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눈이 쌓인 알프스의 절경 그리고 스키장, 스위스의 다보스는 전형적인 세계적 부자들의 휴양지이다. 그런 곳에서 몇 년 전부터 세계경제와 정치를 주도하는 주요 인물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다, 이른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다. 처음에는 선진국 지배층들의 사교장 비슷한 곳이었지만 이제 개도국의 떠오르는 스타 정치인들도 초대를 받고 한국의 몇몇 인사들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이들은 바야흐르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전세계적인 의제(global agenda)들을 나름대로 진지하게 토론해 왔는데 최근에는 세계화가 일으키는 문제점들에도 고민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심각해져만 가는 세계화의 불만을 어떻게든 다스리고 전세계의 체제를 관리하고자 하는 악어의 눈물같은 제스처일 뿐이고 이들의 네트워크가 초국적인 지배계급이 될지도 모른다는 삐딱한 우려조차 있지만 마냥 눈을 흘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올해의 다보스포럼이 토론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아프리카 등의 심각한 빈곤문제와 평등한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한 노력이라 전해진다. 세계화가 전세계의 성장이라는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과는 반대로 전세계적 빈부격차는 오래도록 악화되어 왔고 개도국의 빈곤문제는 전혀 해결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오는 불만 혹은 분노가 세계화의 열차조차 탈선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전세계의 거물들이 모이는 이 포럼조차 이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하기는 빈곤과 빈부격차가 너무 심화되어 세계의 정치경제가 불안해진다면, 분노에 찬 아르헨티나 빈민들이 거리에 불을 지르고 터키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한다면 빌 게이츠의 돈벌이나 부시의 세계지배조차 왜 걱정되지 않겠는가.
***안젤리나 졸리와 스타 파워**
정치 경제 부문의 스타의 잔치였던 세계경제포럼에서 올해에는 진짜 스타들도 하나둘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유엔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가 아프리카의 빈곤문제 토론에 참여하고 샤론 스톤은 토론장의 즉석에서 탄자니아를 위한 모금을 주도해서 환호를 불러 일으켰다. 샤론 스톤이 탄자니아 대통령 음카파를 돕자며 “help him today” 라고 외치고 일금 만 달러를 내놓겠다고 했을 때 선진국의 화끈한 지원과 실천을 백날 주장해오던 제프리 삭스의 표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빌 게이츠와 룰라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도 자못 궁금해진다. 아무튼 영화에서는 아프리카의 보물을 훔쳐오고 할리우드 자본으로 전세계를 휩쓸고 있긴 하지만 이들 여배우 스타들의 등장은 신선한 자극이긴 하다. 오래전부터 50년이면 충분하다며 부채탕감을 노래해 왔던 U2의 리드싱어 보노만큼이나, 내년에도 그리고 바쁜 스케줄의 와중에도 잊어먹지 않고 내내 목소리를 높여 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스스로 먹고살기 바쁜 우리들 팍팍한 일상을 생각하면 유명하고 돈도 많은 그들의 여유가 좀은 부럽기조차 하다. 실은 심각한 빈곤이나 빈부격차 등의 문제는 굳이 아프리카를 이야기하거나 세계 전체를 둘러 볼 것도 없이 우리 곁에서 더 심해지고 있는 듯 하다. 경제위기 이후 나타난 전면개방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세계화의 불만은 바로 한국인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지 않은가.
위기 이후 끔찍해져 가는 빈부의 문제, OECD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심각한 처지 그리고 교통사고 사망률보다도 높아져버린 자살률. 정말 한국경제는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것은 아닌지, 이전 발전모델의 문제라는 목욕물과 함께 성장잠재력과 사회적 통합이라는 아기마저 버리고 만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이 와중에도 많은 이들은, 분배가 더 균등할 때 장기적인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최근 경제학의 상식에도 애써 눈감아버리고 한사코 분배는 성장을 가로막을 것이라며 성장만이 만병통치약이라고 고집을 피운다. 그리고, 분배를 강조한다고 근거 없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빈곤대책과 복지정책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려우며 여전히 정부의 눈길은 성장에만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이른바 동반성장과 양극화의 해결은 언제나 그렇듯 립서비스일 뿐일까.
이런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정작 세계화의 불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다보스 사람들보다 오히려 한국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들이 어디 남산이나 한강변에서라도 이들이 모여서 머리 맞대고 토론할 때, 서태지가 빈곤문제를 노래부르고 우리 이쁜 여배우들도 빈부격차 문제를 외치며 기부도 한다면 좀 좋을까. 그 연예인 x파일의 말많은 소문조차도 덮어버릴 수 있을 텐데... 필자의 허황된 상상이라면, 그저 용서하시라.
