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 그래서 돈 많이 받은 거 아니야?"
몇 백 퍼센트나 된다는 삼성의 성과급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도리어 묻고 싶어진다.
"얼마의 돈을 주면, 당신이 암에 걸리고 불구가 되고 자식이 기형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수하고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의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수년 전보다 현저히 낮아진 임금과 작업환경 때문이다. 얼마 전 구로공단에서 만난 40대 중년 여성은 핸드폰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을 한다. 그녀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임에도, 3개월짜리 단기파견직이기에 아르바이트라 불린다. 핸드폰 부품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2초마다 내려온다. 처음에는 까맣게 멍이 들던 손톱이 3개월 후에는 빠져버렸다. 그렇게 한 달을 일해 그녀가 받은 돈은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150만 원 받는 노동자는 팔이 부러져도 될 거 같고, 200만 원 넘게 받는 노동자는 어디 큰 병이 나도 괜찮게 여겨지는 게 아닐까. 형편없어진 노동환경을 돌이켜 본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물었다. 삼성반도체에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 어떤 작업 환경에서 일을 했는지를. 과연 자신의 나머지 생을 저당 잡힐 만큼 괜찮은 대우를 삼성에서 받아왔는지를 말이다.
사람에게 유해한 청정산업
사람들은 흔히 '반도체 공장'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하는 실험실 같은 풍경을 떠올린다. 모든 게 하얗고 정갈해 보인다. 실제로 반도체 클린룸은 청정하다. 어떤 먼지도 허용하지 않는다.
"먼지를 파티클(particle)이라 하는데 보통 반도체 클린룸에 파티클이 2클래스정도예요. 2클래스가 뭐냐면 1m 부피 안에 먼지가 하나 들어있는 거예요. 그러니깐 먼지가 하나도 없다는 거죠."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설비 엔지니어로 일한 김기영 씨(그는 웨게너씨 육아종이라는 희귀병에 걸렸으며, 올해 5월 산재신청을 했다)가 작업환경을 말해준다. 먼지는 반도체 제품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작업장 내 먼지는 철저하게 통제된다. 노동자들은 클린룸에 들어가기 위해 에어샤워를 하고 방진복으로 몸을 감싼다.
클린룸 시설로 인해 반도체 웨이퍼는 "청정"해진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에게 클린룸은 '클린'하지 않다.
"웨이퍼가 깨끗한 정도는 먼지가 없다, 적다로 판단하거든요. 그건 웨이퍼를 기준을 한 거고요. 웨이퍼를 약품에 담구는데 그 약품들을 보면 황산, 불산, 그런 게 많아요. 웨이퍼가 사람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더러운 거예요. 화학약품에 웨이퍼를 담궜다 뺐다 하니까 화학반응 일으키고 그걸 흡입하는 건 사람이죠."
반도체 제조는 화학약품 산업이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화학약품이 공정 한 라인에서만 99종이라고 한다(서울대 자문보고서를 통해 밝혀진 기흥공장 5라인에서 사용된 화학약품 수에 근거했다) 우리가 화학약품이라고 하면 흔하게 떠올리는 벤젠, 아세톤, 염산, 황산 등도 유해성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는 수백 개의 화학약품 중 어떤 위험 물질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반도체 공정에서 오퍼레이터(생산직) 여성들은 위험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관리자가 와서 받지도 않은 안전교육을 했다는 내용의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하고(정애정, 기흥공장), 안전교육 시간에 생산량과 신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이윤정, 온양공장).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6년을 일한 후,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씨에게 물었다.
"한 번도 위험하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삼성은 좋은 회사이니까, 당연히 그런 (위험한) 거 안 쓰겠지 생각했나 봐요."
오퍼레이터 노동자들은 안전에 대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화학약품에 대한 정보도 알지 못했다. 그녀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초반의 여성들이다. 어린 그녀들은 무지 속에서 일했다.
그리고 '이유 없이' 아팠다.
산재라는 걸 알고 있어…
"3라인에서 여사원들 두 명이 죽었잖아요. 백혈병 걸려서. 그 작업장을 보면 화학용기 액체에 웨이퍼를 담궜다 빼요. 화학용기 통이 뚜껑이 없는 상태에요.
그게 무섭다는 건 아는데, 그 상황에서 안 쓸 수는 없거든요. 황산이나 불산 같은 거는 '저거 가까이 하면 고자가 된다' 그런 식으로 엔지니어들끼리 이야기하고 그랬거든요. 그래도 저게 위험하다, 저거 뚜껑 있어야 된다, 이렇게 얘기 할 수는 없었어요. 설비를 바꾸는 데 돈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위험할 텐데 하면서도 회사에서 쓰는 거니까 안전하겠지, 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 거죠."
김기영 씨가 말하는 3라인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여사원 두 명은 故 황유미, 이숙영 씨다.
"그럼 엔지니어들은 유미 씨하고 숙영 씨 죽음이 산재라는 걸 알고 있었겠네요?"
그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을 원망할 수 없었다. 그들은 더한 위험에도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는 한낱 노동자였다. 공정에서 화학가스가 누출되거나 설비 공정이 문제를 일으킬 시에 투입되는 건 엔지니어, 그들이었다.
가스 누출 시, 코로 냄새를 맡아 찾아
지난 9월, 삼성반도체 가스 누출 문제가 서울대 자문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6개월간 한 라인에서 46회나 가스검지기 경보가 울렸다. 그러나 실제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고 한다. 기흥공장에서 공정 엔지니어로 일했던 이수혁(가명) 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스 누출이) 더 빈번하죠. 위에서 문책 당할까봐 숨기는 것도 많고. 사소한 거는 보고도 안 되고."
"얼마나 빈번했나요?"
