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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는 왜 '건강보험 하나로'에 반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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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는 왜 '건강보험 하나로'에 반대하나"

[복지국가SOCIETY] "문제는 행위별수가제다"

지난 7월 17일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건강보험 하나로')가 출범했다. 8월부터 '건강보험 하나로'는 향후 풀뿌리 사업을 책임질 지역모임을 꾸려나가게 된다. 아무쪼록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무상급식에 이어 보편적 복지의 역사적 물결을 만들어 나가길 고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책임 있는 조직과 단체들이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 주부, 여성 활동가, 환자단체 회원, 생활협동조합 회원, 의료인, 언론인, 정치인, 지식인, 노조활동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1300여 명의 '건강보험 하나로' 출범 발기인들의 면면을 보면, 이 운동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의협, '건강보험 하나로'에 반대 입장 정해

그런데 최근 실망스러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대한의사협회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반대하는 내용의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대한 대한의사협회 입장"이라는 내부 보고서를 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지난 6월 뉴라이트 인사들과 의료인들이 참여하는 '의료와 사회 포럼'이라는 단체가 '건강보험 하나로'를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는 보도에 이어, 이번에는 의료계의 대표적인 법정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반대 입장을 정했다는 것이다.

의협은 자신의 입장을 담은 보고서를 외부에 밝힐 예정이었지만, 불가피한 갈등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기로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협의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대한 반대 입장은 이 보고서를 입수한 한 의료 전문지를 통해 이미 보도되었다. 보도에 의하면, 의협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비판하고 있다. 필자는 의협의 이러한 입장이 현재 우리나라 보건의료체제의 문제점을 진취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을 거스르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에, 필자는 의협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기대하며, 의협이 제기한 주요 논점에 대해 의견을 밝힌다.

필요보험료 금액, 입원 중심 병원비로 추계된 것

첫째, '건강보험 하나로'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이루는 가입자, 기업(사용자), 국고지원금 몫을 지금보다 각각 34%씩 인상하여 매년 12조 원의 재정을 더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이 때 가입자 1인당 부과되는 추가보험료는 월평균 '1만 1천' 원이다. 이에 대해 의협은 실제 인상액은 평균 3만 원 이상이 될 것이라며 '건강보험 하나로'를 비판하고 있다.

왜 이리 다를까? 아마도 '건강보험 하나로'가 해결하려는 병원비의 기준이 '입원 중심 병원비'인데 반해, 의협은 동네의원(외래)을 포함한 전체 진료비로 계산한 데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듯하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역시 외래 진료비까지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늘리면 좋겠지만 재원의 한계로 이번 운동에서는 입원 중심 병원비를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수치 논란은 '건강보험 하나로'가 사용하는 '모든 병원비를'이라는 상징적 구호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향후 '건강보험 하나로'가 제안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토론을 벌이면 착오와 오해에서 비롯된 논란은 대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과 정부의 사회연대 책임이 요청된다

둘째, 의협은 보험료 인상에 따른 기업과 정부의 추가 재정 부담을 걱정한다. 이것은 국민의 일원으로서 모두가 논의해야 할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건강보험 하나로'가 기업과 정부에 추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헛된 일에 돈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 많은 국민들이 병원비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건강보험 하나로'는 시민 스스로 보험료를 더 낼 테니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대로 기업과 정부도 자신의 몫을 수행해 우리사회에서 병원비 걱정을 없애자고 제안한다. 현재 대기업은 충분히 이 재정을 부담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전체 국민의 노동으로 이룬 성과를 사회와 공유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회보험료 부담(국내총생산 대비)은 유럽 국가들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형편없이 작은 게 사실이다.

다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중소기업과 하위계층의 경우 현행 부담의 34%에 이르는 추가 건강보험료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에 '건강보험 하나로'는 약 1.6조 원의 재정을 배정해 중소기업의 추가보험료 부담 감면과 하위계층 15%에 대한 사실상의 보험료 감면 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민간의료보험과 국민건강보험은 뿌리가 다른 제도

셋째, 의협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단일보험체제를 강화해 의료공급자와 소비자의 자율선택권을 침해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즉, 국민건강보험이 강화되고 민간의료보험이 위축되면 시민들의 보험 선택권리가 훼손된다는 것이다.

