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몇 번을 깼는지 몰라. 난방이 안 되니 후원해준 전기장판 깔고 침낭 뒤집어쓰고도 서로 꼭 부둥켜안고 잤지만 몸이 벌벌 떨리더라고. 전기장판도 다 쓰면 과열돼서 차단기가 내려가니 다 쓸 수도 없었고…. 낮에도 안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공기라도 쐴 겸 밖에 나가도 1분도 못 버티고 다시 들어왔어요."
홍대에서 약 1년6개월 동안 경비 노동자로 근무한 이 모(58) 씨가 본관 로비에서 흰 입김을 뿜었다. 이 씨는 부인과 함께 서울 마포 망원동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이 늘어나면서 형편이 어려워졌고, 이 씨는 부인에게 슈퍼를 맡기고 일감을 찾다 홍대로 왔다.
"구청에도 가서 대형마트 규제해 달라고 싸워보기도 했는데 잘 안됐어요. 3~4년 전만 해도 주택 청약 정도는 넣고 살 정도였는데, 이젠 그게 아니더라고. 분가한 자식 둘이 한달에 용돈 20만 원을 부치는데, 쓰자니 큰돈이 아니고 해서 적금에 넣고 있어요. 나중에 필요할 때 주려고. 살 방도가 있을까 해서 여기로 왔는데, 이렇게까지 열악할 줄은 몰랐어요."
이 씨는 해고당하기 직전까지 한 달에 약 89만 원의 임금을 받았다. 기본급에 약 10만 원의 야근 수당을 합한 숫자다. 이 씨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활임금 보장과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달 초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학교 측은 이들이 고용되어 있는 용역업체에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 청소·경비·시설관리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을 15일째 이어가고 있는 서울 마포 홍익대학교 본관 입구에 걸린 대형 걸개 그림. ⓒ프레시안(김봉규) |
"홍대, 현 상황 개선할 최소한의 의지도 안 보여"
ⓒ프레시안(김봉규) |
공공노조 관계자는 이를 "사실상 학교 측이 선을 그은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학교 측이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를 거부하고 나선 게 지난달 초 노조 결성 직후다. '노동 조건 개선'보다 '노조 설립'이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고발당하지 않은 조합원들에게 복직을 미끼로 노조를 탈퇴하라는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숙희 분회장이 회견장에서 "지금까지는 몸으로 하는 싸움이었지만 앞으로는 머리로 하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진행 상황으로 볼 때 새로 용역업체가 선정돼도 열악한 노동 조건이 나아질 여지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박명석 공공노조 서경지부장은 홍대 측이 용역업체 선정을 위한 설명 자료를 공개하며 "이에 따르면 공개입찰에 참가한 용역업체가 청소 인원을 정하도록 되어 있다"며 "사실상 가장 적은 인원으로 도급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업체를 선발하겠다는 것이고 최저가 입찰을 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홍대 측이 설명서에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것도 최근의 추세를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공노조는 용역업체 선발시 고용 승계를 명시한 연세대, 주성대, 서울대, 성신연대, 부산대 등의 합의 내용을 공개하며 "다른 대학들이 노조와 고용 승계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과 달리 홍대 측은 지금의 상황을 개선할 최소한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한 해고 노동자가 1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낭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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