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사회복지사들이 아니라 의사들이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그렇게 자살했다면 의사협회 같은 데서 그냥 있었을까? 보건복지부에서 모른 척하고 있었을까?"
7월 초부터 3주 연속으로 진행된 '사회복지사를 위한 정치교실'(정치발전소·내가 만드는 복지 국가·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공동 주최)에 참석한 사회복지사들의 일성이다. 비단 사회복지사의 자살 문제뿐 아니라 복지 담론 논쟁에서도 정작 사회 복지 현장의 최일선에 서 있는 사회복지사들의 주장은 잘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사회복지사와 사회 복지 공무원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자.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사회복지사들
지난 4월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실시한 사회 복지 공무원 건강 실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사회 복지 공무원의 37.9%가 심리 상담이 필요한 중증도 우울, 고도 우울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1년 사이 자살 충동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사회 복지 공무원의 27.5%가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일반 인구 경험치보다 2배가량 높은 비율이다. 원인은 많은 업무량과 장시간 노동, 조직 내 갈등, 감정 노동 등으로 인한 우울감이다.
▲ 3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사회복지사 자살 방지 및 인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사회 복지 전담 공무원 고(故) 이민재, 고(故) 강민경, 고(故) 안광남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사회복지사 근조'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추모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
당장 내가 사는 서울 마포구 성산2동만 하더라도 기초 생활 수급자, 노인, 장애인 등 사회 복지 대상자가 1만3227명인데 이들을 담당하는 동 주민센터 사회 복지 공무원이 6명이다. 1인당 2204명을 맡아야 한다는 말이다. 대상자별로 사례를 관리하면서 서비스를 연계하며, 주민센터로 찾아오는 민원인들을 상담하고, 구청에 보고할 공문을 작성하다보면 매일 야근이다. 강좌에 참석했던 사회 복지 공무원이 털어놓는다.
"사회 복지 공무원들의 자살 뉴스를 보면서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해가 갔어요. 우선 일이 많기도 하고, 그렇게 일하면서 소진된 나를 재충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니까. 그냥 조직 안에서 홀로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죠." (A 사회 복지 공무원)
지역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라고 해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 역시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구청과 복지관의 '갑을 관계'에 따른 고충이 더해진다.
"어떤 (구청) 담당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어쨌든 구청은 '갑'이죠. 어느 땐 '슈퍼 갑'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B 사회복지사)
구청의 재위탁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실적이 필요하고, 이러한 실적 중심의 기관 평가는 사회복지사들로 하여금 수십 개의 프로그램 사업을 벌이도록 만든다. 그러다보면 다양한 지역 내 민간 조직들과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복지관 사업 우선순위에서 자꾸만 멀어져간다.
지역에서 복지 관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은 단지 복지관이 지역 복지의 중심 조직이라서가 아니다. "구청에 가면 민간 취급 받고, 지역 사회에서는 관 취급"(C 사회복지사)을 받기도 하지만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주민들에게 복지관은 '구청보다는 가깝고, 민간 조직보다는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복지관은 현장 밀착형이기에 공무원들이 느끼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의 분위기나 흐름을 빨리 읽어낼 수 있고 이를 행정의 정책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역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이 얼마나 될까. 단순히 복지 서비스의 전달 기관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핵심 역할을 지금 복지관이 해야 하는 이유다.
▲ 3월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연 '사회복지 범정부 정책 및 담당 공무원 노동 조건 개선 요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뒤로는 '근무하기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연합뉴스 |
복지관 담장을 넘어 사회로
'사회복지사를 위한 정치교실'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사회복지사들의 죽음 앞에 사회복지사들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답을 '정치'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사회복지사들에게 정치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정치에 대해서는 선입관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정치가 중요하긴 한데 내가 하는 일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D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공무원은 아니잖아요." (C 사회복지사)
첫 번째 강의에 나선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정치가 인간 사회의 미래를 모두 책임질 수는 없지만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와 방향을 약간만 바꾸더라도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정치와 권력의 선용을 강조했다.
"정치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일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국가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좋게 쓰인다면 다른 어떤 일보다도 조건이 결핍된 많은 아이들이 내일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그런데 왜 현실에서는 정치의 중요성보다는 그 해악을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걸까. 반(反) 정치주의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 대표는 이들을 "말로는 늘 정치와 정치인을 부정적으로 말하고 비난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정치적이고 투표도 열심히 하고 정부 정책이나 예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가난한 보통의 시민들이 정치를 멀리하게 될 때, 자신들에게 유익하도록 정치를 움직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보통의 사람들에게 정치는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거나 '입에 올리기 불편한' 말이 되어버렸다.
