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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위계적 구조'를 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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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위계적 구조'를 깨야 한다

[민주적 사법개혁의 길(9)] 대법관 임명제도

2005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은 최종영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이용훈 변호사(전 대법관)를 지명한 뒤 국회의 청문회 및 동의 절차를 거쳐 그를 대법원장에 임명했다. 현행 헌법은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104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이 반드시 사법부의 독립성을 저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행정부의 사법부 견제 장치이므로 권력분립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미국도 연방헌법에 "대통령은 대사, 공사 및 영사, 연방대법원 판사, 기타 그 임명에 관해 헌법에 명문규정이 없고 법률이 정하고 있는 모든 연방정부 관리를 지명하며, 상원의 권고와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2조 2항 2절)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장 임명에도 시민적 참여의 길 터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법원장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대법원장은 최고법원인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이고, 사법 행정사무를 총괄하고, 대법관회의의 의장이고, 대법관 제청권이 있고, 대법관이 아닌 법관에 대한 임명권, 재임용권, 인사권을 갖고 있고, 헌법재판관 3인에 대한 지명권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전 부패방지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의의 위원 각 3인에 대한 지명권을 갖고 있다.
  
  이렇다보니 "대법원장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눈에 거슬리는 판사 수십 명을 지방으로 내려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한겨레> 2005년 7월 14일자 보도)라는 말까지 나온다.
  
  따라서 대법원장의 '1인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사법부 내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일인 동시에 법관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중요한 일이 된다. 또한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대통령의 '1인 권력'을 분산시키는 일도 필요하다. 현재처럼 누가 거명되고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오간 뒤에 대통령이 누군가를 지명하고 국회의 동의 절차만 거쳐 그를 대법원장에 임명하는 방식은 민주주의의 흉내만 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가 제시한 바 있듯이, 최소한 대통령에 의한 지명의 단계 이전부터 '대법원장추천자문위원회' 등의 추천기구를 통한 추천의 절차를 운영함으로써 대법원장 임명에 있어서도 국민적인 참여를 확대해 나가는 방식 정도는 돼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제2공화국 당시 헌법에 규정됐던 선거의 방식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문제 있다
  
  다음으로 대법관 임명 제도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2003년 여름의 사태를 되돌아보자.
  
  2003년 9월 퇴임하는 서성 대법관의 후임 제청과 관련해 8월 12일에 개최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는 최종영 대법원장이 추천한 대법관 후보 3인에 대한 적격 여부만을 자문위원들에게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에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과 박재승 대한변협회장이 "사법개혁의 이름을 내건 요식절차에 불과하다"며 이 자문위의 운영방식에 대한 격론을 벌이다가 퇴장하고 위원직을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현행 헌법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104조 2항)고 규정하고 있고, 2003년 대법관제청자문위 사태 당시에 대법원 측은 "헌법에 보장된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은 고유권한인 만큼 자문위라고 해서 이를 침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여러 막강한 권한 중에서 특히 대법관 제청권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앞에서 인용한 바 있는 서강대 법대 임지봉 교수는 지난해 7월 국회 공청회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대법관 임명 제청권이 대법관을 대법원장 밑에 두게 함으로써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동등한 지위가 아닌 상하관계의 위계질서 속에 묶어놓게 되고, 이것이 사법부의 수직적 위계질서화와 관료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대법관 제청권이 헌법에 언제 도입되어 어떻게 기능해 왔느냐를 보면, 오히려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통해 대통령은 이제 대법원장만 자기 사람으로 앉히면 대법관까지도 자기 추종자들로 채울 수 있게 되었고 대법원 전체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도 있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제도는 사법권 독립을 위한 제도가 아니고 사법권 독립에 '반(反)하는' 제도이므로 없어져야 한다."
  
  이런 지적에 대해 대법원 측은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 제청권은 사법권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정치권력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있는 대법원장이 외부의 영향 없이 대법관으로 가장 적당한 사람을 제청하도록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기 사람을 대법원장에 임명해 놓았을 경우에는 대법원장이 정치권력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있지 않고 오히려 정치권력의 바로 밑에 있게 되거나 그 자신이 정치권력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사법부의 독립성이 억압될 수 있다.
  
