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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의 핏빛 현주소…안에선 축포, 밖에선 향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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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의 핏빛 현주소…안에선 축포, 밖에선 향불"

[현장] 한 쌍용자동차 무급자의 장례가 끝나던 날

28일 오전 7시30분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입구로 들어서는 길에 15개의 만장이 섰다. 공장 정문 앞에 모인 이들은 밀려들어오는 출근 차량을 향해 운구차량 뒷문을 열었다. 쌍용자동차 무급자로 사측의 복직 약속만 바라보며 살다 26일 숨을 거둔 故 임무창(44) 씨가 영정 속에서 출근하는 옛 동료를 지켜보고 있었다.

ⓒ프레시안(김봉규)
2008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반발해 77일간의 공장 검거 농성에 참여했던 임 씨의 마지막 가는 모습이었다. 파업이 끝나고 1년반 만에 쌍용차는 신차를 내놓고 'SUV명가 재건'을 선언했다. 당시 정리해고를 주도한 이유일 쌍용차 공동관리인은 새 CEO 자리가 유력하다. 하지만 복직 약속을 받아냈던 임 씨는 파업의 처참한 기억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난해 아내를 잃었고, 통장 잔고 3만 원과 카드빚 150만 원을 남긴 채 자신도 세상을 떴다. 남은 건 아직 고등학생, 중학생인 두 자녀뿐이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가 준비한 노제가 시작되기 전에 임 씨의 이모가 먼저 감정을 터트렸다. 공장 출입구에서 출근하는 노동자들과 베레모를 쓴 관리 인력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던 그가 마이크를 뺏어들었다.

"내가 주위에 쌍용차만 15대 팔아줬어. 현대차 산다는 사람한테 내 조카 다니는 회사라고 그렇게 했어. 우리 무창이 지각·결석 한 번 없이 20년을 다녔어. 20년을 피 빨아먹히다 하루아침에 쫓겨났어. 회사가 기본 생활이라도 할 수 있게 해줬어야 할 거 아냐. 내가 불매운동을 해서라도 너희들이 평택에 발 못 붙이게 할 거야!"

▲ 故 임무창 씨의 유가족 한 명이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죽으니 회사에서 화환과 장례 집기 날아와"

고동민 쌍용차지부 조직부장은 "살아있을 땐 (임 씨가) 쌍용차 직원이 아닌 것처럼 굴던 회사였는데 막상 죽으니 화환과 장례 집기가 날아왔다"며 "회사의 이런 작태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약속 기한에서 반년이 넘었지만 쌍용차는 묵묵부답이다. 당시 무급자로 전환된 800여 명의 노동자 중 아직도 절반 이상의 사측의 약속 이행을 믿고 생계를 지탱하고 있다. '77일 파업'에 참가했다는 '낙인'으로 인해 퇴직을 해도 지역 내 정상적인 취업이 어렵기에 무급자로 남아 날품팔이로 근근이 연명한다. 故 임 씨도 그러한 노동자 중 하나였다.

황인석 쌍용차지부장은 "쌍용차를 다니며 가장 튼튼한 차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이들이 연탄불을 피워 죽고, 목을 매고, 투신하고 있다"며 "공장 안에서 말수도 적고 화 한번 내지 않던 고인이었는데 그렇게 세상 밖으로 떠밀려 삶의 압박에 짓눌리면서 얼마나 마음이 상했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만장을 든 故 임 씨의 동료들 ⓒ프레시안(김봉규)

이날 열린 노제에는 지역구 의원인 한나라당 원유철, 민주당 정장선 의원과 민주당 정동영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 김선기 평택시장 등이 참가했다. 2008년 쌍용차 합의를 이끌어냈던 이들은 고개를 숙였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동안 연이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비극을 지켜만 보았던 이들도 유감을 표했다.

이정희 의원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이런 고통이 짓누르고 있는 걸 보면서 '해고는 살인'이란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며 "(그들의 사정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며 포기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한다"고 말했다.