혼자 외롭게 사는 어르신의 삶을 지금보다는 좀 낫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회 복지 서비스를 하나 더 연결해드린다면? 이것은 조금만 열정 있는 사회복지사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분의 삶이 바뀔까? 기초노령연금이 매년 올라가고, 국민건강보험 가입 하나만으로도 병원비 걱정을 해결할 수 있게 될 때 그분의 삶은 좀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이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착한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정치인의 몫이다. 사회복지사들이 더 나은 정치를 꿈꾸고, 좋은 정치인을 뽑는 데 관심 갖고 참여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중병에 걸렸을 때 드는 병원비는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 ⓒ연합뉴스 |
60만 사회복지사가 하나로 모인다면
나는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며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 이익보다 공공 이익을 앞세운다.
'사회복지사 선서문'의 일부이다. "우리가 사회복지사가 되면서 제일 먼저 읽게 되는 이 선서문에 따르면, 사회복지사는 인권 옹호자이며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며 공익을 수호하는 사람이다."
'사회복지사의 복지국가 운동'을 주제로 강의에 나선 이명묵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대표는 "그런데 지금 복지 현장에서 우리 사회복지사들은 과연 인권 옹호와 사회 정의 실현, 공익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지금 우리가 하는 사회 복지는 그 영역이 개인 복지, 가족 복지, 지역 복지에만 머무르고 있을 뿐 더 근본적인 사회 복지, 국가 복지의 영역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국가는 안전망이 아니라 뜀틀이다"라는 말처럼 국가의 역할은 수동적인 수급자들에게 물질적 재화를 재분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적극적인 사회 구성원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급자에 대한 지원 정책은 '수급권자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가 될 때만이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떤가. 한 수급자가 안정된 일자리를 갖게 되기도 어렵거니와 운 좋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수급자에서 탈락할까봐 포기하게 된다. 당장의 월급과 그동안 보장받아왔던 임대 아파트와 학비 지원 등을 맞바꿀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렇기 때문에 수급자의 자활은 수급자에서 탈락하는 시점부터 완전히 자활할 수 있는 일정 기간까지의 점진적 지원 방안 같은 세밀한 정책과 틈새 지원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요원한 일이다(수급자 사례 관리 숫자에 집착하게 하는 지금의 복지관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소지자는 2003년 8만5000명에서 2013년 5월 현재 61만 명으로 10년 동안 53만 명이 증가했다. 60만 명이면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 숫자와 비슷한 수준이다.
세 번째 강좌에 참여한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역설한다. "군대는 군부대 장벽에 둘러싸여 있지만 복지관은 어느 동네에나 열려 있다. 전국적 복지의 모세혈관이 바로 복지관과 각 지역의 복지 관련 센터와 기관"이라고 말한다. 사회복지사들이 앞으로 지역 간, 영역 간에 공통의 관심과 의제로 모일 수만 있다면 복지국가 운동의 위력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복지 현장에서 이미 새로운 흐름은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사회적 발언권을 높이고, 복지 개혁의 귄위를 만들어가기 위해" 사회복지사 스스로 성찰하고,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은 적은 수이지만 사회복지사들이 노조를 만들고, 복지관을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정부를 향해 복지 의제를 제기하는 사회복지사들의 단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과 같이 사회 복지 단체와 보건 의료 단체, 환자 단체가 손을 맞잡는 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사회복지사들이 이제 사회 복지 서비스 전달자에 머무르지 않고 복지국가 운동의 주체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좋은 정치야말로 최고의 복지"
전에 만났던 한 사회복지사는 "좋은 정치야말로 최고의 복지"라고 말했다. 정치가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줄 때 최고의 복지가 실현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아픈 곳, 불편한 곳을 찾아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한다. 복지 정책을 설계하고 그에 필요한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일, 지역에서 사회복지사와 사회 복지 공무원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 이는 모두 정치의 몫이고 내가 할 일이다. 복지국가의 모델로 알려진 스웨덴만 하더라도 수십 년에 걸쳐 복지국가 시스템을 완성한 것은 오롯이 정치의 몫이었다.
오는 25일 저녁 8시 보건복지부 앞에서는 여덟 번째 '복지국가 만들기 시민 촛불'이 열린다. 사회 복지 공무원들이 더 이상 자살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 지방 재정을 위협하는 무상 보육 재정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 나는 이번 주 목요일 저녁, 기꺼이 촛불을 함께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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