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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모비스 비정규직이 현대차 비정규직 부러워하는 이유?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줘·①] 현대차 사내하청, 현대 모비스, 재능교육의 '불만집담회'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기준을 만드는 '권리헌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빼앗기는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비정규직에게도 이런 권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리려는 취지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법적 규제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비정규직 문제는 참아선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준비됐다.

그 활동의 한 부분으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불만집담회-와글와글 왁자지껄'이 진행된다. 불만집담회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다. 3월 10일부터 시작된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99%의 희망광장'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프레시안>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불만집담회 내용을 참석자에게 기고로 받아 차례로 발행할 계획이다. <편집자>

다짜고짜 엄살부터 부려보자면 이 날은 엄청 추웠다. 3월이라는 숫자에 속아 봄인 줄 알고 옷을 얇게 입고 나온 탓도 있지만, 겨울 잠바를 겹쳐 입은 다른 이들도 몸을 한껏 움츠렸다. 바람 가릴 곳 없는 시청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12일은 서울시청 앞에 희망광장이 세워진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희망광장은 희망버스, 희망텐트, 희망뚜벅이로 이어지는 희망 발걸음의 하나로, 시청광장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비롯한 해고자들과 비정규직들이 모였다. 작년 5월 늦봄부터 시작된 희망의 움직임이 한 겨울을 지나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다시 봄까지 이어진 것이다.

희망 광장은 추운 날씨에 개의치 않고 시끌벅적했다. 불만집담회때문이었다. 다 같이 모여 불만을 이야기하자. 하나둘 제 속의 불만을 끄집어내는 이들은 역시 '사회불만세력들'다웠다. 이날 텐트를 빼앗아가려던 담당 경찰이 했던 말이기도 한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를 이 사람들은 자꾸 무시했다. 왜 안 되냐고, 왜 문제냐고, 불만을 말했다. 자꾸 무언가를 되게 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무엇이 불만일까?

ⓒ희정

첫 번째 불만. "옆자리 정규직이 사라졌다"

한 노동자가 있다. 전주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는 그는 1년을 쉬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온 참이다. 예전과 같은 공정으로 배정되었다. 그런데 달라졌다. 기계는 바뀐 것이 없는데, 사람이 달라졌다. 자신의 앞, 뒤, 옆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들이 바뀌었다. 사라진 사람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사라진 사람들의 자리에 자신과 같은 하청 직원들이 채워졌다. 정규직들이 갑작스럽게 잘린 것도 아닐 테고 이상했다. 그 사람들은 어디 갔냐고 물으니, 그들은 그들대로 한 데 모아놨다고 했다.

왜 모아두었을까? 자동차 공장에 사내 하청노동자들이 투입될 당시, 전주 공장뿐 아니라, 울산, 아산, 아니 어느 지역 어떤 기업이든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라인에서 함께 일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그 모습들이 자취를 감췄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한 판결 이후였다. 현대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니 정규직 채용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2010년 7월 판결이 나자, 현대자동차는 침묵했다.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고용 요구를 폭력으로 막았다. 뒤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정을 분리시키는 일을 했다. 불법파견처럼 보이지 않기 위한 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닭 잡아먹고 오리발', 그 발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이제 불법파견이 없으니 됐지 않느냐고 했다. 불법파견이라 대법원 판결이 난 노동자와 완전히 똑같은 조건의 노동자만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공정과 기간이 완전히 일치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몇 백이나 될까. 현대 사내 하청 노동자 수만 몇 만,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 수는 30만 명이 넘는다.

불만을 전해준 것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비없세)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점규 씨다. 그는 노동자들의 불만에 이어 부러움도 전해주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 인생을 부러워하다니. 이들은 바로 현대 모비스 공장 노동자들이다. 현대 모비스에는 정규직이 없다. 생산직 노동자가 전부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불법파견 판정은 꿈도 못 꾼다. 대법원 판결로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나마 지니게 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이들은 그렇게나 부러웠다.

그렇기에 박점규 씨는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불법파견을 정규직하라'라고 외쳐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두 번째 불만. "25일은 더 버텼겠지요"

최승아씨는 불법파견 판결 이후, 정규직화를 요구하면 25일 동안 파업을 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자다. 그는 처음에는 5일만 싸우면 되겠구나, 했다고 고백했다. 파업 중인 현대자동차 공장 안에 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였지만, 이불도 음식도 없었다. 하루에 김밥 한 줄로 때웠다. 어디 그들의 파업을 기꺼워하는 사람들만 있었을까. 식사도 화장실도 잠자리도 편한 것 하나 없이 싸우는데, 잘 싸운다 말은 못 들을망정, 또 싸우려고? 라는 말을 들으면 기운이 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25일을 버텼던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매년 정규직과 회사가 인원을 협의하는 맨아워를 하는데, 그 협의가 끝날 때마다 비정규직이 잘리는 것을 보며… 우리가 일회용품도 아니고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무너지는 억장 잡고 싸운 25일의 끝을 그는 "성과 없이 내려왔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조만간에 좋은 소식 안 있겠습니까?"

