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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진복 벗으니 온통 붉은 반점, 문드러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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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진복 벗으니 온통 붉은 반점, 문드러진 살"

[현장] 자살 한 달째, 삼성 노동자 故 김주현 씨 빈소

지난 10일은 삼성전자 엔지니어였던 고(故) 김주현 씨가 회사 기숙사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아직 장례식은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유족들은 삼성전자가 책임있는 해명과 사과를 할 때까지 발인을 무기한 연기했다.

고인의 아버지인 김명복 씨는 잠을 설친 듯 핼쑥해진 얼굴로 천안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앉아 있었다. 기자가 찾은 10일 내내, 빈소는 텅 비어 있었다. 조문객들로 시끌벅적한 다른 빈소와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한 달을 지나면서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것 아닌가" 싶은 의문에 김명복 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고인의 직장 동료들 가운데 대부분은 애초부터 조문을 오지 않았다는 게다. 김 씨는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삼성 조직 문화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사람이 드문 장례식장. ⓒ프레시안(성현석)

"삼성, '오늘 조문 몇 명 갈 것' 통보하고 감시자 붙여"

김 씨는 "삼일장을 치르기 전에 같이 일한 동료 서너 명이 왔지만 그들의 옆에는 삼성 측 인솔자가 함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료들은 눈치만 보다가 인솔자 지시에 바로 가버리곤 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심지어 삼성 인솔자는 '오늘 몇 명이 갈 것'이라고 전화로 미리 통보하고 조문객을 보낸다"고 말했다. 직장 동료들은 기계적으로 왔다가 쫓기듯 떠나곤 했다는 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료들은 오고 싶어도 마음 편히 장례식장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현이가 평소에 '형'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직원이 다른 삼성 인솔자와 대동 돼서 조문을 왔어요. 분향을 마치고도 바로 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했습니다. 제가 갈 거냐고 물으니, 옆에 있던 인솔자가 팔뚝을 툭 치며 "빨리 가야지"라고 하더군요. 아들이 죽기 직전에 아들과 문자를 나누고 30분 동안 대화할 정도로 친한 친구였는데, 그 친구와 말 한마디도 못해봤습니다. 주현이와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다른 동료 한 명은 회사의 감시를 피해 몰래 와서 말없이 울고만 가더군요."

故 김주현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 1월 11일부터 유족들은 생업도 그만둔 채 장례식장에 눌러살게 됐다. 세수와 세탁은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해결했다고 한다. 김명복 씨는 "생계는 집어치워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죽음에 대한 의혹을 알아야 부모로서 지은 죄를 사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검은 잠바 입은 삼성 직원 30명 기숙사 복도서 유족 감시"

김 씨는 "처음부터 삼성이 과실을 사실대로 인정했으면 (이 싸움을)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삼성이 사과했다면 유족들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 측 직원은 유족들에게 사태를 빨리 덮을 것을 권유했고, "장례를 치르는 데 시간을 끌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그러한 사측의 태도에 화가 났다.

"삼성은 뭔가 계속 조급하게 행동했어요. 제가 보기에도 사태를 빨리 마무리하려는 듯 보였죠. 일개 직원이든 윗사람이든 조문객을 비롯해 만나는 삼성 직원마다 장례를 종용했습니다. 그렇게 서두르고 달라붙어 삼일장을 강요할 때 오히려 의심스러웠죠. 뭔가 숨기는 게 있구나. '내가 뭘 더 잃을 게 있나' 하는 생각에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삼성전자 천안사업장에서 일인 시위하는 김명복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이러한 이유로 김명복 씨는 이날 오전에도 어김없이 삼성전자 LCD 천안 공장 정문 앞에 섰다. 아들이 일하던 공장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해가 뜨기도 전에 대형버스 수십 대가 분주히 오가며 삼성 노동자들을 실어 날랐다. 김 씨가 정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직원 여섯 명이 나타났다. 일인 시위 현장에서도 감시 직원들이 자신과 삼성 노동자의 접촉을 막는다는 김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어제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가 제 옆에 사탕, 음료수, 과자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놓고 가더라고요.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경비 서너 명 중 한 명이 급히 그를 제지하러 쫓아가더군요."

