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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은 한 배를 탔다'

<기자의 눈> 당당한 對美관계 위해 고민하는 두 나라

한국과 독일. 두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민족과 국토가 분열된 분단의 역사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이미 12년 전 통일을 이뤄 유럽내에서 정치ㆍ경제ㆍ외교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반면, 한국은 아직도 휴전선의 철조망에 갈기갈기 찢긴 채 분단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한 나라로, 또 근검절약과 준법정신의 나라로 각인돼 있다. 더욱이 독일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앞서 이룩한 모델이자, 일본과는 달리 이스라엘에 과거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면서도 보상에 야박하지 않은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사진>

한국과 독일은 또 최근에는 북한과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칭하고 '팍스아메리카나'와 테러와의 전쟁을 주창하는 부시 미 행정부의 일방주의 노선에 맞서 반전의 목소리를 높이는 나라들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최근 슈피겔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 쥐드도이체차이퉁(SZ) 등 독일 언론들이 보여주는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보도태도는 이같은 역사적 공통점과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독일 언론들이 한국을 바라보던 시각은 상당히 부정적인 편이었다. 독일인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중국과 일본 문화의 아류에 불과한 나라로 군사독재 치하에서 연일 반정부 시위가 반복되며 멀쩡하던 한강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붕괴되는 '나라답지 못한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니 매 선거마다 구태의연한 색깔론이 먹히고 '반미는 용공'이며 '사회주의는 빨갱이'란 전근대적 사조가 판을 치는 나라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독일인들 사이에 팽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에게 독일이 선진화를 위한 하나의 표상이었다면 독일인들에게 한국은 원조가 필요한 가난한 나라이자 국가의 주권도 온전치 않은 불완전한 나라였다고 볼 수 있다.

기자가 독일에서 공부하던 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도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나라는 엉망인데 국민들은 열심히 사는 그런 나라였다. 독일 TV와 신문에 등장하는 한국 뉴스는 시위와 붕괴사고 등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 '너희 나라에 그런 것도 있느냐'는 표정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던 독일인들이 한국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특히 월드컵 이후 독일 언론에 비친 한국 모습에는 활기차고 자기 목소리가 뚜렷한 '붉은 악마'의 빨간색이 과거의 잿빛을 뒤덮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광화문에서 타오르는 촛불이 한국의 불행했던 과거마저 태워버리려는 듯 무섭게 번지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주권회복 선언과 같은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 시사주간지인 슈피겔 최신호(12월 16일)가 '불평등의 종식'이란 기사를 통해 한국의 반미시위를 전하며 "많은 한국인들의 반미감정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고 보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슈피겔이 설명한 한국 반미감정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종식되면서 미국은 한국에서 해방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점령자로서 등장했다. 한국민은 미군 지도부가 1945년 한반도의 분단을 지도를 꺼내놓고 간단히 38도선을 그어 경솔하게 확정한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1961-1987) 미국은 주로 한국의 군부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인식됐다."

슈피겔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반미감정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며 "이들은 부시 대통령이 직접 -그리고 '무릎을 꿇고'- 한국에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사체를 이용한 문장이지만 글 속에 흐르는 뉘앙스는 한국인들의 반미시위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불평등의 종식'과 '당당한 주권국가'임을 선언하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독일 언론의 이 같은 보도태도 배경에는 독일이 현재 처한 미국과의 갈등이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라크전 불참을 선언하며 반전 캠페인을 이용해 재집권에 성공한 현 슈뢰더 정부가 부시 행정부와의 갈등 때문에 겪고 있는 고통이 동병상련으로 전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이는 슈피겔이 한국 대선과 관련 "현재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차기 대통령은 불편한 관계가 된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라며 "그런데 이것은 이회창 후보나 노무현 후보 모두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지적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민들의 분노 때문이라는 것이다. 슈피겔은 "왜냐하면 이회창 후보도 국민들의 분노에 공감해 미국과 거리를 취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 후보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미국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다시 협상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지적은 지난 9월 독일 총선 당시 반미노선을 내세운 슈뢰더가 승리했을 때 독일 언론들이 향후 미국과의 관계를 우려하며 논평했던 것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다. 나라의 국익에 따라 주권과 자결권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독일이나 한국이나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관계에서 약자의 입장에 서 있음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이제 독일은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문제 등에 있어 통일 전과는 달리 과감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 미국에 '노'라고 말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남은 것은 한국이다. 한국이 어디로 갈 것인지 이틀 남은 대선은 많은 것을 말해줄 것이다.

