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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법원과 검찰만 과거청산에 안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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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왜 법원과 검찰만 과거청산에 안 나서나?

[민주적 사법개혁의 길(2)] '법조3륜 이익조절'을 넘어

최근 '국민의 사법'이라는 말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사법의 문제는 국민이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 금기의 영역으로 여겨졌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법관들의 판결문은 지고한 진리가 되고, 국민의 상식은 어린애 투정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법에 대한 황당한 신화
  
  이렇게 사법에 대한 황당한 신화가 지금까지 견고한 성채처럼 우리 사회에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특권의식으로 가득 찬 법관, 검사, 변호사의 법조3륜이 우리 사회를 양육해 온 것이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사법개혁을 주장한 일부 존경스런 법조인은 예외적인 현상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근대사법의 역사를 돌아보자. 근대사법의 성립, 즉 행정과 사법이 분리된 계기는 이른바 개화파들에 의한 갑신정변이다. 하지만 이들의 개혁의 상부의 정변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고, 일본이라는 외세의 힘을 빌어 거사했다가 실패했다. 결국 근대사법은 식민지를 겪으면서 철저하게 친일적인 사법관료를 만들어 내는 식으로 전개됐고, 조선인으로서 판사와 검사 또는 검사보 등이 된 이들이 일제 강점기 동안에 사법을 통해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데 앞장서 스스로 일본 제국주의의 주구 역할을 했다.
  
  이들 친일 부역을 한 법조 인사들은 해방된 국가에서 민주적인 사법을 구축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과거 친일행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미 군정에 과잉동조하거나 정계에 입문해 자신의 과거를 적극적으로 윤색하는가 하면 법원을 포함한 법조계를 장악했다. 친일 부역행위를 한 경찰들과 함께 이들은 해방 후 자기들의 아성을 구축하면서 국민과 유리된 사법의 바탕이 됐다. 집권층의 입맛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아성은 왜 국민의 사법이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전쟁 중에 수십만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아무런 사법적 절차 없이 죽임을 당할 때도 그들은 침묵했으며, 간혹 기소된 학살자가 있어도 거의 방면해 주는 판결을 내렸을 뿐이다. 그들은 5.16 쿠데타 세력이 설치한 이른바 혁명재판부에서 군부에 부역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팔아 자신의 출세를 도모하기도 했다. 각종 정치조작 사건들은 또 어떤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합법을 가장한 살인행위를 가리켜 '사법살인'이라는 조어까지 만들게 한 사법체계 아래서 우리가 살아 왔다는 점은 언제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국가의 존재 목적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것임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식이다. 달리 말하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국민의 국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검찰과 법원은 과거에 독재정권의 시녀 역할을 했다. 주요 정치사건들에서 독재권력의 권력 유지를 돕기 위해 기소를 하거나 독재권력의 입맛에 맞게 판결하곤 했다.
  
  그렇게 국민들을 고통으로 몰아가고 민주인사들을 탄압했던 검찰과 법원이 이제라고 스스로 개혁할 것으로 믿는 국민은 없다. 검찰과 법원은 국가기관의 일부다. 하지만 검사와 법관들은 국가기관이라는 말보다는 헌법기관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최고규범인 헌법이 권한을 부여했으니 그 행위는 언제나 무오류라는 엘리트 의식이 한 치도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 국정원, 경찰은 과거청산 기구 뒀는데
  
  이용훈 대법관은 사법부의 과거청산을 취임 일성으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이 취임의 변은 1년이 다 되도록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국민의 사법부가 아니라 정권의 사법부, 그래서 정치사법이라고 불릴 만큼 민주주의를 유린한 데 대한 사법부의 책임을 몇 마디 언사로 해결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검찰은 아예 과거청산을 거부한다. 한마디로 국가기관 중에서도 특권적인 지위를 가진 국가기관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진실규명위원회에서 과거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초래된 국민의 생명권 침해와 인권 유린에 대해 조사하는 데 대해서도 검찰은 협력에 소극적이거나, 심지어는 거부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방부와 국정원, 경찰 등 이른바 공권력 행사기관들은 여러 가지 한계는 있지만 자체적인 과거청산 기구를 두고 국민들의 의혹을 사고 있는 주요 사건들에 대해 외부 위원들과 조사관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일부 공권력 행사기관들은 여러 가지 사건들이 조작되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해 과거의 질곡에서 벗어나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유독 검찰과 법원만이 자성기구로서의 과거청산위원회를 두고 있지 않다. 정의와 관련된 문제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동포를 탄압하고 제국주의 일본의 주구 노릇을 했던 과거의 이력은 두 번째 문제로 돌리더라도,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제도적인 합법론을 내세워 민주인사를 탄압하고 순진한 국민들의 꿈을 앗아갈 때 침묵하거나 동조한 행위에 대해 검찰과 법원이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국민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사법과거의 청산은 사법개혁의 출발점이자 그 잣대다. 공판중심주의니, 배심제 도입이니, 로스쿨 도입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 우리 사법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반성에서 시작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의 중심이고 핵심인 국민이 배제된 그들만의 사법을 국민의 사법으로 돌리는 작업의 기축은 사법과거 청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사실 과거 독재정권에서 자행된 정치적 목적의 사법재판들을 사법부가 방조하거나 심지어는 사법부가 합법을 가장한 불법을 저질러 국민에게 사법의 비수를 들이댄 경우가 무수히 많았다. 이런 과거의 오류를 철저히 반성하지 않은 채 사법개혁을 한다는 것은 모래 위에 고대광실을 짓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법과거 청산은 건축으로 말하면 지질조사와 기초공사에 해당한다. 이는 우리의 사법 현실이 어디에 있느냐를 파악하는 출발점이다. 대법원 주도의 사법개혁위원회나 정부 주도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이른바 사법개혁안이라는 것들은 법조의 이익을 조정하는 수준이거나 단순히 이러저러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법개혁 작업이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바로 사법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그것이 추진되기 때문이다. 사법과거 청산은 민주주의 시대에 맞게 사법체계를 재구성해 주권자인 국민의 사법으로 되돌리는 작업이지 법조3륜의 이익을 조절하는 일이 아니다.
  
