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지방 국립대 30곳의 신입생(한해 6만여명) 모두에게 '전액 장학금' 혜택을 주는 방안이 발표됐다. 아직 확정된 안은 아니지만, 상당한 관심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계획에 대해 우선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이 정책이 '대학무상교육'의 시발점이 돼, 거대한 고등교육 구조개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크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정책이 지방 국립대생만 대상으로 하고,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근간인 사립대생이 제외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계획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게 될 지방 사립대와 재학생은 어떻게 되는가?
어떤 정책으로 인해 일부의 사람이나 집단이 이득을 얻지만, 손해를 보는 사람이나 집단이 없다면 이 정책은 사회의 총 행복이 증가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지방 국립대생 등록금 0원' 정책은 그렇지 않다. 이득을 보는 지방 국립대 재학생보다 몇 배나 많은 지방 사립대 재학생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 다 알다시피 지방 사립대에는 주로 저소득층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이대로 시행된다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정의(평등)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효율성 원칙에서도 벗어나는 일이다. 이 정책이 정의롭고도 효율적인 정책이 되려면, 사립대생들을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고소득층만 계속 유리해지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하나 더 추가되어서는 안 된다.
저소득층을 포함한 국민 전체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의로운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입장에서 '지방 국립대 재학생 등록금 0원' 정책이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특히 경제 정의(평등) 문제와 효율성 저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왜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이 국립대 재학생으로 제한되는가
국민이 낸 세금을 특정 집단에만 배분한다면, 특혜에 해당한다. 임의로 자원을 배분해도 되는가? 지방 국립대가 사립대보다 공동선(common good)을 두텁게 추구한다든가, 아니면 사립대가 못하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한다면 이러한 특혜를 국립대에 줘도 큰 불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립대와 사립대는 기능상 별 차이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국립대에만 특혜를 준다면, 그래서 국립대 재학생만 수혜 대상이 된다면 이거야말로 중상주의적 특혜와 다름이 없다. 특혜 지원의 합리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고등교육은 사립대학이 83% 이상을 담당하고 있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은 철저하게 국립대 중심으로 실행됐다. 이러한 방식을 평가해 볼 시기가 됐다. 이는 지방 국립대들이 그동안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지방 국립대들은 주로 도청 소재지 등 대도시에 있으면서, 당국의 행·재정적 지원으로 사립대에 비해 우월한 교육여건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거점국립대는 과거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과 비견될 만큼 선호도가 높았던 화양연화가 있었다. 그러나 지방 국립대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는 계속 낮아져 수도권 신흥 사립대들에도 밀리는 상황이 됐다. 이들이 수도권 사립대들의 약진에 고전하고 있는 지금, 다시 한번 재원과 우수 인재를 몰아주어 경쟁력을 갖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방 몰락이 시작되던 시절, 지방 국립대학들이 했던 역할을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바둑을 복기하듯이. 지방 국립대들이 잘될 때까지 계속 기회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면, 국립대의 대대적 구조개혁 없이 이 정책이 성공하길 바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왜 사립대생은 이 계획에서 제외되는가
사립대는 국립대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대학 운영에서 낭비와 비효율이 거의 없다. 지방 국립대에는 사립대에 없는 공익 목적의 학과나 전공 분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국립대 졸업생들과 사립대 졸업생들이 노동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사립대생이 차별받을 특별한 이유가 없다. 국립대가 국립대다워지려면 경영학이나 의학 등 일부 영리 목적의 전공 분야를 사립대에 넘기고, 인문·사회계열과 기초과학 및 농학 등 공익성이 높은 비인기 전공을 중심으로 편제를 개편해야 할 것이다. 단지 국립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립대생과 다른 처우를 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세금은 능력 있는 모든 국민이 납부한다. 자녀를 국립대에 보낸 부모들뿐만 아니라 사립대에 보낸 부모들도 납부한다. 올해 4년제 대학 신입생의 약 77%가 사립대에 입학했고, 전문대 입학생의 99%가 사립대학에 입학하여 사립대생 비중은 전체 대학생의 83%를 넘고 있다. 대학생 자녀를 둔 납세자들을 자녀의 대학(국립대와 사립대)을 기준으로 구분한다면, 이와 비슷한 비율이 될 것이다. 즉, 대학생 자녀를 둔 납세자의 83%가 사립대 학생의 부모이다. 그들은 질문할 것이다. 내가 낸 세금을 왜 국립대생에게만 주는가? 사립대 재학생들의 부모는 납세자로서 요구할 수 있다. '사립대에 다니는 우리 아들·딸들에게도 국가장학금을 똑같이 지급하라.'