다음은 슈피겔 최신호 16일자 기사의 주요내용이다.

***불평등의 종식/Der Spiegel, 12.18.(Wieland Wagner)**

초강대국에 대한 증오는 인터넷을 통해 발산됐다. 수만의 한국인들이 항의성 이메일을 통해 미국 백악관의 홈페이지에 폭격을 가했다. 미국 정부는 사이버 공격의 분노에 대해서는 쉽게 대처했으나 서울에서의 실질적인 항의 사태는 저지할 수 없었다.

한국인들은 미국 대사관 부근에서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성조기를 불태웠다. 스님들과 신부들은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TV 카메라 앞에서 시위자들은 미군 시설물의 철조망을 절단하기도 했다.

이러한 강력한 항의 시위의 계기가 된 것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던 두명의 미군 병사에 대해 미군 군사법원이 내린 무죄평결이었다. 두명의 미군은 지난 6월 한 좁은 도로에서 장갑차로 14살의 여중생 두명을 사망케 했었다.

무죄평결이 나온 시점은 하필이면 민감한 시기였으며 고조되고 있는 반미 분위기는 이제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는 19일(목요일) 김대중 대통령(77)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대통령은 이제 5년 임기를 마치게 되는데 한국 헌법상 재출마는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이번 대통령 선거의 승부는 거의 결판이 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보수 성향의 야당 후보인 67세의 이회창 후보는 노련하게 정부의 비리 의혹을 최대한 이용했다. 대통령의 두 아들에 대해서도 구속이 이뤄졌다. 대법원장 출신의 이회창 후보는 동시에 스탈린주의 국가 북한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협력정책(햇볕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이회창 후보는 일방적인 양보 대신 앞으로는 북한측의 보상을 유도해 내겠다고 한다.

이로써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지난 10월 북한이 국제협약을 위반하면서 핵개발 계획을 갖고 있다고 시인한 이후 북한에서의 정권 교체를 희망하고 있는 미국의 강경론자들의 노선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데 미국에 가까운 이회창 후보의 입장은 선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집권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56)가 지지도에서 다소 앞서 있다. 노무현 후보의 장점은 인권과 노조활동 변호사로 일했고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한 카리스마가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노무현 후보는 자신이 미국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노무현 후보는 지난 1990년대 초 3만7천명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미국이 남북한간의 화해에 최대의 장애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었다. 이제 대통령 선거를 맞아 노무현 후보는 자신의 과격한 입장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그는 TV토론에서 "우리는 미국에 대해 더 이상 굴종적인 자세를 갖지 않을 것"이라며 불평등의 종식을 강조했다.

현재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차기 대통령은 불편한 관계가 된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회창 후보나 노무현 후보 모두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회창 후보도 국민들의 분노에 공감해 미국과 거리를 취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 후보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미국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다시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많은 한국인들의 반미감정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종식되면서 미국은 한국에서 해방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점령자로서 등장했다. 한국민은 미군 지도부가 1945년 한반도의 분단을 지도를 꺼내놓고 간단히 38도선을 그어 경솔하게 확정한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1961-1987) 미국은 주로 한국의 군부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인식됐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서의 반미감정에 충격을 받고 두 여중생의 사망 사건에 대해 '슬픔과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하지만 반미 시위자들은 부시 대통령의 뒤늦은 사과를 문제삼고 있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이 직접 -그리고 '무릎을 꿇고'- 한국에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통치자 김정일에게는 자본주의 한국에서의 반미감정 고조가 시의적절한 것이다. 그는 TV를 통해 "피는 피로 복수해야 한다"고 연대감을 표시하면서 "미제 침략세력에게는 죽음이 마땅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지도자'는 동시에 전 세계에 공개된 예멘에 대한 미사일 수출로 한국측을 경악케 했다.

최근 핵시설을 재가동 하겠다고 밝힌 점도 안보 문제를 우려하는 한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 '햇볕정책' 비판자인 이회창 후보에게로 돌릴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조야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민족 반역자'인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경우 남북간에는 전쟁밖에 없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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