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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를 거부하자

[쌍용차, '죽음의 행진'을 멈춰라] 용산, 쌍용차, 외면당한 죽음

우리 사회는 절망의 사회다. 굳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통계를 뜯어볼 필요도 없다. 절망에 내몰린 사람들은 죽음의 길을 택한다. 노부부가 유서를 써놓고 죽고, 한 임대 아파트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연쇄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자살하는 이들은 가족도 함께 죽음의 길로 끌고 간다. 가족 살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소박한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거기다가 난데없는 칼부림이 횡행하면서 아무런 연고도 이유도 없는 살인도 저질러진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참으로 조용하다. 죽음의 행렬이 일상이 되어 버린 탓일까?

외면당하는 죽음들

예전에 한국 사회를 뒤흔들곤 했던 정치적 죽음들이 있었다. 한 부류는 자살이고, 한 부류는 타살 또는 의문사였다.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방법으로 택했던 자살은 종종 거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매개 역할을 했다. 최소한 1991년 5월까지는 그랬다. 6월 항쟁은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사람들을 반독재민주화 투쟁으로 끌어낸 결과였다. 6월 항쟁이 만들어낸 정치적 공간에서 노동자대투쟁이 그 뒤를 이었다. 의문사 사례가 발견될 때마다 사람들은 항의했고, 움직였으며, 그런 결과로 이후에도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를 만들어내곤 했다. 1991년 5월에는 대학생의 죽음(강경대)에 대한 항의가 거세게 일고, 다시 거기에 분신이 이어지면서 노태우 정권은 위기에 몰리게 된다.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이었던, 그리고 인위적으로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을 여대야소로 바꾼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저항이 이어졌다. 그해 5월에만 13명이 죽었다.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졌다. 그 투쟁이 실패한 뒤에 그러한 정치적 결단을 통한 죽음에 대한 반향은 점차 줄어들었다. 정치적 타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용산참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이제는 그런 죽음들이 외면당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살인진압의 전조는 용산참사다. 용산과 쌍용은 여러 측면에서 맥을 같이하고 있다. 경찰특공대가 용산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올려서 망루를 공격하고 최소한의 진압장비나 안전대책도 없이 무리하게 진압해 철거민 5명이 죽고, 경찰관 1명이 죽는 대참사가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저항은 경찰력을 동원해 원천봉쇄로 막을 수 있는 정도였다.

사실 언론이 정권 편을 들고, 여당의원들이 나서서 용산에서 망루농성을 한 철거민들을 향해 도심테러라고 매도하는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해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오열하고, 광장에 대규모로 모여서 애도하던 시민들은 용산에는 대부분 오지 않았다. 소수의 활동가와 종교인과 문화예술인들이 힘겹게 355일 동안 용산참사 현장을 지켜내야 했다. 그 정도라도 질기게 투쟁했으므로 장례 협상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다.

영화 <두 개의 문>은 이 점을 분명히 말한다. 박진 인권활동가는 쌍용자동차 진압을 마치고 경찰이 환호하고 자축한 이유는 사람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용산에서 간을 본 것이었는데 의외로 저항이 거세지 않자 이번에도 그걸 사용한 것이다.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용산참사는 국가에게 '이렇게 진압해도 된다'는 몹쓸 교훈을 심어줬다." (공지영의 <의자놀이>에서 인용)

경찰이 '인내진압'에서 '살인진압'으로 방향을 튼 이유

용산의 살인진압에 대해 국민들이 제대로 항의하고, 저항하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경찰은 용산의 진압 모델을 매뉴얼로 만들어갔다. 그전에는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인내진압'을 자체의 <시위진압매뉴얼>로 갖고 있었다. 인내진압은 말 그대로 인내하면서 안전한 진압이 가능한 조건이 될 때까지 참으라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망루농성을 하다가 사람이 죽고는 했던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진압에 나섰다가는 사람이 죽는다는 부담이 있었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진압은 경찰도 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용산에서는 인내진압을 포기하고, 신속한 진압으로 들어갔다. 용산이 끝난 뒤에는 이 사례를 그대로 모델로 하여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해 6월 초 용산과 너무도 비슷한 상황을 설정하고,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진압하는 훈련을 실제로 행했다. 이미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조합이 옥쇄파업에 돌입한 뒤였다. 그리고 거기서 확인된 매뉴얼대로, 아니 그보다 더 잔인하게 쌍용자동차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밀어붙였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광기의 진압작전은 용산의 확대된 재판(再版)이었다. 만약 쌍용자동차 노조 지도부가 마지막까지 결사항전을 밀어붙였다면 아마도 거기서도 사람들이 죽어나갔을 수 있다. 그나마도 다행인가? 우리도 사람이 죽지 않았으니 참아줄 만하다고 넘어간 것은 아닌가.