정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홍보하면서 성공한 모델로 들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학들도 알고 보면 공립과 사립이 공존하는 체제이다. 그래서 UC버컬리·UCLA 등 주립대들과 함께 스탠퍼드·캘리포니아공대(CALTECH)·USC 등 사립대학들이 융성하고 있다. 사립대학들도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고 있으며, 앞에서 예를 든 사립대들은 주립대들보다 대학 랭킹이 훨씬 높다. 우리는 무작정 국립대만 계속 지원해야 하나?
정부가 살려야 할 지방이란 도대체 어디인가
지방은 대도시와 중소 도시 및 읍면으로 구성돼 있는데, 지방 국립대는 대부분 광역시나 도청 소재지에 있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청주, 춘천, 진주, 제주 등 거점국립대가 소재한 도시들은, 형편이 다소 어려워졌다고는 해도, 산업활동과 시민들의 삶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지역들이다. 공공기관과 공·사기업들이 많아서 당장 소멸을 걱정할 단계에까지 이른 도시들은 아니다. 그러나 지방 사립대들(전문대 포함)이 주로 소재한 중소 도시는 사정이 다르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한눈에 들어온다. 소멸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이 지역들에는 형편상 대도시로 가지 못하고 지역에 발이 묶인 저소득층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삶의 상당 부분이 지역 대학에 의존해 있다.
지역에 소재한 지방 사립대는 숙식비 부담이 없다는 측면에서 국립대보다 비교우위에 있다. 그래서 지역 학생들이 많이 다닌다. 그러나 '지방국립대 등록금 0원' 정책의 시행으로 지방 사립대들 대부분은 비교우위를 상실하게 되고, 일부는 바로 생존의 문턱에 서게 된다. 사립대의 재정은 곧바로 타격을 입게 된다. 가까운 시일 내 사정이 호전되지 않으면, 대학이 문을 닫든지,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교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거나 교육환경 개선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지방 사립대가 폐교하거나 운영 규모를 축소하게 되면, 이들이 위치한 지역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는다. 이 정책으로 지역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오히려 죽이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지방대 100개 죽이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는데, 이 정책이 갖는 지방 파괴력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 지방 사립대를 동시에 지원하는 것이, 보수언론과 수도권 엘리트들의 반감을 살까 봐 두려운가?
'지잡대를 왜 지원하느냐' 말하는 자들을 무시하라
지방 사립대를 '지잡대'라고 부르는 자들이 있다. 일부 몰지각한 청년들이 많지만, 보수 언론인들과 정치인들도 있다. 이들은 대개 교육의 효율성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골라 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가 해오던 방식이다. 그래서 중고교에서 공부를 잘한 학생은 엘리트가 되어 돈과 권력을 손에 쥐고 한국 사회를 좌우해 왔다. 반면, 성적이 낮은 학생은 저임금·비정규직 언저리를 헤매고 있다. 이야말로 불평등과 불공정의 극치이며, 한국 사회의 최대 병폐 중 하나다. 이미 이 문제로 인해 우리 사회가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는데도, 이를 반복하자는 것은 억지다.
지방 사립대와 전문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보면 그 의미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들은 많은 수가 중하위 소득계층 출신들이다. 가난한 가계 출신이라서 자사고·특목고·영재고에 못 들어가고, 고액의 학원에 못 다니고, 집 부근에 있는 지방 사립대에 입학했다. 이만한 성과도 엄청난 노력에 따른 결실이다. 이와 달리 지방 국립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지역의 자산가층 자녀들이다. 장학재단 발표(2024년)에 의하면, 2023년 4년제 일반대·교육대 학생들의 학자금대출 이용률은 총 13.8%였다. 이중 국공립대학의 학자금대출 이용률은 10.8%로서 사립대학 14.8%보다 4%P나 낮았다. 국공립대 재학생 상당수가 고소득층 출신이라 신청 자격 부재로 이용률이 낮은 것이다. 이 통계가 말하는 것은 ‘지방 국립대에는 중산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고, 사립대에는 저소득층이 많이 다닌다.’라는 사실이다. 고소득층이 가장 많은 서울대는 이 비율이 5.5%로 전체 가운데 가장 낮다. 지방 사립대들이 사라지면, 저소득계층 자녀들의 대학 교육은 어떻게 되는가? 정책 자문을 하는 교수들이나 관료들에게 이점은 관심사가 아닌지 묻고 싶다.
