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제도의 도입에 관한 논의의 배경은 정상적인 교육과는 무관하게 단 한 번의 시험에 의해 법조인을 선발하는 현행 사법시험 제도 자체에 문제가 많은 데 있다.
사법시험이 법학교육과 연계되지 않기 때문에 사법시험 제도는 대학에서의 법학교육은 물론이고 대학교육 전체에 악영향을 끼고 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폐쇄적이고 왜곡된 법조진입 시스템 하에서는 결코 시대가 요구하는 양질의 법조인을 양산할 수 없다.
따라서 국제 법률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법학교육을 정상화하며, 양질의 법조인 양성을 현실화하는 방안으로서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려는 개혁방향은 일단 옳다고 본다.
정부법안의 한계
특히 로스쿨을 도입하게 되면 법률서비스의 양적 불충분성을 야기하는 법조인의 숫자부족 문제도 아울러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매우 중요하다.
원래 로스쿨 제도라 함은 법학교육이라고 하는 '과정'을 관리하여 일정한 질을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법학교육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 대부분에게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쿨 제도 하에서는 변호사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대량으로 변호사를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 점이 로스쿨 제도의 가장 중요한 강점 중 하나다.
그런데 현재 국회에서 심의되고 있는 정부의 로스쿨 법안은 매년 배출되는 변호사 수를 현재 수준으로 제약하는 안이다. 예컨대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수준의 로스쿨 인가 기준, 총정원 통제, 대학별 정원 통제, 법조에 의한 교육 통제 등의 법안 내용은 모두 변호사 수를 줄이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의 법률시장 개방, 사회의 복잡성 및 다양성 증대에 걸맞은 양질의 법률서비스 수요, 남북통일 시대에 대비한 법률전문가 수요를 감안해 법조인을 양산해야 할 필요성 등 사회적 요구는 외면한 채, 오로지 법조인 배출을 극소화해 기존 법조의 폐쇄적 특권구조를 유지하려는 음모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법안으로는 세계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것이다.
법조인 수를 제한하려는 법조 측은 왜 법조인의 수를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는 제시하지 않고 "이미 법조인 공급과잉"이라는 궤변만 반복하고 있다.
원래 선진국들의 전문인력 양성구조를 보면 대체로 법조인의 수가 의사의 수보다 많거나 비슷한 것이 통상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는 11만 명이나 법조인은 그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또한 매년 배출되는 숫자를 보더라도 2004년 기준으로 의사는 3760명이나 법조인은 1000명에 불과하다.
현재 변호사 수는 필요인원의 10분의 1
법조 측에서는 한결같이 "법학교수들은 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로스쿨 총입학정원이 3000명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하지만, 사실 그러한 주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법조인 수를 매년 3000명씩 20년 이상 배출해야 겨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인구 대비 법조인 비율 평균치에 이를 수 있다는 통계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에 비해 인구 1만 명당 법조인 비율이 10분의 1에도 미달하고, 변호사 1인당 신규수임 소송사건 수는 반대로 9배 정도나 된다. 이런데도 법조인들은 이미 변호사수가 과잉이라고 엄살을 떤다.
2004년 국정감사 자료로 국회에 제출된 2003년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변호사들이 올리는 1인당 평균 연간소득은 국민 전체의 1인당 GDP에 비해 22.3배에 이른다. 이에 비해 미국 변호사들의 평균 연간소득은 국민 1인당 GDP의 3.7배에 불과하다. 이런데도 우리나라가 변호사 과잉이라는 법조 측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최근 전문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경제력, 법률시장 규모, 소송비율 등 각종 관련 사회지표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산출한 적정 변호사 수는 8만 명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변호사 수는 필요한 수의 10%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도 현재와 같이 매년 1000여 명 수준의 법조인만 추가로 배출한다면 우리나라는 2010년에는 7만2388명, 2015년에는 8만8857명 규모의 변호사 공급부족 상태에 빠진다.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듯이 '권리가 아프면' 변호사를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 공중보건의 제도를 통해 무의촌을 해소한 의료정책의 성과를 법률시장 쪽에서도 배워야 한다.
아직도 기초자치단체 중 50% 이상의 지역에 단 한 명의 변호사도 없는 것이 현실이며, '나 홀로 소송'의 비율이 70%를 넘는다. 현재의 법조인 배출 숫자를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에서 로스쿨을 도입하는 것은 마치 결혼은 허용하되 불임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제 변호사 수는 대폭적으로 증가돼야 하며, 법조특권의 유지에나 필요한 구시대적인 사법시험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최소한 매년 3천 명 이상의 법조인 배출돼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제대로 된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방적으로 법조인들의 기득권만을 보호하려는 정부 로스쿨 법안의 독소조항들이 삭제돼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법률시장 개방과 남북통일 시대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변호사 수의 대폭적 증가는 기존 개인변호사들의 수입 감소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태가 실제로 벌어질지언정, 변호사 수의 대폭적인 증가가 국민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으로부터 그 특권적인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로스쿨의 도입을 위해서는 최소한 매년 3000명 이상의 법조인이 배출되는 구조를 확보하고, 과다한 로스쿨 교육비용을 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변호사자격시험법의 제정과 같은 조치들이 수반돼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철저한 준칙주의에 입각하여 누구나 그 기준을 충족시키면 로스쿨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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