정장선 의원은 "노사 타협을 이끌어낸 사람으로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점에 깊은 사죄를 드리고 용서를 구한다"며 "지금이라고 회사와 대화를 다시 시작해 고인에게 위안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프레시안(김봉규)

노제가 끝난 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쌍용차지부는 "또 한 명의 생떼 같은 목숨을 잃은 오늘이 쌍용차 재도약의 핏빛 현주소"라며 사측의 사과와 무급 휴직자에 대한 생계대책 보장 및 복직을 요구했다.

지부는 "故 임무창 조합원과 같은 무급 휴직자들은 해고자가 아니라서 퇴직금이나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고 다른 회사로 취업을 할 수도 없다"며 "할 수 있는 일은 일용직 날품팔이 노동으로 복직이 되는 날까지 버티는 것 뿐"이라고 했다. 이들은 "무급휴직자와 해고 노동자들은 오늘도 극단의 생활고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쌍용차는 아직도 침묵의 언어로 산목숨을 앗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부는 "(2008년 맺은) 8.6 노사대타협은 노사 간 약속일 뿐 아니라 사회적·대국민 약속"이라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회사의 노동자를 지켜내지 못하는 기업이 제대로 설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故 임 씨를 실은 운구 차량은 충남 홍천에 있는 장지로 향했다. "회사 안에서는 축포가 터지는데, 밖에서는 향불이 켜지고 있다"는 이들의 말이 정문 앞을 떠돌았다.

ⓒ프레시안(김봉규)

송경동 시인 추모시

해고는 살인이다
- 쌍용자동차 14번째 희생자 故 임무창 동지에게

차가운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당신의 슬픈 부음을 전해 들었다
허망하고 분했다
마흔 넷 평생을 일하고 남은 것이라곤
통장잔고 4만 원, 카드빚 150만 원
아파트 난간에서 뛰어내려버린 아내와
생이 위태로운 아이들 둘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우리들의 이웃들에게
우리들의 가족들에게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있어선 안 되는 일

이것은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다
이것은 공공연한 살인
예고된 타살이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은밀하게 살해당했다
교묘하게 피살당했다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그렇다 미안하지만
이 땅에서 우리는 살아서도
산목숨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의 구설수였고 사기였다
우리의 몸은 다만 경쟁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이윤을 낳을 때만이 의미 있는 하나의 나사산
언제든 대체되거나 버려질 수 있는 값싼 재료였을 뿐
우리의 생명은 이미 저 절망공장
착취의 라인에 갇혀 얌전히 일하고 있을 때부터
죽어 있었다
그마저 빼앗으려 할 때
해고는 살인이라고 마지막 저항에 나섰지만
돌아온 것은 경찰 특공대의 무자비한 진압 뿐

그렇게 이미 부재였던
당신이 떠나간다고 한다
이미 실종 당했던
당신이 떠나간다고 한다
이미 감금당했던
당신이 떠나간다고 한다
이미 매장 당했던
당신이 영영 떠나간다고 한다

이떤 노래가 있어 당신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어떤 시가 있어 당신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어떤 기도가 있어서 당신의 고통을 덜어내 줄 수 있을까
그것은 투쟁 뿐
피눈물로 당신을 보내며
우리는 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우리에겐 없음을
이대로는 살 수 없음을
이제 우리는 안다
장례 지내야 할 것은 동지들의 피맺힌 목숨이 아니라
저 절망의 자동차 공장임을
이제 우리는 안다
쫓겨나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이 추악한 자본주의이며
더러운 자본가들과 그 기생충들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가 다시 생산해야 하는 것은
이 눈먼 자본의 폭주 자동차가 아니라
진정한 호혜와 평등과 평화의 거리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가 다시 손에 들어야 하는 것은
몽키 스패너 건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정의여야 한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 안에서 다시 새로운 동지의 생명이 움트고 있는 것을
전혀 새로운 시대를 열어제낄 해방된 시대의
인간이 내 안에 자라나오고 있음을
이제 우리는 안다
지난 시대에 우리 모두는 가난하고 소박했지만
그런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지탱하는 아름다운 차체부였고
어둔 세상을 돌리는 엔진부였으며
추한 세상을 아름답게 칠하는 도장부였음을
이제 우리는 안다
다만 울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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