저소득층의 교육 기회가 희생되면 안 된다
바이든(Jo Biden)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흑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다니는 대학을 살리기 위해서 3년간 총 160억 달러를 이들 대학에 지원한 바 있다. '초등의대반' 등 의대 입학 경쟁에 따른 엄청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도 가치관의 대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특정 계층 출신이 고액의 사교육을 받아 최상위 서열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 고소득 상위 직종을 독점하는 일이 지속되도록 허용할 것인가? 이젠 사립대생을 제치고, 그들이 무상교육을 먼저 향유하게 되는가!
사회적 약자들의 행복을 고려하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가계 형편상 거점국립대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지방 사립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만약 지방 사립대가 사라진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고등교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국립대만 등록금 면제 정책'은 사회 정의와 평등을 악화시키는 보수·퇴행적 정책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최소수혜자 (the least advantaged)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도록 배치되어야 한다'는 롤스(John Rawls)의 Maxmin 기준까지는 충족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완전히 뒤집는 부익부(富益富)·빈익빈(貧益貧)으로 향해가서는 안 된다. 국립대생에게만 특혜를 줄 경우, 이는 벤담(Bentham)과 밀(J. S. Mill)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칙까지도 버리는 것이다.
과연 '등록금 부담 0원'으로 수도권의 중위권 사립대와 경쟁이 되겠는가
교육부는 '지방 국립대 등록금 0원' 정책으로 거점국립대들이 서울 중위권 사립대와 경쟁하길 기대한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정책이 시행되면, 지방 국립대들은 경쟁력이 약간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 경쟁력은 대학의 교육여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이득이 너무 커서 수도권대학에 몰리는 것이다. 지방 국립대가 ‘등록금 부담 면제’로 우수한 신입생들을 충원했다고 해도, 졸업 후 이들이 지역에 거주한다는 보장은 없다.
서울대보다 학생1인당 교육비가 2배 정도로 큰 포항공대나 카이스트 등 과학기술특성화대학들의 사정을 보라. 포항공대 졸업 후 포항에 거주하는 인재를 찾기 어렵고, 울산과기대 나와서 울산에 정주하는 인재도 없다. 대구, 광주, 대전도 사정은 비슷하다. 청년들이 정주를 결정하는 여건들의 획기적 개선 없이는 정주할 인재를 찾기 어렵다.
지방 국립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지방 사립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에 비해서 대체로 가계소득 수준이 높고, 이들에게 등록금은 큰 부담이 안 된다. 실제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들은 지방 사립대와 전문대에 많다. 필요성이 크지 않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듬뿍 주고 정작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주지 않는다면, 이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만족도(=총 행복)의 감소는 얼마나 클 것인가? 이 정책이 사립대생들을 배제한 채로 시행된다면, 사회적 불평등은 높아지고 정책의 효율성은 낮아지게 된다.
낡은 정책을 청산하고, 고등교육에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지방 국립대생 등록금 0원' 정책은 고등교육의 대개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매우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이 계획으로 지방 사립대들이 고사(枯死)한다면, 오히려 쥐를 잡으려다 장독대를 깨는 일이 된다. 지방 사립대가 생존해야, 저소득층의 교육 기회가 보장되고 사회 정의가 살아난다. 지방 국립대만의 무상교육화는 중상류층 자녀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것으로서, 과거의 대학 정책들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 국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되풀이 강조하지만, 교육의 정의를 위해 사립대 학생들에게도 국립대 학생에 상응하는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외면하는 사립대학은 과감히 정리하여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게 하는 것이 저소득층의 교육권 보호를 위해 바람직하다.
교육의 평등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체 국민에게 동질적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부실 사립대를 국립화하고, 전국 국립대의 교육과정을 잘 관리하면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동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결국, 망국적 대학 서열 체제도 서서히 무너질 것이다. 뛰어난 사립대는 미국의 하버드·예일·MIT·스탠퍼드 등 유명 사립대들처럼 자율성을 크게 부여하여 세계적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고등교육 발전과 국민들의 행복 증진을 위해, 교육에서의 불평등 해소를 주요한 가치 기준으로 설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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