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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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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기고] 터키의 EU 가입은 '문명 간 결혼'

MBC TV의 해외시사 프로그램 <W>(매주 금요일 밤 11시 55분부터 55분 간 방송)에서는 8월 25일에 이어 9월 1일 '터키의 길' 제2부가 방송된다. 이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생소한 이슬람 사회에 대한 일반인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마련된 것이다.

터키 현지에서 이번 2부작을 준비한 한학수 PD가 짧은 방송시간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들을 글에 담아 보내왔다. 지난주 히잡 논란을 통해 터키의 정교분리 문제를 살펴본 데 이어 이번에는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을 둘러싼 이 나라 안팎의 갈등을 살펴본다. <편집자>


일부다처제가 변하고 있다

터키 남동부에 있는 도시 디야르바키르, 이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터키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취재를 하던 때는 8월 중순이었는데, 당시 낮 최고 기온은 섭씨 45도 언저리였다. 그나마 건조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기온이었다.

밀농사는 추수가 막 끝난 상황이었다. 디야르바키르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정도 떨어진 곳인 의쉭클라르 지역에서 메흐멧 아슬란(63)을 만났다. 아슬란은 4명의 부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부인들의 이름은 하이리에, 네피야, 함디에, 아시에였다. 일부다처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슬람 사회는 4명까지 부인을 두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아슬란의 자녀는 모두 합해 56명이었고, 손주는 60명에서 80명 정도라고 했다. 손주가 정확히 몇 명인지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아슬란은 2002년부터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많다보니, 아슬란이 사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혈족으로 구성된 상태였다.
▲ 아슬란의 가족 사진. 히잡을 쓰고 있는 여성 4명이 아슬란의 부인들이다. ⓒ프레시안

아슬란이 나이 들어서까지 자녀를 갖다 보니 '자녀보다 나이 많은 손주'도 생기게 됐다. 너무 나이 어린 자녀는 혹시 손주가 아닌지 아슬란 자신도 헷갈리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명절에 자녀와 손주의 신발을 살 때면 수십 켤레를 사야 하기 때문에 '혹시 신발장사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고 했다. 4명의 부인들과 함께 살기에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현재로서는 아내들이 서로 화목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고 했다.

아슬란의 경우처럼 터키의 농촌에는 일부다처제 가정들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모두 부인이 4명인 것은 아니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부인을 한두 명 더 두기도 한다. 하지만 중년 이하의 젊은 사람은 여러 명의 부인을 갖는 경우가 드물다.

아슬란의 아들 세자히(36)에게 일부다처제를 원하느냐고 묻자 "나는 절대로 아내를 여럿 얻을 생각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그는 "자식들이 많아서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덜 받고 자란 것이 아쉬웠다"며 "이제는 세상도 바뀌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터키 농촌의 전형적인 일부다처제는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소멸해가는 인습, '명예살인'

디야르바키르 지역 바로 옆에는 티그리스 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다. 이 강의 인근 지역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데 곳곳에 문명의 유적들이 숨 쉬고 있다. 디야르바키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 비스밀에서 취재진은 '명예살인'의 피해자를 만났다. 말 그대로라면 명예를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인데, 이곳 터키 남동부의 오래된 인습이다.
▲ 명예살인에 의해 딸을 잃은 어머니와 언니를 잃은 두 동생들. 왼쪽부터 어머니 아이셀, 막내 하티제, 둘째 이을디. ⓒ프레시안

이 인습은 여자가 '뭔가 바르지 못한 품행을 보였을 때' 그 가족들이 스스로 나서서 그 여자를 살해하는 것이다. 명예살인은 몇몇 나라의 폐쇄적인 농촌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인습이 이슬람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종교 지도자인 이맘 무사이는 명예살인이 이슬람 율법과는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비스밀에서 만난 아이셀은 남편이 '명예살인'을 핑계로 딸을 살해했다며 비통해 했다. 이 일은 객지를 떠돌던 남편이 2002년에 집으로 돌아온 뒤에 벌어졌다. 디야르바키르에서 직장을 다니던 큰 딸에 대해 남편은 뭔가 소문을 들었다. 그 뒤 남편은 큰 딸의 직장을 찾아가 퇴근하는 딸을 향해 권총을 쏘았다.