"그거야 뭐 이루 말할 수 없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러기도 했고. 정확하게 모를 거예요. 라인도 오래되고 설비도 오래 쓰다보니까. 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10년 이상 끌다보면 똥차죠. 끌고 가지도 못해. 똑같은 거예요. 아무리 관리한다고 해도 노후화는 막을 수 없는 거죠. 처음에는 괜찮죠. 그런데 쓰다보면 고무 같은 게 부식이 돼서 틈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럼 누출이 되는 거죠. 기계가 오래되니깐. 반도체 기계가 엄청 비싸거든요. 그러니까 멈출 때까지 쓰는 거죠."
"가스 누출을 막는데 시간은 어느 정도 걸렸나요?"
"시간을 특정할 수 없죠. 사실은 뭐 하루 종일 냄새가 나도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여사원(오퍼레이터)이 전화를 해가지고 '선배 냄새가 나는데요, 우리 쪽 아닐까요?' 그러면 '무슨 냄샌데?' 물어요. 그럼 그쪽에서 풍부한 상상력으로 설명을 해줘요. 그럼 듣다가 '우리 거 아닌 거 같은데?' 그러기도 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깐 우리 거야. 그런 경우도 많았어요. 하루 종일 방치되거나 그런 일이 많았죠."
"가스경보기가 안 울리나요?"
"있긴 있는데요. 모든 가스에 경보기가 울리는 건 아니에요. 간이 디텍터(detector) 같은 검지기가 있어요. 가연성 물질이라든지, 독성가스 이런 거는 측정이 되는데… 그 중에도 측정이 안 되는 게 있어요. 참 곤란한 거죠. 냄새가 나면 오히려 나아요. '아, 가스가 새는구나' 알잖아요. 근데 무색무취 냄새가 안 나는 것들이 있어요. 그럴 땐 답이 없죠."
"가스 누출을 점검하러 갈 때 보호장비는 착용하나요?"
"보호장비요? 쓰고 있던 마스크도 아래로 내리고 찾아요. 대부분 직접 냄새를 맡아 찾아야 하니까."
"몸에 해로운 가스도 있을 텐데요?"
"있죠. 디보란이나 포스핀 이런 거 많이 썼는데요. 포스핀 같은 경우는 옛날에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에서 썼던 독가스 있잖아요? 그거예요. 디보란도 유해하고요(호흡기 자극, 폐수종, 폐렴, 기관지에 영향을 일으키는 독성물질로 반복적으로 노출할 시에는 신경계 중독이 나타난다). 그거 말고도, 부산물로 나오는 것들은 가스 성분도 몰라요. 서로 섞여 있기 때문에 어떤 성분인지도 모르는 거예요."
"누출되면 점검하러 들어가기 싫었겠어요."
"그런 데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가 마루타냐, 저희끼리는 그랬죠.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일단 해결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또 워낙 빈번하게 일어나니깐 무감각해지는 거죠. 처음에는 쇼크를 받지 않습니까? 그런데 계속 쇼크를 받으니깐 나중에는 '당연히 그런 거 아냐?' 이렇게 되는 거죠."
"안전수칙에 대한 이야기는 안 나왔나요?"
"사고 대책이나 이런 걸 고민하긴 해요. 수칙을 바꾸고 새로 정하기도 하고 그래요. 하기는 하는데…."
그는 말을 쉬었다. 잠시 무얼 생각하는 듯 했다.
"모든 게 다 생산. 생산을 어떻게 할 거냐, 이 말에 무로 돌아가요. 이런 식으로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놓으면 생산이 빨리 안 되니까. 근본적인 문제는 생산성을 너무 올리려고 하다보니깐 위험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게 되는 거죠. 문제가 일어나도 '조용히 해 조용히 해'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 거죠."
'나노'보다 가벼운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
성과급으로 생산량을 독려하는 관리자들, 벽에 붙은 조별 생산량 비교표, 설비가 멈추기라도 하면 엔지니어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오퍼레이터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이 모든 모습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이 제보해준 내용이다.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04년 백혈병으로 숨진 故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씨. 그 역시 같은 공장에서 10년 동안 일했었다. ⓒ프레시안 |
"성과급이나 인사고과가 얼마나 많은 물량을 뺐는지로 결정이 되잖아요. 그런데 작업이 기계로 하는 거라 매뉴얼대로 하면 누가 더 빨리 하고 이런 게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매뉴얼대로 못하는 거예요. 잠금 장치가 있어도 수동으로 풀어가지고 기계 꺼지지도 않았는데도 제품을 꺼내고. 그래야지 옆의 동료보다 하나라도 더 물량을 빼니까."
관리자들의 제재는 없었다. 오히려 관리자들은 물량을 독촉함으로서 이를 용인했다. 그들은 위험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제외됐다. 잠금장치, 보호장비, 안전수칙이 제외됐다. 결국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제외된 것은 노동자들의 건강이다.
그/녀들은 열심히 일했고, 인사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을 뿐이다. 회사가 알려주지 않은 것은 몰랐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어도 남의 돈 받는 처지에 싫고 좋고를 따질 수 없었다. 그리고 백혈병, 루게릭, 뇌종양, 흑색종에 걸렸다. 죽고, 병들고, 남은 인생을 견디고 있다.
정애정 씨는 사내커플이었던 남편을 백혈병으로 잃었다. 그녀가 추모제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반도체 청정 라인의 주연은 웨이퍼이고, 조연은 현장 노동자입니다. 웨이퍼 작업사고가 나면 원인을 밝히기 위해 비상근무에 돌입하지만, 작업자가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은폐하기에 급급하기만 합니다."
330g도 되지 않는 반도체 웨이퍼보다 더 가벼운 그/녀들의 건강할 권리는 언제쯤이면 존엄의 무게를 획득할 것인가. (☞반올림 온라인 카페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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