그런데 용산에서는 진압하는 당일 사람이 죽었다. 아니 그들이 죽였다. 반면에 쌍용자동차 진압이 마무리된 날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하지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이 진행되던 77일 동안에 5명이 죽었다) 그 뒤에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죽지 않고 버텼던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사회에 나와서 죽어갔다. 다 알고 있듯이 그렇게 해서 지난 3월말까지 22명이 죽었다. 누구는 자살을 택했고, 누구는 극심한 심적인 고통을 당하다가 심근경색 같은 것으로 잠자다 죽었다.

6월 항쟁 시기나 1991년 5월 투쟁 시기와는 달리 2009년에는 이처럼 어마어마한 정치적 타살이 있었음에도 대중은 봉기하지 않았다. 유명인사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며 애도했을 뿐이다, 용산과 쌍용에서 일어난 살인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왜 그랬을까?

ⓒ프레시안(김윤나영)

돈 못 갚으면 심장의 살을 떼도 된다는 법과 제도

인권의 첫자리에는 항상 생명권이 있다. 존엄한 인간은 생명부터 보존해야 다른 권리도 보장받을 수 있다. 생명권 없이 다른 인권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인권이 휴지 조각이 되면서 생명권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나온다. 유대인 혐오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당시의 영국 상황이 반영된 까닭이다. 인간 말종인 샤일록은 평소 자신이 증오하던 앤토니오에게 빚을 빌려주면서 기간 내에 갚지 못하면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떼어줄 것을 요구했다. 앤토니오는 기간 내에 빚을 갚지 못했고,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을 떼어주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때 남장한 포오셔가 판사로 등장해서 살을 떼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아야 한다고 판결한다.

우리 사회는 IMF 외환위기 이후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면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을 떼어주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 포오셔와 같은 명판사는 없다. 살을 떼기로 했으면 살을 떼어주는 게 맞다는 논리가 버젓이 법의 이름으로, 제도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그리고 이런 법과 제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거나 마지못해 인정한다.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요즘 일어나는 각종 흉측한 살인이나 아니면 가족 살해와 같은 자살행렬의 배경은 용산과 쌍용의 죽음에 대해 침묵하는 배경과 다르지 않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의식 안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저항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불행이 안타깝지만, 운이 나빴던 것이고, 나는 아닐 것이라는 요행수를 바라고 살아가는 살얼음판의 세상이 되었다. 살얼음은 언제 꺼질지 모른다. 어떤 경우는 한 발짝만 뗐는데도 얼음장이 꺼질 수 있고, 아니면 좀 더 많이 가서 꺼질지 모른다. 조금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같이 얼음장 위에 있으면 안 된다. 무게가 더 실리면 더 많이 나아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용산은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폭력과 법에 의해서 쫓겨 망루에 오른 그들도 사람이란 것, 만약 그들을 사람으로 보았다면 어떻게 그런 살인진압을 감행할 수 있었겠느냐고 용산은 묻는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파업 기간 내내 "함께 살자"고 외쳤다. 그리고 지금도 외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어, 살기 위해서는 죽는 자를 돌아보지 말라고 다그쳐졌던 선택의 순간으로 내몰렸다. 불행하게도 많은 이들이 산 자가 되기 위해서 파업하던 노동자들에게, 10년, 20년 같이 공장에서 일해 왔고 같은 아파트에서 오가며 살아가던 이웃이었던 형님이 아우를 치는 길을 선택했다.

의자놀이를 거부하자

공지영의 <의자놀이>는 그 놀이 자체를 거부해야 했음을 실감나게 그려 보여준다. 의자놀이에 동의하고, 그 규칙대로 움직이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살아남는 자와 죽어야 하는 자들로 구분된다.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뺑뺑이를 돌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거부하고 다른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샤일록이 제시한 심장과 가장 가까운 살을 도려내서 결국은 목숨조차 뺏게 만드는 걸 법이라고 우기는 자들에게 "그건 법이 아니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폭력마저도 자본을 위해서 봉사하게끔 되어버린 자본독재의 시대에는 군사독재시대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자본독재는 계속 경쟁을 부추기며, 경쟁에서 이기면 우리만이 평화롭고 평등한 고원에 오를 수 있다고 꼬드긴다. 높디높은 고원에 발 디디고 안착할 때까지 사다리에 오르는 다른 인간들을 걷어차라고 계속 협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도 죽는다고 말이다. 그 고원에는 겨우 1%만이 들어갈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고원에 마련된 의자에 앉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자본의 독재 시대에는 의자놀이 자체를 거부해야 함께 살 수 있다. 용산과 쌍용, 지금의 강정마을에서 일어나는 국가폭력과 사적폭력이 합체가 된 이 폭력의 상황을 넘기 위해서는, 그리고 더 시야를 넓혀서 자살과 살인폭력의 시스템을 끝내기 위해서는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것처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쳐야 한다. 의자를 걷어차고, 모두 함께 살기 위한 길, 거기에서 비로소 인권의 길이 열린다. 쌍용은 그래서 우리 시대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던진다. 사람의 목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임을,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국가는 그런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의무를 지고 있다는 점을 다시 환기하자. 이제 죽음의 행렬을 끝내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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