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홍대 본관에 가득한 '복수의 청국장' 냄새, 이유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홍대 본관에 가득한 '복수의 청국장' 냄새, 이유는?

[현장] 농성 9일째 접어든 홍대 비정규직들의 하루

11일 오후 서울 마포 홍익대학교 본관 1층 총무처에 청국장 냄새가 그윽했다. 사무실 구석구석 자리를 깔고 앉은 이들이 1회용 숟가락을 부지런히 놀렸다. 사무실 밖 로비에는 생강차 향이 구석구석 퍼지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굵은 눈발이 날렸다.

"쉬는 데라곤 계단 밑이나 정화조 위 공간 같은 곳 밖에 없었어요. 항상 곰팡이가 슬어있고 좁기는 어찌나 좁던지. 거기서 밥하고 국이라도 끓일라치면 교수들이 나와서 혼내곤 했어요. 냄새 풍긴다고. 그래서 요새는 그동안 못 먹어봤던 국 맘껏 끓어요. 저번엔 고등어 자반도 부쳤는데 오늘은 없네?"

이날 청국장은 홍대 청소 노동자들이 학교 측에 보내는 작은 '복수'다. 지난 3일부터 본관 1층을 점거하고 시작된 홍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이 이날로 9일째를 맞았다. 학교 측의 침묵, 총학생회와의 갈등에도 지친 기색은 없다. 여느 농성장과 달리 먹을 것도 풍족하다. 농성장 한 편에 쌀과 컵라면, 비타민 음료가 수북하다. 이들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보내준 연대의 뜻이다.

중학생도 아는 '상식', 학교만 모르나?

이날은 공공노조와 학생·시민단체가 뭉쳐 만든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단'이 홍대 정문 앞에서 선전물을 나눠줬다. 홍대 노동자들은 캠페인단과 함께 선전물을 한 아름 안아 들었다. 한 경비 노동자는 마이크를 잡고 "법과대, 공과대, 건축대, 미술대, 문과대, 경영대…저희들을 도와주세요. 간절히 호소합니다"라며 학과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했다.

ⓒ프레시안(김봉규)

일주일 이상 농성이 진행된 탓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며 스쳐 지나간 이들도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부스에 설치된 피켓에 응원의 메시지를 적기도 했다. 대학생만이 아니었다. 홍대 사범대학 부속여자중학교에 다니는 김 모(16) 씨도 피켓에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좋은일만 있길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김 씨는 "'홍대 할머니' 이야기는 중학교에서도 조금씩 알려져 있다"며 "많은 돈도 아니고 한 달에 75만 원 주면서 올려달라니 해고한다는 건 말도 안되요"라고 말했다. 이 학생은 "자신이 일하는 대가를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청소를 하면 최소한 지금의 2배는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그것도 적죠"라며 한동안 정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프레시안(김봉규)

선전물을 다 나눠준 노동자들은 이번엔 관리 사무실로 몰려갔다. 140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단번에 해고한 학교 측이 두배의 임금을 주고 30여 명의 대체 인력을 고용한 데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약 5분간 사무실 앞에서 책임자를 불렀지만 아무런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추위를 뚫고 농성장으로 돌아온 이들은 '복수의 청국장'을 먹고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했다. 일주일이 넘는 농성에 몸은 괜찮냐고 물으니 한 청소 노동자가 대뜸 웃옷을 들어 배와 등, 옆구리에 붙어있는 파스를 보여줬다. 옆에 있던 이는 심지어 발에도 파스를 붙였다. 고령의 노동자들이 전기히터와 침낭으로 밖에서 잔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되다.

ⓒ프레시안(김봉규)
홍대에서 13년째 청소를 하다 해고당한 임 모(63) 씨는 "안 아픈 데가 없지만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될 것 같다"며 "오히려 나와 있으니 입맛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웃는다. 그가 "아마 '동지'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니 주위에서 쑥스러운 웃음이 터졌다.

"홍대가 예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메아리 없는 싸움을 지속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건 '외부세력'의 연대다. 이날은 홍대 출신의 만화가와 미술학부 학생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청소 노동자의 모습이 담긴 대형 걸개를 제작했다. 만남을 주선한 이는 '용산 참사'를 그린 만화 <내가 살던 용산>(보리 펴냄)을 기획한 만화가 김홍모(41) 씨. 트위터를 통해 홍대 노동자들을 돕자고 나섰고 동료와 후배들이 손을 내밀었다.

이날 파주에서 홍대로 달려온 김 씨는 "요새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만화를 준비하고 있어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모교 소식을 듣고나니 열불이 나서 가만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홍대가 예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지금은 교직원 노조도, 교수들도 침묵하고 있는게 씁쓸하다"며 "게다가 노동자들을 도운 학생들을 징계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프레시안(김봉규)
트위터는 '외부세력'이 가진 강력한 무기다. 언론 보도의 빈도와 상관없이 트위터리안들은 현장과 이어져 스스로 소식을 전하고 연대 계획을 짠다.

이날 장성기 공공노조 사무국장은 이숙희 홍대분회장에게 날아온 괴문자 "잘난척 설쳐대봐야~ 넌 짤리게 돼있어. 소장도 해고 돼잖아!! 넌 주동자라서 해고 1순위래 실업자야"를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홍대 졸업생들은 14일 저녁 정문 앞에서 사태 해결 촉구를 위한 '촛불 번개'를 트위터로 알리고 있다.

지지 방문을 온 이들을 반기기도 하고, 캐리커처의 모델로도 나서던 노동자들은 다시 오후 4시에 예정된 결의대회를 위해 여장을 싼다. 목도리와 장갑은 물론 깔판과 손난로도 필수다. 영하 2도의 추위 속에도 이들은 정문 앞에 주저앉았고, 곧 연대한 1000여 명의 공공노조 조합원들과 조우했다. 집회가 2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동안 추위가 온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지만 이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동네북' 총학생회, 입장선회?

이날 결의대회에서 발언에 나선 김종범(25) 사범대학 학생회장은 총학생회가 '외부세력' 발언을 철회하고 민주노총 등과 함께 사태 해결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발언을 끝낸 후 기자들에게 "어제 학생 간담회 이후 연 확대운영위에서 총학생회가 그동안의 비판을 받아들였다"며 "조만간 사태 해결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성명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총학생회가 '외부세력'이 사태 해결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며 학교 측과의 대화를 더욱 힘들게 만들어 온 만큼 분명 희소식이었다. 그의 발언은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총학생회의 입장은 유보적이다. 김용하 총학생회장은 전화통화에서 "(사실 확인에 관한 부분은) 성명서가 나온 뒤 확인해 달라"고 말했다. 비대위가 언제 꾸려지는지, 성명이 언제 발표되는지에 대해서도 결정된 바가 없다고 했다. 10일 열린 간담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총학생회의 처신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 상황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