세 번째 불만. "특고는 나의 문제다, 설사 내가 정규직일지라도."

불안정철폐연대 김혜진 씨는 특수고용직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말을 했다. 왜 특수고용직이 내 문제냐고? 그것은 현재 특수고용직의 대표 격인 학습지 노동자들마저 90년대 초까지는 모두 정규직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학습지 노동자들에게 구조조정이 닥쳤다. 특수고용직이라는 구조조정이었다. 회사는 이들에게 개인사업자로 등록할 것을 요구했다. 일은 그대로인데, 회사의 명에 의해 직원에서 개인사업자가 된 것이다.

학습지뿐인가. 덤프와 레미콘 노동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회사는 개인사업자로 신고한 노동자들에게 갖은 혜택을 주어, 전환을 유도했다. 일부 노동자들이 소사장제로 전환하지 않겠다며 거리에 나와 싸울 때,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이들이 고급세단 프린스를 몰며 지나갔다. 진짜 사장님들 같았다. 그러나 지금의 화물노동자들 현실은 우리가 아는 바다.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사야했던 덤프와 레미콘은 빚이 되었다.

심지어 이제는 공장 안에서 지게차를 모는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 신고를 하고 있다. 회사는 일을 하려면 지게차를 사라고 한다. 그 지게차가 노동자에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밖에서도 몰고 다니라고? 오직 공장이 유지되는 데 있어 부품을 옮기는 용도로 필요한 지게차마저 개인에게 부담을 하고, 사장이라는 직함을 준다.

몸소 특수고용직 생활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 노동자가 불만을 덧붙였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특수고용직이 아닌 노동자로 불리기 위해 1500일 넘게 싸우고 있다.

1999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 설립 신고증도 받았다. 그런데 부가 설명이 따라왔다. 노동자는 아닌데, 노동조합은 신고를 할 수 있으나, 온전한 노동조합은 못 만들고, 노동조합법에 의한 노동조합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재능교육 안에 노동조합이 세워졌다. 그런데 회사는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을 밥 먹듯 위반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위반을 고발했다. 이에 법원은 노동자가 아닌 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음으로 해결해줄 수 없다 했다.

단지 '노동자' 이 세 글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들은 몇 년을 재능교육으로부터 온갖 구박당하다 쫓겨났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이번에는 반드시 노동자임을 인정받겠다고 했다. 노동자가 아닌 상태로 회사에 복귀해봤자, 결국 예전 같이 구박덩어리 취급당할 게 뻔했다.

"우리가 왜 해고를 당했습니까? 노동자도 아닌 사람들이 노동조합 활동한다는 이유로 해고당했습니다. 진정 저희의 싸움을 지지한다면, 저희가 빠르게 회사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 노동3권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것을 지켜봐 주십시오."

그 흔한 이름, 노동자. 이 세 글자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 다른 대우를 받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마저 부러워하는 정규직 0% 공장 노동자들이 있다.

별 부럽지도 않은 것들을 바라고 부러워해야 할 정도로 보잘 것 없어진 우리의 삶이 있다. 불만이 들끓는다. 불만을 말하니 시끄럽다. 하지만 불만이 빚어낸 소란함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침소리다.

ⓒ희정

불만집담회 마지막 시간, '비정규직은 ○○○이다'를 가지고 짧은 말짓기를 했다. 한 노동자가 ○○○에 '감기'라는 단어를 넣었다. 왜냐고 물으니, 감기란 건강한 사람들은 걸렸는지도 모르고 지나가지만, 병약한 이들은 죽음까지 갈 수 있는 병이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사회가 건강하지 못하여, 이들은 기침을 한다. 독한 감기에 걸렸다. 시청 광장의 찬바람이 그들을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무관심이 이들을 아프게 한다. 희망광장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날씨가 풀렸다. 왁자지껄 불만집담회는 다음 주에도 계속된다. 기침소리가 요란한 이들은 희망광장에서 봄볕을 기다린다. 이제 곧 진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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