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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공무원의 연이은 자살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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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회복지공무원의 연이은 자살의 이유

[시민정치시평]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복지행정

또 다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며칠 전 5월 15일 새벽, 논산시청에 근무하는 30대 초반 사회복지사 한 사람이 자신의 집 근처 철길에서 열차에 치어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충남 사회복지직 공무원 시험에서 1등을 한 우수 재원이다. 또 부친이 왼팔을 못 쓰는데다 뇌졸중을 앓고 있어 특별히 사회복지분야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지난해 임용된 고인은 주로 장애인복지시설을 지원·관리하는 업무를 해 왔다. 고인을 포함해 정규직 3명과 계약직 직원, 공익근무요원 등 5명이 논산시의 등록 장애인만 600여 명을 모두 담당해 온 것이다.

고인의 죽음과 관련해 경찰은 업무과중에 따른 자살로 추정했지만, 가족들은 단순 사고사로 보고 있다. 그의 주검이 자살이든 사고사든, 밤 1시가 넘은 시간에 철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는 점, 경적을 울렸는데도 미처 피하지 못했다는 열차기관사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사회복지사 업무와 연관이 있었던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최근 업무과중에 시달려 온 사람으로서 평소 고민과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일기장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4월 28일 일요일자 일기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밥 먹고 사무실로 향했다. 하루가 정말 피곤했다. 컴퓨터를 보고 있다가도 금방 졸고 다시 깨고 이루 말 못할 정도로 피곤했고,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고 적혀 있다. 5월 5일자 일기에는 "지금 심신이 너무 힘들다.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 지금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인가. 지금 나는 행복한가?"라고 써 놓았다. 그리고 5월 7일자 일기에는 "나에게 휴식은 없구나. 사람을 대하는 게 너무 힘들다. 일이 자꾸 쌓여만 가고, 삶이 두렵고 재미가 없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고 적혀 있다. 일요일에도 근무해야 할 정도로 사회복지직 업무 부담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올해 들어 일선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불행한 일이 지난 1월 용인시, 2월 성남시에 이어, 3월 19일 울산에서 3건이나 터졌고 이번에도 이러한 불행한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향후에도 이러한 불행을 멈출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고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치는 어리석음을 정부가 범하는 사이 귀중한 생명은 하나씩 스러져 가고 있다.

왜 어처구니없는 안타까운 일이 복지국가 운운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왜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일까.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대책 수립의 출발이 될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복지는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했다. 정치권이 너도나도 복지국가, 복지사회를 표방하면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외치지만, 그 구호 뒤에는, 국민들은 눈치 채지 못하지만 당연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있는 복지 업무가 도사리고 있다. 처음에는 기초생활수급자만 대상으로 하다가 점차 일반 노인, 장애인까지 확대되고, 최근에는 양육수당 도입, 학비지원 등의 사업까지 떠맡다보니 업무에 업무가 쌓이는 깔때기 현상에 복지공무원의 업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복지정책 재정은 45%, 복지제도 대상자는 157.6%가 증가한 반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4.4% 느는데 그친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여성(74%)인 복지공무원의 육아휴직 충원실적도 67% 정도에 그쳐 필요한 정원에 비해 실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더구나 이러한 업무과다를 줄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 e음)의 개통은 오히려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통합관리망이 도입되면서 13개 중앙부처 296개 복지업무가 '사회복지 범정부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일선 복지공무원들에게 집중되고 있으며, 이미 손으로 작성된 별지신청서 등을 일과 후 일일이 전산망에 입력하는 잡무가 많아져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수급기준에 불만을 가진 탈락자들에 의해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으면서 근무하는 실정이다. '행복 e음'이 사회복지공무원에게는 '불행 e음'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처럼 복지정책 사업이 해마다 늘어가는 것을 참작해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숫자를 대폭 늘리거나 과중한 업무를 분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1년에 만들어진 2014년까지의 사회복지 공무원 7000명 충원계획도 알고 보면 자연결원 충원 800명, 일반 행정직 배치 1800명을 제외하면 4400명에 불과했다. 세 건의 사회복지사 죽음이 발생하자 안전행정부는 급기야 올해 3월 28일 사회복지 공무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복지인력 1800명 조기 충원, 사회복지수당 4만원 인상, 인사평가시 가산점 부여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즉, 안전행정부가 사회복지직 담당공무원 1540명은 새로 뽑고, 800명은 행정직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자연결원 인원을 사회복지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태 해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방안이라는 지적이 사회복지계 내에서 끊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그 결과가 이번에 4번째 죽음을 만들어냈듯 정부의 대책이 '늑장 대응'일 뿐만 아니라 실효성 없는 미봉책임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의 스트레스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공무원노조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실시한 사회복지직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 65%가 우울증을 앓고 29.2%가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정부의 '국민 맞춤형 복지서비스'가 국민행복 100% 사회를 만들기 위해 등장하는 사이에 정작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은 불행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 아직 수차례나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외양간 고치는 첫 단추는 우선 지자체에서 사회복지공무원 증원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지자체 소속으로 공무원 정원제와 유사한 소위 총액인건비제라는 제도에 묶여 함부로 인력을 증가시키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는 현행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다. 즉 신규 채용 복지공무원의 인건비 70%만 3년간 한시적으로 중앙정부가 부담하며, 이후엔 전액 지방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방침을 풀어 지방재정이 부족한 지자체의 경우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일은 사회복지전달체계를 개편하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사회복지전달체계를 종합행정체계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읍면동으로부터 분리하거나, 그 상급기관인 시군구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효과적인 것은 아예 사회복지업무를 사회복지청-지청-지소 등 별도의 독립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다. 즉 사회복지공무원을 국가공무원으로 하고 국가에서 전액 인건비를 부담해 국가가 복지를 책임져 나가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복지 담당공무원도 감정노동자로 인식하여 민원인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정기적인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 시절 사회보장기본법을 전면 개정하여 대통령 후보시절에 국민행복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공약하여 당선된 이상, 공무원의 수장으로서 마땅히 사회복지전달체계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여 더 이상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삼가 올해 작고한 사회복지 공무원 네 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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