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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취업자 80%가 비정규직, 홍대 사태는 새로운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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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취업자 80%가 비정규직, 홍대 사태는 새로운 분기점"

[인터뷰]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홍익대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 16일째인 18일 오후 하종강(56)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 농성장을 찾았다. 반평생이 넘게 노동상담가로 살아온 하 소장은 고령의 나이에 처음 노동조합을 만든 노동자들을 향해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쉬운 말로 1시간 30분가량 풀어냈다. 강의가 끝난 뒤 하 소장과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프레시안: 연대 차원에서 농성장을 찾은 이들은 많았지만 강연은 처음이었을 텐데. 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나.

하종강: 고령이라 글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 처음엔 몰랐지만 화면에 띄운 글씨가 작으면 잘 읽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 학습 경험이 많이 않기 때문에 최대한 쉽게 설명하는 게 관건이다. 여기뿐만 아니라 지역 일반노조에는 그런 분들이 많다.

프레시안: 주로 어떤 내용을 강조하나?

하종강: 이들이 하는 싸움이 사회 전체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현장을 가보면 당사자들이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일종의 자격지심이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당사자들에게만 유리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프레시안: 그런 내용에 동감하는 이들이 많나.

하종강: 나중에 파업이나 농성을 끝낸 이들을 만나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청소 노동자 같은 직종에서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하는 대답이 많다. 애초에 계획했던 임금이나 복리 후생 등의 성과를 얻지 못한 경우에도 그렇다. 그래서 처음부터 개인의 문제 차원에서 보지 말고 사회 전체의 눈으로 바라보자는 말을 강조하는 편이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는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무심한 건…"

프레시안: 홍대 사태에 예상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계층에서 연대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다고 보나.

▲ 18일 서울 마포 홍익대학교 본관 농성장에서 강의 중인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프레시안(김봉규)
하종강:
아무래도 총학생회가 초기에 취한 입장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일종의 '무지의 소치'였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선한 이들을 자극한 셈이 돼 연대 단위가 커졌다. 사회 전반으로 봐도 청소 노동자들의 싸움이 빈번해지면서 관심이 높아진 측면도 있다. 시기상으로는 이제 막 대학에서 사회로 배출된 이들이 직장 구하려 노력하는 때인데 고용 문제가 눈에 더 잘 들어온 배경도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총학생회가 화제가 됐는데, 그들이 '외부세력'을 언급하거나 학습권을 생존권 앞에 내세웠던 모습에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종강: 샤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봐도 관계없는 문제에 관계하는 게 지식인의 책무라고 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지녔다는 한국 대학생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제로'인 건 한국 근현대사가 가져온 특이성 때문일 것이다. 분단체제에서 군사독재를 거쳐 오며 자본주의가 정착되다보니 파행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자유주의로 평가받는 것들이 한국으로 넘어오면 진보주의로 둔갑하는 시대다. 경쟁의 끝에 내몰려있는 상황에서 이런 학생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그럼에도 최근 몇 년간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청소 노동자가 연대해 벌이는 싸움이 더 많았다. 비정규직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건데.

하종강: 2004년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비정규직 비율을 줄여야 한다고 권고한 적이 있다. 당시 신규 취업자의 70%가 비정규직이었는데 지금은 80%까지 늘어났다. 가장 보수적 경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IMF가 한국에 비정규직을 줄이라고 권고한 건 일종의 코미디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일반적인 시장경제구조에서 벗어난 것이다.

지금까지 싸움은 학생들의 참여 정도가 사태 해결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하지만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피터 다이아몬드 MIT 교수 등이 지적한 것처럼 정부 정책으로 비정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간접고용 실태에 대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그 핵심은 뭔가?

하종강: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진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파견법에 2년 이상 일하면 상시적인 업무로 간주해 직접 고용의 책임을 진다고 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고용 형태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하지만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불가피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혹자는 '경제 염려증'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마치 비정규직이 필수불가결한 것처럼 인식됐다. 비정규직이 없으면 경영을 할 수 없는 한계기업들이 '문 닫으라는 소리냐'고 반발하는 거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을 적용하는 국가들이 드는 이유도 경쟁력이다. 인건비 절감 이외에 경쟁력을 상실한 한계기업들을 빨리 퇴출시키는 게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한국은 국내총생산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노동소득 분배율은 낮은 점이 취약점으로 꼽히는 나라다.

ⓒ프레시안(김봉규)
프레시안: 혹자는 최근의 비정규직 운동을 보며 노동 운동의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는 게 아니냐고 한다.

하종강: 비정규직 싸움이 노동 문제의 화두로 떠오른 건 맞다. 하지만 그것이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의 운동이 잘못되었다는 논리로 흐르는 건 맞지 않다. 정규직 노조에도 건전한 사고를 하는 이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정규직 지부의 비정규직 지원 총파업 투표가 부결됐지만 찬성표가 30%를 넘었다. 다수는 아니지만 건전한 세력을 만들기에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비정규직과의 차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득권층이 됐지만 정규직들이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위해 싸우는 게 부당한 건 아니다. 게다가 스스로 자신들의 노동 권리를 양보하라는 건 반사회적인 요구다. 다만 현재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노동 조건이 너무 많은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가 더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된 것이다.

한편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선 것과 시민사회가 이에 연대하는 모습은 앞으로 운동 방향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될지 제시한 측면이 있다. 한국만의 사례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최근 역사상 최대 규모로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미국 노총이 주관한 집회가 아니라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생성된 네트워크를 타고 모인 것이다. 주로 히스패닉과 불법체류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우리 식으로 말하면 비정규직이다. 홍대 사태에 SNS가 기여하는 바가 큰 것과 같다.

프레시안: 끝으로 이번 홍대 싸움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하종강: 기대라기보다는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어야 키를 쥐고 있는 저쪽에서 다음부터 이런 싸움이 발생하지 않게 미연에 조치를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따라 향후 1~2년 동안의 노동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걸 노동 진영만 알고 있는 건 아니다. 학교 측에서도 밀리면 다른 사업장에 큰 여파를 미칠 것을 알고 있다. 자본, 정치 권력 쪽에서도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다들 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욱 활발한 운동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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