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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죽음의 행렬', 부검 한 번 해봅시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파업 1년 뒤, 그들은 왜 죽어가는가

"사망의 종류는…명백한 타살입니다!"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인기를 끈 드라마 '싸인'의 한 장면에 나올법한 대사 한마디, 요즘엔 쌍용자동차 현장 안팎에서 자주 떠도는 얘기들이다. 2009년 3000여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았던 정리해고 국면부터 지금까지 죽어간 노동자와 그 가족들만 벌써 14명째. 만약에 타살이 분명하다면 웬만한 연쇄살인의 규모를 넘어서는 것이다.

사망의 원인은 다양하다.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고, 목을 매 죽고, 연탄가스에 질식사하고, 심근경색과 스트레스로 죽고, 아직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자고 일어났더니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고….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의 죽음이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와 직접적이고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 지난 2일 열렸던 쌍용자 무급 노동자 임 모 씨의 노제 장면. ⓒ프레시안(손문상)

'산 자'로부터 시작된 죽음의 행렬

2009년 1월 상하이차의 '먹튀'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정규직만 무려 2646명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회생계획안'에 따라 쌍용차는 정리해고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말해주는 것처럼 정리해고 절차가 시작되면서 현장은 이른바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게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때부터 시작된 죽음의 행렬은 '산 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점거파업이 진행되고 있던 2009년 5월 27일, 엄○○ 조합원이 뇌출혈로 사망했고, 6월 11일에는 부산에서 김○○ 조합원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리해고 명단에서 빠져있는 '산 자'들이라는 점, 그리고 점거파업이 벌어지고 있던 한복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당시 동료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들 모두 구조조정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왔고, 점거파업을 전개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엄청난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껴왔다고 한다. 특히 김○○ 조합원의 경우, 사측이 동원한 점거파업 반대 관제 데모(6월 10일)에 참석한 직후, 동료들과 술을 한 잔 하고 귀가하던 도중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죽은 자'들을 더욱 고립시키기 위해 동원된 '산 자'의 입장이던 고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히려 점거파업에 동참하고 있던 조합원들은 파업 동료들과 함께 분임토론을 벌이고 술잔을 기울이며 가슴 속에 맺힌 울분과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경찰특공대의 십여 일에 걸친 살인적 진압작전이 펼쳐지던 그 순간에도 죽음이 아니라 한가닥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파업이 진행되고 있던 기간 동안 파업 조합원이 투쟁을 포기하고 희망퇴직을 선택하는 일이 더러 벌어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들이 자결을 시도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죽은 자'의 차례 : 두 번 죽는 노동자들

그러나 파업이 끝난 후 상황이 바뀌었다. 정리해고와 무급휴직, 희망퇴직으로 2600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장 밖으로 밀려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다수가 해고됐다. 파업이 진행될 때에는 '정리해고 철회'라는 한가닥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파업이 끝난 뒤에는 모두가 생활고라는 벽에 부딪혀야 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이혼이라는 현실과 맞닥뜨리기도 했다.

평생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일밖에 모르던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었을까? 건설현장 '노가다'부터 시작해서 대리운전, 택배 배달, 소규모 자영업 등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신용불량과 파산은 항상 이들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다.

다른 공장에 취업하려 해도 쌍용차에 다녔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번번이 퇴짜를 맞아야 했다. 죽음이라는 문제를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이 과연 있을까?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 때문에 죽지 못해 산다는 노동자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수의 노동자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넉 달 동안 무려 5명의 노동자들이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들 모두가 희망퇴직자(4명)와 무급휴직자(1명) 등 이른바 '죽은 자'에 속했던 이들이었다. 정리해고로 '죽은' 이들이 정말로 생을 마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는 정리해고 사태가 마무리된지 1년 조금 지난 시점으로, 1년 이상 생활고와 우울증을 이겨내며 버티다가 끝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 5명 중 3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특히 2월 26일 죽어간 임○○ 조합원의 얘기는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무급휴직자이던 임○○ 조합원의 아내가 작년 4월에 생활고 등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한 바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사태로 부모를 모두 잃은 아이들 둘에게 아버지가 남긴 것은 통장잔고 4만 원, 카드빚 150만 원이었다.

