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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미국판 <타임> 표지, '미국 예외주의'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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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미국판 <타임> 표지, '미국 예외주의'의 상징"

[해외시각] "다른 나라의 경험 무시하는 정치권이 파멸 불러"

미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 방안을 논의하던 의회 특별위원회가 지난 23일 합의 결렬을 선언했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미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발발 후 경기 회복을 위해 양당이 타협해야 한다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미 정치권은 감세 철회와 복지 지출 삭감 등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큰 과제는 '정치의 실패' 극복에 달려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의 대안언론 <랜덤 렝스 뉴스>의 선임 편집자 폴 로센버그는 29일(현지시간) <알자지라>에 기고한 칼럼에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 정치권을 분석했다.

로센버그는 다른 세계의 모든 문화를 흡수해 고유의 문화를 창조하는 미국의 특성이 유독 미국 정치권에서만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 주목했다. 이는 미국이 세계에서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은 국가라는 '미국 예외주의'에서 기초하며, 그 역사는 미국이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태동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이 시작부터 소수 계층의 정치적 권리를 제약하고, 유럽이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여 도입한 복지 제도의 효과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했다. 그 결과 미국은 경제적으로는 패권국이 됐지만 미약한 정치 시스템과 복지 제도는 경제위기로 휘청거리는 미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는게 로센버그의 견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원문 보기)

1%의 영향력 속에 미국의 예외주의는 기만주의가 됐다

미국의 '예외주의'의 본성은 항상 논쟁거리지만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부터 미국인들은 항상 자신들이 세계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해왔다. 많은 이들이 미국의 예외주의를 종교적 성격으로 보지만, 처음으로 예외주의를 구조적 관점에서 분석한 프랑스의 역사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예외주의가 미국의 실용주의에서 나왔다고 봤다. 역설적이게도 '미국 예외주의'라는 말을 처음 쓴 이는 미국과 대립했던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의 예외주의는 '미국의 세기'라는 말처럼 70년 동안 일관되게 제국주의와 관련되어 왔다. '미국의 세기'는 <타임>을 창간했던 헨리 루스가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기 10달 전인 1941년 2월에 처음으로 쓴 말이다. 지난 25일 경 나온 <타임>의 최신호(12월 5일자)를 보면 루스가 만든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 25일(현지시간) 발간된 <타임>의 지역별 표지
<타임> 최신호의 유럽, 아시아, 남태평양판 표지 사진은 뜨겁고 격동적인 이집트 시위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방독면을 쓴 시위 참가자는 혼란스러운 거리를 배경으로 서서 주먹을 머리위로 치켜올리고 있다. <타임>은 표지에 '돌아온 혁명'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미국 본토에서 발행된 <타임>의 표지는 '예외적'이다. 옅은 회색 배경에 <뉴요커> 스타일의 텍스트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제목은 '걱정이 당신에게 좋은 이유'다.

<타임>은 명백하게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 미국 주요 도시의 민주당 소속 시장들이 월가 시위 농성장을 철거하면서 미국 정치권이 월가 시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명확해졌다. '걱정이 그들에게 좋다'는 말을 믿지 않는 시장들은 그 사실을 감추려고 애쓴다. 거리에 선 시민들은 불쾌하고 그들의 사진은 너무 흔하다는 식이다.

한때 이런 시위 사진들은 민주국가로 이행 중인 제3세계의 독재국에서나 찍히곤 했다. 미국인들은 제3세계 국민들이 미국처럼 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에, 그런 사진이 멀리 떨어진 이국에서 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런 점들이 루스가 말한 '미국의 세기'가 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현재 뉴욕의 주코티 공원과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대해 모든 사람들은 차이점 보다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다. 시위의 종류가 무엇인지보다 시위의 강도가 어떤지에 대한 문제다. '역사의 바깥'이라는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를 쓰고 있는 이들도, 역사에 저항하는 이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 시장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너희 시위대들은 목적을 달성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입을 다물어라. 우리 잔디밭을 너희들이 망쳐놓고 있다.' 미국의 '어른'들은 결코 '아이'들에 관한 문제에 인내심이 많지 않다.

