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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지상군 투입 어렵다"

군사전문가들 경고

탈레반 정권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격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미 지상군 투입의 위험을 입모아 경고하고 있다. 미국이 탈레반과의 지상전을 수행한다면, 과거 베트남전보다 훨씬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9.11테러가 발생한 지 3주일이 지나도록 미국은 아직 보복 공격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주요한 원인은 물론 정치적인 것이다. 미국이 테러 배후로 지목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 범행과 관련돼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이에 근거해 국제적인 공조를 모색하느라 시간을 보낸 것이다.

미국은 이번 주초 빈 라덴이 테러에 관련돼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고 유럽 등 동맹국으로부터 ‘믿을 만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또 도날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현재 아프간 인접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이집트,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을 순방하면서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따라서 럼스펠드 장관의 순방이 끝나는 대로 미국의 보복 공격이 시작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재 아프간 인근 지역에는 미군과 영국군 5만명, 전투기 400대, 그리고 항공모함 5척 등이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프간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빈 라덴의 제거, 탈레반 정권의 전복, 나아가 테러의 근절이라는 미국의 정책 목표가 이번 공격을 통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국의 무덤’으로 불리는 아프간에서는 미 지상군의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케냐 나이로비의 미국 대사관이 폭탄 테러를 당한 후, 미국은 빈 라덴의 은거지에 미사일 70발을 발사했지만 빈 라덴에게 어떠한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따라서 미사일 공격만으로 테러 보복전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그렇다고 지상군 투입이 순조로울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은 아프가니스탄 곳곳에 매설돼 있는 지뢰를 지상군이 직면하게 될 가장 큰 난제로 꼽고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기자이며 빈 라덴을 수차례 인터뷰한 바 있는 로버트 피스크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에는 1,000만개 이상의 지뢰가 평지는 물론 산악지역과 주요 도로, 대도시 주변, 하천 주변에 매설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아프간 주둔 10년 동안, 소련은 잘랄라바드, 칸다하르, 호스트, 헤랏 경계 지역과 공항, 발전소, 정부기관 주변에도 지뢰를 매설했다”며 “하루 평균 25-30명의 아프간시민들이 지뢰사고로 희생되고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의 지뢰사고는 최소 7만3천건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미국이 지상군 투입을 감행한다면 이에 앞서 침투 통로에 매설돼 있는 지뢰를 제거할 전문부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2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한 서방의 비정부기구들은 이 지역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데에는 지뢰 하나당 80 파운드의 비용이 들고, 1 평방마일의 지뢰를 제거하는 데에도 45일이나 걸린다고 평가한 바 있다.

미국의 군사전문 싱크탱크인 국방정보센터(CDI)의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CDI 역시 아프간 진주 미군이 겪게 될 최대 위험으로 지뢰와 불발탄을 꼽는다. UN 통계를 인용한 CDI 추산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에 매설된 지뢰는 5백만-천만개로 국토의 11%가 지뢰에 ‘오염’돼 있다.

게다가 구소련과의 전쟁 유물인 불발탄이 국토 도처에 산재해 있다. 지난 90년부터 작년까지 10년동안 약 1백만개의 불발탄을 제거했지만 이는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불발탄이 완전히 제거된 지역은 전체 국토의 1%에도 훨씬 못 미치는 1백평방k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80년대 미 중앙정보국(CIA)이 당시 아프간 반군에 제공했던 1천여대의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그리고 기관총 등 1천만정에 이르는 개인 화기들이 미군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아프간에서 10년간 활동한 경험이 있는 러시아의 전문가들도 미 지상군의 직접적인 군사 행동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1980년대, 아프간에서의 소모적인 전쟁이 소련의 붕괴를 재촉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전문가이자 전략정치 연구소 부소장 이리나 츠베젤스카야는 “아프간은 들어가기는 쉬워도 빠져나오기는 힘든 진흙구덩이”라며 “만일 미국이 아프간의 변화를 꾀하고 특정 정부를 세우려 한다면, 소련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매우 고통스럽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일간지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는 “소련-아프간 전쟁으로 1만4천명의 소련 군사와 약 백만 명의 아프간인들이 희생됐다”며 “소련군은 공기도 희박하고 눈덮인 고산지대의 추위 속에서 기민한 사막의 게릴라들과 싸웠다”고 밝혔다. 또 인종 전문가 세르게이 메르쿠로프도 “험준한 아프간의 지형들이야말로 소련의 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의 축출을 목표로 한다면, 지상전 수행의 어려움 외에도 아프간의 사회적, 인종적 다양성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의 주류 인종으로, 현 탈레반 정권은 파슈툰족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파슈툰족 외에도 수많은 소수 인종들이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어떠한 중앙정부의 통제도 따르지 않는다.

소련과 아프간의 전쟁 기간동안 군사자문을 역임했으며, 현재 러시아 군사과학아카데미 소장인 막무트 가라예프는 “만일 미국이 단독으로 군사 행동을 감행한다면 이는 이슬람에 대한 전쟁으로 비춰질 것이며 모든 아프간 국민들은 탈레반 정권 아래로 결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이 탈레반 정권의 대체 세력으로 고려하고 있는 북부동맹은 아프간 북부 10%를 통치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 인종 중심의 15개 세력 연합체인 북부동맹이 아프간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츠베젤스카야는 “미국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북부동맹의 승리를 점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들이 실질적인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며 해소될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내적 문제를 꼬집었다.

지난 19세기에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군은 아프간을 정복하기 위해 2차례나 군사원정을 단행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1842년 아프간 수도 카불을 철수한 1만6천명의 영국군중 살아서 인도로 귀환한 병사는 단 1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프간에는 ‘제국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제국의 무덤’ 아프간에서 미국이 빈 라덴을 제거하고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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