뺨을 맞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학생들이 조금 먹게 되니, 급식 재료비도 적게 들었을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렇게 쥐어짜서 남긴 금액이 드러난 것만 2년 여 동안 4억5000만 원이었습니다. 그 금액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특별감사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몰랐습니다. 물론 학교급식법 상 불법입니다. 2003년 특별감사 결과 이 사실이 마침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시설보수비 명목으로 남겼다고 변명했습니다. 물론 이 자체도 불법입니다. 식당 건물 보수비가 5억여 원에 달한다는 사실 자체도 믿을 수 없는 수치이지만 말입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건 배움과 가르침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이러한 비교육적인 재단 측의 처사를 바로 세우고자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전교조 분회를 창립하고 본격적인 학교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사들에게 돌아온 것은 재단과 관리자들의 각종 협박과 담임, 부장교사 배제, 주요 업무 배제 등이었습니다. 또한 교사들은 각종 고소·고발을 당했습니다. 그 가운데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3명의 교사들을 2005년 2월부터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년 5개월 동안 창살없는 감옥살이를 하다가 급기야는 2006년 6월28일 파면 처분을 받았습니다.
  
  지금 파면된 선생님들은 날마다 학교로 갑니다.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뒤 길거리 무료수업을 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자가 잘못을 고친 자를 처벌하고 내쫓는 일이 학교에서 벌어진다면,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학생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반드시 학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학교가 정상화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서울시교육청이 동일학원에 임시이사를 파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바로 얼마 전 온 나라가 급식비리로 떠들썩했습니다. 급식비리가 왜 생기겠습니까. 간단합니다. 돈 때문입니다. 배움과 가르침이 아닌 더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아이들 먹는 데까지 손을 뻗친 비리와 부패 때문입니다. 우리는 동일학원부터 이같은 비리와 부패가 사라지길 간절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게 아이들을 살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