로스앤젤레스의 상황은 특별한 본보기다. 비록 시 당국자들은 처음에 시위대에 우호적이었지만, 안토니아 비야라이고사 시장은 몇 주 전부터 시위대들에게 농성장을 비울 것을 권고했다. 비야라이고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진보적인 활동가에서 신자유주의 정치인으로 바뀐 인물이다. 필자가 그를 처음 봤던 1980년대에 그는 교원노조를 조직하고 있었다. 또 진보적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려는 목적으로 결정된 진보적 네크워크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비야라이고사가 2006년 시장으로 취임했을 때 처음 한 일은 자신이 만든 교원노조와 충돌하는 것이었다. 부동산 억만장자 엘리 브로드의 지지를 등에 업고 그는 '교육 개혁'에 나섰다. 예전에 비야라이고사와 함께 일했던 전미변호사협회 전무다 제임스 래퍼티는 현재 로스앤젤레스 월가 시위대의 주요 활동가 중 하나가 돼 시장과 대립하고 있다.

미국의 예외적 민주주의

전술한 바와 같이 미국 예외주의에는 항상 이견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미국이 보통 기회의 땅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식민지 시절의 신대륙에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기회를 찾아 이주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신대륙에 가는 방법은 계약 노예(indentured servitude)가 되는 것이었고, 이것만으로는 필요한 노동력이 채워지지 않자 아프리카 노예 무역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미국 독립혁명이 시작됐을 때, 그 운동은 상당 부분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 패트릭 헨리 등 자유를 지지하는 노예 소유주에 의해 주도됐다. 그들의 주장은 보편주의에서 출발했지만, 그들이 만든 정치 시스템에서 실제 권한를 쥔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부유한 백인 남성들이었다. 자유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약속은 국민 모두를 흥분시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에서 제외됐다. 평등은 신사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제외당한 이들이 벌이는 산발적인 싸움은 1830년대 노예 해방운동으로, 1840년대 여성들의 권리 신장 운동으로 번졌다.

미국의 독립은 유럽에도 영향을 미쳐 프랑스와 폴란드 혁명 촉발의 계기가 됐다. 비록 미국은 독립 이후 제국주의의 행보를 밟았지만 미국이 성공한 반(反) 식민 혁명은 다른 식민지 국가의 혁명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줬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려 애썼던 베트남의 호치민이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을 맺을 당시 우드로 윌슨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접근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중에 그는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택했다.

예외주의에서 기만주의로

그러나 미국은 자신이 일정한 영향을 미쳤던 세계와 보조를 맞추는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유럽의 복지 시스템은 좀 더 나은 삶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에 직접적으로 응대한 결과지만 부분적으로 이러한 대중의 요구는 미국이 유럽국가의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촉발된 면이 있다.

미국이 점점 유럽국가에 가까워져 갈수록 유럽식 지식에 대한 저항은 점점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늘어났고, 미국식 실용주의와 갈등을 겪었다. 미국의 정치 시스템도 유럽에 뒤쳐져 있었고 의회 민주주의를 갖추기 위한 유연함과 창조력은 결여되어 있었다.

정치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의 경험을 받아들이길 거부한 것은 미국 사회가 가진 '즉흥 문화'(grassroots improvisatory traditions)와도 충돌하는 것이었다. 음식에서 음악까지 모든 면에서 미국은 외부의 다양성을 수용했고, 이들을 버무려 미국 자신만의 것으로 재창조해 왔다.

하지만 정치 분야에서만큼은 그러한 수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력한 정치 엘리트들이 계속해서 미국의 독창성을 억압했고 국민들의 눈을 가렸다. 상위 1%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가운데 미국의 예외주의는 미국의 기만주의가 되어 갔다. 다른 나라의 성공을 참고삼아 미국을 발전시키는데 이용하자는 제안은 거절당했다.

