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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그는 왜 판사를 향해 총기를 난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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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그는 왜 판사를 향해 총기를 난사했을까"

[기고] 이슬람의 실험, 아타투르크 100년

MBC 해외 시사 프로그램 <W>(매주 금요일 23:55~00:50분 방송)에서는 8월 25일, 9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터키의 길' 2부작을 방송한다. 이 방송은 여전히 생소한 이슬람 사회에 대한 일반인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마련된 것이다. 터키 현지에서 이 방송을 준비한 한학수 PD가 짧은 방송 시간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들을 자신의 글에 담아 보내왔다. 2회에 나눠 소개한다. <편집자>

이슬람 사회에는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이란의 길'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교분리(政敎分離)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있는 '터키의 길'이 있다. 이슬람 사회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터키 사회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이 취재는 시작됐다.

터키를 충격에 빠뜨린 총기 난사 사건
▲ 연행되고 있는 앙카라 최고행정법원 총기 살해사건 범인 아슬란. ⓒMBC

지난 2006년 5월 17일, 터키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났다. 아슬란(Aslan Alpaslan)이라고 하는 한 이슬람 극단주의 청년이 터키 최고 행정법원에서 판사를 향해 권총 실탄 11발을 발사한 것이다. 이 총격으로 당시 회의를 하고 있던 판사 6명 중에서 한 명이 사망하고 4명은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에서 더구나 백주대낮에 판사들을 향해 이뤄진 공격이란 점에서 충격은 더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검거되었는데, 29세의 청년으로 직업은 변호사였다. 제작진은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터키 최대 일간지 <휴리엣(Hurriyet)>의 기자 아르무추를 통해 범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르무추는 법원 출입기자라서 당시 사건 현장 근처에 있었고, 사건 소식을 듣고 즉시 현장에 달려갔다고 한다. 총격을 가하면서 범인은 이렇게 외쳤다. "알라신은 위대하다(Allahu akbar). 너희들은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는 "히잡에 대해서 올해 2월에 최고행정법원이 내린 판결에 대해서 그 부당함을 알리고자 사건을 저질렀다"고 경찰 조사에서 자백했다. 아르무추는 범인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벌인 시위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라며, 그 시위 군중들 틈에서 찍힌 범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래디컬(Radical)>의 법원출입 기자 아드난 케스킨는 범인의 배후에 대해서는 여전히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터키에서는 공공기관에서 '히잡'을 쓸 수 없다

히잡(hijab)은 터키의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를 말한다. 차도르나 터번 혹은 부르카와 같이 신체의 일부를 가리는 도구인데, 이처럼 나라마다 그 명칭도 다르고 몸을 가리는 정도도 다르다. 이 중에서 히잡은 머리카락 부분만을 가리는 약간 큰 손수건과 같다.

터키 국민의 95% 이상은 자신이 이슬람 신자라고 생각하며 대부분 수니파 이슬람이다. 그럼에도 공공기관인 대학이나 행정 관서에 종사하는 사람은 히잡을 쓸 수 없다. 당연히 히잡을 쓰고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으며 공무원이 될 수도 없다. 도저히 터키가 이슬람 사회라고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총기 살인의 범인 아슬란이 문제를 삼은 이른바 최고행정법원의 2월 판결은 무엇인가? 이 판결은 올해 32세인 여교사 아이탁(Aytac Kilinc)이 문제가 된 사건이다. 그는 앙카라 인근의 교사인데, 학교에서는 히잡을 벗었고 출퇴근할 때만 히잡을 썼다. 그러나 출퇴근할 때 히잡을 쓰는 것이 문제가 되면서 교장 승진에서 누락되었고, 이 여교사는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고행정법원은 올 2월 판결에서 "출퇴근할 때에 히잡을 쓰는 것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여교사의 승진 누락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 해당 판사들 사진과 함께 "바로 이 판사들이다" 라는 헤드라인이 보인다(좌), 앙카라 최고행정법원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숨진 무스타파 위젤 오즈빌진 판사(우). ⓒMBC


이 판결은 터키 여론을 찬반 양론으로 나누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와키트(Vakit)>와 같은 이슬람 성향이 강한 신문은 즉시 이 판결을 비난하면서 "보라, 이들이 바로 그 판사들이다"라는 제목과 함께 판사들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했다. 물론 범인 아슬란이 공격한 판사들은 바로 이때 사진이 공개된 판사들이었다. <와키트>는 당시 보도 때문에 지금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와키트> 편집국장은 당시 보도가 살인을 선동한 것이 아니며, 다만 부당한 현실을 보도한 정당한 언론 행위라고 주장했다.

