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 없는 사회복지사 ① 사회복지사 10년차에 '알아서' 사표 내는 이유는… ② "예배 강요에 돈뜯기까지…종교계 복지법인의 그림자" |
"사회복지사의 급여는 일반 기업의 계약직 급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적금도 붓기 힘들고, 결혼은 더 상상이 안 되는 현실입니다. 지금은 워킹푸어고, 앞으로 이 삶을 지속하면 하우스푸어, 허니문푸어, 베이비푸어가 제 미래네요. 복지국가를 표방하지만 정치인들은 눈 앞의 표를 얻는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가난을 부추기는 정부가 싫을 뿐입니다."
사회복지사 2년차에 접어든 정혜미(가명) 씨의 말이다. 정 씨는 "월급이 세후 140만 원 정도"라며 "타지에 와서 원룸을 잡고 보증금 2000만 원에 15만 원짜리 월세로 살고 있지만 세금까지 내고 나면 적자"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다니는 복지시설에서는 지난 1년 사이 7명이 다른 시설로 이직하거나 일을 그만뒀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회복지사의 수는 복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10년 등록된 사회복지사는 전국에 39만6400여 명이었으나 올해에는 50만 명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학력 워킹푸어가 사회로 '대방출'되는 셈이다.
▲ 지난해 12월5일,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가 개최한 정책워크숍에서 사회복지사들과 인사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연합뉴스 |
'현금 지급' 중심 정책이 '복지의 시장화' 낳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곽정숙 통합진보당 의원은 지난 2010년 '사회복지사 처우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사회복지사에 대한 낮은 처우는 열악한 근로환경, 낮은 임금수준, 잦은 이직경험 등의 현상으로 나타났고, 이는 결국 공공서비스인 사회복지서비스의 질적 하락과 직접 연관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도 이러한 지적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은 복지 대책은 '직접 책임'보다는 상대적으로 손쉬운 '현금 지급'이나 '단발성 복지 프로젝트'에 치중돼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벌이는 각종 바우처 사업이 대표적이다. 바우처란 일종의 상품권이다. 출산도우미나 장애인 활동보조 등 특정한 복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용자에게 정부가 비용을 대는 일종의 쿠폰을 제공하는 식이다. 일례로 고용노동부는 청년실업의 대책으로 '내일배움카드'라는 교육쿠폰을 통해 구직 관련 학원비를 지원한다.
그런데 정부와 일부 정치권이 추진하는 '현금 지급 중심'의 복지 트렌드가 사회복지 종사자들을 더욱 불안정한 노동조건으로 내몰고 있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복지시설은 이용자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재정 안정을 담보할 수 없는 바우처만 갖고 정규직을 고용하지 않는다"며 "바우처·프로젝트 중심의 복지 트렌드가 가속화되면서 최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대학 졸업생들이 대부분 계약직으로 취업한다"고 지적했다.
바우처 사업이 복지 서비스를 공공이 아닌 시장에 내맡긴다는 점도 문제다. 신현석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저소득층 연료비 지원과 같이 현금으로 주는 공공부조 형태도 물론 필요하다"면서도 "그런데 활동 보조나 노인 요양 사업까지 모두 바우처 형태로 운영되다보니 복지사업이 민간이나 개인의 수익만 창출하는 구조로 변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예전에는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 아래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가 마련됐지만, 지금은 사회복지 종사자들이 이용자 한 명당 얼마씩의 수당을 받는 형태로 임금 체계가 개편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지 서비스가 시장화되면 민간의 이익을 보장해야하기 때문에 서비스 질이 떨어지고,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노동조건이 나빠진다"고 덧붙였다. '현금 지급' 중심의 복지에는 성과도 있지만 한계도 명확하다는 것이다.
"직영 복지시설 늘리고, 사회복지사 대화테이블 마련해야"
이러한 가운데 사회복지사의 처우가 개선되고 이용자가 양질의 복지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책임지는' 사회복지시설이 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제갈 연구원은 "시·군·구는 자신들이 보유한 복지관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대개 민간에 위탁한다"며 "기존에 위탁 체계를 직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하거나, 지자체가 직접 관리하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조직국장은 이러한 주장에 동감하면서도 "정부가 위탁한 시설이 아니라 법인이 스스로 세운 시설일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관리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부나 지자체도 시설들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실을 다 알면서도 지도감독할 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며 "정부마저 (시설의 위법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신 사회복지사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대화 테이블을 만들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신 조직국장은 "지금은 시설장이 알아서 운영하고, 지자체는 감독할 사항만 감독하는 상황"이라며 "사회복지 종사자가 시설 운영에 참여해서 시설이 공공적으로 운영되도록 감시하고, 여기에 지자체가 협력할 수 있는 강제적인 참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사회복지시설이) 사회복지사들의 노동조건이나 처우개선을 정할 때도 노동조합이나 사회복지 종사자와 직접적인 교섭이나 대화를 통한 결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지역 단위의 교섭 방식을 제안했다. 또한 그는 "사회복지사 인건비 전액을 지자체가 내고 있는 만큼, 지자체도 사회복지사와 교섭해서 임금 수준 등 근로조건을 결정해야 한다"며 "사회복지사업 계획이나 정책에서도 사회복지 종사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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