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급자'들은 1년6개월 전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외쳤다. 과장일까. 폭력이 일상이었던 77일 파업의 후유증이 우울증으로 번졌다. 파업 이후 고발과 손해배상, 생계비 곤란으로 어떤 이는 연탄불을 태웠고, 어떤 가족은 목을 맨 게 10여 명에 이른다. 회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2월 28일 故 임무창(44) 씨는 운구에 실려 장례식장에서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정문으로 '출근'했다. 쌍용자동차 무급자는 462명에서 이날 한 명이 줄었다. 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편집자>
▲ 故 임 씨가 동료들의 손을 빌어 길을 나섰다. ⓒ프레시안(손문상) |
▲ 쌍용자동차의 굴뚝이 보인다. 20년간 봐 왔던 풍경이었다. ⓒ프레시안(손문상) |
▲ 고인에게 복직을 약속한지 1년 반이 지났다. 하지만 정문은 굳게 닫혀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
▲ 한나라당 원유철 의원, 민주당 정동영 의원의 어깨 사이로 故 임 씨의 모습이 보인다. ⓒ프레시안(손문상) |
▲ '함께 살자'는 다짐은 파업 이후 더 절절한 약속이 됐다. ⓒ프레시안(손문상) |
ⓒ프레시안(손문상) |
▲ 헌화하는 동료의 손이 무겁다. ⓒ프레시안(손문상) |
▲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떠나보내선 안되는 조카였다. ⓒ프레시안(손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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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프레시안(손문상) |
▲ 송경동 시인은 이날 긴 추모시를 준비했다. 남긴 말들이 많은 듯 했다. ⓒ프레시안(손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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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 너머로 공장 옥상이 보인다. '해고는 살인'이라며 '함께 살자'를 외쳤던 2008년 여름의 그 옥상이다. ⓒ프레시안(손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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