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17일부터 18일까지 성인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대선후보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실시해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52.1%대 34.5%로 17.6%포인트나 크게 앞섰다는 결과를 도출해 놓고도 이를 보도하지 않아 정치권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노무현 캠프 관계자는 20일 "SBS가 애초 민주당 대전 경선이 끝난 직후 1천명을 대상으로 17일 저녁부터 여론조사를 시작해 18일 오후까지 노후보가 10% 정도 앞선 여론조사 결과를 도출했는데 노 후보와 이 총재간 격차가 예상외로 크게 나타나자 18일부터 다시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노 후보가 17.6% 차이로 이 총재를 앞섰다는 조사결과는 두 조사를 합친 것으로, 두번째 조사에서는 양 후보간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19일 SBS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들었다"며 "전후상황을 살펴보고 대응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원론적으로 본다면 이인제 후보 말대로 여론조사는 과학인데 누구한테 유리하게 나왔다고 발표를 하고 안하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 후보측이 입수한 SBS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 후보와 이회창 총재간의 가상대결시 노 후보가 52.1%를 획득해 34.5%에 그친 이 총재를 17.6% 포인트나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노무현, 이회창, 박근혜 3자 대결에서도 각각 39.4%, 30.7%, 21.0%를 얻어 노 후보가 이회창 총재와 박근혜 의원을 크게 앞섰다. 3자 대결에서 노 후보가 이회창 총재를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인제 후보와 이회창 총재간의 양자간 가상대결에서는 이 후보가 39.8%를 얻어 44.8%를 기록한 이회창 총재에 5%포인트 뒤졌다. 이인제, 이회창, 박근혜 3자 대결에서는 각각 21.7%, 34.5%, 24.3%로 이회창 총재가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간 민주당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는 노 후보가 47.5%를 얻어 25.1%에 그친 이 후보를 22.4%포인트나 앞섰다.
정치권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SBS의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가 되지 않았음에도 유포된 경위에 대해 언론계에서는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은 민주당 기자실에서 유포됐다는 것. 일반적으로 방송사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경우 신문이 같이 보도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정당 기자실 등에 조사결과를 풀(나누어준다는 뜻)해주는데, 이 과정에 SBS 조사결과가 민주당 기자실을 중심으로 유포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여론조사 기관에서 흘렸다라든가 조사결과가 나온 뒤 다른 민주당 후보 진영에서 항의하는 과정에서 새나왔다는 등의 다양한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조사를 실시한 TN소프레스측은 "어떻게 조사결과가 유출됐는지 모르겠다"며 "구체적인 조사결과의 수치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SBS의 한 중견기자는 "정치적 부담감이 큰 사안을 보도하는 데 있어 SBS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며 "보도를 안한 배경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두 유력후보간의 여론조사 결과가 상상을 벗어나는 큰 격차를 보이자 상당한 부담을 느껴 보도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우원길 SBS 보도국장은 이에 대해 "조사시점이 지난주 수요일(13일) 조사를 실시한 이후 너무 짧았고 조사기간이 MBC, KBS와 겹쳐 조사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여기에 19일 한화갑 민주당 후보의 경선후보 사퇴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당 2선 후퇴 등 여론조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 등이 반영되지 못한 상황이라 정확한 여론을 읽어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해 보도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우 국장은 "격차가 크게 벌어져 두번에 걸쳐 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자세히 하자고 해서 애초부터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며 "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여론조사를 실시해 이번에 나온 조사결과를 참조해 보도할 방침이다. 이번 조사결과는 내부자료로만 삼기로 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16일 MBC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총재와의 가상대결에서 2.3%를 앞섰고, 18일 KBS 여론조사에서는 3.8%를 앞선 것에 비해 이번 SBS 조사결과가 17.6%라는 큰 차이를 보인 점에 대해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조사설계 과정에 대한 정확한 자료와 결과를 파악할 수 없어 평가가 곤란하다"면서도 "다만 '노무현 바람'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는 징후로 유추해볼 수 있을 듯 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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