***두 얼굴의 세계화**
다시 눈을 다보스로 돌려보자. 스타들도 사람인지라 아프리카의 슬픔에 눈물 흘리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고 이들의 노력이 뭔가 세계시민들의 주의를 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힘껏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세계화가 던져주고 있는 문제는 선진국의 도움에 호소하는 이들의 선의만으로 해결되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80년대 이후 세계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선ㆍ후진국을 막론하고 각국내의 빈부격차와 함께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격차는 경제학의 ‘수렴(convergence)’ 주장을 비웃으며 점점 심화되어 왔다. 1993년 현재 최상위 1%의 인구의 소득은 하위 57%의 인구의 소득과 같다, 즉 500만 명 미만의 부자들의 소득이 27억 명의 가난한 이들의 소득 전체와 같은 현실이다. 한편 전세계 인구의 상위 10%와 하위 10%간의 소득격차는 1980년 79배에서 1999년 117배로 확대되었다. 또한 잃어버린 80년대 이후 남미와 아프리카 경제는 거의 제로 성장을 보여 나라간의 격차는 이보다 훨씬 심해지고 있다. 세계은행의 밀라노빅의 연구는 80년대 이후 전세계 인구의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있으며 인구가 많고 성장률이 높은 중국과 인도를 제외하면 이 경향이 훨씬 더 심각함을 잘 보여준 바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전세계의 자유로운 무역과 자본의 이동이 주는 잠재적인 이득에도 불구하고 고삐 풀린 세계시장이 가져다주는 불안정과 폐해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진지한 경제학 연구들조차도 세계화의 이득에 대한 증거는 미약한 반면 경제의 불안정과 소득분배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2003년 발표된 IMF의 보고서조차도 “자본시장 개방과 국제적 금융통합이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증거는 없으며 오히려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하며, 하버드대의 로드릭 등의 경제학자들은 흔히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무역자유화의 성장효과조차 불분명하다고 실증적으로 반박한다. 80년대 이전의 세계경제가 그 이후보다 더 안정적이고 성장률이 높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제 많은 이들은 세계화가 흔히 찬양되는 것과는 달리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결국 세계화가 약속했던 복음은 정작 땅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실은 그것이 그다지 믿을 만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을 돌이켜보아도 한국을 비롯한 많은 개도국들에서 자본자유화와 금융세계화를 배경으로 금융위기가 전세계 곳곳에서 폭발해 왔고 더많이 개방하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기라는 IMF의 구조조정 정책은 80년대 이후 남미와 아프리카 경제를 더욱 고통에 빠뜨려 오지 않았는가. 국제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곡물을 심으라는 IMF의 조언은 아프리카의 전통 농업을 파괴하고 기상변화와 함께 심각한 기아를 몰고 왔고 선진국 자본의 욕심은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에이즈 치료약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약값을 매겨놓아 엄청난 비판을 받지 않았던가. 80년대 초반 미국의 금리인상과 함께 외채의 늪에 빠져버린 많은 개도국들은 아직도 빚에 짓눌려 살고 있는 반면, 국민들을 착취하던 그들 독재자들을 비호했던 이들이 또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가 아니었던가.
물론 개도국에 공장을 세우고 투자를 촉진해서 경제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해외자본의 역할과 수출을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정작 많은 개도국의 빈민들이 세계화와 시장개방 그리고 IMF와 미국을 불만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이해할 만도 하다. 이런 목소리는 이제 눈쌓인 겨울 다보스가 아니라 지구의 반대편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여름햇살 속에서 같은 시기에 열리고 있는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한가**
세계사회포럼의 구호대로 ‘다른 세계가 가능’할 것인가는 세계시민들의 고민과 노력에 달린 것이겠지만, 샤론 스톤의 외침이나 빌 게이츠의 선의를 넘어서서 선진국과 자본 중심의 세계화의 문제점들을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투기적인 국제금융자본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정부와 공공부문의 적극적인 역할 회복, 실패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빈국에 대한 성장지향적인 구조개혁의 지원과 부채 탕감 등이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세계화의 문제점을 더 솔직하게 고민하기 위한 전세계 지성과 시민들의 노력, 즉 다보스와 포르투 알레그레가 마음을 열고 치열하게 만나는 공론장이 형성되길 기대해 본다.
이미 스티글리츠에서 삭스까지 그 숱한 저명한 경제학자들이나 스스로 헤지펀드를 굴리고 있는 소로스조차 세계화의 불만과 문제점에 고개를 끄덕이고 IMF의 오만을 지적하며 뭔가 발상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건 언제나 정치적이라서 세계화의 불만이 시끄럽게 터져 나올 때에야 세계의 거물들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내세우며 관심과 걱정을 비칠지도 모른다. 실제로 1999년 시애틀 시위에서 시작된 반세계화 운동의 발전과 함께 세계경제포럼의 의제들도 세계화의 문제점을 다루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무튼 다보스 사람들은 호텔 안의 점잔빼는 토론보다는 제발로 걸어 남미나 아프리카의 거리를 직접 방문해 보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아 물론 시위대의 파이 세례 정도야 조심해야 하겠지만.
선거를 통해 집권한 좌파 대통령이지만, 현실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듣는, 그러나 여전히 분투하고 있는 룰라는 세계사회포럼에서 물병을 맞고 바쁘게 다보스로 날아갔다고 전해진다. 그 오랜 비행기 여행 속에서 그의 맘이 편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룰라가 만날 다보스의 거물들이 빈곤의 세계화를 우려하는 개도국 시민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이런 현실과 목소리를 무시하고 세계가 그럭저럭 굴러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세계화가 끔찍한 표정까지 포함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보스 사람들조차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어떻게 진정으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며, 좀더 나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열린 토론과 노력들은 다보스의 호텔이나 포르투 알레그레의 광장 뿐 아니라 서울의 추운 거리에서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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