희망퇴직·무급휴직자가 죽어가는 동안 생산량은 2배로 늘어

애초 쌍용차 노동자들이 점거파업을 끝낼 시점에 회사측과 합의한 바에 따르면 460여 명을 무급휴직으로 하되 1년 뒤에 복직을 시킨다고 했다. 약속대로라면 지난해 8월에 임○○ 조합원을 비롯한 무급휴직자들은 현장에 복귀하여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법정관리인을 비롯한 회사측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정리해고·무급휴직·희망퇴직자들의 '희생' 위에서 '회생'한 쌍용차는 이들이 죽어가는 동안 생산량을 무려 2배로 늘렸다. 아래 그래프는 쌍용차 점거파업이 끝나고 생산이 정상화된 시점인 2009년 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쌍용차의 내수판매량과 수출량 및 판매량 합계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판매량 정보는 한국자동차공업협회의 월간 통계자료에서 가져왔다)


2009년 8월 6일 쌍용차 점거파업을 끝내며 합의한 사항은 '무급휴직자 1년 뒤 복귀'와 '생산물량에 따른 순환배치'였다. 그렇다면 생산물량이 2배로 늘어난 상황인데도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3개의 완성차 조립라인이 있는 평택공장에서 라인별로 편차는 있겠지만, 생산물량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잔업과 휴일특근이 팽팽 돌아가기도 한다. 만일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나누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무급휴직자는 물론이고 정리해고자들까지 얼마든지 복직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죽음의 행렬을 방치하고 있는 쌍용차를 향해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이건 회사가 죽인 것"이라고 울부짖는 정리해고·무급휴직자들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가.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죽음, 그래서 먼저 간 동료들 앞에서 오열하는 이들에게 쌍용차와 이명박 정부는 계속 침묵할 것인가. 이들에게 죽음의 행렬을 '명백한 타살'로 규정하는 근거와 이유는 너무나 충분하지 않은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파업을 벌이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사측이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치며 동료들을 매도하도록 강요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으로 '산 자'들이 먼저 죽음의 행렬을 시작했다. 파업이 끝난 뒤에는 극심한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죽은 자'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것으로 끝난 것일까.

앞에서 자료로 제시한 생산량·판매량 그래프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무려 3000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쫓겨난 상태에서 생산량이 2배로 늘었으니 현장의 노동강도는 얼마나 높아져 있겠는가. 최소한 3~4배의 노동강도가 더해지고 있는 현장의 '산 자'들에게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고통이 부과되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죽어간 14명의 노동자들 중에는 분사화된 시설팀 노동자 한 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 노동자는 지난해 5월 4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는데, 14명 중 유일하게 쌍용자동차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였다. 그런데 '분사화'가 무엇이던가? 정규직이던 시절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소속은 듣도보도 못한 하청업체(분사업체) 소속으로 바뀌고 임금도 상당히 삭감될 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하청 비정규직'의 다른 이름이다. 이 노동자 역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 노동자가 사망을 맞이한 시점, 즉 지난해 4~5월은 그 이전보다 생산물량이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기였다. 이게 과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이라고만 볼 문제일까?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뺑이'쳐야 하는 노동강도에 극심한 현장통제, 여기에 비정규직이라는 굴레까지 얹어져버린 현실과 이 노동자의 죽음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는 것일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14명의 죽음 모두 정리해고 사태를 둘러싼 자본의 탄압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특히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불안·우울·스트레스가 몰아닥치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구조조정·정리해고로 죽은 자들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산 자들의 심장에도, 2009년 정리해고 사태가 남긴 멍자욱이 지울 수 없는 흔적(싸인)처럼 깊이깊이 새겨져 있다.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이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인을 방조하는 것 아니 사실상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이 사태를 계속 방치해 놓는다면, 산 자로부터 시작해 죽은 자로 넘어온 죽음의 행렬이 다시 산 자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게 된다. 막아야 한다. 아니 막으려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힘을 가진 자들을 강제해야 한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임을 위한 행진곡> 마지막 소절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이가 나 뿐만은 아닐 것이기에.

▲ 2009년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이후 사망하거나 자살한 쌍용차 노동자 및 가족들. 쌍용차 노조가 희생자를 14명이라고 밝힌 것은 부인의 유산까지 포함한 수치다. 실제 유산은 이보다 더 많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1명의 희생자만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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