  대법관 임명절차 개선을 위한 두 가지 방법
  
  그러므로 대법원장의 독단으로 행사되는 대법관 제청권은 반드시 없애야 하며, 그럴 경우 다음 두 가지 방법에 의해 대법관 임명절차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 첫 번째 방법은 현행 대법관제청자문위를 자문만 하는 기구로 놔둘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제청기구로 만드는 것이다.
  
  대법관의 임명에 대해 제헌 헌법은 법관회의(대법원장, 대법관, 각 고등법원장으로 구성)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하도록 했고, 1962년 헌법은 대법원장이 법관추천회의(대법원장, 대법원 판사 3인, 대한변협회장, 변호사 1인, 교수 1인,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으로 구성)의 동의를 얻어 제청하고 대통령이 행하도록 했다.
  
  대법원장 '1인 권력'의 문제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회의체에 제청권을 주어 '1인 권력'을 분산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안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회의체는 그 구성을 민주적으로 하고 다수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그 절차와 내용을 공개하여(현행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 내규는 6조에 "자문위원회의 절차와 내용 등은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수 국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제2공화국 헌법에 규정됐던 대로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법관의 자격이 있는 자로써 조직되는 선거인단이 선거하고 대통령이 확인"하는 것이다.
  
  당시에 '대법원장 및 대법관 선거법'을 제정한 이유는 "과거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모든 법관을 임명하던 것을 사법권 독립의 정신을 존중하여 대법원장, 대법관은 선거인단이 선거하고 기타 법관은 대법원장이 임명하게 함으로써 인사권을 통한 행정부의 사법부 간섭을 배제한 헌법 규정에 근거해 대법원장과 대법관 선거에 관한 절차를 정하려는 것"이었다. 선거인단의 정수는 100인이었고, 그 구성은 법관으로 재직 중에 있는 자 50인과 기타의 자 50인으로 돼 있었다.
  
  이 선거법에 따른 선거는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실시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당시의 헌법과 '대법원장 및 대법관 선거법'은 인사권을 통한 행정부의 사법부 간섭을 배제하여 사법권 독립의 정신을 존중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법관을 선거로 뽑는 제도에 대한 반대의견으로 '비다수파 기관(non-majoritarian institution)'론이 있긴 하다. 이런 의견에 따르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삼부는 선거를 통해 다수 국민의 지지로 구성되는지 여부에 따라 '다수파 기관(majoritarian institution)'과 '비다수파 기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입법부나 행정부는 다수파 기관이지만 사법부는 비다수파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입법부와 행정부는 국민의 선거를 통한 다수 국민의 의사에 그 구성과 존립이 달려 있으므로 다수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하는 반면, 사법부는 선거로 구성되지 않고 대개의 경우 임명되므로 다수 국민의 의사와는 직접적인 관계 없이 구성되고 존속하며 국민 다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다수의 목소리에 묻히기 때문에 듣기 어려운 사회적, 경제적 소수자나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법의 적극적, 창조적 해석을 통해 그들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에 따르면 사법부는 다수 국민의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의사에 귀를 기울이는 데 주력해서는 안 되며, 그 구성을 선거제로 하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과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한다는 역할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사법부는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해 왔는가?
  
  그러나 사법부가 그동안 비다수파 기관의 성격을 살려 현실적으로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기관으로 기능해 왔는가는 의문이다.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천문학적인 금액의 가압류 결정 등으로 기업의 노동자 탄압을 돕는가 하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는 소극적이면서 재산권 등 가진 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는 과감한 모습을 보여 온 게 그간 사법부의 실제 모습이 아니었던가?
  