이 살인으로 남편은 수감됐고,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큰 아들은 연락을 끊었고, 당시 살해 현장에 있던 작은 아들은 정신질환을 앓았다. 둘째 딸 이을디는 "그 모든 일은 보수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라며 노골적으로 아버지를 적대시했다.

터키는 지난 2004년부터 명예살인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외면 받아오던 인습에 대해 쐐기를 박은 것이다. 여성권리보호센터(KA-MER)의 소장인 바으닥코치는 "점차 여성의 인권이 개선되고 있다"며 "터키 남동부에서 명예살인은 감소하는 추세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문명이 만나는 곳, 이스탄불

터키는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이 만나는 곳이다. 오른쪽으로는 흑해가, 왼쪽으로는 에게해와 지중해가 접해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Welcome to europe'이라는 간판을 만나게 된다.

두 대륙이 만나는 곳에 비잔티움 혹은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던 도시 이스탄불이 있다. 이스탄불 공단에는 이미 각국의 자본이 들어와 터키의 노동력과 만나고 있다. 터키는 상대적으로 유럽보다는 임금이 싸기 때문에 매력이 있고, 아울러 유럽과 중동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서도 의미가 있다.

한국도 현대자동차,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이곳에 진출해 활발한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제작진이 방문한 'LG-아르첼릭' 합작공장은 냉장고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법인장 손병옥 씨는 "만들어낸 제품 중 80% 정도를 터키 현지에서 소화하고 나머지 20%는 유럽과 중동에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각축하던 터키 이스탄불, 그곳에서 지금은 소리없는 경제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 에어컨을 생산하고 있는 'LG-아르첼릭' 합장 공장의 노동자들. 생산량의 20% 정도를 유럽과 중동에 수출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스탄불은 유럽적인 색채가 짙게 깔려 있으면서도 이슬람의 향취가 곳곳에 배어 있는 독특한 도시다. 그런 만큼 대단히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도시다. 한 해 1000만 명이 관광한다는 이스탄불에서 현대적인 이슬람 여성들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다. 그녀들은 히잡을 쓰지 않으며 자유스럽게 거리를 활보하고 직장에도 다닌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이슬람 여성들이 이스탄불에서는 대세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결혼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은 2004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지난 세기 초에 '터키의 아버지' 아타투르크가 표방해 온 정교분리 정책의 커다란 중간매듭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손잡은 이슬람'이 서방의 기독교 세력과 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터키가 현대화된 이슬람을 상징하는 대표주자라면 EU는 기독교 문명을 대변하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문명 간의 결혼은 성사될 것인가?

성 소피아 성당 앞에서 만난 할릴 부부는 "너무 빨리 유럽식으로 변하는 것이 어쩐지 터키의 민족 정체성을 손상시키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했다. 이전 정권에서 연립정부의 여당이었던 민족주의행동당(MHP)의 부총재 옥타이 우랄도 같은 우려를 표시했다. 옥타이는 "터키가 자신의 민족적인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EU 가입에 큰 장애물이 된다고 믿는 유럽인들의 의식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에서는 기독교에 기반을 둔 정당과 단체들이 터키의 EU 가입을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유럽 또한 이슬람 문화를 가진 터키를 자신의 식구로 받아들일 온전한 준비는 덜 된 셈이다. 터키의 EU 가입에 대한 여러 가지 기대와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대륙 간 해저터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마르마라 프로젝트(Marmara project)'로 불리는 이 공사에 대해 건설부 장관 비날리 일디림은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고리를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제작진에게 말했다. 놀랍게도 이 해저터널의 설계도는 1860년 오스만 제국 당시에 이미 처음 그려졌다. 제작진은 이 설계도를 촬영할 수 있었다.

제작진은 터키의 EU 가입을 문명 간의 결혼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이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터키 외교정책연구소 연구원 옥타이악소는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공존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게 해줄 시험대"라고 말했다. 이제 이 결혼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우리 앞에, 과연 세계사의 새로운 모습이 펼쳐질 것인가?
▲ 성 소피아 성당 앞에서 만난 할릴 부부는 "너무 빨리 유럽식으로 변하는 것이 터키의 민족 정체성을 손상시키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로지르며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보스포러스 대교. 왼쪽으로 보이는 유럽, 다리건너 오른쪽으로 보이는 아시아를 잇고 있다. ⓒ프레시안

▲ 1860년도에 계획된 '마르마라 프로젝트'의 설계도. 140년이 지나고서야 공사가 시작됐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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