터키 이슬람의 뜨거운 감자, 히잡 문제

이스탄불에서 대학을 7년 만에 졸업한 25살의 엘리프. 그녀는 취재진이 악수를 청했지만 "외간 남자와 악수를 할 수는 없다"며 공손하게 거절했다. 엘리프가 대학을 졸업하는 데 7년이나 걸린 이유는 다름 아니라 히잡 때문인데, 히잡을 쓰고 대학에 등교한다는 이유로 정학과 제적, 그리고 복학을 반복하느라 어렵게 졸업한 것이다. 이처럼 히잡 착용 때문에 대학에서 제적된 경력이 있는 여성들은 비공식 추산이지만 수만 명에 이른다고 보도되고 있다. 사원에서 만난 여성들은 대부분 정부의 '공공기관 히잡 금지령'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1980년 초반부터 공공기관에서 히잡을 쓰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대학에서 실질적인 규제가 이뤄진 것은 주로 1990년대 후반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간 터키에서는 많은 이슬람 여성들이 '공공기관에서도 히잡을 쓸 권리'를 얻기 위해 다양한 시위와 투쟁을 해 왔다.
▲ 터키 이스탄불 시내 번화가에서 쇼핑중인 무슬림 여성들. 이제는 히잡도 하나의 '패션'이다. ⓒMBC

제작진은 터키 남동부의 디야르바키르 지역에서 이슬람 사원의 종교 지도자인 이맘(Imam) 무사이를 만났다. 무사이는 "히잡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알라의 뜻은 히잡을 쓰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스탄불의 종교청장 무스타파 카레지는 "히잡을 쓰는 것이 신앙심의 척도는 아니며, 히잡은 수많은 이슬람 규칙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다소 유연하게 해석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현재 터키에서 히잡을 쓰는 여성은 30%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갈수록 히잡을 벗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공공기관을 제외하고는 히잡을 쓰든 안 쓰든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장이나 일반 회사에서는 히잡을 쓴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히잡 문제'는 정치 세력들에 의해 좀 더 상징적인 코드로 활용되어 왔고, 이 때문에 히잡 문제를 둘러싸고 '편 가르기'와 '시민사회의 갈등'도 깊어진 형국이다.

'이란의 근본주의' vs '터키의 정교분리', 누가 이슬람의 계승자가 될까?

제작진이 만난 이맘 무사이는 열댓 평 정도의 연립주택에 살고 있었다. 부인과 딸은 더운 날씨를 피해 친정에 가 있었다. 터키에서 이맘은 예배 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공무원이다. 8만여 개의 이슬람 사원을 정부의 종교청에서 관리하며 이들에게 봉급을 준다. 이맘은 종교 지도자이며 또한 공복인 셈이다. 신정일치 사회의 이슬람 근본주의 나라에서 보여주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이맘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 터키 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전 대통령. 모든 터키인들은 그를 본명보다 '아타투르크(터키의 아버지)'로 부른다. ⓒMBC

이렇게 터키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정교분리 이슬람 사회'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아타투르크(Atarturk)로부터 기원한다. 아타투르크는 '터키의 아버지', 즉 국부(國父)를 지칭하는 터키 말인데, 공화국 터키를 세운 무스타파 케말(1881~1938)을 가리킨다. 북아프리카 지중해와 동유럽의 일부 그리고 중동을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이 20세기 초에 서구 열강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망해갈 때, 홀연히 일어난 청년 장교가 무스타파 케말이다.

아타투르크는 종래의 신정일치(神政一致) 이슬람을 혁파하면서 칼리프 제도를 폐지하고 종교로부터 정치를 독립시킨다. 또한 왕정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공화국으로 터키의 뼈대를 갖춘다. 아타투르크의 이런 정신이 이어져 오고 있는 곳이 바로 터키인데, 아타투르크의 새로운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히잡 문제는 이러한 '이슬람의 실험'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셈이다.

지난 100년 동안 이슬람 사회는 터키에서 새로운 실험을 해 온 것이며, 이것이 '이슬람의 현대적 해석과 적응의 과정'이 될 것인지 아니면 '타락하고 세속화된 이슬람'으로 평가받을지는 역사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터키가 개방과 민주주의를 채택하면서 지난 100년간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100년, 이란의 근본주의와 터키의 정교분리 중에서 어떤 길이 승자로 남을 것인가?

(9월 1일에는 '터키의 길' 2부가 방송된다. 여기에서는 '전통적인 일부다처제에서 변모하고 있는 터키의 농촌',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해저터널 공사현장', '본 궤도에 오른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문제' 등을 다뤘다. 기독교 문명인 EU와 이슬람 문명인 터키가 어떻게 공존해갈 것인지를 들여다보았다. 이 취재 후기도 <프레시안>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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