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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을 위한 성장(pro-poor growth)' 고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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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을 위한 성장(pro-poor growth)' 고민할 때

이강국의 '격동, 세계경제' <6>

최근 경제부총리가 올해의 경제성장률이 목표치인 5%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그것이 언론의 과장처럼 고백이든 지나가는 이야기든 뭐든 간에, 언제나 정부에 눈을 흘기는 이들에게는 정부 비판에 또다른 좋은 소재가 되고 있는 듯도 하다.

힘들어진 경제를 무조건 정부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우며 경제를 빌미삼아 올바르지도 않게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진단과 처방은 극과 극을 달리지만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관료들이나 학자들의 우려는 차치하고서라도, 경제의 어려움은 저잣거리의 서민들이나 공장과 사무실의 노동자들의 한숨에서 피부로 느껴진다.

사실 IMF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을 힘겹게 거쳐 온 한국경제는 가계부채의 버블 붕괴와 비정규직 증가 그리고 소득분배 악화와 빈곤 심화로 인한 내수부진이 몇 년째 지속되어 왔다. 그나마 기록적인 수출 증가로 버텨오던 우리 경제는 이제 내수 정체의 지속과 수출의 감소세로 인해 정부가 밤낮 이야기해오던 5% 성장마저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체되는 성장 그리고 악화되는 분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5%에 육박하는 성장이라면 그다지 나쁜 성과는 아니다. 우리는 몇십 년 동안의 양적인 고도성장에 오랫동안 취해왔는지도 모른다. 한국경제의 성장단계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5% 달성에 실패한다고 해서 별로 호들갑 떨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성장률의 숫자가 아니라 성장의 내용이며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하는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빈곤층이 크게 늘어났고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심각해진 상황에서, 그 과실이 많은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경제가 10%를 성장한다고 해서,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기업만 살찌고 상위 몇퍼센트의 부유층들에게만 도움이 되더라도‘평균’국민소득이야 높아질 수도 있다. 정작 서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지는 성장이라면 사람들은 성장률의 수치만을 고집하는 정부에는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통계청의 수치는 2005년 1/4분기 한국 도시근로자 가구 중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보다 5.87 배나 높아서, 빈부격차가 위기 직후보다 더 심각해진, 역사상 최고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도시근로자의 전체 소득은 1/4분기 5.2% 증가했지만 부동산값 폭등 등의 불로소득과 금융소득을 제외한 근로소득은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2.4% 증가에 그쳐서 성장의 과실이 부유층에게만 집중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연세대 경제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토지소유의 불평등은 소득분배보다 3배가량 더 심각해서 상위 5% 가구가 가격기준으로 전체 토지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하위 50% 가구는 고작 2.6%를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심각하게 악화된 소득분배 문제는 경제 붕괴로 인한 일시적인 결과이며 성장이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빈곤층도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와 급등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심화되는 부동산 투기,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많은 나라들에서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점을 볼 때 이러한 기대는 근거가 약해 보인다.

더 나아가 빈곤과 분배의 악화는 성장의 정체라는 부메랑으로 날아와 선진국을 따라잡기에 갈 길이 바쁜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양극화의 심화로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의 심화로 사회가 불안정해진다면 안정적 성장의 기반조차 위태로와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회적 통합의 약화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최근의 우려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생각되었던 노무현 정부가 정작 그 수사나 인상과는 반대로 친재벌적 그리고 시장지향적 경제정책을 줄곧 펴오고 있으며, 이것이 양극화와 재벌공화국을 심화시킬지도 모른다고 걱정되는 상황은 아이러니칼하기까지 하다.

***분배에서 성장으로, 혹은 빈곤층을 위한 성장**

잠시 눈을 돌려 경제학계의 고민과 다른 개도국의 경험을 살펴보자. 분배와 성장의 복잡한 관계는 이미 경제학자들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주제이다. 특히 90년대 이후에는 여러 가지 이론적 모델과 계량분석 등의 실증연구들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발전되고 있다.

그 논쟁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대략 요약하자면 많은 학자들은 보다 균등한 소득분배가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론적인 그리고 실증적인 연구결과들을 제출해 왔다. 이론적으로 볼 때, 빈부격차가 심각한 사회는 사회불안으로 인해 투자와 성장이 정체되고 금융시장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의 불균등은 교육투자 등을 모자라게 만들어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실증적인 논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많은 연구들은 적어도 장기적 경제성장에는 균등한 소득분배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조금은 이상주의적 주장이라고?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소득분배와 사회통합을 무시하고 높은 성장이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더 비현실적인지도 모른다.