  과거청산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정의를 제도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회복하거나 실현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권부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이것은 이른바 진실에 대해 알 권리다. 단순히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은폐되거나 조작된 진실이 무엇이고, 그 진실을 아는 것조차 불법시되어 온 인권유린 사건이나 국가의 위법한 행위의 진상에 대해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이는 참혹한 인권침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사법과거 청산은 사법개혁의 기초
  
  유엔은 과거청산에 대해 4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철저한 진실규명 △피해자 명예 회복 △적절한 배상 또는 보상 △책임자 처벌 및 재발 방지대책 마련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것이 진실규명이다. 진실규명은 과거청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철저한 진실규명에는 인권유린 자체에 대한 실체를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인권유린이 어떻게 지금까지 은폐되고 밝혀지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의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조사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법적인 근거를 갖고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법과거 청산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이른바 '과거사법'이다. 하지만 이 법은 사법과 관련해서는 재심에 해당하는 사건만으로 조사대상을 한정하고 있는 데에다 조사주체인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권한이 매우 미약해 실제로 얼마만큼 조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현행법 상 재심사유는 엄격해서 사실상 몇몇 사건을 제외하고는 조사대상 자체가 되기 어렵다. 과거청산은 어두운 과거를 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진실과 정의의 교환'이라는 고매한 타협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가해자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대신 사법적 처벌을 면제하는 것으로, 진실의 기초 위에서 국민통합을 이루는 일이다.
  
  사법과거 청산은 검찰과 법원이 스스로 자성하지 않으면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기관 스스로가 진실을 밝히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검찰과 법원에 자체 과거청산 기구를 두는 것은 과거의 가해자인 국가기관이 스스로 과거의 왜곡되었던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진실규명에 적극적인 협력을 한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가능하다. 검찰과 법원이 법형식적 논리로 시효가 끝났다든지, 진실화해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조사하면 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과거와 같은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중단하겠다는 의지가 없거나 적극적인 진실규명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또한 특정한 몇 건의 사건에 대해서만 민원처리하듯 조치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과거청산이 될 수 없다. 과거에 광범위하게 자행된 검찰과 법원의 인권침해 가담 또는 방조에 대해 그 배경을 조사해야 하고, 인권침해의 결과로서 공소장이나 판결문을 무효화시키는 조치도 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검찰과 법원 스스로가 과거청산을 하는 것은 외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과거청산을 강요받는 것과 다른 맥락에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의 법체계 상 사법과거 청산기구는 대검찰청과 대법원에 위원회 형식으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 구성은 조직 외부의 전문가들로 하는 것이 맞다. 이 위원회에는 법조인과 비법조인이 대등한 비율로 참여하도록 해야 하며, 과거청산 문제에 관한 지식이 있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할 정도라면 누구나 이 위원회의 위원이 될 자격이 인정돼야 한다. 또한 위원회의 업무를 보좌할 조사인력을 갖추어야 한다. 위원회가 벌인 조사 결과는 적어도 국가, 적어도 해당 기관의 공식 기록으로 확정하고 공표해야 한다.
  
  검찰과 법원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직접 연루되었거나 방조한 혐의가 확인되면 관련자들에 대해 처벌을 해야 한다. 다만 진실규명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자라면 과거의 관련 행위로 인해 얻게 된 지위와 재산 등을 박탈하거나 몰수하는 선에서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 처벌의 수위는 국민적인 요구의 수준을 반영해 결정해야 한다.
  
  사법개혁은 과거청산이라는 기초와 그 철학 위에서만 철저하게 추진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민주적인 사법, 국민의 사법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검찰과 법원이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한다면, 지금 당장 스스로의 과거를 반성하고 그것을 극복할 구체적인 과거청산 기구를 설치하고 가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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