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인권 보장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아울러 지휘권의 보장과 군의 특수성을 들어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게 울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국민의 인권의식이 성장하고 민주화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화하고 군을 기피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중요한 것은 군 내부에서 군인의 인권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휘관에 의한 재판은 남용의 위험이 있다
군대 내 인권이 신장되는 것은 국민의 삶에서 중요한 한 영역에서 인권이 개선되는 것이며, 나아가 군이 스스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군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군인이 인권을 가진 존재로서 존중받고 국가가 그러한 인권을 보장한다면 군인이 그런 국가를 방위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부심에서 진정한 용기가 나오는 것이고, 자발적 복종을 통한 군기도 형성되는 것이다.
군 사법제도는 군대 안에서의 인권 보장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군 사법개혁의 문제는 사법의 개혁과 군의 개혁이라는 두 가지가 어울려 있는 주제다. 폐쇄적인 조직으로서 시민적 통제를 거의 받지 않는 군대 안에서 군인의 인권 보장을 최후로 담보해주는 것은 군 사법제도라고 본다면, 군 사법개혁의 문제는 군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군대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확보해 나가는 이중적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군사법원은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국방부에 두는 고등군사법원과 국방부,국방부 직할 통합부대, 각 군 본부 및 편제상 장관급 장교가 지휘하는 예하부대에 두는 보통군사법원으로 구성된다. 지휘관이 관할관이 되어 군사법원을 소집(구성)하고, 재판관의 일종인 심판관을 임명하며, 판결에 대해 확인하면서 형량을 감경할 권한을 가진다는 점 등이 군사법원의 특징이다.
관할관이 심판관의 임명, 판결 확인 조치 등의 권한을 행사하므로, 군사재판은 지휘관이 자신의 부하에게 재판을 대행하게 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재판결과가 나왔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전체적으로 지휘관에 의해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지휘관의 사법적 권한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지휘관이 상당한 결정권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군사재판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법관이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지휘관의 사법으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이와 같이 지휘관이 사법기구의 구성과 운영 전반을 관장한다는 것은 봉건영주의 사법과 같은 모습이며 지휘관 사법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이런 사법은 언제나 남용의 위험을 안고 있다.
1974년 대법원의 한 판례에 나타난 사실을 보면, 1심 보통군법회의에서 상관 살해미수 혐의가 인정돼 무기징역이 선고됐는데 관할관이 이를 징역 1년으로 감형했다. 이에 대해 고등군법회의는 관할관이 감경범위를 벗어나 원심판결을 감형한 것이니 위법이라며 1심판결을 파기했으나, 대법원은 관할관의 확인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일반법원과 달리 판결마저도 관할관이 극단적으로 변경시킬 수 있는 지휘관 사법의 특성이 드러난 것이다.
심판관의 권한 남용도 드물지 않다. 심판관은 법에 관한 소양이 있는 자로서 재판관으로서의 인격과 학식이 충분한 장교 중에서 관할관에 의해 임명된다. 심판관은 법관의 자격을 가진 군판사와 함께 제한 없이 사실관계의 파악과 법률의 적용 과정에 참여하며, 심지어 법률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계급에 따라 재판장이 되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특히 심판관은 지휘관이 재판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소송절차의 진행은 소송법에 대한 지식을 충실히 갖춘 이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면, 위와 같은 점은 자격 있는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몇 년 전 28사단에서는 업무상 과실치상 죄로 기소된 피고인(인사장교)에 대해 인사참모가 심판관으로 임명되고 재판장이 되어 재판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재판에서 군판사 2인은 유죄, 심판관은 무죄를 각각 주장함에 따라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로 합의됐으나, 재판장인 심판관이 이런 합의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무죄선고를 하자 검찰관이 항소했다. 인사장교에 대한 재판에 직속상관인 인사참모가 심판관으로 참여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을 해칠 사유가 되며, 재판관이 회피해야 할 경우에 해당한다. 더구나 심판관이 독단적으로 판결을 내린 것은 군사법원 제도가 공정성을 잃은 채 운영될 가능성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예가 군사재판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고, 또 사회적인 비판과 감시가 많아지면서 군 스스로도 그와 같은 권한 남용의 문제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최근 들어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군의 노력은 언제든지 후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5개 지역군사법원 설치'안은 적절치 않다