대화가 이어지던 중에도 한 여직원이 기자가 가는 곳마다 따라왔다. 사진을 찍으러 정문 가까이 다가가자 해당 직원은 기자를 제지하고 나섰다. 다른 남자 직원은 "여기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며 카메라를 막아섰다. 이날 연대 일인 시위를 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평소에는 남직원만 정문을 지키지만, 연대 일인 시위하는 사람 중에 여자가 있으면 삼성 측이 꼭 여직원을 보낸다"고 귀띔했다.

'철통 경비'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 씨는 "아들이 뛰어내린 기숙사를 방문했을 때 검은 잠바를 입은 삼성 직원 20~30명이 양 복도에 죽 서 있고, 유족들이 복도를 다니면 그중 두세 명이 붙어 따라왔다"고도 했다.

"방진복 입은 모습 자랑스러웠는데…붉은 반점에 문드러진 살"

김 씨의 근로 환경이 어땠기에 삼성은 철통 경비를 하면서까지 가족들에게 "김 씨의 죽음을 조용히 덮으라"고 종용한 것일까. 김주현 씨는 LCD 공장의 클린룸 칼라필터 공정을 맡았다. 방진복을 입고 갖가지 위험한 화학약품을 다뤘다고 한다.

김명복 씨는 "예전에는 텔레비전에서 방진복을 입은 모습이 나오면 자랑스럽고 대단하고 멋있게 보였다"며 "방진복을 입고 일한다니 우리 아들도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아무나 못하는 (첨단 기술이 필요한) 일을 하는 멋진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아들이 "내가 생각했던 삼성과 다르다"라고 했을 때 김명복 씨는 "처음이라 적응을 못 해서 그런 거니 견뎌보라"고 아들을 달랬다. 그런데 아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강도가 점점 높아졌다. 회사에서 방진복을 입고 일한다던 아들이 집에서 옷을 벗자, 온몸에는 붉은 반점이 있었고, 발등에 살은 문드러져 있었다.

유족들은 근로계약서에 적힌 '주5일제, 하루 8시간 근무'도 허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주현 씨는 하루에 14시간, 많게는 16시간까지 휴일도 없이 명절과 주말에도 일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누나 김정 씨는 "삼성에 가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가지 말라고 뜯어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이 죽고서야 기숙사를 방문해 본 그는 "겉만 번지르르하지 안에 들어가면 보는 사람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기숙사 한 호를 9명이 나눠 쓰는데 퀴퀴한 냄새가 심하게 났어요. 먼지가 굴러다니고 변기가 시커멨죠. 예전에 주현이가 기숙사에 사막같이 먼지가 굴러다닌다고 해서 제가 청소하라고 했더니 '자기가 청소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화를 내더라고요. 복도에는 정수기가 하나 있는데, 한 층에 72명이 정수기 하나를 나눠 썼어요."

김명복 씨는 "우리 집 크기가 네 식구 살기에 좁은 편이어서 '기숙사 생활하면 호텔 같아서 좋겠다'고 했더니 아들이 아무 말도 안 하더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기숙사에 들어갔더니 수용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한 호에 방이 세 개, 한 방에 침대가 세 개였는데, 침대 세 개를 나란히 놓으니 다니기가 비좁아 보였다"고 회상했다.

▲ 김주현 씨가 지냈던 기숙사. 기숙사에는 한 호에 방이 3개였고, 한 방에는 침대가 3개씩 놓여 있었다. 한 층에는 72명이 거주한다. ⓒ김정

아들이 살아 있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을 묻자 故 김주현 씨의 어머니 박정숙(가명) 씨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박 씨는 "아들이 그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들 줄 몰랐다"며 "(회사가 아들을) 얼마나 들볶았는지, 밥 먹다가도 호출되고 잠잘 시간도 없고…. 그 사실마저 아들이 죽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어머니는 15년 동안 청소 노동을 하며 아침 10시 반에 나가서 자정에야 집에 들어왔고, 아버지는 학원 차를 운전하며 오전 6시 20분에 나가서 새벽 1시경에 들어왔다고 한다. 김명복 씨는 "가족들이 모두 힘들게 일하니 아들이 철이 일찍 들었다"며 "자라오면서 부모에게 얼굴 붉히는 일을 한 번도 안했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겪는 고통을 가슴에 삭혀왔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 아들이 오죽했으면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을까 싶다"면서도 "조금만 일찍 진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회사로 돌려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가슴을 쳤다.