재미있게도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는 균등한 소득분배와 고도성장을 동시에 달성하여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와 대비되는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불렸다는 점이다. 물론 박정희 정부 시기의 정치적 독재나 노동탄압 등은 잊지 않아야 하겠지만 아무튼 수치로 볼 때 한국은 다른 개도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지만, 정작 위기 이후 성장잠재력과 소득분배가 동시에 악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의 반성**

소득분배에 관한 새로운 관심의 대두와 함께,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도 80년대 이후 개도국에 실시된 구조조정정책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개방, 민영화, 자유화, 그리고 규제완화 등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에 기초한 정책들은 정작 빈곤문제를 완화하지 못했고 개도국 시민들의 불만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다소 감정적이고 과장도 적지 않지만, 최근 전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는 반세계화운동의 목소리도 이들 국제기구와 경제학자들에게 만만치 않은 압박이 되어 왔다.

이에 따라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스티글리츠로 대표되는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라든가 ‘제2세대 개혁’ 등 경제발전 프로그램에서도 새로운 조류가 등장하고 있다. 즉 단순히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보다 조심스러운 개방과 적절한 규제 등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특히 빈곤과 소득분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흐름이 큰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시장지향적 정책에 기초한 성장 자체가 빈곤을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고집스레 주장해 왔다. 대표적으로 2002년 세계은행의 세계개발보고서와 그 기초가 되었던 달러(Dollar)나 크라이(Kraay) 등의 낙관에 찬 논문은 개방이 성장을 가져다주고 성장이 빈곤을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주장은 개방 자체의 성장효과가 그리 뚜렷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내의 소득분배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따라서 보다 최근에는 세계은행의 학자들도 단순히 성장만이 아니라 국내의 소득분배를 고려한, 이름하여 ‘빈곤층을 위한 성장(pro-poor growth)'을 위해 더 많은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부의 균등한 분배나 빈곤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보 등이 있을 때 성장이 당연히 빈곤층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 분배의 개선이 성장을 보다 촉진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털리(Easterly)나 로페즈(Lopez) 등 솔직한 세계은행의 학자들은 기존의 정책들이 성장-분배-빈곤의 상호관련된 복잡한 삼각관계를 고민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나아가 여러 학자들은 이 세 가지 모두를 개선하고 선순환을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강조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주로 다른 개도국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빈곤층을 위한 성장이라는 과제는 이제 우리에게도 피부로 다가오는 듯하다. 경제이론이나 경험에서 진지하게 배울 점이 있다면 지금의 한국에서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논의일 것이다. 언제나 노동자의 목소리가 높으면 성장에 해로울 거라며 성장 대 분배를 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하거나 먼저 파이를 키워서 나중에 나누면 된다는 식의 성장지상주의가 판을 쳐 왔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많은 학자들은 다른 개도국의 사례에서 토지와 같은 부의 균등한 분배, 적극적인 공교육과 훈련의 노력, 그리고 극빈층에 대한 사회복지의 확충 등을 역설해 왔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도 부동산 등 자산가격 폭등에 대한 강력한 규제, 극빈층에 대한 여러 가지 지원 그리고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교육과 노동시장 정책 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역시 부자의 지갑을 여는 대신 가난한 이의 지갑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혹자는 행여 이러한 노력들에 대해 분배주의자 심지어 좌파라고 딱지 붙여서 눈을 흘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이들은 스스로 공부부터 더 해야 할 것이다. 위의 논의들은 모두 주류경제학자들이나 국제기구에 의해 이야기되는 주장들 아닌가. 언제나 그렇듯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고집과 편견이 아니라 진지한 연구와 고민인 법이다.

언제나 좌충우돌하는 듯한 참여정부에게 좀더 튼튼한 뚝심과 국민에 대한 믿음을 기대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일까. 하지만 인상은 왼쪽인 듯해도 정작 정책은 오른쪽에 기울거나 정책이 우왕좌왕하는 것은 경제에 독이 될 뿐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한 많은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몇 퍼센트 성장이나 그리고 ‘기업만 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성장 그리고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림**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던 필자의‘세계화의 정치경제학’이 보다 업데이트되고 한국의 금융세계화 경험에 대한 분석이 추가되어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곧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직 적당한 제목을 고민 중입니다만 조만간에 출판될 예정입니다. 성원을 보내주신 프레시안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책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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