  사법부가 정권과 소수 자본가들을 위한 기구로 보이는가, 아니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구로 보이는가를 국민들에게 물어보라. 사법부(司法府)가 '행정부의 한 부서에 불과하다'는 뜻을 내포한 사법부(司法部)로 불리거나 심지어는 '죽은 사법부'라는 의미의 사법부(死法部)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정권에 길들여지면서 이른바 '다수파 기관'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게 사실 아닌가?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며 싸워 온 이들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노동자들이었고,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국내총생산(GDP) 순위 10위권에 오르게 된 것도 노동자들의 피와 땀에 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노동자들이 받는 대접은 너무나 형편없어 "인간답게 살아보자"가 아직도 노동조합의 구호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의회에서는 소수이고, 법관들은 의회에서 다수인 자본가들의 편을 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수직적 위계질서의 정점에 있는 대법원이고, 수직적 위계질서 자체가 사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대법원을 선거로 구성해야 하는 이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법원 구성에 선거제를 도입하는 것이 더더욱 필요하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사법부에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지름길은 선거에 있으며, 선거제 아래서는 법관들이 인사권자와 평정권자의 눈치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소신껏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또한 선거제는 사법부가 안팎으로 공개적인 비판을 받고 자성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과거 <법률신문>에 서울민사지법 서태영 판사가 '인사유감(人事有感)'이라는 글을 기고하여 공개적으로 사법부의 인사를 비판하자 인사발령 하루 만에 그를 울산지원으로 전격 전보시켜 버린 황당한 인사탄압도 있었고, 신평 판사는 '법관 조직의 과도한 관료화, 계급화는 만악(萬惡)의 근본'이라는 글을 <주간조선>에 기고하여 사법부를 비판했다가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사건도 있었다.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러한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사법행정은 결국 법관들을 길들이는 역할을 하여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사법부를 더욱 경직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선거제 아래서 이러한 일에 대해서도 대법관 후보자나 선거인단과 질의응답을 하는 과정에서 공식적인 비판과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는 대안을 찾는 계기가 되면서 사법부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
  
  물론 가장 본질적인 것은 국민을 위한 사법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선거를 실시한다는 것만으로 권위적인 사법부가 갑자기 국민을 위한 사법부로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재야 시민단체 등이 포함된 선거인단에서 선거를 통해 대법원을 구성하는 것은 사법부 내의 민주주의와 법관의 독립성을 제고하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간섭에 대응해 사법부가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제 역할을 다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선거의 부작용에 대한 반대의견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선거를 하게 되면 법원 내부에 파벌이 생길 수 있고, 부정선거 시비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거의 부작용은 사법부의 독립성 제고와 개혁이라는 중차대한 과제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파벌 현상은 굳이 선거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고, 부정선거에 대해서는 제2공화국 때의 '대법원장 및 대법관 선거법'처럼 선거운동을 금지시키는 등의 대책을 따로 강구할 수 있다.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사법부의 참 모습이 실현되려면 우리 모두가 의지를 모아야 한다.
  
  <대법원장 및 대법관 임명 방식의 변화 추이>
  
  

헌법 변천
  
  

대법원장 및 대법관 임명방식
  
  

1948년 제헌헌법
  
  

대법원장
  
  

대통령이 임명 → 국회의 승인
  
  

대법관
  
  

법관회의의 제청 → 대통령이 임명
  
  

1960년 개정헌법
  
  

대법원장 및

대법관
  
  

선거인단의 선거 → 대통령 확인
  
  

1962년 개정헌법
  
  

대법원장
  
  

법관추천회의의 제청

→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
  
  

대법관
  
  

대법원장이 법관추천회의의 동의를 얻어 제청 → 대통령이 임명
  
  

1972년 개정헌법
  
  

대법원장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
  
  

대법관
  
  

대법원장의 제청 → 대통령이 임명
  
  

1980년 개정헌법
  
  

대법원장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
  
  

대법관
  
  

대법원장의 제청 → 대통령이 임명
  
  

1987년 현행헌법
  
  

대법원장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
  
  

대법관
  
  

대법원장의 제청 → 국회의 동의

→ 대통령이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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