이 논점을 둘러싸고 '건강보험 하나로'와 의협 사이에 현격한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공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은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거두고 급여는 보험료 납부액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지급한다. '능력대로' 납부하고 '필요에 따라' 제공받는 제도이다. 게다가 가입자의 건강보험료와 연동해 기업과 정부도 재정부담을 공동으로 책임진다. 시민들의 병원비를 사회구성원 전체가 함께 책임지자는 전국적 수준의 '사회연대' 제도이다.

반면, 민간의료보험은 시장의 원리에 따라 급여액이 납부한 보험료와 연동돼 지급된다. 지급액도 민간의료보험사의 이익과 관리운영비 등을 제외하면 납부한 보험료 총액의 75%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지병이 있으면 가입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 차별적 제도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두 제도가 선택사항이란 말인가? 이에 대해선 의협의 인식 전환을 촉구한다. 앞으로 우리사회가 모든 병원비를 민간의료보험 대신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유럽 선진국의 정책 방향이자 시대정신이고, 우리 국민의 뜻이다.

의료공급자 중심의 행위별수가제, 이젠 개편해야

넷째, 의협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지불구조 개편을 위한 '수순 밟기'라고 비판한다. 현행 행위별수가제를 궁극적으로 총액계약제로 전환하여 의료공급자의 권한을 규제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의협이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반대하는 근본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의협이 정부 재정 부담이 클 것이라며 기획재정부를 걱정하고, 기업의 추가부담이 고용 위축을 낳을 것이라며 전경련과 경총의 이야기를 전하고, 심지어 소비자 선택권이 제약된다며 민간의료보험사까지 옹호하고 나서고 있지만, 결국 이 지불제도 문제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드러낸 것이다. 의협은 진료행위를 할 때마다 행위의 양에 따라 비용을 보상받는 현행 행위별수가제를 계속 고수하고 싶은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협의 상황 판단이 맞다. 우리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우선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지만, 동시에 풀뿌리 시민의 관심과 힘을 모아 현행 행위별수가제의 개혁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의 지불제도 문제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 건강보험료와 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의료수가' 소위원회에 참여했었다. 이 과정에서 행위별수가제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새삼 확인했다. 도대체 진료행위 하나마다 가격(상대가치)을 매기기 위하여 얼마나 불필요한 노력, 갈등, 비용이 소요되고 있는가? 이 제도는 수입 확대를 위해 진료행위를 늘리도록 의사들을 유도하고, 이 때문에 진료비를 필요 이상으로 늘리면서 환자와 의사 사이에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행위별수가제는 의료공급자 중심의 진료비 산정방식으로 지나치게 낭비적이다. 이대로는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급증하는 국민의료비로 인해 재정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이제 가입자 중심으로, 낭비 없는 방식으로 재편하자. 우선 행위별수가제를 입원 질환별로 진료비가 산정되는 포괄수가제(예: 백내장 수술, 제왕절개 출산 등)로 전면 전환하고, 기술적 준비와 함께 사회적 분위기가 익으면 연간 진료비 총액을 미리 정하는 총액계약제도 검토하는 게 옳다. 이는 세계적 추세다. 그렇다고 이러한 제도개혁으로 병원이나 의료계가 손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병원이 구조적 적자에 놓이는 것은 국민의 이익과도 배치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고수하는 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요원한 일이다. ⓒ뉴시스

의료계, '건강보험 하나로'에 협력해 권위 있는 주체로 발전해야

지금까지 의협이 제기하는 주요 논점들을 살펴보았다. 혹시 의협에게 불편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의협이 책임 있는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글을 썼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자신이 속한 직능단체의 이해관계를 넘어 우리 모두가 함께 병원비 문제를 해결하자는 국민운동이다. 가입자 1인당 평균 추가보험료는 1만 1000원이지만, 소득에 따라선 '5000원에서 50만 원'까지 각기 다르다. 작은 시야에서 자신의 손익을 계산해선 결코 이룰 수 없는 과제이다.

의료계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기대한다. 의사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으로서 시민들로부터 받는 존경 아닌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함으로써, 의협이 우리사회에서 국민적 사랑과 신뢰를 받는 권위 있는 주체로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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