"주현이 죽기 일주일 전에 다른 삼성 여사원이 기숙사에서 투신했었다는 사실을 장례식장에 와서야 알았어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죠. 아들 죽기 전에 기숙사에서 투신한 삼성 노동자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언론에 보도됐으면 우리 아들이 회사 가기 싫다고 했을 때 절대로 회사로 안 보냈을 겁니다."

"국가기관이 삼성의 한 부서 같았다"

김명복 씨는 아들이 죽기 전까지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김 씨에게 시위하는 사람들은 '사회나 정부에 반하는 사람들'이었고, 노동조합은 '배부른 소리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경찰·언론·삼성은 그를 '투사'로 만들었다. 김 씨는 "경찰, 노동지청에 항의 방문을 하고 근로감독관과 대화를 나눠 봐도 국가기관이 삼성의 한 부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들이 응당해야 할 직무에도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경찰에 대한 유족들의 실망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삼성도 삼성이지만 경찰이 공정하게 수사를 하지 않으니 힘들었죠. 경찰까지 그러니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경찰은 유족들이 요구하는 자료를 보여주기 싫으면 '말해줄 수 없으니, 억울하면 정보공개를 청구하라'는 식이었습니다.

경찰에게 아들의 영상이 담긴 기숙사 CCTV를 보여 달라고 했더니 처음부터 편집한 짤막한 영상만 보여줬어요. 의혹이 생겼죠. 항의하면 조금 더 보여주고 또 항의하면 조금 더 보여주는 식이었습니다. 겨우 CCTV 하나 확인하는 데도 열흘이 걸렸습니다."

박정숙 씨는 "사고가 났다고 해서 달려갔더니 삼성은 자기들끼리 빈소를 다 마련해놨고, 경찰은 이미 사망신고서까지 떼어왔다"며 "아들이 죽은 지도 모르고 내려왔는데, 삼성·경찰·병원이 짜맞춘 듯 일사불란하게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김 씨는 "노동자가 하소연할 데가 없다"며 "아들이 죽고 나니 산업체에는 노동조합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뒤늦은 후회를 해봐도 아들은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있었다. 김 씨는 "지난달 초에 소꼬리를 사서 아들에게 명절에 곰탕을 끓여주려 했었다"며 먹먹해했다.

"주현이 죽음 막을 수 있었다"

"살릴 수 있었는데, 살릴 기회 많았는데…"

故 김주현 씨의 어머니 박정숙 씨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사건 당일 김주현 씨가 수차례 투신을 시도했는데도 삼성 측은 그런 김 씨를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 씨는 "단 10분이라도 관리자들이 아들과 같이 있어주면서 아들을 달래고, 가족들에게 연락이라도 해줬으면 비행기라도 타고 왔을 것"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삼성은 사망 후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들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사측이 아들의 죽음을 쉬쉬하는 사이 박 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버스를 타고 달려오면서 제발 숨만 붙어 있어달라고" 빌고 또 빌어야만 했다.

아버지 김명복 씨는 "기숙사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니 보안 직원은 뛰어내리려는 아들을 붙잡아 기숙사에 놓고 1분 만에 나왔다"고 말했다. 김 씨는 특히 "보안 직원들이 아들을 죄인 다루듯이 엘리베이터에서 끌어 내리는 모습을 보고 분노가 치밀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고인의 시체검안서와 응급의료센터 임상기록에는 "우울증", "suicide(자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함(구조대 진술)" 등의 문구가 있다. 삼성 측 역시 고인이 자살할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삼성 측은 이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 씨는 삼성 직원과의 면담 자리에서 "당신들의 목숨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들 목숨도 중요하다.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목숨이 다 중요한데 어떻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을 말리지 않고) 방치하느냐"고 따졌다.

그는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진실인데도 삼성은 유가족과 협상해 사건을 덮어버리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삼성 측이 공개 사과를 할 때까지 발인을 미루겠다는 입장이 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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