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직전 서해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서 대선 후보를 포함한 정치인이 해안의 기름을 닦는 모습이 언론에 많이 등장했다. 이들의 행동은 단순히 표를 의식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환경 재앙에 대한 걱정을 그렇게 표출한 것이었을까? 혹 금 모으기 운동처럼 자신이 저지른 반환경 행태를 감추고자 그런 '쇼'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굼뜬 국가조차 없었더라면
세계화를 적극 수용한 일부 학자는 기존의 국가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세계화 회의론자는 오늘날의 세계화는 19세기 말의 무역 교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며 앞으로도 국가는 불변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양극단의 주장 사이에 세계화 흐름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기능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세계화 담론의 양극단의 주장을 지양하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국가의 기능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국회를 통과한 '연안권 특별법'은 이러한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조차도 소멸시켜버리는 데 국회의원이 동의한 것이다.
연안권 특별법은 남해안, 동해안, 서해안의 지속가능한 (지속가능이란 단어는 개발을 합리화하는 수사(修辭)로 전락했다!) 지역 개발을 도모한다는 취지 하에 지역 주민의 의사 결정 과정을 무시하고, 지역 정치인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법이다. 이 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놀랄 수밖에 없다.
그간 연안관리법, 항만법 등을 통해 연안을 통합 관리해오던 해양수산부와 환경영향평가, 국립공원 지정·관리를 맡아온 환경부의 권한이 명목상으로는 건설교통부로, 실질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에 그 권한이 대폭 이양된다. 이 법대로라면 사실상 기존 법 체계가 붕괴하면서, 국립공원의 30~40%가 위치한 연안의 난개발을 막을 수 없다.
이렇게 문제점이 많은 특별법이 통과되자 법학자들이 연안권 특별법 제정 반대 성명을 내놓았고, 환경부조차도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연안권 발전 종합 계획은 연안권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법령에 따른 계획에 우선한다(연안권 특별법 제3조)"고 적시되어 있으니 이렇게 대응하는 게 당연했다.
이번 기름 유출 사고에서 정부의 대응이 비록 더디었다고는 하나 만약 정부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굼뜬' 국가 기능조차도 작동하지 않았더라면 기름 유출 사고는 더욱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앞으로 연안권 특별법이 발효되면 기존에 정부가 맡아오던 관리·규제가 완화되면서 이번의 굼뜬 대응만큼도 못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바로 이렇게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연안권 특별법을 통과시킨 대선 후보, 정치인이 불과 한 달도 안 돼서 서해안 기름 유출 정화 현장에 참여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과연 그들의 행동에 진정성이 있는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특별법 폐기해야
글머리에서 금 모으기 운동에 동원 요소가 있음을 지적했지만 이번 기름 유출 사고 현장 봉사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수많은 이들을 보면, 아직 국내에 건강한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정치인은 언론의 카메라가 아니라 자신의 일인 양 서해안으로 달려갈 정도로 환경 의식을 견지하고 있는 국민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해야 하지 않을까?
연안권 특별법의 국회 통과 직후 시민단체, 학계에서는 이 법의 폐기를 위한 헌법소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당시 이 법이 통과할 때 국민은 무심했지만,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앞으로 헌법소원 움직임은 국민의 관심과 함께 여론의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인들이 또 어떻게 '처신'할지 볼 일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정치경제학자에서 녹색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알랭 리피에츠는 생태주의로의 전향 이유로 "생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정치인에게 이 정도 수준의 생태 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선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까지 국민의 표심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연안권 특별법을 폐기해야 한다.
지난 주말에 찾아간 안면도에서 마주친 봉사 활동을 하던 초등학생을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앞으로 최소한 10년 후에 이들이 유권자가 된다면 생태 의식이 결여된 정치인은 더 이상 국회에 발을 들일 수 없을 것을 것이라는 점에서 작지만 밝은 녹색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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