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자주권ㆍ환경' 카드로 슈뢰더 독일 총리 재집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자주권ㆍ환경' 카드로 슈뢰더 독일 총리 재집권

적녹연정 가까스로 과반의석 확보, 경제문제엔 불안감

2년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연상시킬 정도로 치열한 반전을 거듭한 22일 제15대 독일 총선결과 집권여당인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녹연정이 가까스로 과반수를 넘기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23일 새벽 4시경(현지시각) 최종 확정된 독일 총선 결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SPD)은 에드문트 슈토이버를 내세운 기민-기사연합(CDU-CSU)과 함께 똑같은 38.5%의 지지를 받았으나, 연정파트너인 녹색당이 8.6%를 기록하며 선전한 데 힘입어 재집권에 필요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사진>

적녹연정은 분데스탁(der Bundestag, 독일 하원) 6백3석중 3백6석을 차지해 소위 총리과반수 의석인 3백2석을 4석 넘겼으며 기민기사연합은 2백48석, 7.2%의 지지를 얻은 자민당(FDP)은 47석을 차지했다. 사민당은 비례대표제를 통한 의석을 포함해 2백51석을 차지, 독일 국회내 최대 정당 자리를 유지했으며 녹색당은 역대 최고의 지지율로 55석을 차지해 사민당과의 연정에서 더욱 커진 발언권과 지분을 갖게 됐다.

6백3석중 남은 2석은 4.0%의 지지에 그쳐 의회진출에 필요한 최소 지지율 5%를 획득하진 못했으나 직접투표로 2명을 진출시킨 구 동독 집권당의 후신 민사당(PDS)이 차지했다.

독일 적녹연정의 불안한 승리는 일단 현 집권여당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재확인시켜 줬다는 측면이 있으나 사민당 지지율이 4년전 총선과 비교해 2.4% 포인트 추락했음을 감안할 때 총선을 이끈 슈뢰더 총리가 흡족할만한 결과는 아니다. 슈피겔 등 독일 언론들이 "행복하지 않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슈뢰더 총리가 사상 최악의 홍수 사태를 통해 지도자로서의 인기를 회복하고 미국과의 마찰을 무릅쓰고 꺼내 든 이라크 공격 반대라는 카드가 독일 내, 특히 동독 지역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음을 감안할 때 신승에 그친 이번 총선결과는 슈뢰더가 헤쳐 나가야 할 장애물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현 집권여당인 사민당의 지지율 하락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독일의 경제침체와 불안정한 외교전략에 있다는 게 독일 주요 언론들의 평가다.

사민당과 녹색당의 재집권이 확정된 직후 독일 경제계는 벌써부터 "이번 총선결과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며 "독일이 유럽의 성장을 가로막는 역할을 지속해선 안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석 과반수를 겨우 넘긴 새 정부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 등 경제개혁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없을 것이며 외자 유치에도 차질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높은 것이다.

베르너 베닝 바이에르(주) 대표이사는 "나는 새로운 정부가 스스로 그렇게 비쳐지길 원하는 것처럼 경제개혁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실천하길 기대한다. 독일은 더 이상 제로성장률로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독일기계설비연합 회장인 디터 클링엘른베르크는 "중요한 것은 빠르고 전면적인 경제개혁 조치"라며 "누가 이기든지 무엇인가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독일 FAZ 온라인)

일단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 성공으로 귀결된 독일 총선이 주는 의미는 '큰 정부와 분배'를 지향하는 전통적인 집권당의 사회주의 정책이 지속될 것임을 예상케 한다. 반면 독일 재계가 요구하는 '작은 정부와 성장'론도 지속되는 경기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독일 경제에 상당한 자극으로 기능할 것임에 틀림없다.

***독일 언론들 "슈뢰더의 반미캠페인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오나?" 주목**

한편 국제사회가 독일 적녹연정의 재집권 성공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 슈뢰더 총리가 계속 반미카드를 고집할 것이냐는 점이다. 미국과 영국이 유엔 결의를 거치지 않은 독자적 이라크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이 반미카드를 고집할 경우 유럽내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헤르타 도이블러-그멜린 법무장관이 선거 전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술을 히틀러에 비교하며 폭군으로 묘사한 것에 대해서도 독일 언론들은 "어떻게 한 나라의 법무장관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성토하는 분위기다. 독일이 현재 정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 특히 유럽내 여론을 등에 업고 함께 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독일 언론들은 설화의 주인공인 도이블러-그멜린 법무장관이 새 내각에서 유임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의 자주권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세계 여론이 독일을 다시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우려가 독일 사회내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여론 바탕에는 아직 독일의 정치적 역량이 미국과의 마찰을 견디어 낼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비애도 깔려 있다.

독일 정치학자인 클라우스 레게비((Leggewie)는 슈피겔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법무장관의 발언은 집권당에 대한 신뢰도를 추락시켰을 뿐 아니라 많은 표를 깎아먹었을 것"이라며 "독일의 길은 시급히 유럽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일은 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슈뢰더 총리의 반미카드가 독일 내 여론의 지지를 얻는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스스로에게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겨줬다는 지적이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23일 독일 총선결과를 보도하며 인용한 발언들도 일맥상통한다. 뉴욕타임스는 독일의 반미카드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삼가한 채 미국과 독일 전문가들의 발언을 빌려 슈뢰더 총리가 내세운 이라크 공격 반대라는 전술 때문에 상당한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 "미·독 관계개선 중재역할은 피셔 외무장관이 적합"**

미국의 독일 재건계획인 마살플랜을 주도했던 로날드 아스무스 전 국무부 관리는 "지난 수십년간 독일은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보다 큰 국제적 책임을 질 만한 나라가 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즉 독일은 자신의 과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커다란 의문이 다시 생기고 있다. 미국인들 뿐 아니라 유럽인들까지도 독일이 과연 믿을 만한 안보 파트너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독일간 외교갈등을 중재할 인물로 녹색당 당수인 요시카 피셔 외무장관을 지목했다. 피셔 장관이 슈뢰더 총리에 비해 이라크 문제에 대해 보다 신중했으며 미국과의 우호 및 친선관계를 강조해왔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피셔를 미·독 관계개선의 중재자로 지목한 것은 슈뢰더와 독일 사회에 던지는 미국 사회의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이 기대하는 독일은 유럽내의 반미국가가 아니라 경제력을 동원한 미국과 유럽간 가교역할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슈뢰더 총리에 비해 덜 반미적이라는 피셔 외무장관이 친미정책으로 돌아서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공격을 찬성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녹색당이 이번 총선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 자체가 반전캠페인과 환경문제를 적절히 활용한 선거전략에 있으며 피셔 스스로도 반전주의자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피셔는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위한 유엔결의를 얻어낸다면 독일도 참전하겠다는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총선 직후 가까스로 총리 자리를 유지하게 된 슈뢰더는 23일 새벽 "과반수는 과반수"라는 지난 49년 아데나워 독일 초대 총리의 발언을 인용하며 앞으로 4년간 녹색당과 함께 독일을 이끌어 나갈 것을 다짐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독일의 역사적 과오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슈뢰더가 어떻게 미국과 이라크 문제를 해결해나갈지 주목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