군대 안에서는 지휘권이나 계급에 따른 압력이 가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지휘권에 기초해서 이뤄지는 재판은 독립성 침해의 우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군사적인 문제, 군대 내의 지휘권과 군기 확립의 필요성 등을 고려한다 해도 재판에서 판단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군인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군대 안에 법원이 설치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지휘관에 의해 모든 재판사항이 관장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지휘권 확립과 신속한 재판이 요청되지만 일반법원에 의한 재판이 어려운 전시 또는 해외파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법원에서 군사재판을 관장하는 것이 옳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전시라는 개념은 명확히 정의되어야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는 일반법원으로 하여금 군사재판도 담당하게 할 경우, 민간법원의 재판부를 적어도 군에 대해 잘 아는 법관으로 구성하도록 한다면 군에 관해 전문적 식견이 없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 법관은 대부분 군에서 병 또는 법무장교로 군복무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민간법원이 군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다. 더 전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감정의견을 통해 보충하면 충분할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법원은 군부대와 지근거리에 있어서 군인이 심리를 받는 데 큰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군사법원이 비상설적으로 운영되어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군인에 대한 재판을 민간법원에 맡긴다고 해서 신속한 재판이 저해되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심판관 제도와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은 군의 특수성을 고려한 제도라고는 하나, 군사재판도 재판으로서 국민의 하나인 군인이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다. 지휘관이 임명하는, '법에 관한 소양'이 있는 심판관이 아니라 군대 내의 지휘권으로부터 독립된 재판관으로 구성된 법원이 재판을 해야 한다. 법률은 국민주권과 일반의사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헌법과 법률을 적용하여 내린 판결은 존중되어야 하며, 판결을 임의로 변경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국민주권과 일반의사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관할관의 확인조치권도 평시에는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
현재 국회에서 심의하고 있는 군사법원 개혁 관련 법률안은 평시에는 심판관 제도와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을 폐지하고, 5개 지역군사법원을 국방부에 설치하며, 군판사 인사위원회를 두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중 심판관과 확인조치권의 폐지는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지역군사법원을 두는 것은 적절한 대안이 아니다.
국방부가 2006년 2월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2005년 한 해에 군에서 범죄를 저질러 형사처벌된 장병과 부사관, 군무원은 모두 6888명이었다. 이는 육군 5406명, 해군 857명, 공군 422명, 국방부 203명을 합한 수치다. 세부적인 죄명의 분야는 교통 1926명, 폭력·상해 1870명, 군무이탈 1034명 등이었고, 성범죄와 군형법상 추행이 각각 212명과 35명, 국가보안법 위반도 2명으로 집계됐다.
2005년에 군사법원에 의해 재판을 받은 사건 수는 2676건이며, 군사법원마다 약 30건의 재판을 했다. 그런데 법률안대로 5개 지역군사법원을 두고 전체 10여 개 합의부에서 이 정도의 사건을 재판한다면 합의부당 260여 건을 처리하게 되며, 이는 일반법원에 비해 매우 적은 숫자일 것이다. 더구나 사건의 내용이 교통사고 과실, 폭행·상해, 군무이탈 등 전형적이고 사실관계가 복잡할 것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현재 심의되고 있는 법률안은 군사법원을 과잉조직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군사법원의 관할권이 '순정 군사범'에 한정되도록 축소돼야 한다는 주장이 옳다고 본다면, 이러한 규모는 더욱 과도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일단 법원조직이 만들어지면 조직의 걸맞게 사건을 처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폐지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니, 법률안대로 된다면 군사법원은 자신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사건을 과도하게 관할하게 될 수 있다. 이는 사법제도로서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더구나 군판사 인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라는 군판사 인사위원회가 전체 9인의 구성원 가운데 군 관련 인사가 6명이나 된다면 과연 공정한 인사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게다가 현역 군인인 군판사의 진급에 영향을 미치는 각군 참모총장이 지명하는 위원도 3인을 둔다면 공정성의 문제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인권이 잘 보장되는 군대여야 강해진다
군사제도의 개혁에는 반발이 따른다. 지휘권이 침해되고 기강이 서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지휘권 행사를 위해 모든 사법제도를 지휘관이 움켜쥐고 행사해야만 하는가? 지휘권의 신속하고 강력한 행사가 필요한 시기인 전시에는 그 적절한 행사를 보장하되, 일반법원이 제대로 기능하는 평시에는 군인도 일반법원에 의한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 왜 지휘권을 침해하고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지휘권은 법률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며 무한정 행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정도의 변화로 인해 군의 사기가 떨어진다고 하고, 지휘권이 침해된다고 하는 지휘관이라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군대의 지휘관일 수 없다.
강한 군기는 자발적 복종으로부터 나온다. 군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야말로 군대의 존재근거를 일깨워주고 군인에게 진정한 용기와 사기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군인의 인권이 보장되도록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해야 하며, 심판관 제도와 관할관의 확인조치권도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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