미국의 '누더기 복지'는 이러한 정치의 실패를 설명하는 좋은 예다. 그러나 미국의 산업 정책은 보다 더 기이하다. 공립학교는 본래 미국이 만든 아이디어였다. 더 나가면 현재 미국은 대부분 정부가 주도하는 보조금과 사회 기반시설 확충에 힘입어 만들어진 국가다. 그러나 근로 복지로 가면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뀐다. 이유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국의 산업화 초기에 필요한 노동력은 상당 부분 이주민이나 아일랜드인처럼 문화적으로 '타자'인 이들이 채웠다. 아일랜드에 뒤이어 유럽 중부나 남부 지역의 가톨릭 교도나 유대인이 건너왔다.

대공황이 미국을 덮치기 전 미국은 50년 전에 복지제도를 만든 독일을 부분적으로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랬는데도 미국이 메디케어(노인 의료보험제도)를 만드는 데는 30년이 더 걸렸다. 국민 전체가 아닌 고령자를 위한 제도였는데도 말이다. 메디케어 도입 결과 10년 만에 미국 고령자들은 가장 빈곤율이 높은 계층에서 가장 낮은 계층이 됐다. 그러나 이는 독일이 의료보험제도를 만든지 13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이후 미국의 복지에 대한 보수진영의 저항이 강화됐다.

유럽 출신 백인 계층 사이의 문화적 차이는 인종 차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2001년에 낸 보고서 '왜 미국은 유럽식 복지제도를 갖추지 않았나?'를 보면 미국의 소수자 인구 규모와 복지 지출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보고서는 인종사이의 적대가 미국의 취약한 복지를 부른 유일한 원인이라고 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비례 대표제 등의 제도가 없는 미국의 정치도 원인으로 꼽았다.

보고서는 인종간의 적대관계는 빈곤층에 대한 재분배 정책을 만드는데, 빈곤층에는 흑인 비율이 높지만 유권자들에겐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사회주의 정당의 성장과 빈곤층의 정치적 권력을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복지에 대해 오랫동안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다. 하지만 1880년대 비스마르크 시절 독일 보수주의자들은 포괄적인 복지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의 복지제도는 서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작고 가장 덜 포괄적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복지가 자본주의를 억압할 것이라고 비난할 때 독일의 복지는 장기간 이어진 번영의 핵심 동력이 됐다.

메디케어 도입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난 뒤 미국은 마침내 헬스케어(의료보장제도) 범위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위태로웠다. 실망스럽게도 그는 메디케어 제도가 사라질 수도 있는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수백만의 고령자를 빈곤으로 몰아넣는 것과 다름 없다.

오바마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보수 진영과 '대타협'을 이뤄야한다는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보수 진영이 과거에 지지했던 정책을 다시 지지할 것이라고 희망하면서 정작 자유주의 진영의 주장을 반영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의 경기부양 정책은 공화당원의 지지를 얻기 위한 감세로 나타났고, 헬스케어 정책 역시 1990년대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이 공화당에 만들어준 정책에 기초하고 있다. 공화당의 대선주자 미트 롬니가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이용했던 그 재단 말이다.

여기에 오바마는 민주당의 보수 성향 의원들과 결합해 자유주의 진영의 주장을 억누르고 있다. 산업화된 세계의 다른 국가에서 시도돼 효과를 입증했던 정책들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미국 기만주의의 힘이다. 세계의 다른 어떤 누군가의 경험도 미국 정치권에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그럼으로써 미국 정치권은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 미 의회는 장래의 재정 적자에 대한 강박에 싸여 높은 실업률은 무시하면서 메디케어 폐지안을 '해법'이라고 제시할 것이다. 물론 공화당이나 민주당 의원 누구도 입으로 이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바우처 시스템을 도입해 메디케어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 개를 죽여 놓고 같은 이름을 붙인 고양이를 준 후 개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바우처 시스템는 메디케어를 대체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적어도 민간 보험사들이 가입자이 보험료 지급을 거부하면서 돈다발을 만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들은 민간 기업이기에 '미국 기만주의'의 규칙에 따라 승리자가 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당신에게 걱정거리를 안긴다면, 긴장을 풀어라. 결국 <타임>이 말하듯 "걱정은 당신에게 좋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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